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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40화 (40/194)

40화

“이봐, 저항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어차피 빠져나갈 순 없을 테니….????

다크엘프의 처절한 발버둥을 보다 못한 근처의 노예 사냥꾼 하나가 이렇게 말을 건넸다.

다크엘프는 이 노예 사냥꾼의 말을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결박당한 상태에서 너무나 격렬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더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포자기한 듯 움직임을 멈춘 다크엘프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마을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마을 쪽을 바라보던 다크엘프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이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폐허로 변해 버린 그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완전히 타 버린 마을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크엘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금 그를 바라보았다.

“크헉!”

마차 곁을 걷고 있던 노예 사냥꾼 중 한 명이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의 목에는 어느 사이에인가 단검 하나가 기도를 관통해 목 반대편까지 흉한 모습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바보 녀석! 다크엘프를 흘렸나?! 흩어지지 마라! 마법사들은 탐지 주문을…!”

다크엘프 중 일부가 살아남아 반격을 해 온 것은 아주 드문 일도 아니었다.

다크엘프의 복수심은 매우 강해서 죽기 전까지는 절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다수의 다크엘프들이 모이면 그들의 전투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전면전 같은 난전에서는 인간에 훨씬 못 미치는 다크엘프들이었지만, 어둠에 몸을 숨기고 적을 암살해 나가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래서 철저히 다크엘프를 학살했는데 아마도 살아남은 자가 있는 듯했다.

로한은 익숙한 움직임으로 혼란에 빠진 부하들을 재정비시켰다. 그러고는 적을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저, 저기다!”

병사들의 외침에 로한은 아직도 불타오르고 있는 다크엘프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치 보라는 듯 서 있는 한 명의 사람이 보였다.

“네, 네놈들…. 네놈들의 짓인가!?”

싸늘한 남자의 목소리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노예 상인들에게까지 들려왔다.

로한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한 느낌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하지만 이내 적이 하나라는 점에 내심 안심했다.

“너 혼자냐?!”

“혼자라면 너희들이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사방에 울려 퍼졌다. 알 수 없는 압박감에 노예 사냥꾼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혼자서 뭘 한단 말인가?! 도망가려면 지금이다. 눈감아 줄 테니 꺼져 버려!”

우두머리는 선심 쓰듯 말했다. 그러나 전투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하하! 도망? 눈감아 줘?! 누가 누구를!”

남자는 미친 듯 웃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뽑아 들었다.

부웅-!

그 동시에 들려온 진동음. 그리고 달빛만이 감도는 이곳에 시릴 듯 차가운 빛이 남자의 검에서 솟아올랐다.

“거, 검기?”

노예 사냥꾼 우두머리는 눈을 부릅떴다. 나름 여기저기 전쟁터에서 구른 경험이 있는 그는 저 기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술인지 알고 있었다.

단순히 비교하자면 오러 소드 이상의 기술. 더군다나 저 푸른 기운은 같은 검기가 아니라면 막을 수조차 없어 보였다.

“저놈을 다가오게 하지 마라! 마법사와 궁사들 뭣들 하냐! 저놈을 죽…!?”

로한은 말을 채 잊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검기를 뿜어내는 검을 든 사내가 순간 사라진 것이다.

푸화악!

그리고 피바람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노예 사냥꾼과 자신과의 거리를 무로 돌린 남자는 검기로 번뜩이는 검을 휘둘렀다.

검에 베인 노예 사냥꾼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방패든 갑옷이든 그 무엇도 그의 검을 막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일도양단. 노예 사냥꾼의 검붉은 피가 흐릿한 달빛 사이로 흩뿌려졌다.

“큭, 크아아아아!”

남자는 새끼를 잃어 분노한 드래곤처럼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검격,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절도 있는 움직임. 그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숫자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노예 사냥군들은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사이도 없이 피와 살덩이로 변해 바닥으로 쓰러졌다.

“뭐, 뭐 하는 거냐! 적은 하나뿐이다. 포위, 포위 공격하란 말이다.”

너무나 어이없이 부하를 잃은 로한은 그제야 겨우 이성을 되찾아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이미 명령을 따르기에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 죽어, 죽으란 말이다!”

그것은 광기였다. 노예 사냥꾼의 피를 뒤집어쓴 남자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광기에 휘말린 노예 사냥꾼들은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했다.

소위 말하는 초식 같은 것도 없이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남자. 그러나 그의 검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노예 사냥꾼들은 핏덩이로 변해 죽어 갔다.

노예 사냥꾼들의 저항은 그의 검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방패는 종이인 양 간단히 잘려 버렸고 갑옷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료들의 처절한 죽음에 겁에 질린 노예 사냥꾼들은 저마다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단 한 명도 남자의 검을 벗어나지 못했다.

슈우욱, 화아악!

노예 사냥꾼들이 괴멸하기 직전, 이 피로 가득한 전장에 갑자기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조금씩 일렁이던 이 빛은 어느 순간 폭발하듯 퍼져 나가 남자와 죽어 가는 노예 사냥꾼들 모두를 집어삼켰다.

화르륵 타탁-

엄청난 열기가 땅 위의 모든 것을 증발시키려는 기세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제야 로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후하하하. 드디어 죽였다. 개자식! 이것도 한번 버텨 보시지?!”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로한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전세가 불리함을 느낀 로한은 마법사에게 6클래스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파이어 월’ 주문을 사용하도록 시켰던 것이다.

파이어 월의 범위에 아직 살아 있는 노예 사냥꾼들이 있었지만, 전멸 직전인 상황에서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죽었겠지.”

파이어 월의 위력은 대지마저 불태울 정도로 강력했다. 저 남자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불길이라면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로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철수하시죠?”

그의 곁에서 있던 마법사 중 한 명이 마지못해 말했다. 마법사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자신이 만든 저 불길 속에는 조금 전만 해도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료들이 불타고 있었다.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함 때문에 그는 단 1초라도 이곳에 머물기 싫었다.

퍼벅.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둔탁한 소리. 이 소리는 로한뿐만 아니라 그 근처에 서 있던 2명의 마법사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그들은 눈을 돌려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으….”

그곳에는 쓰러지지도, 그렇다고 올바르게 서 있지도 못하는 노예 사냥꾼 한 명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배에는 자신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너희들이 한 짓, 그대로 돌려주마!”

불길 속에서도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마법사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건 악몽일 것이다. 아니 악몽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의 죽음은 성큼 다가왔다.

“괴, 괴물이다!”

“모두 도망쳐!”

“살려 줘, 아아아!”

애써 대열을 유지하고 있던 노예 사냥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로한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멍청한 녀석들! 대열을 이탈하지 마라! 놈의 노림수란 말이다!”

목이 터져라 로한은 외쳤지만, 그의 부하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 도망가는 노예 사냥꾼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걱! 푸화악!

흐릿한 달빛 속에서 혈향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남자는 그야말로 놀라운 속도로 이동하며 노예 사냥꾼들을 학살했다.

‘선술’을 아는 자라면 저 남자가 ‘축지’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이곳에 그 정도로 견문이 넓은 자는 없었다.

그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남자의 일방적인 학살의 먹이가 되고 있을 뿐이었다.

“망할! 저놈을 죽이려면 마법뿐이다! 마법사 뭣들 하냐?! 빨리 주문을 외워! 놈을 죽이란 말이다!”

로한은 가까이 있는 마법사 한 명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러나 마법사는 저 남자의 상식을 초월한 살기에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다음은 네놈들이다.”

검을 치켜올려 로한을 가리키는 남자. 그의 온몸은 노예 사냥꾼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로한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부하들이 도망만 치지 않았다면 물량전으로 어떻게든 비벼 볼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그들의 부하 대다수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넋이 나가 버린 마법사 2명이 전부였다.

“우…. 끼아아악!”

덜덜 떨던 마법사 2명이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로한은 이들을 저지해 보려고 했지만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자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도망갈 수 있다 생각하는가?”

그 남자는 자신의 검을 마법사를 향해 던졌다. 롱소드보다는 짧고 숏소드보다는 긴, 어중간한 검이었지만, 그 검은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 어지럽게 궤적을 바꾸었다.

“사, 살려 줘!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검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살기. 마법사들은 미친 듯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퍽-! 슈아악!

검은 단숨에 마법사 한 명을 베더니 또 다른 마법사의 가슴을 꿰뚫어 버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 마법사들. 그리고 그의 검은 거짓말처럼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망할…. 어검술인가.”

로한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내공으로 검을 허공에 띄워 자유자재로 날리는 어검술.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너 혼자 남았다. 넌 어떻게 할 거지?”

남자는 천천히 로한에게로 걸어왔다. 저만한 고수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 줄 생각 또한 없었다.

로한은 손에 쥔 자신의 롱소드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 거기다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오러 유저였던 것이다.

슈화학-!

로한의 검에서 새하얀 오러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급 오러에 불과했지만, 이 오러라면 놈의 검기와 어느 정도 비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라도 꽤나 지쳤을 거야. 일격만 제대로 넣으면 된다. 그러면 살 수 있다.’

숨을 고르며 로한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미동도 않고 서 있는 남자.

시간을 끌어서는 이길 수 없다. 솔직히 놈이 어검술을 또 사용한다면 꼼짝없이 죽어야만 했다.

놈이 어검술을 사용하기 전에 거리를 좁혀야 한다. 로한은 이를 악물고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혼신을 다해 남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칵!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리고 승부는 결정 났다.

“크아악!”

로한은 극심한 고통에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그가 본 것이라고는 번뜩이는 섬광뿐.

그리고 그 섬광과 함께 로한의 양팔은 깔끔하게 절단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사, 사사, 살려 줘…. 제발…. 있는 돈 다 줄 테니. 저 다크엘프도 넘겨 줄 테니 제발, 제발 목숨만. 목숨만 살려 줘….

남자를 향해 로한은 온 힘을 다해 말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었다. 자신에 손에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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