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52화 (52/194)

52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학교에서 뵙죠.”

마하임은 가볍게 인사하고 상점 밖으로 나왔다. 이것으로 소위 말하는 ‘플래그’는 세워졌다.

앞으로 남은 건 더 자주, 더 가까이 그녀와 친교를 쌓으면서 그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녀의 일족을 보호해 제국이 그녀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

‘엑스칼리버’가 제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이며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워진 것 같은데….”

중얼거리며 상점 밖으로 나온 마하임은 주변에 일어난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 전만 해도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거리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거리가 아주 텅 비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하임의 정면 앞에는 반짝이는 전신 갑옷에 말까지 탄 남자 한 명과 알타베르나의 교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네가 우리 공자님의 수석을 빼앗은 놈이냐?”

“부정행위를 한 주제에 잘도 뻔뻔하게 돌아다니네.”

“듣자 하니 네놈도 일국의 왕자라던데 부끄럽지도 않느냐?”

각자 한 마디씩 마하임에게 건네는 3명. 마하임은 순간 뒷골이 아파짐을 느꼈다.

보아하니 지난 시험에서 마하임에게 수석을 빼앗긴 슈라토 가문의 찌꺼기임이 틀림없었다.

“이미 부정행위가 아닌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못 믿겠으면 교무처에 직접 알아보시죠?”

마하임은 무표정한 얼굴로 착잡하게 말했다. 오늘은 여러 가지 일들로 상당히 지쳐 있었기에 괜한 사건을 만들어서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저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윈디 그 마녀에게 뇌물을 얼마나 먹였는지 몰라도 우릴 속일 수 없다!”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모른 척해 주겠다.”

“그래, 그래. 그편이 좋아. 너 같은 놈은 알타베르나와는 어울리지 않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트러블은 빠르든 늦든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인 것이다.

이번 기회에 깨끗이 정리해 두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 지도 몰랐다. 마하임은 마음을 정하고 입을 땠다.

“시끄럽군. 제국 놈들은 다 이런가?”

“뭣이!”

“오늘이 네놈 장례식 날인 줄 알아라!”

발끈하는 세 사람. 마하임은 더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입을 닫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것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

알타베르나에 온 이후로 제대로 싸워 볼 계기가 없었던 마하임이었다. 하지만 저 슈라토의 찌꺼기들이 나서 준 덕분에 좋은 샌드백을 얻게 된 것이다.

‘한번 해 볼까?’

마법을 익히긴 했지만 실전에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3클래스 정도의 하급 마법에 불과했지만, 저런 녀석을 상대로는 오히려 딱 맞을지도 몰랐다.

“와라, 제국의 찌꺼기!”

“뭐라! 이런 천한 것이! 오늘 저놈을 죽이고 퇴학당하고 만다!”

마하임의 도발에 말을 타고 있는 전신 갑옷의 애송이가 외쳤다. 그러자 아래 두 명의 알타베르나의 학생들이 저마다 허리춤의 칼을 뽑았다.

챙-!

“죽이진 않겠다. 하지만 팔 하나쯤은 받아 가마!”

살기등등하게 마하임에게 다가오는 둘. 하지만 마하임은 긴장은 고사하고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제국과의 전쟁 속 그 아수라장 가운데서도 생존한 마하임이였다. 그런 마하임에게 칼 뽑는 것조차 어색한 저따위 조무래기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말싸움하려고 왔나?”

“이 자식이!”

동시에 마하임에게 달려드는 둘, 나름대로 온 힘을 다해 달려든 듯하지만 마하임이 보기에는 굼벵이처럼 느렸다.

마하임은 순식간에 녀석들의 측면으로 돌아가 가장 선두에 선 녀석의 텅 빈 옆구리에 손을 찔러 넣었다.

“파이어 볼!”

쾅-!

주문 영장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마하임의 마법적 지식은 이미 대마법사급이었기에 마나코어를 제어 가능한 지금 시점에서, 3클래스 파이어 볼 정도는 ‘발동어’만으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었다.

“꾸엑-”

파이어 볼의 뜨거운 열기와 폭발음과 함께 슈라토의 찌꺼기는 튕기듯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마하임을 공격하려던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뒤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강했던지 무려 3미터 이상 바닥을 뒹군 뒤에야 겨우 움직임을 멈추었다.

물론 둘은 이 일격으로 의식을 잃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네놈 마법사였냐?”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소리쳤다. 알타베르나에서 마법사의 존재는 그리 희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지금껏 마법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을 마하임이 사용하자 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너다. 부디 날 실망키지 않았음 좋겠군.”

무표정한 얼굴로 말 위의 마지막 녀석을 도발하는 마하임. 하지만 내심으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반은 장난, 반은 호기심으로 사용한 ‘파이어 볼’이었지만, 그 위력은 마하임의 예상을 훨씬 웃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깟 마법 좀 쓴다고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오늘 여기서 확실히 네놈을 죽여 주마.”

철컹-

말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녀석. 그는 전신 갑옷, 흔히들 말하는 풀 플레이트 메일 입고 있었다.

거기다 갑옷에서 느껴지는 범상치 않는 기운을 볼 때, 방어 마법이 부여된 특수한 갑옷인 듯했다.

“이 갑옷은 4클래스 이하의 마법은 무효화한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꼴이 가관이긴 했지만, 그의 말이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마하임은 한숨을 푹 내쉬고선 오페라를 호출했다.

“오페라 3x 모드 부탁해.”

마하임의 말과 동시에 그의 몸속 수백만 나노머신이 동시에 작동했다. 그리고 마하임의 모습은 갑옷의 사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

놀라 당황하는 갑옷의 사내. 그가 마하임의 위치를 인식했을 때는 마하임이 갑옷의 사내의 바로 코앞까지 접근한 뒤였다.

“이건 발경이라는 거다.”

시아라의 발경을 흉내 내는 것에 불가하지만 오페라의 힘을 응용한다면, 저따위 갑옷 정도는 단숨에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 뿜어져 나왔다.

펑!

“아아악!”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하임이 한 것이라고는 그저 자신의 오른손을 펴 전신 갑옷의 사내의 배에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발경 특유의 진동음과 함께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전신 갑옷의 사내는 허공으로 치솟았다.

털썩, 쿵-!

요란하게 바닥을 구르는 전신 갑옷의 사내. 그는 처음 두 명보다 더 멀리 나가떨어졌다.

‘전보다는 강해졌나? 시아라의 발경을 따라가려면 한참은 멀었지만.'

만약 시아라의 발경이라면 녀석의 상체는 산산조각 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초라하기까지 한 위력이었지만 내공도 없는 자신이 사용한 발경치고는 꽤 쓸 만했다.

“시현류의 다른 기술도 연구를 해 봐야겠군. 어이, 살아 있냐?”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갑옷의 사내에게 다가가 마하임은 말했다.

다행히 심하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맥도 정상이었고 호흡도 정상인 것을 보니 그냥 기절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괜한 일로 문제를 만들어 주목받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마하임은 대충 몸에 묻은 먼지를 털고 몸을 일으켰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떠야겠군.”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었던 마하임은 뒤돌아섰다. 바로 그때였다.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투기에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전신에 검은 망토를 두른 잿빛 머리칼의 남성. 루다크 슈라토였다.

“하아, 또 너냐?”

루다크를 본 마하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동안 학교 안에서 종종 마주치긴 했지만, 괜한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마하임이 먼저 자리를 피했다.

마하임의 최우선 목표는 졸업이었고, 졸업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난번 갚지 못한 빚, 여기서 다 갚아 주마.”

으르렁거리며 마하임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루다크. 아무래도 싸움을 피할 수는 없어 보였다.

“빚을 갚아?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마하임은 싸늘하게 웃었다. 지금껏 참고 있었지만, 루다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 하지만 오늘 절호의 기회가 왔다.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오페라를 뽑아 들었다. 어차피 죽여야 한다면 최선을 다해 확실히 죽인다.

“오페라 x10 모드!”

[오페라 x10 기동. 예상 유지 시간 3분]

오페라. 아직도 오페라에 관해 마하임은 잘 알지 못했다. 알타베르나에서 알아낸 것이라고는 오페라가 고대어라는 것 정도뿐.

하지만 지금 마하임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이것이었다.

“흥! 또 그 이상한 기술인가!”

루다크는 재빨리 마하임과의 거리를 벌렸다. 지난번 강의실 안에서 마하임과 싸웠을 때 느낀 위화감이 또 느껴진 것이다.

급한 성격에 난봉꾼 기질이 다분한 그였지만 전투 감각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알타베르나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그의 집안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죽어라, 버러지!”

마하임이 잠시 주춤하자 루다크는 망설임 없이 암흑투기가 실린 주먹을 마하임에게 내리꽂았다.

퍽-!

루다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주먹은 어이없게 마하임의 손에 가볍게 붙잡혔다.

“아무리 암흑투기라도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지.”

“네놈-!”

루다크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마하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내려다보는 차가운 시선. 그리고 비웃는 듯한 저 목소리. 루다크는 마하임의 모든 것이 싫었다.

“감히 내 손을 잡아? 반드시 죽여 버린다!”

악을 쓰듯 루다크는 외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암흑투기가 루다크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하임은 루다크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재빨리 그와의 거리를 벌렸다.

“이미 늦었다, 버러지!”

루다크의 암흑투기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하는 양 마하임을 쫓아왔다. 마하임은 암흑투기를 피해 몸을 굴렸지만, 그러기엔 루다크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퍼억-

선명한 검은색 기운이 마하임의 몸을 관통했다. 그 직후 온몸을 뒤흔드는 고통에 마하임은 순간 의식을 잃을 뻔했지만, 이를 악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 보니 제법이군. 내장이 다 박살 났을 텐데.”

루다크는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직후 오페라의 음성이 마하임의 머릿속을 울려왔다.

[소장 데미지 확인. 내출혈 발생! 즉시 전장 이탈을 권고합니다. 오페라 긴급 치료 모드로 이행합니다.]

녀석의 암흑투기는 생명 그 자체를 지우는 이능, 시아라가 사용하는 ‘기(氣)’와 정반대의 개념이었다.

저런 공격을 두어 번만 더 맞으면, 쇼크로 죽을 수도 있었다.

마하임은 아득해지는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