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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53화 (53/194)

53화

‘경솔했다. 젠장, 젠장할!’

오페라의 힘을 너무 과신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런 식으로 암흑투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물러난다? 아니야. 이길 수 있다! 여기서 첫 번째 단추를 확실히 잠근다.’

확실히 강하긴 했지만, 그 미래의 루다크보다는 약했다. 루다크의 전성기 때는 오직 시아라만이 루다크를 막을 수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그를 막을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하임에게는 오페라뿐 아니라 다른 히든카드가 존재했다.

“여기서 마무리 짓는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재구성했다. 그리고 구현된 것은 일곱 개의 광구, 매직 미사일. 그 새하얀 빛의 덩어리가 마하임 주변에 나타났다.

“흠, 무영창?”

처음으로 루다크의 인상이 바뀌었다. 분명 마하임이 주문 같은 것을 외우지 않았는데도 마법이 시전되었던 것이다.

아무리 저클래스 마법일지라도 주문 없이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6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날 조롱하는 건가? 아무리 무영창 마법이라 해도 고작 3클래스 마법. 그따위 마법으로 나의 암흑투기를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루다크는 피할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의 말대로 루다크의 암흑투기는 5클래스 이하 모든 마법을 무시했다. 심지어는 6클래스 마법으로도 타격을 주기 어려웠다.

“닥쳐라, 이건 네놈을 위한 마법이 아닌 나를 위한 마법이다! 인첸트(부여)!”

매직 미사일은 루다크가 아닌 마하임을 목표로 돌진했다. 그리고 마치 녹아내리듯이 마하임의 몸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뭐야?”

루다크의 눈이 커졌다. 마치 자폭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루다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하임의 몸에서는 매직 미사일에서 발하는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궁금하면 직접 맞아 봐라!”

마하임은 땅 위를 날듯이 루다크에게로 달렸다. 순식간에 루다크와의 거리를 제로로 돌린 마하임은 거침없이 주먹을 날렸다.

파팟-!

루다크는 마하임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찌르기 공격을 오른팔로 가볍게 막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

바로 그 직후 마하임의 주먹을 중심으로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했던 것이다.

투퉁!

크아악!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는 루다크. 마하임의 공격을 막은 루다크의 팔은 힘없이 축 늘어졌다. 부러지지는 않은 듯했지만, 당분간 그 팔은 사용치 못할 듯했다.

“설마, 그 매직 미사일을 몸에 덧입힌 건가?”

루다크의 팔을 강타한 그것은 매직 미사일의 독특한 물리 공격, 바로 그것이었다.

그 역시 마법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으나 이런 형태의 마법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마법장착’. 나만의 오리지널 기술이다.”

그것은 3클래스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마하임의 궁여지책과 같은 것이었다.

원래 마나라는 것은 생명과 반하는 성질을 지녔기에, 특히 공격 마법을 신체에 인첸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하임 자신의 특이체질, 모든 이능력을 잠식하는 그 능력을 응용하자 ‘마법장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후, 과연. 그냥 수석을 한 건 아니라는 이야기냐? 좋다. 좋은 것을 보여 줬으니 나 역시 보답을 해야겠지?”

루다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주변에서 무형으로 일렁이던 암흑투기는 그 이름에 걸맞게 불쾌한 검은 기류로 형상화되어 루다크의 몸을 감쌌다.

그 기세는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하임은 오금이 저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너무나 강렬한 기운에 마하임의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 마하임이 알고 있는 그 미래보다는 약하기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야말로 마하임의 착각이었다.

그 미래에서도 루다크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시아라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하임 혼자, 그것도 아무런 준비 없이 맨몸으로 덤비다니. 무모할 정도가 아니라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마하임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된다면 어설픈 공격은 오히려 독이 된다.

압도적인 한방으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것, 그것이 필요한 때였다.

“한번 받아 봐라.”

루다크는 다치지 않은 왼손을 마하임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루다크의 암흑투기가 마치 파도처럼 마하임을 향해 날아와 그를 덮쳤다.

‘망할, 암흑권풍(暗黑拳風)이다!’

저 기술, 본 적이 있었다. 저걸 제대로 맞으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미래에서도 저 기술 때문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잃었던가?

막을 방법은 없었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피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오페라 x12 이행. 유지 가능 시간 1분]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x12였지만,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하임의 몸속에서 활성화된 나노머신은 즉각 손상 부위를 회복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다시금 정지한 듯 느려졌다.

‘피할 수 있다!’

암흑권풍의 궤적이 마하임의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무형의 안개와 같은 것이었지만, 오페라의 힘을 이용한다면 못 피할 것도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1분 정도밖에 이 힘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크크큭, 하하핫, 마치 다람쥐 같구나!”

권풍을 날리며 루다크는 기분 좋게 웃었다. 루다크는 지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이런 기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제국의 황도에서도 그에게 이런 상처를 입힌 자는 없었다. 그런데 이 알타베르나에서, 그것도 고작 신입생한테 이런 상처를 입다니, 기뻤다.

너무나 기뻐서 죽여 버리고 싶었다. 온몸을 산산이 찢어 버리고 그 피를 뒤집어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내장을 맛보고 싶었다.

그는 이미 미쳐 있었던 것이다.

“마음껏 피해 보려무나, 크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는 루다크. 그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으로 권풍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주변에서 둘의 격돌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는 듯했지만,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어휴 시끄러. 이게 무슨 일이람?”

바로 그때 들려온 희미한 목소리에 마하임은 고개를 돌렸다. 밖이 시끄러워지자 안나가 자신의 가게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그녀를 향해 암흑권풍이 날아들었다.

“아, 안 돼!”

그녀는 전사도 아닌 평범한 여자일 뿐이었다. 게다가 성인도 아닌지라 노옴 일족의 타고난 저항력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지금 저 암흑권풍에 맞으면 안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막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그러나 안나와 마하임과의 거리는 생각 이상으로 멀었다.

아무리 전력으로 달려도 암흑권풍보다 빨리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마하임은 이를 깨물었다. 성공 여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마하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축지(縮地)!’

쿵!

힘찬 진각 소리와 함께 순간 마하임의 몸은 사라졌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안나의 바로 앞.

마하임은 안나를 끌어안고 그대로 몸을 날려 암흑권풍의 사정권 밖으로 피했다.

“괜찮으십니까? 안나 님.”

“아…. 네,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네요….”

넋을 놓고 있던 안나는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몸을 일으킨다. 마하임은 그런 안나를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위험합니다. 피하세요. 어서.”

“네, 넷. 고맙습니다.”

마하임을 향해 머리를 꾸벅 숙이는 안나. 그 와중에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 안나였다. 마하임은 이를 보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정리된 듯하니 끝을 봐야겠지?”

마하임은 마나를 제어하며 루다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미 오페라는 사용 한계를 넘어서 사용이 불가능했다. 남은 것은 마법뿐. 그러나 이상하게도 질 것 같지 않았다.

“크크큭. 그래, 그래야지. 좋다! 이제부터 널 나의 진정한 적으로 인식하겠다. 와라! 버러지!”

천천히 거리를 좁히는 둘. 객관적인 전력은 여전히 마하임이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루다크가 한쪽 팔을 사용치 못한다고 할지라도, 애초에 암흑투기를 사용하는 자와 1:1 정면 대결이라니 전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마하임은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쓰러트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죽어라! 암흑권풍!”

폭풍과 같은 검은 회오리가 마하임을 덮쳤다. 하지만 얌전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파이어 볼!”

마하임의 외침과 함께 3클래스 최강의 마법, 파이어 볼이 물리 세계에 구현됐다.

루다크의 암흑권풍에 비교한다면 초라하기까지 한 기술이었지만, 루다크는 마하임을 비웃을 수 없었다.

마하임이 구현해 낸 파이어 볼은 한 발이 아니었다. 무려 5발의 파이어 볼이 동시에 자신에게 날아든 것이다.

“큭! 무영장, 게다가 연속 마법 시전이라고?!”

순식간에 펼쳐진 난전. 루다크의 암흑권풍과 마하임이 구현한 다섯 발의 파이어 볼이 뒤엉켰다.

콰쾅-! 퍼어엉-!

두 개의 기운이 서로의 기세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폭음이 대지를 진동시켰다.

어이없는 상황. 그러나 루다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하하핫, 좋구나! 너무나 좋아!”

루다크는 웃었다. 진심으로 기뻤다. 제국에서도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의 인물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재미없는 학교에서 이런 강자를 만나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허나 이따위 파이어 볼에 당할 내가 아니다!”

루다크는 자신의 암흑투기를 휘둘러 마하임이 구현한 파이어 볼을 단숨에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이를 보고만 있을 마하임이 아니었다.

“널 죽이고 미래를 바꾸겠다!”

쿵-!

힘찬 발구름과 함께 또다시 시전된 축지. 마하임은 튕기듯 루다크를 향해 날아갔다.

축지란 땅의 맥, 즉 용맥(龍脈)과 자신을 동기화시켜 고속 이동을 가능케 하는 시현류 선술을 대표하는 기술이었다.

원래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이동에 많이 사용하는 선술이었지만 마하임은 내공이 없었기에 단거리 이동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인 기술임에만은 틀림없었다.

“또냐!”

마하임이 놀라운 속도로 자신에게 돌진해 오자 루다크는 반사적으로 몸을 뺐다.

하지만 마하임이 더 빨랐다. 마하임은 루다크와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장착!”

“암흑투기!”

그리고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는 둘. 두 명의 주먹에는 각자가 담을 수 있는 최대의 암흑투기와 마나가 담겨 있었다.

둘 중 누구 한 명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공격. 아니 어쩌면 둘 다 죽을지도 몰랐다.

바로 그때, 초대받지 않은 또 다른 불청객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파파팟-!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불청객은 두 사람의 주먹에 날카로운 끊어치기를 날렸다. 그 때문에 진행 경로가 틀어진 마하임과 루다크의 주먹은 보기 좋게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적인 타이밍 하며, 정확도는 직접 당한 당사자들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웬일이지? 학교에만 처박혀 있던 네가….”

루다크는 광소를 거두고 그 초대받지 않은 손님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렸다. 아마도 루다크는 그를, 아니 정확히는 그녀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하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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