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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다해먹는 먼치킨-374화 (374/391)

374화

“마지막 잔.”

꼴깍.

엑스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하도 쉴 새 없이 모닥불을 피운 탓에 주변엔 연기가 자욱했다.

신수와 엉켜 잠에 들었던 프리얀이 일어나 화들짝 놀랐다.

“켁켁! 연기 때문에 숨 막힐 것 같아. 천신의 거처에서 취사라니. 융통성 없는 신들이 알면 신성모독이라고 길길이 날뛸 걸? 그보다, 뭐야? 이 빈 병들은?”

깔끔하게 비워진 병들.

엑스는 그간 아껴뒀던 향신료를 모조리 사용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향신료에 버금가게 비싼 찻잎들도 아끼지 않고 써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전노 엑스, 평소 같았으면 아까워 몸서리를 쳤을 테지만…….

“발전을 위해선 투자가 필요한 법이죠.”

마나 : 5,873,500 / 5,873,500

목표 초과 달성!

엑스의 최대 마나는 이미 오백만을 돌파한 상태였다.

사실 마나 오백만을 돌파한 건 보다 이전의 일이었다.

돌파만 했겠는가?

이미 스킬 북도 열어서 읽어 보고, ‘세계수 소환’이란 스킬까지 익히게 됐다.

그럼에도 엑스가 차를 만들어 마셨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서, 스킬은 마음에 들어?”

물음에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엑스의 표정.

“그게, 이걸 뭐라고 해야 할 지…….”

엑스는 스킬창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수 소환 (Master) : 월드를 조율하는 세계수를 소환합니다. 세계수는 측정 불가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을 포함한 누구의 뜻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용 시, 영구적으로 최대 마나 1,000,000 감소.)

세계수 소환!

그저 이름만 거창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세계수를 소환하는 스킬일 줄이야!

엑스는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 걸까?’

엑스는 세계수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었다.

세계수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야 두말 할 것도 없었고, 가지고 있는 힘 또한 대단하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그 능력을 자신이 써먹을 수 없다는 거였다. 쩝, 엑스가 쓴 입맛을 다셨다.

“프리얀 님, 세계수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세계수가 할 수 있는 일? 질문이 이상하잖아. 세계수는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능력을 사용해. 라우니스나 우리들이라고 해도 세계수엔 깊게 간섭할 수 없지.”

“……역시 그렇죠?”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이 든다.

이 스킬은 닭갈비, 계륵이구나!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세계수가 있으면 좋긴 좋겠지.

일단, 크세르니스에 심기만 해도 관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끌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 세계수가 창출할 관광 이득이 크세르니스 총 생산량을 압도할 수도 있을 터.

‘문제는 이, 어이없는 스킬 코스트지만.’

그냥 마나도 아니고, 영구적으로 최대 마나를 사용하는 스킬이라니!

이전까지 들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 종류의 스킬이다.

그것만으로도 어이가 없는데, 무려 백만의 최대 마나가 필요하단다.

엑스가 작은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백만이 누구 집 개 이름인 줄 아는 거 아냐?”

최상위 랭커들을 둘러봐도 마나통이 백만에 가까운 이들은 손에 꼽는다.

물론, 엑스야 사기적인 천상의 미각 효과 덕분에 막대한 마나통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먹는데 보태 주기라도 했냐고. 진짜 생각할수록 짜증나는 스킬이네.’

그래도, 까짓것 한 번 심어보자!

마나통이야 다시 먹어서 늘리면 되는 거지.

무엇보다 스킬을 익힌 이상, 써먹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두 개나 바쳐서 익힌 스킬이었으니까.

“생각할수록 어이없네. 저자가 대체 누구야?”

담대하게 결정을 했지만 투덜거림이 쉽게 멈추진 않았다.

꼴깍!

이성을 잃은 채 찻잔을 기울이는 엑스의 모습은 흡사 주정뱅이를 보는 것 같았다.

프리얀이 엑스를 만류했다.

“티타임도 좋지만, 할 일은 마저 해야지!”

그 소리에 엑스는 쿨타임을 확인했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불사조의 날개 쿨타임도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크세르니스로 돌아가면 바로 써봐야지.’

결심한 엑스는 프리얀과 함께 널브러진 식기들을 회수했다.

이제, 계단을 오르면 15층이다.

15층에서 어떤 시련들이 등장할 순 알 수 없었지만 기다리며 준비한 만큼 자신은 있었다.

‘정 빡세다 싶으면 꼼수라도 부려야지.’

꼼수!

모든 게임에는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하는 꼼수가 존재하고, 페이트도 엄연한 게임이 아니던가.

엑스는 불사조의 날개, 효과를 교묘하게 이용할 속셈이었다.

‘대략 10초 정도의 여유 시간이 있으니까, 마지막 전투를 최대한 오래 끌면 돼.’

끝까지 전투 상태를 유지하다가 재빠르게 계단을 오른다!

그 다음 층에서 다시금 전투에 돌입한다면 불사조의 날개는 해제되지 않는다.

물론, 꼼수를 사용하기 위해선 빠른 속도가 필수였다.

마스터에 이른 축지법을 보유한 엑스에겐 누워서 떡 먹기 만큼 쉬운 일이란 소리다.

프리얀이 힐끗 엑스를 보곤 물어왔다.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와? 무섭지도 않아?”

“무서우면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았죠.”

“으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내가 재밌다고 남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면 안 되겠구나. 프리얀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도 잠시.

15층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보다 먼저 엑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호라.”

고개를 들자 하늘이 보인다. 투명한 창으로 뒤덮인 천장 너머로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그 풍경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뒤따라 올라온 프리얀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다음이 마지막 층인가 봐!”

드디어!

고생, 고생, 생고생 끝에 천신의 거처 최상층에 가까워졌다.

스스스!

그러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최상층에 가까워진 만큼, 마지막 시련 또한 보통이 아니겠지.

그 예상에 화답하듯 최후의 시련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 같이 생겼는데?”

멀리서 가까워지는 형체.

프리얀의 말대로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인간형 몬스터다.

‘여자인가?’

다른 점을 찾자면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과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를 가졌다는 것이다.

“달라. 뭔가 이상해. 조심하자, 엑스.”

프리얀은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어째서?

위기를 느낀 것도 아니고, 위화감을 느낀 것일까.

의문에 대한 대답은 이내, 엑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건 또 뭐야?”

정보가 떠오르지 않는다.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정보가 깨져서 보이고 있었다.

순간, 동대륙에서 조우했던 ‘불완전한 다른 존재’가 떠올랐다. 녀석도 이렇다 할 몬스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건 명백하게 달랐다.

‘다른 존재랑은 또 다른 ‘무언가’란 건가?’

저 몬스터가 무엇인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건 측정 불가 난이도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저 녀석을 반드시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빵 필승!’

첫 공격으로 기세를 잡겠다.

엑스는 가장 먼저 왼손을 치켜들었다.

파지지직!

자고로 꼼수란 무궁무진한 법. 엑스는 계단을 오르면서 모으고 있던 뇌룡 출두를 그대로 발사했다.

[뇌룡, 아락타시스가 포효합니다!]

상승한 마나 덕분인가.

소환된 뇌룡은 이전보다 훨씬 밝고 거대하고 찌릿거리는 것 같았다.

뇌룡,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이 더욱 힘차게 쇄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

엑스는 눈을 의심했다.

뇌룡과 녀석이 충돌하는 타이밍에, 마치 뇌룡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증발해 버렸으니까.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라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속으론 놀라는 게 당연했다.

‘뇌룡 출두가 보통 스킬도 아니고…….’

니드호그는 물론이요, 니드호그보다 강했던 시련들에게도 적잖은 피해를 줬던 뇌룡 출두다.

그런데 저 여인, 시련은 조금의 피해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더 가까워진다. 조심해!”

프리얀이 다급히 버프를 걸었다.

[바람의 기운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공격 속도가 짧은 시간 대폭 상승합니다!]

[대지의 기운이 당신을 보조합니다!]…….

정령의 신, 프리얀.

그 버프 효과는 짧지만 상당한 효과를 자랑했다. 버프를 받자 온몸에 활기가 샘솟았다.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물리 공격이다.’

엑스는 버프가 꺼지기 전에 재빠르게 타이탄의 화살을 치켜들었다.

“광전사의 박동.”

그것도 모자라 공격력을 다섯 배 증폭.

“맹수의 이빨.”

천상의 요리 하위 스킬까지 발동했다.

꾸욱!

타이탄의 화살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빛과 같이 뻗어 나간 타이탄의 화살이 시련의 심장을 파고든다.

이내, 엑스와 프리얀, 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그대로……!!”

그대로 떨어졌다.

사라진 뇌룡 출두와 마찬가지로, 타이탄의 화살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프리얀이 잔뜩 위축된 눈빛으로 엑스를 바라봤다.

‘어떻게 되먹은 몹이야, 저거?’

물론, 엑스도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마법 공격도, 물리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엑스가 설마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진짜 깨진 파일이라도 되는 건가? 그래서 공격이 먹히지 않는 거고?’

깨져있던 정보창.

그 추측이 사실이 되려면 저쪽의 공격도 이쪽에 먹히지 않아야 한다.

공격을 맞아보자. 무모하지만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다.

“!”

[□□□가 당신의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모든 스텟이 대폭 하락합니다!]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몬스터가 다 있나!

그러나 순간 떠오르는 알림.

보다시피 명백한 디버프였다. 엑스는 빠득, 이를 악물며 스킬을 발동했다.

“곰 태세!”

척 보면 척.

저 시련은 육탄전 보단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몹 같았다. 그런 놈들한텐 곰 태세가 쥐약이다.

정신을 차린 엑스는 지척까지 다가온 시련을 바라봤다.

“……프리얀 님, 보이십니까?”

“흐릿해서 보이지 않아.”

시련은 마치 모자이크라도 된 것처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게 버그가 아니라 연출이라면 참 기가 막힌 연출이리라.

컨셉 한 번 제대로 잡았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을 정도로.

엑스는 악물었던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무적인 녀석을 어떻게 잡으란 거야?’

딱딱!

일단, 손가락을 튕기면서 거리를 벌렸다.

겁화의 벼락이 연속해서 시련의 머리 위에 쏟아졌지만 개뿔, 효과도 없었다.

콰드드득! 춤추는 줄기를 활용해서 시간이라도 벌어볼까 싶었지만.

“뇌룡 출두도 안 먹히는 마당에…….”

역시나 효과는 전무했다.

엑스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곰 태세에도 지속 시간이 존재한다. 곰 태세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소리다.

적이 심상치 않은 만큼, 지체하지 않고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철컥!

엑스가 허리춤에서 ‘초월’ 등급의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무너진 세계의 의지 (초월)

이곳에, 시공간을 초월한 의지가 깃들어있다.

제한 : 무너진 세계의 파편 소유

공격력 : +50,000

특수 효과 : 공격 시, 염열의 화룡의 브레스를 발산합니다. 브레스의 데미지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상승하거나 감소하지 않습니다.

(발동 확률 : 100퍼센트)

현재 엑스가 낼 수 있는 전력, 그 이상이 담긴 초월 등급의 장비였다.

염열의 화룡의 브레스를 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효과인데, 공격력도 다른 장비들과 격이 달랐으니까.

“후우.”

호흡을 가다듬자 검신에 불꽃이 집중된다.

그 열기는 천상의 요리 효과로도 완전히 상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엑스는 손바닥의 화기를 참아내면서 브레스를 충전했다. 시련이 다시금 발을 떼는 순간,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치명적인 일격!]

경쾌한 알림이 유효타를 알린다.

역시 초월 등급.

결국, 템빨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건가? 생각하던 엑스에게 연달아 알림이 울렸다.

[곰 태세 효과로 □□□에게 공격을 적중시켰습니다!]

“……그쪽이었어?”

허탈한 중얼거림도 잠시.

“뭐, 상관없지.”

엑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든, 저 녀석을 ‘쓰러트렸다’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으니까.

혼자 다 해 먹는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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