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젠장!!!”
마하임의 눈동자가 커졌다. 갑자기 2성이라니! 1성급 검기와 2성급 검기는 그 위력이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2성급 검기는 시아라가 애용하던 검기였기에 그 위력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무쇠를 자르고 바위를 가르는 극단적인 파괴력. 말할 것도 없이 보통의 검으로는 막을 수조차 없었다.
“막을 수 있겠지? 오페라!”
[문제없습니다. 저의 본체는 ‘울트라 하르메르미디움’으로 제작되었기에, 이론상 그 어떠한 물리 공격도 막을 수 있습니다.]
마하임은 오페라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매섭게 날아오는 용병의 검격을 향해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쩌엉-!
묵직한 충격이 마하임의 팔을 타고 올라왔다. 다소 위태로웠지만 오페라는 2성급 검기를 완벽히 받아 냈다. 용병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감돌았다.
“검기를 막다니, 그 검!”
“놀라긴 이르다!”
녀석은 2성급 검기를 사용할 수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뿐이었다. 검술과 검기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는데, 녀석의 검기는 검술과 전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검기의 운용법을 좀 배웠다고 고수가 될 수 없는 법.
마하임은 멈추지 않고 오페라에게 명령했다.
“오페라 x5 오버클럭!”
[x5 오버클럭, 이행.]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상대가 강하다면 시간을 끄는 것은 독이었다.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고 현재 부하 없이 사용 가능한 최고의 수준으로 자신의 육체를 오버클럭했다.
“사, 사라졌다?!”
용병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x5 오버클럭이라 함은 뇌와 육체를 평상시의 5배 이상 가속한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단순히 5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뇌와 육체는 하나로 이어진 초끈과 같은 상태. 즉 5x5의 육체적, 정신적 업그레이드를 의미했다.
콰지직-!
용병은 마하임의 공격을 보지도 못했다. 그가 마하임의 공격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자신의 배를 감싸고 있던 바스트 플레이트가 박살이 난 뒤였다.
마하임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용병의 내장을 뒤흔들며 용병의 몸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커어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용병은 허공으로 2m 이상 치솟은 뒤 바닥에 떨어졌다.
의식이 단번에 날아갔음은 물론, 극심한 고통에 경련까지 일으켰다. 마하임은 숨을 몰아쉬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조금 위험했나?”
연이은 오버클럭으로 체력이 바닥난 마하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x5까지는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긴 했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연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무리임이 틀림없었다.
“오페라 저 용병, 상태는?”
[살아 있습니다. 마하임의 님의 공격을 맞기 직전, 내공의 힘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 것 같습니다.]
“호오, 정말? 그럼 경기공도 조금은 사용할 줄 안다는 이야긴가?”
경기공이란 내공을 사용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기공술의 일종이었다.
그 미래에서 자신의 아내였던 시아라는 이 경기공을 응용해서 제국의 공성용 마장기와 1:1로 싸우기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부정. 경기공이라고 보기에는 내공의 운영이 미흡합니다.]
“그런가? 하긴, 경기공은 5성급 이상의 내공이 필요하니까. 어쨌거나 조금은 아쉽지만…. 역시 죽여야겠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부하로 삼고 싶었지만, 지금의 마하임으로서는 이자를 설득시키거나 혹은 돈으로 매수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검기를 다루는 자를 적으로 둬서 좋을 것이 없다. 아군으로 삼을 수 없다면 죽이는 것이 답이다.
마하임은 용병에게로 다가갔다. 용병은 여전히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마하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검을 움직여 녀석의 투구를 벗겼다.
“…여자?”
드러난 용병의 얼굴에 마하임은 깜짝 놀랐다. 그냥 여자였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 녀석은 다크엘프였다.
검은 피부에 잡티 하나 없는 날카로운 눈매의 얼굴. 유사 인간 중 가장 사납고 위험한 종족. 그리고 아름다운 종족이기도 했다.
그래서 노예로서의 값어치는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비쌌다. 마하임 역시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목소리가 특이해서 설마 했는데, 다크엘프라니….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러게.”
갑작스럽게 난입한 목소리에 마하임은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를 보아선 분명 여자였다. 그것도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누구냐!?”
“나? 그냥 지나가던 사랑스러운 도둑.”
그녀의 말투, 목소리. 마하임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마하임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대해적 세실 일리암스. 물론 먼 미래에서이지만 말이다.
‘지켜보고 있었나?’
그녀 역시 마하임과 마찬가지로 복면을 하고 있었지만, 날렵한 체형과 얼굴의 윤곽, 그리고 목소리를 볼 때 분명 세실 그녀가 맞았다.
마하임은 연이은 돌발 상황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가 세실을 처음 만난 것은 바다에서였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앞으로 3년 뒤.
하지만 이곳에 그녀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윈드시크릿은 변방의 상업 도시. 온갖 불법이 자행되는 곳. 이 혼란의 도시라면 세실이 활동하기에 이상적인 곳이었다.
“저기 부탁이 있는데.”
“뭐지?”
“다크엘프 녀석과 저기 저 노예들 나 주면 안 돼?”
그녀의 목표는 노예들이었다.
마하임이 이 노예 수송대를 습격한 이유는 노예를 빌미로 윈드시크릿 어딘가에 있을 세실과 접촉을 하기 위해서였으니 수고를 던 셈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응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녀와 마하임의 사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초면이었으니까.
마하임은 이 노예를 이용해 세실과 확실한 비즈니스적 관계가 되어야만 했다.
“거부한다. 윈드시크릿에서 노예 거래는 불법이다.”
“아하! 네가 그 신임 영주군.”
“…….”
벌써 석 달이나 지났으니 세실이 마하임에 대해서 아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마하임은 힘이 닿는 대로 착실히 영지 재건에 힘썼고, 주민들의 반응도 무척 좋으니까.
“정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무력도 발군이더군. 네가 사용한 기술. 그거 대체 뭐야? 내 시력이 4.0이 넘는데 한순간 놓쳐 버렸어.”
“일개 도둑에게 알려 줄 이유는 없겠지.”
마하임의 말에 세실은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저 당돌한 영주는 아무래도 저 노예들을 자신에게 넘겨 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그러세요? 그럼 멋대로 하시지요, 영주님. 근데 말이지, 윈드시크릿의 영주라고 하는 분이 복면을 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고, 그 이유란 아마도 저 노예들의 주인. 제페쉬 백작 때문이겠지.”
마하임은 침묵으로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녀의 날카로운 분석력은 인정해 줄 만하다.
만에 하나 자신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을 제페쉬 백작이 안다면 그의 암살 부대가 당장 오늘 밤이라도 마하임을 죽이려 들 것이다.
“저 노예들을 어쩔 셈이지?”
“뭐, 노예로 팔려는 건 아니야. 다른 건 몰라도 난 노예 거래는 안 하거든. 내가 오지랖이 좀 넓다 보니 저런 노예들을 그냥 못 지나치겠더라고.”
그것은 마하임도 알고 있었다. 세실, 그녀는 도적이긴 했지만, 일반적인 도적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의적. 그녀는 평민들을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표는 언제나 착취를 일삼는 귀족이나 질 나쁜 부자들뿐이었다.
어차피 저 노예들은 세실에게 선물로 줄 예정이었다. 이렇게 친히 왕림까지 해 주었으니 마하임으로서는 최고의 결과였다.
“좋다. 데려가라. 한 가지만 묻지. 어디로 가면 널 만날 수 있지?”
“그건 왜? 데이트 신청이라면 사양하겠어. 왕족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나도 그런 것에 관심 없다. 의뢰할 것이 있다. 세실 일리암스.”
마하임은 세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세실은 깜짝 놀라 입을 닫았다. 보아하니 마하임이 자신의 정체 간파한 것에 대해 적잖게 놀란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내 변장이 그렇게 허술해?”
“그건 아니다. 넌 모르겠지만 난 너와 이전에 만난 적이 있다.”
사실이 그랬다. 그 이전이라는 것이 회귀 이전이란 것이 문제일 뿐.
“하아? 난 귀족 가문 자제와 노닥거린 기억이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세실. 그런 세실을 바라보던 마하임은 또다시 미래의 기억들이 기시감처럼 떠올랐다.
저렇게 살짝 푼수 끼 있는 그녀였지만, 세실의 정령술은 전설 속 정령왕조차 소환해 낼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렇기에 미래에서도 시아라 다음으로 제국군이 두려워했던 존재가 바로 세실, 그녀였다.
“좋아, 신세는 갚아야겠지?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말이야. 이번 주는 좀 바쁘고…. 그래, 다음 주가 좋겠다. 다음 주 중에 ‘은빛화살’로 와. 설마 모르진 않겠지?”
당연히 모를 리 없다. 은빛 화살은 윈드시크릿에서 제일 오래된 주점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의 기억 속에서의 자신은 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날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알고 있다. 다음 주 주말에 찾아가도록 하지.”
“좋아. 그럼 그때 이야기하자고. 애들아, 시작하자.”
그녀 뒤에 있던 골목 사이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와 함께 인근에서 구경하던 윈드시크릿의 주민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리, 리자드맨이 나타났다!”
“꺄아악! 몬스터야!”
“모두 도망쳐!”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엘프와 같은 유사 인간도 아니었다.
그들은 몬스터로 불리는 괴물, 그것도 악명 높은 리자드맨이었다.
윈드시크릿에도 간혹 출몰하는 이 녀석들은 커다란 도마뱀처럼 생겼는데 교활하며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기다 매우 두텁고 단단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 이능의 힘, 즉 검기나 오러가 아니면 거의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육을 즐겨 먹는 식성 때문에 인류뿐만 아니라 유사 인간까지도 꺼리는 1급 경계 대상인 몬스터였다.
이런 녀석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라 열 마리가 넘게 나타났으니 마을 사람들이 히스테리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전하군. 저놈들은.’
그러나 마하임은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저 리자드맨의 정체를 마하임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킁, 족장. 저기 저 시체 먹어도 되냐?”
“크킁 마, 맛있겠다. 크르르릉.”
“크르르릉, 저기 팔 잘린 애는 내 꺼!”
리자드맨들은 주위에 널려 있는 용병들의 시체를 보며 침을 흘리며 말했다. 세실은 난감한 얼굴로 녀석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녀석들! 인육은 안 된다고 했을 텐데!”
“킁. 어차피 죽은 놈들이다. 좀 먹으면 어때. 크르르릉!”
“카르르, 우리 배고프다. 안 주면 파업한다! 컹.”
왁자지껄한 분위기. 이 녀석들은 여전했다.
어떤 인연인지는 몰라도 세실은 이 리자드맨 무리의 우두머리, 다시 말해 족장이었다.
어째서 하이엘프인 그녀가 리자드맨 무리의 족장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웬만해서는 통제할 수 없는 그들을, 세실은 탁월한 무력과 신기롭기까지 한 통솔력으로 이 리자드맨 무리를 이끌었다.
미래, 그 처절한 전쟁의 와중에서도 그녀가 이끄는 이 리자드맨 무리의 전적은 단연 탁월했다.
일당백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리자드맨 부대가 전장에 나타나면 적의 사기는 단숨에 곤두박질쳤다.
그야말로 몬스터다운 돌파력과 잔혹함은 적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비록 그 마지막 전투에서 모조리 전사하지만, 마하임이 가장 믿고 신임했던 녀석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