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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44화 (44/194)

44화

퍼어엉!

커다란 폭음이 들렸다. 휘청이는 켈베로스.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등을 불태우던 불길은 천천히 사라졌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었나 보군.”

기함 반대편, 방금 전만 해도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 그곳이 마치 신기루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커다란 범선이었다.

“파이어볼이 통하지 않다니, 역시 제국에서 만든 괴물답군요.”

제난은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파이어 볼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화염 계열 마법 중 매우 강력한 마법이었다.

공성용으로도 사용하는 마법이었기에 보통의 인간이 이 마법을 정통으로 맞게 되면 뼛조각 하나 남김없이 불타 버린다.

그런데 저 괴물은 파이어볼을 맞고서도 전혀 데미지를 입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영주님. 저 괴물에게서 위험한 냄새가 납니다. 절대 정면 승부를 해선 안 됩니다.”

“동의한다, 주인. 저놈은 인간이 아니다.”

마하임의 곁에 서 있던 아나모네와 요한 역시 한 목소리로 마하임을 말렸다.

마하임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에 대해서라면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저 괴물은 제국 마도공학이 만들어 낸 생체 병기, 통칭 워울프.

강력한 힘과 더불어 마법과 정령술에 내성을 가진 이놈들은 마하임이 회귀하기 전,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오지 않는 건가? 그럼 내가 가지!”

켈베로스는 단숨에 마하임이 타고 있는 배로 도약했다. 무려 3미터에 다다르는 덩치가 소리 하나 없이 허공으로 도약했다.

쿵-!

육중한 울림과 함께 켈베로스는 마하임의 배에 착지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켈베로스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세실을 마하임에게로 던졌다.

“돌려주지, 네놈의 부하.”

켈베로스의 무지막지한 힘에 던져진 세실은 발석차에서 쏘아진 돌처럼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가볍게 세실을 받아들었다.

“괜찮나? 세실.”

“미안, 고집 부려서, 저런 괴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

“걱정 말고 쉬어. 뒤는 내가 맡겠다.”

세실을 바닥에 내려놓은 마하임은 켈베로스를 노려봤다. 켈베로스는 숨을 몰아쉬며 마하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가 이들의 두목인가?”

“그런 셈이지.”

“그럼, 죽어라!”

켈베로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하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챙-!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요한이었다. 요한은 기다렸다는 듯 마하임의 앞을 가로막으며 켈베로스의 주먹을 막았다.

쾅!

하지만 켈베로스의 무지막지한 힘에 밀려 배 구석에 처박혀 버렸다. 이를 본 아나모네는 검기가 피어오르는 검을 휘두르며 곧장 켈베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해다.”

켈베로스는 가볍게 팔을 휘둘러 아나모네를 검과 함께 쳐 내 버렸다. 아나모네의 검기는 강철마저도 자를 만큼 놀라운 절단력을 자랑했지만, 어떻게 된 건지 켈베로스에게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비인가 적성 생체 병기 반응 확인. 돌발 상황에 유의하십시오.]

오페라는 마하임에게 짧게 경고했다. 하지만 굳이 이런 경고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적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모두 물러서. 너희가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놈이 아니다.”

“하지만?!”

아나모네는 발끈했다. 하지만 마하임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마하임은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았다. 워울프는 교활할 뿐만 아니라 강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마법은 거의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저 워울프는 일반적인 워울프가 아니었다.

“흥미롭군. 네가 이 해적 무리의 두목이냐?”

켈베로스는 자신의 앞에 조금의 동요도 없이 꼿꼿이 서 있는 마하임을 보며 말했다.

겉보기에는 이제 막 성인식을 치렀을 법한 소년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전부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했다.

“시오니아 제국의 번견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크크큭, 뭐 좋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긴 말은 필요 없겠지. 승부다!”

온몸의 붉은색 털이 부풀어 오르는 켈베로스. 그 위압감은 시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켈베로스는 모든 워울프들의 프로토타입이 되는 오리지널이었다. 이후에 찍어 내듯 만들어지는 워울프와는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팟-!

켈베로스는 단숨에 마하임에게로 달려왔다. 덩치에 걸맞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 아무리 오페라의 서포트가 있다 하더라도 켈베로스와 정면 승부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쾅-!

켈베로스의 주먹이 마하임이 있었던 곳을 정확히 강타했다. 마하임은 몸을 굴려 간발의 차로 켈베로스의 공격을 피했다.

“칭찬해 주지. 전력을 다한 나의 공격을 피한 건 네가 처음이다.”

마하임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자세를 낮추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요한의 오러, 아나모네의 검기조차 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물론 마하임은 애초에 그 두 가지 기술 중 그 어느 것도 사용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평범한 기술로 놈을 저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웃기는군. 인간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은 그 힘. 너도 알고 있겠지?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마하임의 말에 켈베로스는 인상을 팍 구겼다.

“어떻게 안 거지?”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는 법. 당연한 거 아닌가?”

마하임의 말에 켈베로스는 침묵했다. 하지만 이 강함은 그가 원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시오니아 제국의 초인 제조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에 켈베로스가 적임자로 선택되면서 그의 운명은 180도로 바뀌었다.

“난…. 속았을 뿐이다. 비록 황제폐하의 명이었지만, 난 이런 힘 따위 원치 않았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전혀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캘베로스. 그러나 그 힘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인간도, 괴물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가족조차 나에게 등을 돌렸다. 군부도 나를 꺼려 해 결국 난 이 변경의 바다에서 하루하루 죽어 가고 있는 중이지.”

그의 생명은 이제 3년도 남지 않았다. 자고 나면 이빨이 빠지고 머리카락도 수북하게 빠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는 잘 때조차도 갑옷을 벗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여기서 죽는다면 더욱 좋겠지. 네 이름이 뭐냐? 이름 모를 해적이여.”

“마하임. 성은 버렸다.”

“좋다. 마하임! 지금 여기서 자웅을 겨뤄 보자! 너라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켈베로스의 몸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으로선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상대였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마하임은 의식을 하나로 모았다. 그러자 비정상적인 인과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뻗어 나가는 차가운 기운. 그리고 느껴졌다, 살의로 똘똘 뭉쳐진 강대한 적의 움직임이.

파깡!

마하임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내질렀다. 나노머신의 힘과 오페라의 오퍼레이션 시스템을 이용한 회심의 일격!

그러나 켈베로스는 너무나 간단히 그것을 팔로 막아 버렸다. 인간의 팔이었다면 그대로 뜯겨 날아가 버렸을 테지만, 녀석의 검붉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팔은 상처 하나 없다.

“대단해. 이 켈베로스가 순간이지만 움직임을 놓치다니! 흥미로워. 하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며 켈베로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살의로 가득한 공격들은 눈만으로는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버린 그의 감각 기관들이 위험을 알려 왔지만, 그 모든 것을 피하기는 불가능했다.

“크헉! 쿨럭쿨럭!”

마하임은 보기 좋게 바닥을 뒹굴었다. 압도적인 신장 차이다. 녀석은 이미 인간이 아닌 괴물 그 자체였다. 녀석의 일격에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정말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호오, 살아 있는가? 놀랍군. 나의 공격을 버텨 낸 것은 네가 처음이다.”

“큭, 놀라기는 이르다! 아직 난 제대로 시작도 안 했으니까!

숨이 가빴다. 애써 여유 있는 척했지만 켈베로스와 자신은 레벨 자체가 달랐다.

더 이상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다. 허나 죽을지언정 동료를 버리고 도망갈 수는 없다.

무엇을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지킨다.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

“흥, 재미없군. 넌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만 항복하라.”

“웃기지 마. 괴물 따위에 질 성싶으냐!”

“괴물?! 그래, 난 괴물이다! 그 괴물에게 죽어라!!!”

녀석의 거대한 발이 날아왔다. 맞으면 반드시 죽는다.

마하임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굴렸다.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치는 녀석의 상단 차기는 그대로 선박의 중앙 마스트에 작렬했다.

콰지직!

묵직한 아름드리 통나무로 제작된 마스트가 일격에 부러져 버렸다.

그러나 그의 공격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하임이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 다음 공격이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컥!”

마하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녀석의 일격을 정확하게 얻어맞은 그의 몸은 그대로 튕겨 갑판을 뒹굴었다.

‘여기가 나의 한계인가?’

더 이상 아무런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노머신의 힘마저 완전히 풀려 버린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흥, 의식을 잃었나? 뭐, 다른 녀석도 있으니 상관없겠지.”

켈베로스는 마하임을 버려 둔 채 세실에게 향했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세실. 켈베로스가 그녀의 팔을 꺾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누구의 사주인가? 규모를 보아선, 일개 해적단의 단독 범행이라 보기 어렵다.”

“몰라, 그따윈. 크으윽!”

“그럼 오른팔부터 시작하지.”

“그, 그만둬! 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세실. 그녀의 팔은 기괴한 모양으로 꺾여 있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해 보지만 켈베로스의 힘은 세실이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제길!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다!’

세실이 죽어 가고 있다. 그것도 그의 눈앞에서. 하지만 마하임의 몸은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그는 몰랐지만, 내장 파열은 물론이고 갈비뼈가 폐를 찔러 호흡마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절망 그리고 괴로움. 그 미래에서처럼 이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켜 주고 싶었는데. 정말 지켜 주고 싶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하륜을 억지로라도 데려왔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마하임은 그렇게 자책하며 최후의 숨을 내쉬었다.

적막이 쏟아졌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나 버리는 듯했다.

[비상사태 발생. 사용자 생체 반응 소실. 긴급 시퀸스로 이양됩니다.]

들릴 듯 말 듯 들려온 목소리. 그리고 마하임의 눈앞에서는 처음 나노머신의 힘을 얻었을 때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콰콰콰쾅-!

수십, 아니 수백은 넘어 보이는 비공정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 포격 소리와 알 수 없는 섬광이 사방에서 번뜩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듯한 거대한 이형의 생명체. 마하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이 구 인류를 몰살시킨 ‘레비아탄’이라는 사실을.

[이런, 곤란하다요. 또다시 비정규 다이브라니.]

그때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나노머신의 힘을 얻었을 때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너무 조바심 가지지 말라요. 진실은 가까이 있다요. 곧 다시 보게 될 거다요. 그럼. 진실의 문 앞에서 다시 보자요.]

눈앞에서 튀어나올 듯한 영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켈베로스의 거친 움직임도, 고통스러운 비명도 순간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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