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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50화 (50/194)

50화

“누가 내 학교에서 함부로 학생을 내쫒는다요?”

날이 바짝 선 새침한 목소리. 그녀는 말할 것도 없이 윈디였다.

그녀를 본 학장은 돌연 태도를 바꾸며 윈디 앞에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아, 이제야 오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여쭈어 볼 것이 있었습니다.”

“닥쳐라요. 감히 나 없는 사이에 퇴학? 죽고 싶냐요?”

마나가 가득 담긴 윈디의 일갈에 교무처가 쩌렁쩌렁 울렸다. 학장은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학장 역시 이대로는 물러설 수 없었다.

“윈디 교수님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제아무리 자기가 데려온 학생이 마음에 들지라도, 이런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작? 무슨 조작이다요?”

“이걸 보십시오!”

학장은 이번 학기 성적표가 적힌 종이를 윈디에게 내밀었다. 윈디는 종이를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마하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적당히 좀 해라요. 이런 식으로 오해 사면 좋을 것 없다요.”

“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마하임은 굳은 얼굴로 답했다. 그를 본 윈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다요. 강행 돌파다요.”

윈디는 잠시 마하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입을 땠다.

“마법역학 1013p, 2번째 문단이다요.”

마하임은는 윈디의 말을 듣고 순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이내 마하임은 윈디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결국, 마법이란 우주에 편재한 목적 없는 강대한 힘. 즉 암흑 에너지를 회전, 증폭, 구현이라는 3가지 과정을 통해 물리 세계에 구현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마법 시전자는 암흑 에너지와의 적합성….”

“고대사 722p 전체. 각주는 뺀다요.”

마하임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윈디의 다음 질문이 떨어졌다. 마하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바로 말을 이었다.

“고대 인류는 궤멸적인 재앙을 피해 고향인 지구를 버리고 이곳 ‘옵타티오’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자신들의 힘, ‘과학’을 봉인하고 ‘마법’과 ‘내공’ 같은 이능 개발에 힘쓰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직도 수많은 학자의 논란을….”

“정령제어학 516p 7번째 문단이다요.”

“소환된 정령은 물리 세계에 정착함에 있어 소환자의 마나 제어력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데….”

이후 한동안 윈디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윈디가 물으면 마하임은 답했다.

아주 단순한 전개였지만 이곳에 모여 있던 교수들은 그야말로 경악했다.

“맙소사 교과서를 통째로, 그것도 페이지 수까지 외웠단 말인가?”

“믿을 수 없어! 이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한두 권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지금 윈디가 즉석에서 물은 책의 수만 해도 10권이 넘었다.

교수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윈디가 질문한 교과서의 내용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지만, 마하임이 말한 답에서 다른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보아하니 아직도 못 믿겠다는 얼굴이다요? 직접 한번 물어보라요.”

윈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학장부터 입을 땠다.

“군사학 제3강 16p 둘째 줄부터 마지막 문단까지.”

이렇게 말한 학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건 사실 마하임 같은 2학년 학생이 배우는 교과가 아니었던 것이다.

마하임은 잠시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후,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땠다.

“승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술은 다름 아닌 원활한 보급선 유지다. 달리 말하자면 적의 보급선을 끊는 것이 승리의 첫 번째 요건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므로 적의 보급 병참 상황의 파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마하임의 말을 들은 학장은 자신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린 얼굴이었다. 그야말로 학장의 완벽한 패배였다.

학장이 주저앉자 몇몇 교수들이 마하임에게 질문을 더 던졌지만, 마하임은 주저 없이 답했고 그 답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았다.

“이쯤이면 해명이 되었다요? 가자요, 마하임.”

윈디는 이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마하임은 교수들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윈디의 뒤를 따른다.

남은 것은 반쯤 넋이 나가 버린 학장 쿠라스와 아직도 마하임이 말한 부분을 찾느라 교과서를 뒤지는 데 여념이 없는 교수들뿐이었다.

* * *

교무처 밖으로 나온 윈디와 마하임.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않고 복도를 걸었다. 근처 다른 강의실에는 아직도 수업이 한참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강의실은 사라지고 널따란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캬하하하하!”

바로 그때, 지금껏 참고 있던 웃음이 윈디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허공에서 몸을 뒹굴 듯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멍청한 교수 놈들 얼굴 봤냐요?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다요. 바보 같은 놈들. 연말에 정리 해고 좀 해야겠다요.”

그 와중에서도 알타베르나의 교수들이 들으면 뒷골을 잡을 만한 대사를 연발하는 윈디. 마하임은 그런 그녀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입을 뗐다.

“교수님도 저만큼이나 적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

마하임의 말에 윈디는 웃음을 그쳤다. 그것은 윈디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알타베르나는 이미 예전의 알타베르나가 아니었다. 각종 파벌은 물론, 각종 부정부패까지.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 가리지 않고 알타베르나를 타락시키고 있었다.

“알타베르나의 황혼도 멀지 않았다는 것. 나도 안다요.”

“왜 그냥 내버려 두시는지요. 이곳은 대륙 제일의 상아탑, 알타베르나 아닙니까? 윈디 님이라면 저 쓰레기 같은 학장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쯤이야 간단히 정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마하임의 말에 윈디는 힘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요.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알타베르나 역시 그 순리를 벗어날 수 없다요.”

말을 끊은 윈디는 마하임의 얼굴 바로 앞에까지 날아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겠지만, 때가 오면 알게 될 것이다요. 이곳의 존재 이유와, 네가 여기에 있는 이유를….”

윈디는 먼 미래를 바라보는 현자처럼 허공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리곤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뻗어 마하임의 코에 가져다 댔다.

“오늘은 잘했다요. 오페라를 이용한 것이다요?”

“네, 윈디 님. 오페라의 기능 중 뇌 내 도서관이란 기능이 있더군요. 저장 공간은 십만 권 정도. 저는 아직 요령이 부족해서 겨우 만 권 정도밖에 운용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알타베르나에서 시간을 죽이던 마하임이 발견한 오페라의 새로운 힘.

그것은 뇌의 저장 공간을 확장하여 마치 도서관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정보를 마음대로 저장하고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한 것이다.

아직 능숙하게 다루지 못해 일부분밖에 사용할 수 없었지만, 알타베르나에서 공부하는 모든 교과서를 집어넣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주 먼 옛날의 잊혀진 기술이다요. 그토록 찬란한 기술 문명을 발달시킨 고대인조차 멸망은 피할 수 없었다요.”

윈디는 생각에 잠겨 멍하니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마하임은 조심스럽게 윈디를 향해 말했다.

“저기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뭐다요?”

“제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죠?”

마하임은 잠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마하임의 앞에 나타난 붉게 타오르는 주먹만 한 불덩어리. 그것은 만능의 힘, 마나가 만들어 낸 마법이라는 기적이었다.

“갑자기 어제부터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오, 이제야 효과가 나타난 모양이다요. 선물이다 생각하라요.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버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쯤은 해줘야 맞지 않겠다요?”

윈디는 간만에 활짝 웃으며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마하임은 아직도 자신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을 믿기 어려웠다.

지금껏 마법을 사용할 방법을 찾아온 마하임이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간단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윈디 님. 제 평생에 마법을 쓸 수 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너무 기뻐하지 말라요. 너무 늦게 마나코어를 열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저 레벨의 하급 마법밖에 쓸 수 없을 거다요.”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후후, 뭐 좋다요. 오늘은 학장을 ‘엿’ 먹인 날. 이날을 기념 안 할 수 없다요. 이 윈디가 한턱 쏜다요.”

그렇게 말하며 윈디는 기분 좋게 알타베르나의 중앙 현관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하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윈디에게 말했다.

“그곳은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곳이 아닌데요?”

지금 마하임과 윈디가 있는 것은 알타베르나의 본관 22층 지점이었다.

본관은 총 30층짜리 탑이었는데, 원형 계단이 탑의 외곽으로 설치되어 학생들은 주로 이 계단을 사용했다.

“일단 따라오라요. 알타베르나의 명물을 보여 준다요.”

그리고 윈디가 마하임을 데리고 온 곳은 조금은 특이한 문 앞이었다.

문은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질감이 주위와는 완전 달랐다.

그리고 문 주위에는 발광석과 유사한 빛나는 돌들이 주변에 박혀 있었다. 마하임은 이 비슷한 것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유적’입니까?”

“딩동댕~ 정답! 풀 네임, 엘리베이터. 그냥 편하게 ‘엘리 군’이라 불러 주세요!”

갑작스럽게 이 특이한 문 위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마하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목소리 자체는 윈디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귀엽고 앙증맞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 목소리는 평범한 사람이 낼 수 없는 기묘한 음색이 뒤엉켜 묘하게 마하임의 귀를 자극했다.

“너무해요! 윈디 님. 최근 너무 뜸하셨어요! 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신 거예요?”

“아, 나름 바빴다요. 여기 있는 이 녀석은….”

“아! 이분이 이번 시험 수석이라는 그분? 이미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순식간에 속사포처럼 이루어진 엘리와 윈디 만담에 마하임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고대 인류가 남긴 ‘유적’ 중에 간혹 에고가 있는 것도 있다는데, 바로 저것이 그것인 듯했다.

“자, 어서 타시죠! 1층까지 초특급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응, 타라요.”

“음…. 네.”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머뭇거릴 수 없는 일이었다.

문 안쪽은 사방이 꽉 막힌 조그마한 방 같은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저 엘리 군은 운송 수단.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층으로 연결되는 포탈과 비슷한 것이라 마하임은 추측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위잉-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엘리는 하강하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아음속에 이를 정도로 그 하강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마하임은 온몸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에 저도 모르게 벽을 잡았다.

“마하임 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전 무려 137개의 안전장치와 위급 시 비상 전원. 그뿐만 아니라 강제 사출 장치까지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98.75%의 확률로 탑승자의 생명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

엘리는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들 수도 없는 용어들을 마구 쏟아냈다.

마하임은 그의 말에 압도되어 멍하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엘리의 목소리가 그쳤을 때는 이미 1층에 도착한 뒤였다.

“땡~ 감사합니다. 1층 도착했습니다. 마하임 님도 이용 가능 등급을 획득하셨으니 다음부터는 꼭 저 엘리를 이용해 주세요. 그럼 안녕히 가시길.”

폭풍처럼 말을 쏟아낸 엘리는 출입구를 닫았다. 갑작스러운 적막. 남겨진 사람은 마하임과 윈디뿐이었다.

마하임은 엘리 군의 후유증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는 윈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다음부턴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렇다요.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안 탄다요.”

“…….”

또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뭔가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지자 마하임은 눈을 들어 1층의 통로로 시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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