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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3화 (3/194)

3화

마하임이 과거로 회귀한 지 3일이 지났다.

하지만 마하임은 오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는 집무실 지하에 급조된 하륜의 실험실에 꽁꽁 묶여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이를 어쩐다, 오늘도 못 깨어나면 큰일인데….”

하륜은 가슴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이렇게 화려하게 인체 개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신체 능력을 조금 더 올리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하임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의 요구는 한계치 이상으로 인체 개조를 원했고, 하륜은 확률론에 입각해 마하임이 원하는 대로 모두 다 해 줘 버린 덕분에 지금 이 사단이 난 것이다.

“젠장! 모든 수치는 정상적이잖습니까! 깨어나도 벌써 깨어났어야 정상인데!”

지금 마하임의 몸속에는 하륜이 고대 유적에서 직접 구해 온 신체 강화 및 수복용 나노머신 12만 7천 개가 그의 몸을 DNA 단계부터 수정 재조립을 하고 있었다.

“아놔, 분명 거부 반응은 없었잖습니까?!!”

하륜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이 고대의 유물은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륜 자신에게 시험 삼아서 사용했다가 저승의 문턱까지 가 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이 사용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하임은 그딴 위험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면 지금 여기서 죽는 게 낫다!! 지금 죽나, 10년 후에 죽나 결과론적으로 같다! 즉시 시술하도록!”

마하임의 이 한마디에 하륜은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륜은 자신이 수십 년간 모아 온 나노머신 ‘시류’ 전부를 마하임의 몸속에 투여했다.

나노머신 시류의 각 크기는 문자 그대로 나노 단위의 초소형이었지만, 이것이 12만 개가 넘어가자 마하임의 체액을 1/5 이상 제거하고 나서야 겨우 투여가 가능할 정도로 이번 투여량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러나 시술은 의외로 빠르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하임은 하륜조차 놀랄 정도의 무서운 적응력과 회복력으로 나노머신 시류와 하나가 되어 갔다.

보통의 경우에는 거부 반응이 나타나 다발성 장기 부전이라든지 심장이 아예 멈춰 버리는 일까지 허다했지만, 마하임에게는 이 중 그 어떠한 증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하임의 육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노머신을 순식간에 흡수해 지금 이 순간도 진화하고 있었다.

“정말 엄청나군요. 아직도 골밀도가 올라가고 있다니, 이정도면 ‘탄소나노 튜브’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듯합니다.”

하륜은 지금은 그 이름조차 잊힌 고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의료 기기에 나타나는 마하임의 상태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안정적이었다. 지금 마하임의 상태는 지극히 안정된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문제라면 뇌파까지 약해질 정도로 딥 슬립에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말이 잠이지, 사실상의 혼수상태였던 것이다.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적응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 시술은 100% 성공하는 시술이 아니었다.

성공 확률은 50% 남짓. 거기다 일반 투여량에 2배, 아니 3배는 투여했으니 실패 확률은 절반을 넘을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대로 영원한 잠에 빠져들어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어나십시오. 영주님! 제 이번 달 월급은 주고 가셔야죠!!!”

하륜은 다시 한번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겨우 잡은 실마리가 이렇게 비명횡사해 버리면 정말 곤란했다. 거기다, 이대로 잘못되면 하륜은 영주 시해범으로 몰려 졸지에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절대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눈을 번뜩이며 하륜은 다시금 고대의 기술이 집약된 의료 기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단 1%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그렇게 하륜의 3일째 철야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어둠으로 가득한 세계.

위도 없고 아래도 없었다. 그저 끝없이 펼쳐진 어둠의 공간. 그 공간에서 마하임은 홀로 서 있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눈을 떴을 뿐인데 자신은 여기에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여기 있어선 안 돼.”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출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그저 끝없이 펼쳐진 공허의 공간뿐이었다.

“오호라, 간만이다요. ‘인트라넷’에 접속한 비정규 ‘다이버’라니.”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마하임은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랄 것 없다요. 나는 관리자의 후예. 윈디다요.”

그 목소리는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일 뿐, 이 목소리에는 일체의 감정이라는 것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기괴함까지 느껴졌다.

“후후, 보아하니 하륜이 또 사고를 친 모양인데, 뭐 좋다요. 내가 널 여기서 ‘로그아웃’시켜 주겠다요. 하륜에게는 이 말만 전해 주면 된다요. ‘알타베르나’에서 윈디가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주면 된다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마하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로그아웃 전에 재밌는 걸 보여 주겠다요. 아득히 먼 옛날. 지구에 살았던 ‘고대인’의 마지막 항전을.”

그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사방을 뒤덮고 있던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마하임의 눈앞에는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장엄하면서도 처절한 ‘고대인’의 전장이 펼쳐졌다.

* * *

밤인지 낮인지 구별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하늘은 검붉은 구름과 섬광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검은 하늘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쏟아지듯 지면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USS엔터프라이즈호 피탄! 중력 제어 장치 대파!”

그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배였다. 하지만 이 배는 바다를 항해하는 대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러나 배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배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당장이라도 두 동강 나 버릴 정도로 큰 데미지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안 돼! 핵융합로가 붕괴한다! 으아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하늘을 날고 있던 배는 엄청난 폭음과 빛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배의 잔해, 그리고 그 배 안에 타고 있는 1,000명에 다다르는 승무원들의 시신이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추락하는 배는 이 배뿐만 아니었다. 수백 아니 수천 대에 이르는 거대한 배들이 저마다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은 채로 추락하고 있었다.

“뭐지?! 뭐야? 저건 비공정인가?”

마하임은 미친 듯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기묘한 느낌. 엄청난 크기의 비공정이 추락하면서 남긴 역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지만, 마하임 자신에게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냥 보라요. 언젠가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요.”

스스로를 윈디라 소개한 그 목소리는 이것을 끝으로 그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홀로 이 거대한 전장에 남겨진 마하임뿐이었다.

“지구 연합 최후의 함대에게 고한다! 12시 방향 좌표 19.12.11에 화력 집중! 레비아탄이 강림한다! 막아라! 막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이순신함 중력 닻 시스템 가동! 공성 모드로 전환!”

“명령 확인! G1-오로라 동참하겠다. 회피 기동 중지, 공성 모드로 이행한다!”

어지러운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완파 직전의 수천 대의 비공정은 마지막 힘을 다해 힘겹게 뱃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각각의 비공정에서 새하얀 빛줄기를 동반한 매서운 포격이 시작되었다.

푸슝, 화아악-!

슈욱 슈으우욱!

그것은 마치 작렬하는 뇌전 마법과 같은 것이었다. 배에서 쏟아져 나온 빛의 물결은 전방의 어두컴컴한 하늘 위로 쏘아져 올라갔다.

“탄을 아끼지 마라! 레비아단이 지표에 닫는 순간 지구는 끝이다!”

누구의 외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외침은 더욱더 격렬하게 마하임의 귀를 강타했다.

마하임은 너무나 큰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았지만, 그 소리는 여전히 그의 귀에 들려왔다.

“레비아탄 급속 하강 중! 요격기 전기 소멸! 레비아탄, 성층권을 아래로 진입합니다!”

비명과 같은 외침이 절망적으로 사방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마하임은 보았다.

검은 안개로 가득한 하늘의 끝자락에서 천천히 강림하고 있는 파괴신 ‘레비아탄’의 끔찍하고도 기괴한 모습을.

* * *

“크허헉!”

비명을 지르며 마하임은 몸을 일으켰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너무나 불쾌한 꿈, 아니 그것을 꿈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집무실…인가?”

마하임의 마지막 기억은 집무실 지하에 있는 하륜의 실험실이었다.

자신이 여기서 눈을 떴다는 것은, 적어도 그가 시도한 위험천만한 모험이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오!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영주님!”

샤워라도 한 모양인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긴 검은색 머리칼을 수건으로 감아올린 하륜은 대뜸 마하임에게 달려왔다.

“몸은 좀 어떠신가요?! 눈이 안 보인다든가, 어딘가 마비된 느낌이라든가 그런 건 없으십니까?”

“큰 소리로 말하지 마라. 머리 아프니까. 눈은 잘 보인다. 몸도 잘 움직이는 것 같고.”

“일단은 성공한 거 같군요. 어쨌거나 축하드립니다. 호모 사이언스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 스스로를 무기로 진화시킨 ‘호모 웨포니투스(지혜로운 무기)’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륜은 마하임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 마하임은 그런 하륜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달라진 건 없, 아니 있군.”

마하임은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임신 6개월 차 임산부인 양 툭 튀어나온 그의 배는 그 미래에서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명한 복근이 보였다.

팔과 다리도 상당한 웨이트 트레이닝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의 조밀한 근육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게 느껴졌고 컨디션은 최상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필요 없는 지방은 ‘시류’가 모두 제거했습니다. 근골격 강화는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최고의 수준까지 올려놨구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본 옵션일 뿐이란 사실.”

하륜은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장검을 검집 채로 마하임에게 내밀었다.

“이건 뭐지?”

“먼치킨이 되고 싶다고 하셨죠?”

“아니, 난 세계 최강의 전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뿐이다.”

“저기…. 그 말이 그 말인데 말이죠. 뭐, 됐고 이건 세계 최강의 전사가 되기 위한 마스터키 같은 겁니다.”

마하임은 하륜이 내민 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을 내밀어 그 검을 잡았다.

검은 롱소드와 숏소드의 중간 정도 크기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관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검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의 기운은 이 검이 절대 평범한 검이 아니라는 것을 마하임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하임은 조심스럽게 검의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거머쥐었다. 바로 그때였다.

푹-

검의 손잡이에서 제법 날카로운 강철심이 튀어나와 마하임의 손바닥을 꿰뚫은 후 순식간에 사라졌다.

[혈액 및 골수 샘플 체취 완료. 사용자 등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하임의 귀에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마하임은 자신의 손바닥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랗게 뚫린 구멍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뭐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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