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리, 리자드맨이다!”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수송함 쪽에서 나타난 녹색의 생명체, 바다의 푸른 악마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악몽과 같았다.
녀석들의 푸른빛 도는 두터운 가죽은 웬만한 칼로는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았고, 화살 따위는 가볍게 튕겨 낼 정도였다.
게다가 무리 지어서 사냥하는 그들의 영악함은 인간을 능가한다고 한다. 그런 녀석들이 한두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가 동시에 수송함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크아악! 사람 살려!”
“뭉쳐서 항전하라! 도망치면 안 돼, 크악!”
“으아아! 저리 가라! 저리 가란 말이야!”
배 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분명 수적으로 시오니아 병사들이 앞섰지만, 개개인의 기량을 따지자면 리자드맨이 압도적이었다. 병사들은 급격히 무너졌다.
“이 하등한 몬스터 따위가!”
“케에에에!”
하지만 켈베로스가 전투에 가세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리자드맨들은 사방에서 그를 포위하고 달려들었지만, 그의 철통 방어에 막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나는 시오니아의 검, 켈베로스다! 네놈들이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나!”
매서운 검격. 두려움을 모르는 리자드맨들이 기어코 밀리기 시작했다. 사실 리자드맨들의 본능에 맡긴 변칙적인 공격을 읽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실전에서 다져진 ‘감’과 수많은 전장에서 깨달은 ‘무’가 있었다.
“죽어라, 몬스터!”
단숨에 포위망을 뚫은 켈베로스는 병사들을 도륙하던 리자드맨 무리에게로 달려들었다. 재빠른 몸놀림으로 피하는 리자드맨. 하지만 이상하게도 반격을 해 오지 않았다.
그저 낮게 으르렁거리면서 켈베로스를 다시금 포위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역시 장군은 다르군. 우리 아이들이 겁을 먹다니.”
켈베로스 장군은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얼굴을 들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조금은 왜소한 체격의 금발의 여성이었다.
얼굴은 전혀 꾸미지 않았는데도 상당한 미녀. 그리고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붉은색 망토를 두른 그녀는 마치 소풍을 나온 귀족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풍겨 오는 차가운 살기는 켈베로스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케엑! 웃을 때가 아니다. 쿠룩, 저놈한테 일족이 둘이나 다쳤다! 케에엑!”
“크르릉, 이 인간 싫다. 죽여 버릴 거야. 쿠에에에!”
“시끄러! 바보 같은 녀석들!”
그녀의 날카로운 외침 한 번에 리자드맨들의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켈베로스 장군은 몸을 일으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놈들의 두목인가?”
“두목? 어감이 좀 그렇네. 이왕이면 보스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
넉살 좋게 말하는 여자. 하지만 캘베로스는 여전히 차갑게 말을 이었다.
“목적은?”
“해적이 보물을 노리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당연하지 않아?”
여성은 자신의 검을 켈베로스를 향해 치켜들었다. 백색으로 번뜩이는 검의 잔상은 묘한 위압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러나 켈베로스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습격은 모두 수송선을 강탈하기 위한 눈가림에 불과했던 건가?”
“응. 생각한 것보다 잠수함을 사용한 전술, 꽤 좋았단 말이지. 솔직히 이렇게 일이 잘 풀릴지는 몰랐어.”
그녀는 유쾌한 듯 웃었다. 하지만 켈베로스는 미칠 것 같은 불쾌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국의 수문장이라 칭해지는 자신이 일개 해적의 놀림감이 되다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좋다. 나를 여기까지 몰아 놓다니 일단은 칭찬해 두지. 이름이 뭔가?”
“뭐, 상관없겠지.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내 이름은 세실 일리암스. 대륙 최고의 해적이 될 몸이야.”
“좋다. 세실 일리암스! 나는 켈베로스. 본명 따위는 버렸다. 황제께서 이 몸을 하사해 주셨을 때부터!”
켈베로스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건장한 기골의 켈베로스의 몸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꿈틀거리던 그의 근육들은 귀에 거슬리는 울림과 함께 일제히 터질 듯이 팽창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맙소사! 저건 뭐야?”
그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켈베로스에게서 흘러나오는 저 기분 나쁜 감각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었다.
“선수 필승!”
세실은 단숨에 도약하여 켈베로스와의 거리를 무로 돌렸다. 그리고 소환한 것은 바람.
“윈드 스트라이커!”
그녀의 검신을 중심으로 새하얀 기류가 번뜩였다.
분노한 바람의 정령이 만들어 낸 대기의 포효, 강철마저도 찢어 버린다는 바람의 검.
세실은 아직도 변화 중인 켈베로스의 목을 향해 바람의 힘이 담긴 검을 내리그었다.
쩡-!
그러나 그녀의 검은 너무나 간단히 막혔다. 아니, 그것은 막힌 것이 아니었다.
켈베로스는 여전히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실의 검은 그의 목을 자르기는커녕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큭, 이럴 수가!”
세실이 눈살을 찌푸릴 즈음, 켈베로스의 변화는 끝나 있었다.
가뜩이나 거대한 덩치는 더욱 커져 세실의 키의 2배는 될 듯했다. 그리고 온몸을 뒤덮은 검붉은 털….
그는 더는 인간이 아닌 전혀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대가, 반드시 치르게 해 주마!”
정령들이 비명을 질렀다. 세실은 저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공포, 그것은 같은 팀인 제국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괴, 괴물이다!”
겁에 질린 켈베로스의 병사들은 저마다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 망망대해에서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지만, 켈베로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살기는 보는 이의 이성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망할, 제국 놈들 또 이상한 걸 만들어 냈군.”
세실은 검을 갈무리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본능은 당장 여기서 도망치라고 경고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다니,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죽어라!”
켈베로스는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순식간에 세실과의 거리를 좁혀 왔다. 세실은 깜짝 놀라 검을 치켜들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쩡-!
켈베로스가 커다란 주먹이 세실에게 직격했다. 마치 거대한 망치에 맞은 듯한 기분. 세실은 튕기듯 공중으로 솟구친 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큭, 빨라!”
양팔이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도 재빨리 몸을 일으켜 검을 치켜드는 세실. 가뜩이나 뱃멀미를 참고 억지로 싸우고 있는데 이런 공격을 당했으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쫄지 말자, 세실. 아직 나는 지지 않았어!”
이를 악물고 세실은 ‘정령회랑’에 접속했다. 그리고 소환한 것은 대지.
“대지의 다스리는 노움이여, 나와 함께 싸워 줘!”
세실은 외침에 대답이라도 하듯, 그녀의 검에서 옅은 노란색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세실의 특기인 정령검, 그중 노움은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기술 중 하나였다.
“정령 소환은 엘프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그게 지금 중요해?”
세실은 숨을 고르며 날카롭게 말했다. 덩치가 크면 어디라도 허점이 보이기 마련인데, 저 켈베로스라는 자는 허점은커녕 마치 거대한 성벽을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망설이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실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하긴, 그건 중요하지 않지. 보고만 있을 건가? 그렇다면 내가 먼저 간다.”
켈베로스는 천천히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순간 세실은 그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쳤다.
“이런, 말도 안 돼!”
그 큰 덩치가 눈앞에서 사라지다니, 세실은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뭔가의 기척에 고개를 든 세실은 다시 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녀의 머리 위로 켈베로스의 주먹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세실은 검을 치켜들며 노움의 힘을 발동시켰다.
쩡-!
2개의 힘이 격돌했다. 단순 체급 차를 생각한다면 세실의 패배는 기정 사실이었지만, 대지의 정령 노움은 중력을 제어한다. 그 때문에 세실은 조금도 밀리지 않고 켈베로스의 주먹을 막을 수 있었다.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세실은 상식을 초월한 켈베로스의 공격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노움의 힘이 담긴 검으로 켈베로스의 공격을 일단 막긴 막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공격은 어림도 없었고 겨우 그 자리에서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것이 정령의 힘인가? 별것도 아니군. 죽어라, 해적!”
켈베로스는 자신의 거대한 발로 세실을 그대로 걷어차 버렸다.
“캭!”
최대한 몸을 웅크려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세실은 보기 좋게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바닥을 서너 바퀴 구른 다음에야 겨우 멈춰 섰다.
“호오, 살아 있는가? 나의 일격을 맞고 살아남은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켈베로스는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본 듯 세실에게 말했다. 세실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대체 제국 놈들은 뭘 만드는 거야?”
아무리 봐도 저건 인간과는 전혀 동떨어진 ‘괴물’ 그 자체였다. 필살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정령검조차도 녀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패배는 물론이거니와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놀랐는가? 해적. 이것이 바로 위대하신 시오니아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하사해 주신 힘이다!”
켈베로스는 자신의 몸을 자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몸은 흡사 늑대와 인간을 뒤섞어 놓은, 문자 그대로의 괴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켈베로스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하사 좋아하네. 보아하니 고대 유적을 뒤져서 뭔가 묘한 짓을 한 모양인데…. 너 그거 알아? 그따위 금술을 사용하면 두 번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세실의 말에 켈베로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으니까. 한 번 변신하면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켈베로스가 사용한 이 변신술의 유일한 단점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걸….”
“뭐 뻔한 거 아냐? 모든 힘에는 대가가 필요해. 하물며 잊혀진 고대인의 기술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큭큭, 그래. 난 두 번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난 시오니아 황제의 검! 검의 모습 따위, 아무래도 좋다!”
켈베로스는 무서운 속도로 세실에게 달려왔다. 세실은 피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망할! 나와 줘, 운디네!”
다급한 마음에 세실은 자신의 모든 정령력을 쏟아부어 다시금 정령을 소환했다.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의 정령 운디네는 쏘아지듯 켈베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그딴 잡기술로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켈베로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자신의 손톱으로 운디네를 단숨에 찢어 버렸다.
운디네는 정령계에 속해 있기에 웬만한 물리력은 그대로 무시해 버린다.
하지만 켈베로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운디네는 켈베로스의 손톱에 닿기가 무섭게 새하얀 안개로 변해 사라져 갔다.
“거, 거짓말.”
세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켈베로스는 그런 세실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다.
“내 손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해적!”
마지막 힘까지 다 쓴 세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