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8화 (8/194)

8화

지난 석 달 동안 마하임은 오페라를 이용해 나노머신 시류를 길들이는 데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나노머신 시류는 인체와 융합하여 인체에 숨겨진 모든 힘을 100% 끌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나노머신 시류를 사용할 시 급격한 체력 저하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시류는 인체에 숨겨진 자원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였기에, 한계 이상으로 사용 시 몸에 걸리는 부하는 상상을 초월했다.

마하임이 오토파일럿 모드를 처음 사용한 그날, 마하임은 정말 죽다 살았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용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집으로 돌아오자 온몸이 쑤시고 결리기 시작하는데, 태어나서 이런 심한 몸살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 이후 마하임은 지금까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자신을 단련했다.

시류의 힘은 결국 자신이 얼마만큼의 체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강함과 약함이 결정되었기에,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타깃의 공격 루트 확인, 증강 현실 센서로 표시합니다]

오페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위험 요소를 감지하여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어와 공격 루트를 마하임의 시야에 표시해 주었다.

처음엔 이 증강 현실이라는 시스템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지독한 멀미와 두통으로 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젠 완전히 익숙해져 버려서 증강 현실의 백업이 없으면 뭔가 허전할 정도였다.

마하임은 증강 현실로 표시된 검의 궤적을 정확히 파악해 순식간에 휴이와 듀이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허억, 허헉, 이건 사기야! 영주님 지금 마법 사용하고 있으시죠?! 저건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야.”

“이제 더는 검 못 휘둘러. 차라리 저희를 죽여 주십시오….”

휴이와 듀이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마하임은 시류의 힘을 이용해 평상시 3배의 움직임을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물론 10배까지도 가능은 했지만, 그렇게 사용했다간 다시 그 지옥의 몸살을 겪어야 했기에 긴급 상황이 아니면 5배 이상은 사용할 수 없도록 막아 놓은 상황이었다.

“뭐, 좋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쉬어도 좋다. 아참, 요한. 나랑 이야기 좀 하지.”

마하임은 헐떡이는 휴이와 듀이를 뒤로하고 연병장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빠른 걸음으로 요한이 따라붙었다.

“듣자 하니 병사들의 급료가 꽤 밀렸다던데?”

“면목 없습니다. 윈드시크릿의 재정은 이미 바닥이어서….”

예상은 했지만 윈드시크릿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전 영주가 빼돌려 놓은 재물로 겨우겨우 버텼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던 것이다.

윈드시크릿의 우기라고 할 수 있는 겨울이 찾아왔건만 올해도 하늘에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매일 아침, 가뭄으로 굶어 죽은 영지민의 시체를 소각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마하임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아직 준비는 덜 끝났지만,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그 X 같은 미래를 또 반복할 것이 뻔했기에 마하임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재정 문제는 곧 해결된다. 병사들이 돌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잘 타이르도록. 오후 훈련은 알아서 해 줘.”

“네. 영주님.”

요한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서기관 하륜과 함께 지금 마하임이 꺼내 들 수 있는 최고의 카드가 바로 이 요한이었다.

지금은 이름 없는 기사일지 몰라도 그는 이후 마스터 소드의 칭호를 얻는 전설적인 기사로 성장한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입니다.

갑자기 마하임은 자신의 부인, 시아라가 윈드시크릿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야 그 말이 이해되는 듯했다.

‘목숨을 걸지 않고선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 빌어먹을 미래를 또다시 반복해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오늘 밤은 여느 밤보다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았기에 마하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영빈관을 향했다.

미래는 그렇게 천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 * *

초겨울 윈드시크릿의 밤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흉작 때문에 도시의 상업 활동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사람이 모이는 도시라면 어디든지 시장은 존재했다.

특히 윈드시크릿의 상업 지구의 밤은 낮의 풍경과 확연히 달랐다.

낮의 모습은 일반 시장과 다름없었지만, 밤이 되면 조금은 특별한 시장이 열린다.

그것은 바로 노예 시장.

한 달에 한 번 윈드시크릿에서 특별한 노예 시장이 열린다.

물론 윈드시크릿에서 노예 거래가 불법이었지만, 그런 것이 유명무실해진 지는 오래였다.

제페쉬 백작이 윈드시크릿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기가 무섭게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노예 매매였다.

특히 윈드시크릿은 변방에 있는 만큼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사 인간 노예도 드물게 볼 수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들이 거래되는 날이었다.

“뭘 봐. 꺼지지 못해?!”

아니나 다를까. 상업 지구 중앙로에 마차 한 대가 지나갔다.

그 주위에는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의 경계가 삼엄했다. 마차 안에는 나신이나 다름없는 유사 인간 여성이 대여섯 명 정도 보였다.

이들은 상품이었다. 오늘 밤 암시장에서 거래될 아주 특별한 상품.

“노옴에, 드워프, 켄타우로스까지. 과연…. 세부적인 디테일은 같군.”

마하임이 회귀하기 전 사건의 흐름과 지금 현재 상황은 미묘하게 달랐다.

물론 기억의 착오일 수도 있었지만, 확실히 뭔가가 다름을 마하임은 느끼고 있었다.

마하임은 머릿속에 드는 상념을 떨치고 오늘 밤 자신이 털어야 할 목표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차 안은 그야말로 유사 인간들의 전시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근육질 몸에 땅딸막한 키를 가진 드워프를 시작으로, 이마 중앙에 뿔을 지닌 노움.

반인반마의 켄타우르스족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마차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유사 인간들은 일반적인 인간들이 가지지 못한 초능력이나 괴력을 소유한 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생포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수도 매우 적어 그들의 가치는 천문학적으로 치솟았다.

그래서 이렇게 생포한 유사 인간들은 특수한 약물로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켜서 거래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저들은 그 보통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 6명이면 적어도 600만 골드. 윈드시크릿 한 달 예산이 저기 있구나.”

저들 1명의 가격은 보통 100만 골드. 600만 골드면 윈드시크릿 한 달 예산과 맞먹었다.

저들이 사라진다면 이들을 밀반입한 제페쉬 백작은 꽤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슬슬 시작해 볼까?”

마하임은 준비해 온 두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옷은 이미 도둑이나 입을 법한 평범하면서도 실용적인 검은색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서 좋을 것은 없다.

아직 제대로 일을 벌이지도 않았는데 제페쉬 백작과 척진다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최악의 악수였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후견인임과 동시에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그자를 상대하는 만큼 최대한 은밀하고, 또 치명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서 오늘 밤은 최적의 날이었다.

“멈춰라.”

마하임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길 중앙에 우뚝 서 길을 가로막는다.

“뭐야, 이 꼬맹이는, 꺼지지 못해?”

선두의 용병 2명이 눈을 치켜뜨며 마하임을 노려봤다. 하지만 마하임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뿐이다.

“복면의 꼬맹이라. 동화책을 너무 많이 봤나 보네. 그래, 네가 그 유명한 정의의 사도냐?”

“정의?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 나로 말하자면… 그래, 네놈들에게 인생의 쓴맛을 보여 줄 사람이지.”

그의 말대로 마하임은 정의 따위는 관심 없었다. 그렇다고 이 노예들을 훔쳐서 되팔겠다는 생각은 더욱이 없다.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한 압도적인 힘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 힘을 얻기 위해 지난 석 달간 피나는 훈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알아보는 데에는 실전 이상이 없었다.

물론 위험은 따르겠지만, 큰 깨달음에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없다. 현필, 칼슨. 처리해. 죽여도 좋다.”

이 용병들의 우두머리라고 생각되는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용병들의 수는 20명. 비싼 노예를 운반하는 만큼 경비도 삼엄했다. 물론 마하임의 눈으로 본 그들은 오합지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와라.”

창과 검을 각각 뽑아 든 2명의 용병이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빈틈이 없어 보여 살짝 긴장도 됐지만, 마하임에게는 오페라가 제어하는 나노머신 시류가 있었다.

[목표물 확인. 전투 지원 시스템 지원을 시작합니다.]

언제나처럼 오페라는 기다렸다는 듯 증강 현실 시스템을 가동하여 마하임의 안구에 직접 전투 지원을 시작했다.

이미 x3의 오버클럭을 지원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마하임의 온몸은 힘껏 당겨진 활시위처럼 터질 듯 긴장하고 있었다.

“오페라, 이번엔 네 본체도 사용해 보겠다. 가능하지?”

[네, 마하임 님. 즉시 사용 가능합니다.]

마하임은 하륜이 고대인이 만든 최강의 병기라 극찬한 ‘오페라’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손에 착 달라붙는 그립감은 과연 고대인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경고한다. 거기서 한 걸음이라도 더 오면 너희는 죽는다.”

“닥쳐라, 꼬맹이. 죽는 건 너다!”

계속 꼬맹이란 소리를 들으니 무척이나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다.

마하임의 현재 나이 열일곱. 그의 키는 고작 160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용서해 줄 생각은 없었다.

슈하악-

마하임의 검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검집에서 퉁겨지듯 튀어나왔다.

현재 마하임의 근력은 일반적인 전사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미래에서 익힌 마하임의 실전 검술은 이미 마스터 소드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크헉.”

마하임을 공격하려던 2명의 용병은 비명조차 제대로 못 지르고 바닥에 쓰러졌다.

목의 경동맥과 심장을 가로지르는 정확한 공격. 그들이 입고 있던 싸구려 방어구는 오페라를 막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내 검붉은 피가 바닥을 물들이기 시작한다. 주변은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덤벼라.”

마하임은 여전히 처음과 같은 톤으로 짧게 도발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용병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마하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살기등등한 모습에 시장 구경을 나온 윈드시크릿의 주민들은 사방으로 숨기에 바빴지만, 마하임의 눈에는 그저 오합지졸의 최후의 발악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국의 대군과 싸웠던 나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