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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24화 (24/194)

24화

제페쉬의 무거운 목소리가 마장기에서 흘러나왔다. 마장기의 두꺼운 장갑에 가려 얼굴은 볼 수 없지만, 그의 얼굴을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국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제페쉬인지라 더욱 그랬다. 자타 공인 대륙 최고의 국가 시오니아 제국.

현 황제의 집권 이후 제국은 대륙 전체에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제국은 결코 자신의 적을 용서치 않았다. 그것이 국가든 개인이든 제국의 눈 밖에 나면 어떠한 형태로든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하물며 제국의 비밀 병기를 무단으로 취득해 장물로 팔려고 한 제페쉬의 행동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였다.

“아, 좀 되었소. 어쨌거나 그대들의 죄는 그대들이 잘 알리라 생각되는 바, 모두 죽어 주셔야겠소이다.”

장내는 한기가 들 정도로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제페쉬는 마장기 내부의 스크린에 비치는 에스탄테 자작을 뚫어지게 노려봤다.

이렇게 된 이상 마장기를 파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의 생존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지금 자신이 마장기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스탄테 네놈의 말대로 이 마장기는 10분밖에 못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10분이면 충분하다. 네놈을 이 세상에서 지우기에는!”

제페쉬는 망설임 없이 에스탄테를 향해 마장기의 주먹을 날렸다. 틈을 보여선 안 된다. 에스탄테의 저 여유를 보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을 끌어서 좋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페쉬가 타고 있는 것은 마장기였다. 비록 10분밖에 못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그 10분 동안은 무적이었다.

부웅-

마장기의 묵직한 주먹이 에스탄테의 얼굴을 향해 거침없이 쇄도했다.

주먹의 크기만 해도 에스탄테의 상체를 전부 가릴 정도로 컸다. 아무런 방어구도 없이 맨몸으로 마장기의 일격을 맞는다면 문자 그대로 뼈와 살이 분리되는 참혹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 확실했다.

“뭐, 뭐야!”

그러나 그와 같은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에스탄테의 앞을 가로막았다.

“시현류 유도 방선술, 6식 천근추(千斤錘).”

캉-!

마장기의 주먹은 마치 거대한 바위에 부딪힌 것처럼 커다란 충격음을 내며 멈춰 섰다.

주먹을 멈춘 것은 다름 아닌 에스탄테 자작을 호위하던 검은 두건의 남자였다.

“이럴 수가!”

마장기의 공격은 너무나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양손으로 막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팔을 뻗어 검지를 마장기의 주먹을 향해 내밀었을 뿐인데도 주먹은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그래, 네놈이 제국의 사냥개냐?!”

에스탄테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의 경호원. 처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괴물 그 자체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망설일 시간을 없었다. 이미 4분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고작 6분.

그전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마장기는 정지한다. 제페쉬는 망설임 없이 마장기의 다른 한쪽 팔을 놈을 향해 뻗었다.

기기긱- 쿵!

그러나 이번에도 놈은 손가락 하나로 마장기의 주먹을 막아 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다른 귀족들은 겁에 질려 도망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제페쉬는 마장기의 양쪽 팔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마장기의 양쪽 팔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장기의 공격을 맨손으로 막다니, 제페쉬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하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건, 천근추!?’

저 기술이 무엇인지 마하임은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내공을 이용해 자신을 질량을 순간적으로 늘리는 시현류 방어술의 극치. 마하임의 기억 속에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번에도 막을 수 있나 어디 한번 보자!”

제페쉬는 재빨리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지금 이 마장기의 힘으로는 저자를 제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장기는 그저 주먹이나 휘두르는 골렘이 아니다.

기이이이잉-

마장기 본체를 울리는 굉음. 마장기의 각 부위가 처음 시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깨 부분의 장갑이 열리면서 시릴 듯 차가운 빛이 새어 나왔다.

[FORCE CANON FULL CHARGE- TARET LOCK-ON.]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는 고대어가 연이어 제페쉬의 귀가에 들려왔다.

이 마장기 유일한 원거리 공격 병기, 포스캐넌.

그 위력은 웬만한 성벽 하나 정도는 형체도 없이 녹여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났지만, 단 한 번의 사용으로도 마장기는 과부하가 걸려 정지한다.

그러나 어차피 6분, 아니 이제는 5분 뒤면 마장기는 사용 불능의 상태가 된다.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죽어 버려!!”

[FIRING-]

제페쉬의 의지를 읽은 마장기는 1만 5천도에 이르는 플라즈마 덩어리를 목표물로 향해 뿜어냈다.

그 가공할 열량에 연회장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찬란한 섬광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놈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마장기가 뿜어낸 빛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시현류 유도 방선술, 제1식 호신강기(護身罡氣).”

다른 사람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지만, 마하임은 분명 보았다. 놈의 희미한 목소리와 주변을 감싸는 강렬한 기의 파동을.

잠시 후 빛은 사라졌다. 그러나 제페쉬의 목표물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서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제페쉬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성벽마저 녹여 버리는 포스캐넌 이었지만, 저 검은 두건의 남자 주변에 생겨난 푸른빛의 장막에 막혀 포스캐넌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막혀 버렸다.

그 남자가 서 있던 주변은 고열로 달아올라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지만, 복면의 남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묵묵히 서 있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과 후드가 열기에 타 버려 얼굴이 조금 드러났을 뿐이다.

“껄껄껄! 그따위 하급 마장기의 포스캐넌으로는 어림도 없지. 포기하시오, 제페쉬 백작.”

뒷짐을 지고 검은 옷의 사람 뒤에 서 있던 에스탄테 자작은 혀를 차며 말했다. 검은 옷의 사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목표는?”

“우선은 제페쉬 백작- 그리고 나머지 떨거지 전부. 단 한 명도 놓치지 마라.”

“확인. 명령을 수행하겠다.”

검은 옷의 사람은 그을려 너덜너덜한 후드를 손으로 떨쳐냈다.

그러자 입고 있는 옷만큼이나 검고 긴 머리칼이 후드 사이로 흘러내렸다.

창백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 그 얼굴은 마하임이 알고 있는 누군가와 완벽히 일치했다.

“시, 시문 사부?”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아나모네였다. 자신의 앞에 선 저 제국의 사냥개는 다름 아닌 자신에게 시현류의 기술을 전수해 준 ‘시문’이었던 것이다.

“미, 믿을 수 없어! 시문…. 당신이 어떻게?!”

마하임은 당황한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잊지 못했다. 마장기의 등장으로 자신이 알던 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약혼녀, 시아라의 아버지 시문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한 일이었다.

“말도 안 돼! 저런 괴물이 존재하다니!”

제페쉬는 마장기의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온갖 무시와 조롱을 받으며 이제 겨우 기반을 마련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지금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다.

“귀찮군.”

날아오는 마장기의 주먹을 무심한 듯 바라보는 시문. 동력이 고갈되어 출력마저 줄어든 마장기의 공격은 막을 필요성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살짝 비튼 시문은 축지를 사용해 마장기 본체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줄였다.

그리고 제페쉬가 있는 마장기의 조종석을 향해 팔을 뻗었다.

“선기발경.”

투깡-!

내공을 잔뜩 머금은 시문의 선기발경이 마장기를 강타하자 3m가 넘는 마장기의 거구가 무대 밖으로 튕겨 나갔다.

마하임의 발경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이었다. 마장기는 바닥을 구르며 미처 피하지 못한 귀족들과 뒤엉켜 연회장의 후문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으아아악!

“꺄아악!”

“누, 누가 좀 살려 줘!”

귀족들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연회장을 뒤흔들었다.

난장판이 된 연회장, 튕겨 나간 마장기에 깔린 귀족들의 시체 때문에 장내는 일순간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귀빈을 보호하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제페쉬의 경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이 데리고 온 경호원도 이에 합류했다.

순식간에 50명이 넘는 병사들에게 포위당하는 시문. 이곳은 비밀 사교장이었기에 경비병 대부분은 저택의 소연회장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귀족들의 측근들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아무리 그들이 강하다 하더라도 마장기조차 가볍게 제압한 시문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황제의 명이다. 죽어라.”

시문이 팔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그를 포위하고 있던 경비병들은 허공으로 솟구쳤다.

손이 닿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휘두른 것만으로 병사들은 하늘 높이 솟구쳐 천정에 처박히거나 만신창이가 되어 연회장을 뒹굴었다.

개중에는 오러 사용자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오러를 사용해 보기도 전에 그가 뿜어낸 무형의 힘에 휘말려 전투력을 상실했다.

권기(拳氣) 혹은 권풍(拳風)이라 불리는 시문의 주특기.

그 위력만을 따진다면 시아라의 전성기보다 월등히 강했다.

어디 그뿐인가? 방금 사용한 천근추의 위력도 상식을 초월했다. 아무리 하급 마장기라 할지라도 마장기는 마장기, 일반적인 천근추로는 마장기의 공격을 절대 막을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마하임은 애써 눈앞의 상황을 분석하려고 애썼다.

갑작스러운 시문의 등장에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생각을 멈추는 순간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마하임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 준 시문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눈은 풀려 있었고 말투 역시 어색했다.

게다가 기술 하나하나가 지나치게 강력하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시현류의 기술들은 강하긴 했지만, 내공 소모가 엄청나게 심했다.

그 미래의 기억 속에서도 시아라는 과다 내공 사용으로 주화입마에 빠져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겼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있는 시문은 시아라보다 훨씬 강한 기술들을 그야말로 난사하고 있는데도 지친 기색 하나 없었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암시? 혹은 세뇌…. 둘 다일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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