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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9화 (19/194)

19화

요한의 원래 계획은 첫 일격으로 마하임을 쓰러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마하임은 자신의 생각대로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적당히 해서는 이기기는커녕 오히려 질지도 몰랐다.

츄아아악-

흐릿한 오러의 기운이 갑자기 강해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요한의 검격.

10년 뒤 전성기 때의 실력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그 위력만큼은 진짜였다.

[중급 오러가 감지되었습니다. 상, 하 좌측 찌르기에 이은 하단 후려치기 패턴 공격에 유의하십시오.]

‘후, 정말 어처구니없는 검이군.’

마하임은 오페라의 전투 지원에 학을 뗐다.

요한이 그저 자세를 취했을 뿐인데 다음 공격 패턴까지 예측하였으니, 이번 승부에서 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부웅!

까각! 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요란스럽게 울렸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격전. 그러나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팽팽한 대결이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공방이 이루어져 대련이라고 보기보다는 한 편의 잘 짜인 검무(劍舞)를 보는 것만 같았다.

“왜입니까? 아인족 노예들을 위해 주군께서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검을 맞댄 요한은 소리쳤다. 요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의 아버지 제페쉬의 노예 무역은 명백히 범죄임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무모한 일이었다.

“아인족은 과정일 뿐, 난 반드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무엇을 말입니까?”

요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마하임은 그런 요한을 향해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우선은 널 구하고 싶다.”

“무슨!”

마하임의 말에 당황한 요한. 마하임은 피식 웃으며 요한을 떨쳐 냈다.

뒤로 살짝 물러난 마하임은 다시금 요한을 바라봤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위해 충성했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켜 준 기사 중의 기사.

이제는 마하임이 그를 지켜 줄 차례였다.

“나의 계획을 믿지 못한다면 나의 힘을 보고서라도 믿어라. 오러 익스플로전(ORA explosion)도 상관없다. 전력을 다해 덤벼라!”

마하임의 말에 요한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오러 익스플로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 제페쉬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한이 오러 익스플로전을 익힌 것은 바로 지난주였고, 이건 자신만이 아는 비밀로 함구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좋습니다.”

활활 타오르던 요한의 오러가 일순간 잦아들었다. 검을 살짝 고쳐 잡은 요한은 자세를 낮추고 검을 어깨까지 치켜들었다.

저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마하임도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사용 가능한가 보군.’

오러 익스프플로전, 마스터 소드를 상징하는 기술이자 요한의 주특기이기도 한 기술이었다.

그 위력은 시아라의 주특기, ‘선기발경’을 능가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의 나이 이제 21살. 일반적으로 오러 사용자가 마스터 소드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40년도 너무 짧다.

이를 고려할 때 요한은 오러 사용자로서의 재능은 그야말로 천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미래에서는 그의 이 재능이 활짝 피기도 전에 전쟁과 전쟁 사이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리라.

마하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재력을 동원해서 요한, 그를 지킬 것이다.

그래서 마스터 소드를 넘어, 역사상 단 한 명밖에 이르지 못했다는 그랜드 마스터 소드의 경지에 그를 올려 놓고야 말 것이다.

그렇게 마하임은 다짐했다.

우웅 우우웅.

요한의 검신이 떨리며 낮은 중저음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오러 익스플로전을 저 영주가 견뎌 낼지 의문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기술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

“한번 받아 보십시오!”

부웅-

힘차게 검을 휘두르는 요한. 그의 검신에서 새하얀 오러의 섬광이 터지듯 솟아올랐다.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주변은 순간적으로 대낮과 같이 환해졌다. 그리고 눈부신 섬광을 흩뿌리는 오러의 덩어리는 무서운 속도로 마하임을 향해 뻗어 나갔다.

[삑! 회피 불가.]

“시류 전력 전개! x10으로 이행!”

[x10 변환 완료. 전투 모드 완전 전개.]

마하임의 외침과 동시에 시류의 x10 오버클럭이 실행됐다.

순간 사방 모든 것의 움직임이 멈춘 듯 느려졌다. 빛처럼 빨랐던 오러가 달팽이 기어가듯 마하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습격 작전에서 승패는 오러 사용자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제페쉬의 경호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귀족들을 호위 병력 중 상당수가 오러 사용자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중 마스터 소드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라도 오러 익스플로전의 대비는 반드시 필요했다.

파파팟-!

귀에 거슬리는 폭음과 함께 새하얀 오러의 섬광은 마하임을 순식간에 덮쳤다.

이때 발생한 강렬한 빛 때문에 요한은 순간 마하임의 움직임을 놓쳤다.

‘없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잠시 움직임을 놓쳤을 뿐인데 마하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더욱 높이, 그리고 보다 가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마하임이 말을 걸어왔다. 요한은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하임은 요한이 든 검날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검으로 전해지는 무게감이나 흔들림은 전혀 없었다.

마하임은 마치 땅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그곳에 서 있었다.

“뭐, 뭡니까? 그건?”

“흉내를 한번 내 봤다. 경기공이란 기술인데, 역시 내공 없이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이것은 미래 자신의 아내 시아라가 사용했던 기술이었다.

경기공의 높은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질량, 즉 무게조차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흉내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난 오러도, 검기도 사용할 수 없다. 옛날에 누군가 말해 주더군.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오러도, 검기도, 심지어 마나조차도 모조리 먹어 치워 버리고 있다고.”

이유는 몰랐다. 그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고, 이 때문에 마하임은 어렸을 때부터 심한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알르케비니아 왕가는 대대로 마스터 소드가 나온 가문답게 오러 유저가 아니면 왕족 취급도 받기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해 봤지. 내공도 마나도 없다면 나 자신의 존재감도 약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경기공의 핵심은 압도적 의지로 자신의 내공을 단전 깊숙한 곳에 감추는 것이었다.

즉 내공을 몸에서 완벽히 사라지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하임은 생각했다. 자신의 내공을 먹어 치우는 그 무언가에게 집중을 하면 경기공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해 보니까 되더군.”

마하임은 요한의 새하얗게 타오르는 검 위에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한의 오러는 마하임을 스쳐 지나갈 뿐,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다. 원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흩날리는 오러는 어둠을 밝힐 뿐이다.

“하하, 졌습니다. 역시 영주님은 예측할 수가 없는 분이군요.”

요한은 허탈한 듯 웃으며 검에서 오러를 거두었다. 오러의 새하얀 불길은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금 어둠이 주위를 채웠다.

마하임은 가볍게 뒤로 물러서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나 요한은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오러 익스플로전은 자신의 오러를 남김없이 쏟아붓는 기술인 만큼 후유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무리했나 봅니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다 무릎을 꿇는 요한. 갑작스럽게 닥친 현기증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괜찮나?”

마하임은 요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요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붙잡았다. 몸을 일으킨 요한은 쑥스러운 듯 시선을 먼 하늘로 향했다.

요한이 마하임을 만난 것도 3달이 훌쩍 지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이 종잡을 수 없는 영주 밑에서 참으로 많은 사건을 겪었다.

처음 마하임이 이곳에 부임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변방의 영지, 전 영주는 폭정 끝에 암살당해 최후를 맞이한 저주스러운 땅. 그런 곳에 오는 영주라면 볼 것도 없다고 요한은 생각했다.

“영주님은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그게 그러니까, 귀족이면서도 귀족 같지 않다고나 할까? 영주님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당장 전 영주만 해도 귀족 외에는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그중에서도 좀 심하긴 했지만 다른 곳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족과 평민, 그리고 노예로 나뉘는 철저히 계급제 사회. 그것은 아르케비니아뿐만 아니라, 대륙 대부분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마하임은 이에 얽매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에게는 부하와 백성이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마하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하임 역시 회귀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귀족과 마찬가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마하임은 회귀 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뭔가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회귀의 기억 때문이 아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마하임을 바꾸어 놓았고,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요한의 말에 마하임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요한은 쉽사리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런 요한을 바라보던 마하임은 먼저 입을 뗐다.

“제페쉬 백작 때문인가?”

마하임의 말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의절하다시피 한 부자의 관계였지만 그래도 제페쉬는 요한의 아버지였다. 그런 관계를 마하임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를 죽일 생각은 없다. 물론 제페쉬 하기 나름이지만.”

제페쉬 폰 세리우스 백작.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 미래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정보가 몇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습격을 계획하면서 제페쉬에 대해 여러모로 조사해 본 결과, 꽤 묘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미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제페쉬의 모습은 탐욕으로 가득한 흔하디흔한 귀족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의 과거를 파헤쳐 보니 이런 폭정을 할 만큼 양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 쪽에 가깝고, 그가 다스렸던 영지는 한결같이 번창했다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영지를 잃고 허울뿐인 백작으로 윈드시크릿에 좌천되었다. 그때부터 노예 거래에 손을 댔고…. 결국, 그 역시 나름의 사정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곧 알게 되겠지.’

그 이상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은 힘의 우위에 서는 것이 중요했다. 그를 벌하건 등용하건 모든 것은 이번 습격이 성공한 뒤의 이야기였다.

“계획은 예정대로 시행한다.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네, 영주님. 그럼 전 이만.”

요한은 이 말을 남기고 한밤의 어둠을 해치고 영빈관 밖으로 나갔다.

비는 점점 거세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잠을 이루기 어려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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