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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58화 (58/194)

58화

두둑 투투툭-

그리고 문자 그대로 빵의 비가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종이로 포장된 어린아이의 팔뚝만 한 이 빵은 대륙 대부분의 지방에서 아침 혹은 점심 대용으로 널리 사랑받는 ‘롤’이라는 빵이었다.

지금 시각은 정오가 되기 2시간 전,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사람이라면 딱 배가 고플 만한 시간이었기에 그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즐겁게 먹고 즐기십시오. 세상사 복잡한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벗어 던지고, 알타베르나의 학생들과 함께 즐거운 꿈을 꾸시길 이 황제 신시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황제는 관객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관객들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빵의 비는 그치고, 남은 빵들이 수거되자 윈디는 경기 시작 선언을 알렸다.

“자, 그럼 시작한다요. 대련 방식은 1:1 기본으로 하며, 무기 사용도 자유. 고대 유적 사용도 무방하다요. 이것만 잘 지키면 딱히 반칙도 없다요,

다만 상대방을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요. 항복하거나 경기장을 벗어나거나 의식을 잃으면 패배. 만약 살인이 일어나면 그 즉시 퇴학이다요. 힘 조절 잘한다요.”

사실 죽더라도 3일만 지나지 않으면 소생시킬 수 있는 윈디였지만, 사람을 죽음에서 부활시키는 일은 아무리 그녀라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귀찮은 것은 질색인 윈디였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돕기 위해 심판이자 해설가를 겸할 엘케인을 소개한다요! 나와라 엘케인!”

휘이이이잉~

아무도 없는 경기장 한가운데 갑자기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맹금류와 인간을 뒤섞어 놓은 듯한 외모의 바람의 정령왕 엘케인이었다.

바람의 현자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엘케인의 지모와 이 능력은 모든 정령왕들 중 최고였다.

이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최소 8클래스 이상의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소환하기 어려운 정령 중 하나였다.

대륙 역사를 모두 뒤져 봐도 바람의 정령왕을 소환에 성공한 사람은 단 두 사람. 그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윈디였다.

“이렇게 여러분을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시간 관계상 바로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경기 진행 방식은….”

이번 경기 본선에 진출한 사람은 총 32명. 토너먼트 형식으로 32강부터 시작해 계속 이겨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고대 지구에서 펼쳐진 경기 ‘월드컵’의 규칙과 똑같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윈디의 향수병 때문에 생긴 규칙이었다.

“양 선수 앞으로!”

와아아아!

엘케인의 외침과 함께 우레와 같은 관객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이 경기장 안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마하임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자신만의 갑옷이라든지 특별 제작한 도복 같은 것을 많이 입고 있었지만, 마하임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것이라고는 등교할 때 입었던 간편한 사복이 전부였다.

마하임은 나노머신으로 강화된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사용하는 무술 역시 힘보다는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시현류였기에 갑옷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나타난 또 한 명의 선수. 그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이 인상적인 남자 엘프였다.

몸에 착 달라붙는 녹황색 가죽 갑옷을 입은 그는 마하임을 향해 살짝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제 이름은 레스파냐 엔트로스입니다. 명망 높은 마하임 님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명망이라뇨 과찬이십니다. 전 그저 평범한 학생일 뿐입니다.”

인사를 주고받는 둘. 그 둘을 향해 사방에서 관객들의 함성이 쏟아지듯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

마하임의 강함을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실제 직접 보는 것은 대부분 처음인지라 관객들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엘케인의 신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둘은 잠시 서로의 동태를 살피기라도 하듯 한동안 노려보기만 했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은 숲은 보지 말자. 내가 봐야 할 것은 오직 나무 그 자체. 오직 그것에만 집중한다!’

답답한 가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마하임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는 선택했고 그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버렸다.

굳은 듯 서 있던 두 사람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엘프 남자 레스파냐였다.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외친다.

“나 레스파냐 엔트로스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와라 샐러…?!”

레스파냐가 소환하려 한 것은 아마도 불의 정령 샐러맨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을 채 끝까지 잇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마하임이 굳은 듯 멈춰 서 있었다.

“내가 너무 진지했나 보군.”

마하임은 의식을 잃은 레스파냐 앞에서 무안한 듯 말했다. 뒤늦게 경기장을 뒤흔드는 관객들의 함성!

“와우! 모두 정면의 주목하라요! 느린 영상으로 보겠다요!”

그리고 경기장 중간에 두둥실 떠오른 홀로그램 영상에는 마하임의 움직임이 저배속으로 느리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레스파냐가 정령 소환을 하려 입을 땐 직후, 마하임은 축지를 사용한 것이다.

마하임과 레스파냐와의 거리는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축지는 그 거리를 단숨에 1미터로 줄여 버렸다.

그리고 마하임의 발경이 레스파냐의 배에 작렬했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한 엘프가 이걸 맞고 기절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축지와, 발경의 연속 콤비네이션! 마하임은 마법뿐 아니라 체술에 능한 마법 전사다요. 기존의 마법사전을 생각한다면 큰코다친다요.”

신이 난 윈디는 자신의 자리에서 해설에 여념이 없었다. 장내의 열기에 압도되어 관객들은 넋을 잃고 그녀의 중계를 듣고 있었다.

“마하임 님 승리하셨습니다. 대기하셨다가 16강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아, 네. 그럼….”

엘케인의 말을 듣고 경기장을 내려가는 마하임. 관객들은 마하임의 이름을 연호했다.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의 마하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관객들의 열기와 함성은 마치 경기장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그들을 보며 마하임의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지금은 즐기는 거야. 그 미래에 속박되어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재니까.’

마하임은 느리지만 힘찬 걸음으로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갔다.

* * *

본선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본선에 진출한 인원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인물들이 존재했고, 그들의 경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32강 경기가 모두 끝나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곧이어 16강, 마하임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양 선수 입장하십시오.”

엘케인의 목소리는 마치 파도처럼 사방을 진동시켰다.

관객들의 함성이 대회장을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이번에도 가장 먼저 입장한 것은 마하임이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났는데도 마하임의 대전 상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엘케인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입을 뗐다.

“샤오랑 선수. 장난치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엘케인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자신의 정령력을 사방으로 발산했다.

그러자 허공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며 불타오르는 종잇조각들과 함께 마하임 나이 또래의 소년 한 명이 바닥에 떨어졌다.

“크악! 너무하잖소! 본인은 그저 관객들의 눈요기를 위해 약간의 술수를 부렸던 것뿐이오!”

그의 말투, 그리고 그의 피부색을 볼 때 이 소년도 시아라와 마찬가지로 동방 출신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바닥에서 불타고 있는 저 종잇조각들은 마하임의 눈에 익숙한 것이었다.

‘부적술사군.’

속칭 영환도사라 일컬어지는 부류일 것이다.

시체를 강화시켜 자신의 종으로 부리는 ‘강시술’을 다루고, 부적에 마나를 담아 마법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동방의 마법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머리에 쓴 사각모 하며 누런색의 도포(道袍)를 입고 있었다. 그 도포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닥치고 경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만 더 입을 놀리면 실격패 처리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샤오랑 선수.”

“넹.”

찍소리도 못 하고 소년 부적술사는 입을 닫았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부적술사라도 엘케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하임과 샤오랑은 서로 마주 봤다.

“본인은 샤오랑이라 하오. 동방의 씽이란 나라에서 유학 온 부적술사요. 명망 있는 마법 전사로 들었소. 한 수 부탁하겠소.”

“제 이름은 이미 아실 것이고, 저 역시 한 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모든 경기에서 그렇듯 시작은 탐색전이 기본이다.

지금이 전쟁터라면 선수 필승을 외칠지도 있겠지만, 이곳은 경기장.

그것도 나름 한 가닥 하는 고수들만 모이는 알타베르나에서 공격 방식과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하임을 공격할 뜻을 보이지 않자, 샤오랑이 먼저 입을 땠다.

“그럼 소인 먼저 공격하리다. 화둔(火遁),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자신의 긴 도포 소매 안에서 샤오랑은 5장의 부적을 꺼내 허공에 날렸다.

그러자 부적은 순간 붉게 타오르더니 놀라운 속도로 마하임에게로 날아왔다. 마하임 역시 이에 질세라 주문을 외웠다.

“만능의 마나 그 목적 없는 강대한 힘이여! 근원의 의지를 따라 5개의 힘으로 적을 쳐라! 매직 미사일!”

핑핑- 부우웅-

대기를 진동시키는 5개의 광구가 순간 허공에 나타났다. 그리고 시전자의 의지를 따라 샤오랑의 부적들을 단숨에 따라잡았다.

그리고 허공에서 펼쳐진 매직 미사일과 화둔의 술래잡기.

화둔은 마치 살아 있는 양 매직 미사일을 피해 마하임을 공격하기 위해 불규칙적으로 날았지만, 마하임의 매직 미사일은 단 하나의 화둔도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요격해 버렸다.

콰쾅! 콰콰쾅!

화둔이 매직 미사일에 소멸할 때마다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 같은 장관이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후 화둔이 모두 사라지자 그 불꽃놀이도 끝이 났다.

“역시 대단하시구려, 마하임 도령. 내 화둔은 스승님조차 인정하신 건데.”

나름 선수 필승을 노리고 사용한 화둔이었건만, 너무나 허무하게 봉쇄되자 샤오랑은 입맛이 썼다. 하지만 경기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샤오랑은 혹시나 마하임이 첫 경기에 썼던 축지를 다시 쓸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다음 기술을 준비했다.

“잡기술은 사용치 않겠소! 전력으로 나의 필살기를 보여 드리리다! 백호 강림, 급급여율령!”

부적을 한두 개도 아닌 수십 장을 동시에 허공으로 뿌리는 샤오랑.

부적들은 마치 살아 있는 양 샤오랑의 몸을 한 바퀴 돌더니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타올랐다.

크어어어엉-!

그리고 울려 퍼진 엄청난 포효 소리. 마하임은 마치 뼈까지 울리는 듯한 소리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다.

‘뭐지? 혹시 소환?’

마하임의 예상대로 그것은 소환이 맞았다.

샤오랑의 부적이 타오른 그 자리에는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호랑이 한 마리가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그 크기는 족히 5미터는 되어 보였고 그 기세는 경기장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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