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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34화 (34/194)

34화

“막아라. 적의 돌파를 저지해!!!”

아카피론은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병사들의 비명에 순식간에 묻혀 버렸다.

경악할 만큼의 기동력과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이들의 공격력은 그야말로 재앙과 같은 것이었다.

“젠장, 흩어지지 마라. 말을 진정시켜!”

제난 역시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요한이 이끄는 기마병은 아카피론이 이끄는 기마병들의 중앙을 관통해서 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가파른 산 아래로 사라졌다.

“맙소사, 드래곤이 할퀴고 지나간 것 같군….”

진 선두에 있던 제난은 방금 습격을 받은 진 중앙의 잔혹함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앗 하는 순간에 돌파당했을 뿐이었는데…. 사망자는 100여 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아직도 피를 뿜어내며 사후 경직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자도 태반이었다.

‘그 화살 공격은 이걸 노렸었나?’

제난은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윈드시크릿 군이 틈틈이 쏴 대던 화살은 군마들을 밀집시켜서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 한 번의 돌격에 이렇게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제길, 처음부터 우린 적의 술수에 놀아나고 있었군.’

처음 이 빌어먹을 샤이닝힐에 도착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었다.

보통 한 영지를 대표하는 영주는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윈드시크릿의 관문, 샤이닝 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그들을 맞이한 것은 윈드시크릿의 영주가 직접 이끄는 기마 부대였다.

이를 본 아카피론은 미친 듯 마하임을 쫓기 시작한다. 그것이 이 난장판의 시작이었다.

“전군 진을 정비하라. 놈의 뒤를 쫓는다!”

“마, 말도 안 돼! 그 명령, 철회해 주십시오. 지금은 부대를 추스르고 진을 재정비하여야 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제난은 아카피론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무지막지한 아카피론의 주먹이었다.

“뭣이? 이 약해 빠진 마법사가!”

그렇지 않아도 적의 기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아카피론은 건틀릿으로 제난의 얼굴을 그대로 쳐 버렸다.

간단한 무장만 하고 있던 제난은 아피카론의 주먹을 맞고서는 튕겨지듯 낙마하고 말았다.

“제난 님, 괜찮으십니까…?”

놀란 병사들이 말에서 뛰어내려 그를 부축했지만 괜찮을 리 없었다.

어금니를 비롯한 건틀릿으로 맞은 부위의 이빨이 모두 다 부러져 버렸고, 턱뼈마저 금이 가 버렸는지 입마저 제대로 벌릴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한 번 더 입을 함부로 놀리면, 그 입을 영원히 못 벌리게 만들어 주마. 전군 대열을 정비하라! 적을 쫓는다!”

고통에 겨워 신음하고 있는 제난을 차가운 눈동자로 휙 훑어본 아카피론은 말머리를 돌렸다.

병사들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일으킨 제난. 그의 눈에는 분노로 불똥이 튀는 듯했다.

‘죽여 버릴 거야! 네놈, 죽여 버릴 거야!’

입 안에 고인 피와 부러진 이빨의 조각들을 뱉지도 않고 그대로 삼켜 버린 제난은 살기 어린 눈으로 아카피론을 노려보았다.

그를 부축하던 병사들이 그를 말리지 않았다면 아카피론은 제난의 마법 세례를 당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전군 진을 정비해서 적의 뒤를 쫓는다. 낙오하는 자는 용서치 않겠다. 전군 전진!”

아카패론은 소리쳤다. 병사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 많은 병사가 적들이 지나간 저 비탈길을 내려간다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장군님, 재고하여 주십시오. 이건 적의 함정이 분명합…!!”

퍼퍽

보다 못한 아카피론의 부관 중 한 명이 그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하고 낙마하고 말았다.

아카피론의 분노한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난과는 다르게 이 부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카피론은 자신의 말을 몰아 바닥에서 고통에 겨워하는 이 부관을 그대로 짓눌러 버렸다.

“다시 한번 명한다. 적을 쫓는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독기 오른 아카피론의 명령에 병사들은 도저히 길 같지도 않아 보이는 오솔길로 말을 몰아갈 수밖에 없었다.

길은 정말 엉망이었다. 비탈지고, 좁고 급한 경사, 그리고 샤이닝힐의 우기에 형성된 지형은 달리는 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히히힝!”

고통에 겨운 말들의 울음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길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곳을 고속으로 이동하자니, 말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일들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안 돼. 이대론 진형이 무너진다.’

제난은 답답함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단순히 낙오하는 병사의 문제가 아닌 총체적인 위기. 더욱이 걱정되는 것은 후방에 따라오는 병참 부대와의 분단이었다.

“제난 님, 저쪽을 좀 보십시오.”

“연기? 설마?!”

제난을 따라오던 병사의 말에 고개를 돌린 그는 서쪽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를 볼 수 있었다.

그 방향은 진 후미의 병참 부대가 있는 방향이었다.

아카피론 장군에게 보고를 해야겠지만, 이미 그는 부대 선두로 이동한 뒤였다.

제난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폭이 10m에도 못 미치는 좁은 산길. 그 산길을 느릿느릿 지나가던 아그라 영주의 보급 부대는 움직임을 멈췄다.

보급 부대의 호위병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급하게 선두 부대로 연락병을 보내는 모습이 세실의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몇 시간 숨을 죽이고 매복하고 있던 그녀는 드디어 이 지루한 기다림을 끝낼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헤에, 정말 멈췄네? 하륜 녀석 제법이잖아.”

원래 이번 ‘도박’에는 끼지 않으려고 한 세실이었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는 승률이 도박만큼이나 낮은 이번 작전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하륜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세실은 결국 여기까지 와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이겨야겠지? 자, 시작하자 얘들아.”

세실의 말과 동시에 진흙 바닥에 숨어 있던 리자드맨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수는 30마리, 말이 30마리였지 키가 3m에 다다르는 놈들의 등장은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냈다.

“케에에엑 이번에도 ‘시체’는 손 못 대나?”

“족장. 한쪽 팔만이라도 먹게 해 주라. 크르릉.”

“시끄러. 나중에 말이라도 먹게 해 줄 테니까 작전대로 하는 거다. 알겠어?”

“켁. 알겠다. 케에엑!”

저마다 자기 키만큼이나 큰 삼지창을 치켜드는 리자드맨들. 그리고 녀석들은 세실의 뒤를 따라 보급 부대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 모두 여길 봐 줄래?”

자신의 애검인 레이피어를 뽑아 든 세실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병참 부대는 뜬금없는 그녀의 출현에 시선을 고정했다.

“뭐, 뭐냐?! 네놈들은!”

“나? 그냥 지나가던 사랑스러운 도둑.”

병참 부대원에게 윙크를 날리는 세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웃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등 뒤에는 3m에 가까운 덩치를 자랑하는 리자드맨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던 것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모두 참하겠다.”

선두에 서 있던 부관이 창을 치켜들고 외쳤다. 그러자 세실은 자신의 긴 머리칼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건 곤란한데?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할게. 지금 모두 도망쳐 줄래? 그럼 목숨만은 살려 줄게.”

마치 자비라도 베푸는 듯한 세실의 말에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비록 그들은 병참 부대를 포함한 보병 부대였지만, 그 수만 해도 5000명에 가까운 부대였다.

그런 그들에게 웬 곱상한 여성 엘프 한 명과 리자드맨 몇 마리가 막아섰으니, 가소롭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닥쳐라. 우리가 누군 줄 아느냐! 위대하신 아그라 영주님의….”

“시끄럿!”

세실은 날카롭게 외쳐 부관의 말을 끊었다. 애초에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았다.

“시작은 바람.”

순간 세실의 살기가 일렁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령들이 그녀의 검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세실 일리암스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와랏, 실프라!”

세실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이 그녀의 레이피어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중급 바람의 정령 실프라. 물리 세계에 절대 보일 리 없는 실프라가 이곳에 현현했다.

그아아아-!

투명한 풍뎅이 모양의 실프라가 포효했다. 그리고 태풍과 같은 바람의 파도가 선두에선 병사 수십 명을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크아악-! 아악!

뒤이어 터져 나오는 병사들의 비명. 실프라의 바람은 칼날같이 병사들을 유린했고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적은 정령사다! 정령술을 쓸 틈을 주지 마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세실에게로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 있는 리자드맨은 장식용이 아니었다.

“케에에엑 가자! 족장을 지켜라!”

“크에엑 인간 놈들!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카아악!”

리자드맨들은 삼지창을 앞세우고 아그라군 선두와 충돌했다.

퍽퍼어억!

케에에엑 죽어라!

컥 으아악-!

악 살려줘!

리자드맨과 뒤엉키는 아그라군. 그러나 리자드맨의 적수는 아니었다. 리자드맨의 전투력은 오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인간이 비벼 볼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리자드맨의 삼지창이 번뜩일 때마다 병사들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꿰뚫렸다.

뒤늦게 방패병들이 와서 견제해 보았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저항이었다. 리자드맨들은 방패병들을 무지막지한 힘으로 방패와 함께 날려 버렸던 것이다.

“괴, 괴물이다! 도망쳐! 으아악!”

아그라군은 우왕좌왕하며 진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들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피론 장군과의 연락마저 끊긴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일반 보병 부대였기에 이런 돌발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부족했다.

그 결과 아그라군의 보병 부대는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단숨에 병참 부대까지 뚫고 가자!”

세실을 선두로 한 리자드맨들은 아그라군 중앙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돌파당했다.

“세실 일리암스의 이름으로 명한다. 와랏, 노움!”

실프라의 효력이 다하자 세실은 또 다른 정령을 소환했다. 이번에 소환한 정령은 대지의 정령 노움.

소환된 정령은 세실의 레이피어와 동화해 최강의 물리력을 부여했다.

부웅-! 콰쾅!!!

거침없이 레이피어를 휘두르는 세실. 노움의 힘이 담긴 그녀의 검에 병사들은 스치기만 해도 마치 거대한 망치에 맞은 것처럼 찢겼다.

아그라군 병사들은 겁에 질려 서로를 짓밟으면서까지 뒤로 물러났지만, 세실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병사들은 뼈와 살이 분리되었다. 그리고 그 뼈와 살은 그대로 세실의 온몸을 적셨다.

뭔가 끔찍한 기분에 그녀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말았다.

‘죽어라! 블러드 엘프!’

세실 그녀의 별칭. 하이엘프의 마지막 왕국 ‘아르파’를 시오니아 제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실은 하이엘프가 아닌 피로 물든 블러드 엘프가 되어야만 했다.

피로 피를 씻는 전투에서 그녀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시오니아 제국의 병력은 끝없이 밀려왔고 결국 그녀의 조국 아르파는 굴욕적인 강화 조약을 맺게 된다.

세실은 여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도망쳐야 했고, 그녀의 동생 리나는 제국의 꼭두각시 여왕이 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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