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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6화 (6/194)

6화

아직 3분도 안 지났지만, 마하임의 무차별 난타를 보고 있던 병사들은 한 30분은 지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 역시 나름 윈드시크릿의 아수라장을 겪어 온 병사들이었지만, 이런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휴, 휴이. 우리 X된 거 아냐?”

“그러게 내가 저 새끼 따라가지 말자고 했잖아! 다 듀이 너 때문이야!”

순식간에 자신의 동료 2명이 쓰러진 것을 본 남은 병사, 휴이와 듀이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원래 용병이었던 둘은 친형제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어감의 이름 때문에 금세 친구가 되었다.

우연찮은 기회로 윈드시크릿의 병사가 된 둘은 벌써 4년째 윈드시크릿에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저, 저기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하기도 그렇긴 하지만, 존함을 여쭈어 봐도 될까요?”

듀이는 조심스럽게 지금 이 순간도 살기를 풀풀 날리고 있는 마하임에게 말했다. 마하임은 이를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

“존함? 못 알려 줄 거도 없지. 내 이름은 마하임 폰 잉그램이다.”

마하임의 풀 네임을 들은 휴이와 듀이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 이름은 약 2주 전 이곳에 부임한 신임 영주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여, 영주님?! 이건 말도 안 돼!’

‘젠장, 새로 온 영주는 배불뚝이 꼬맹이라고 들었는데, 저게 어디 배불뚝이 꼬맹이냐!’

“어이 거기, 다 들리거든.”

마하임은 느긋하게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휴이와 듀이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 무지막지한 영주의 손아귀에 놀아나다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병사와 똑같은 신세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휴이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사로잡히면 꼼짝없이 심판대에 올라갈 것이다. 양민 착취는 중범죄. 보나 마나 사형이 확실했다.

“저기 죄송하지만….”

“죄송할 필요 없다. 너흰 그냥 죗값을 치르면 된다.”

마하임은 단칼에 휴이의 말을 끊어 버렸다. 이미 마하임의 마음속에는 이들의 사형은 기정사실이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흰 주동자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끌려온 건데, 그냥 못 본 척해 주시면 안 될까요?”

“각하한다. 너흰 내일 있을 내 취임식 때 심판대에 올라갈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사형이란 건 알고 있겠지?”

마하임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나이 이제 열일곱. 아직 성인식도 올리지 않은 소년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은 아니었다.

휴이와 듀이는 마하임의 이야기를 듣고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대놓고 사형 선고라니 이런 말을 듣고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하임 님. 나노머신 시류의 시운전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실전이 좀 더 필요합니다. 목표물이 전의를 상실하면 곤란합니다.]

“흐흠, 그런가? 그럼 저 녀석들이랑 좀 더 놀아 줘야 한다는 이야긴데….”

마하임은 알지 못했지만, 나노머신 시류는 학습형 OS(오퍼레이팅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었기에 실전으로 얻은 ‘경험치’는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마하임은 잠시 고민하다 휴이와 듀이를 향해 말했다.

“좋아, 내 특별히 너희에게 기회를 주겠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방금 네가 말했지 않나? 주동자가 아니라고. 네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기회를 주지. 전력으로 덤벼라. 나를 즐겁게 해 준다면 사형은 면하게 해 주마.”

뭔가 앞뒤 아귀가 안 맞는 말이지만, 휴이와 듀이는 팔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 생긴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이다.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

대놓고 사기를 밥 먹듯이 치는 귀족의 약속 따위는 믿을 게 못 되지만, 영주의 약속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좋습니다, 영주님. 그리 원하신다면 해 드려야죠.”

“하아, 영주님과 칼부림이라니. 난 제명대로 못 살 거야”

둘은 다시금 검을 고쳐 쥐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앞서 보여 준 마하임의 무력이라면 자신들의 조잡한 검술은 애초에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오러소드!”

“오러소드!”

둘은 합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외쳤다. 그와 함께 휴이와 듀이의 검에서는 새하얀 빛줄기가 희미하게 솟아올랐다.

[경고, E급 적대적 오러가 발견되었습니다. 경계 레벨을 한 단계 올립니다. 아직도 목표를 생포한다는 것은 유효합니까?]

“보아하니 겨우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오페라, 설마 생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겠지?”

[99.378%의 확률로 생포 가능합니다.]

“좋아. 즉시 실행에 옮기도록. 그리고 그 시운전인지 뭔지도 확실히 끝마치고.”

[알겠습니다. 마하임 님. 임무를 재개하겠습니다.]

오페라는 마하임의 몸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숨에 제압할 수도 있었지만, 시운전을 마치기 위해서는 좀 더 장기전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 오페라는 방금 전 2명을 제압한 것처럼 급습은 최대한 배재하고 최대한 여유롭게 적을 상대하기 위한 세팅을 끝마쳤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어디서 오러소드를 익혔지? 조잡하긴 하지만 기사단에서 익히는 정통 오러소드인 것 같은데.”

오러소드란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물리 세계에 투영해 검에 부여하는 기술을 총칭한다.

이 기술은 배우고 싶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오러소드는 타고난 재능과 오랜 수련, 그리고 수많은 실전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익힐 수 있는 그야말로 전투에 프로페셔널한 자만이 익힐 수 있는 궁극의 기술이었다.

“뭐, 저희 대장님 덕분이죠.”

“오지랖의 화신이라고 할까나?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미안하게 됐다. 오지랖의 화신이라서.”

그때 갑자기 누군가 셋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경고! 생체 반응 센서에 잡히지 않았던 미지의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경계 단계를 최고로 올립니다]

“그럴 필요 없다, 오페라. 저자는 내가 아는 자다.”

모를 리 없었다. 한결같이 자신의 곁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싸워 준 기사도의 화신, 요한.

그는 아르케비니아 최고의 기사이자, 오러소드를 마스터한 ‘마스터 소드’의 칭호를 지닌 충신이었다.

물론 아직 마스터 소드의 칭호를 얻기까진 5년 이상 남았지만 말이다.

“영주님! 여기서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제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시는지요?”

언제나처럼 그는 온몸을 감싸는 새하얀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었다.

나이는 마하임보다 세 살 많았으니 20살 정도 됐을 것이다. 준수한 외모에 키 180의 건장한 체격. 그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단발 머리칼을 휘날리며 마하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하임은 순간 코끝이 찡해 옴을 느꼈다.

그 처절했던, 모두가 배신을 밥 먹듯 하던 미래에서 요한만큼은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마하임의 편에서 끝까지 싸워 주었다.

그런 요한을 마하임이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뭐 하긴. 양민 착취, 거기다 살인 미수 협의로 네 부하들을 손봐 주고 있었다.”

“네에?! 병장 휴이, 듀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라.”

정색을 하고 휴이 듀이를 노려보는 요한. 그의 눈동자는 마치 타오르는 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망할, X됐다.”

둘은 요한의 등장에 완전히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똥통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을 내려다보는 요한과 마하임의 눈은 차갑기만 했다.

“네놈들의 판결은 내일 하겠다. 변명할 말이 있다면 그때까지 잘 생각해 놓도록.”

마하임은 이 말만을 남기고선 영빈관으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 * *

다음 날. 그동안 마하임이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고 또 미뤄 왔던 윈드시크릿 신임 영주 취임식이 윈드시크릿의 단 하나뿐이 없는 중앙 광장에서 열렸다.

사실 마하임은 영주 취임식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귀찮기도 귀찮았거니와 지금처럼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는 마하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힘, 나노머신 ‘시류’를 손에 넣은 이상 더는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하임은 영지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 줄 만한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영주 취임식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흠, 의외군. 별로 안 나올 것 같았는데.”

“그럴 리가요. 영주님이 참석만 하면 이틀 치의 식량을 무상으로 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지천에 굶어 죽는 사람이 널렸는데 당연히 참석하지요.”

하륜은 언제나처럼 재수 없는 금속 가면을 쓰고 그림자처럼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윈드시크릿 성의 경비대장 요한도 어두운 얼굴로 맞은편에 서 있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공개 처형은 과한 처사인 듯싶습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부하였던 병사 4명이 오늘 영주 취임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제물이 되게 생겼으니 요한의 입장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다. 나 역시 귀중한 인력의 손실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론 본보기도 필요한 법이지.”

숙련된 병사 1명을 키워 내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이 지금의 윈드시크릿에서 병사 1명의 가치는 금괴 하나와도 맞먹을 정도로 귀중한 재원이었다.

하지만, 때론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희생을 치러야 할 때가 있었다.

그것은 ‘조직’의 기초를 다질 때였다. 어떤 조직이든지 그 시작이 부패하면 그 조직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결국은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사실을 이미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바 있는 마하임이었기에 병사들의 개인적 이탈을 절대 묵과할 수 없었다.

“그 X새끼들을 죽여!”

“아직도 미나의 할머니는 사경을 헤매고 있다!”

“당장 끌어내 죽여! 죽이란 말이다!”

이것은 윈드시크릿의 영지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전 영주의 폭정에 시달릴 때로 시달린 그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아는 것이었지만, 전 영주는 복상사한 게 아니라 그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영지민 중 누군가가 암살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서기관, 식을 진행하게.”

“네, 영주님.”

하륜은 마하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광장 중앙에 놓여 있는 단상에 올라가, 그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영지민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윈드시크릿의 신임 영주, 마하임 폰 잉그램 님의 첫 업무 시작과 더불어 취임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하륜의 말이 시작되자 시끄럽게 웅성대던 영지민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지금 영지의 분위기는 언제 폭동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흉흉했다.

하지만 전날 있었던 신임 영주 마하임의 활약에 대한 소문은 영지민들이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자아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힘없는 노파와 앞을 못 보는 소녀를 약탈한 것도 모자라 죽이려고까지 한 부패한 경비병들을 혼자서 순식간에 제압함은 물론, 이들을 오늘 심판대에 올려서 즉결 심판한다니….

지금껏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정말 통쾌한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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