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오 저건 영계의 환수인 백호다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공력이 필요한 부적술인데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요!”
“그렇습니다만 저건 사악한 악귀를 쫓을 때 주로 사용하는 환수인데 말이죠. 그래도 사람한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아, 지금 환수가 움직입니다!”
어느 사이엔가 자리를 옮겨 윈디 옆에서 해설을 하는 엘케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샤오랑의 귀에는 엘케인의 해설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염력을 모아 힘차게 외쳤다.
“가라, 백호여! 나의 적을 분쇄하라!”
크어어엉-!
다시금 울려 퍼진 포효 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백호는 마하임에게로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환수?! 내공이 없는 내가 막아 낼 수 있을까?’
환수라는 것은 정령의 한 단계 위의 신령한 존재.
지금껏 마하임이 싸워 온 그 어떠한 존재보다 이질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마하임에게는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파이어 볼! 인첸트!”
마법장착. 고육지책으로 만든 기술이었지만, 지금 마하임에게 믿을 만한 기술은 이것뿐이었다.
파이어 볼의 이글거리는 불길이 마하임의 주먹에서 솟구쳤다.
바로 눈앞까지 달려온 백호.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고 마법장착된 자신의 주먹을 백호에게로 날렸다.
쾅-!
짧고 날카로운 폭음. 마하임의 주먹을 맞은 백호는 폭발하듯 허공에서 증발해 버렸다.
예상치 못한 위력에 마하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환수 중 백호는 상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마하임 역시 마법장착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법장착이 된 마하임의 주먹에 환수 백호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헐….”
샤오랑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회심의 필살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기술이었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무력화되어 버린 것이다.
“놀랍다요! 저런 식의 마법 사용은 처음 본다요. 백호를 일격에 소멸시키다니, 위력만 따진다면 7서클 마법에 필적한다요.”
나노머신으로 강화된 육체에 마법이 깃들자 그 위력이 곱절이 넘게 증가된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마하임! 마하임!
커다란 함성과 함께 마하임 이름을 연호하는 관객들. 그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마하임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반면 샤오랑은 거의 멘탈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 부적에 백호의 기운을 담는 데 걸린 시간만 해도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한 결말이라니. 샤오랑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자, 다음은 뭡니까? 샤오랑 군? 관객들이 기다립니다.”
“…….”
마하임은 여유롭게 웃으며 도발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여유롭지 못했다.
마법장착이 통한 건 그야말로 우연. 부적술에 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저런 식의 부적술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힘은 ‘도사’만큼이나 강하다.’라는 이야기를 시아라에게 들은 적이 있기에 접근전을 하기에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접근전을 배재하고 방어 위주의 원거리전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마하임은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샤오랑을 바라봤다. 그런 마하임을 뚫어져라 노려보던 샤오랑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좋소. 마하임 도령. 원래 결승에서나 쓰려고 했는데. 지금 여기서 보여 드리리다.”
샤오랑은 다시금 자신의 도포 자락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에 꺼낸 것은 은색으로 반짝이는 종(鍾)이었다.
종을 꺼내 든 샤오랑은 두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신라강시(新羅殭屍) 파황(破皇)….”
딸랑- 딸랑- 딸랑-
그리고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 샤오랑은 자신의 종을 위아래로 흔들며 여전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마하임은 언제든 마법을 시전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바로 그때 샤오랑은 입을 열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강령(降靈)이여, 나의 부름에 응답하라!”
그의 목소리가 파문을 그리며 경기장을 울렸다. 그리고 샤오랑은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을 다시금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쿵-!
청아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그치기가 무섭게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묵직한 충격음을 남기며 바닥에 떨어졌다.
“도령께 소개해 드리오. 우리 가문 비전의 강시 제조법으로 만든 철완강시(鐵腕僵尸)이외다.”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새까만 옷을 두른 그것은 한눈에 봐도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겉모습은 사람이 맞았다. 그러나 2m가 넘는 엄청나게 큰 키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몸은 비쩍 말라 뼈만 앙상했다. 게다가 피부 색깔도 이상해 보였다.
죽음의 기운이 도는 흑청색의 피부가 옷 밖으로 드러난 모든 곳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 붙은 부적 한 장. 그것은 전형적인 강시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재밌는 걸 보여 주시는군요. 샤오랑 군.”
내심 당황스러운 마하임이었지만 철저히 감정을 감췄다. 그것은 일종의 기 싸움이었다.
설령 무력에서 밀린다 할지라도 심리적으로까지 밀려 버린다면 그것은 필패였다.
‘힘을 아끼지 말자. 전력을 다해 일격으로 적을 배제한다!’
적이 아직 힘을 발휘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최고라고 판단한 마하임은 두말도 없이 축지를 사용했다.
그것은 실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하임과 강시와의 거리는 눈 깜짝할 순간에 1m 내외로 줄어들었다.
“마법장착! 발경!”
순식간에 파이어 볼을 오른손에 부여한 마하임. 그리고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발경을 강시의 배에 꽂아 넣었다.
푸화악!
요란한 폭음과 함께 파이어 볼의 불길이 순간 솟아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발경이 강시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밀려난 건 마하임이었다.
“크허억!”
발경을 사용한 오른손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에 마하임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검게 그을린 마하임의 손.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샤오랑을 노려봤다.
“마하임 도령. 아무리 시현류가 자랑하는 발경이라 할지라도 우리 철완강시에게는 통하지 않소. 애초에 이 강시는 시현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가문이 총력을 기울여 만든 역작이오.”
보통은 이쯤에서 곽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장내는 일제히 야유와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심지어는 아까 황제가 뿌린 빵까지 샤오랑에게 날아왔다.
“뭐냐, 이 어리석은 것들! 강시술도 엄연한 기술이다!”
화가 난 샤오랑은 목청껏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왔다.
“시체로 장난질치는 게 자랑이다! 망자를 모욕하지 마라!”
“사악한 동방 놈, 저 시체도 한때 사람이었다. 불쌍하지도 않느냐!”
“시체도 권리가 있다. 당장 풀어 줘라!”
“마하임 님 사랑해요! 이쪽으로 좀 봐주세요.”
애초에 샤오랑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으니 샤오랑은 열이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관객을 향해 화를 풀 수도 없었기에 샤오랑은 마하임을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으그극! 철완강시! 끝내 버려!”
샤오랑의 명령을 받은 철완강시는 강시 특유의 경직된 뜀뛰기로 마하임에게로 돌진했다.
마하임은 재빨리 뒤로 도약해 샤오랑의 강시와 거리를 벌렸다.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저 강시술의 빈틈을 찾아야만 했다.
“위기에 처한 마하임 선수. 아무래도 강시와 싸워 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보입니다.”
어느 사이엔가 윈디의 곁으로 돌아온 엘케인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윈디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다요. 강시는 동방 비전의 주술. 일반인이 보기 힘들다요. 과연 마하임 군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한번 지켜보자요.”
윈디는 처음 강시를 보고서는 바로 경기를 중단시키려 했다. 이런 축제에 살인귀의 대명사 강시술을 쓰다니, 언어도단이었다.
게다가 강시 또한 한 명의 사람. 이 토너먼트 경기는 기본적으로 1:1 경기를 지향했다.
여기서 강시술 같은 걸 사용해 버리면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릴 뿐만 아니라 룰 자체가 위험해진다.
예를 들자면 지금은 강시를 한 마리만 소환했지만, 4마리, 5마리씩 마구 불러내면 경기가 난장판이 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예전에도 이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윈디는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윈디는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았다. 이 정도도 이겨낼 수 없다면 앞으로의 싸움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을 터.
그렇게 경기는 계속되었다.
‘방법이 없진 않다.’
마하임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금강석, 아니 그것보다 더 강하다 할지라도 일격에 분쇄시킬 만한 기술이 마하임에게도 있긴 했다.
단지 너무나 위험해서 단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기술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쿵. 쿵. 쿵.
철완강시는 육중한 발 구름 소리를 내며 양팔을 앞으로 쭉 뻗은 채 껑충껑충 뛰어 마하임에게로 다가왔다.
그 움직임이 완전히 경직되어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지만, 강시는 이를 전혀 상관치 않고 마하임을 향해 몸을 날렸다.
부웅~ 쿵!
강시의 공격 방법은 간단했다. 높이 점프하여 마하임이 서 있는 곳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눈에 보이는 뻔한 공격이었기에 마하임은 몸을 굴려 간단히 강시의 공격을 피했다. 이를 본 샤오랑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종을 흔들었다.
“지금이닷! 철완강시, 회전지옥!”
샤오랑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 강시는 땅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놀라운 속도로 회전하며 마하임을 향해 쏘아진 활처럼 날아갔다.
“뭐?!”
축지를 사용할 여유조차 없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철완강시는 마하임의 곁을 스치듯 지나갔고 그의 왼쪽 어깨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크윽!”
팔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는 마하임.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대동맥에 상처라도 난 것처럼 상처 부위를 압박하고 있었는데도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철완강시의 공격에 당하면 출혈의 저주를 받소. 그 상태라면 5분도 못 버틸 것이오. 더는 위험하니 항복하시오, 도령.”
곧장 공격한다면 충분히 마하임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샤오랑은 마치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철완강시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크르르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우뚝 멈춰 선 철완강시의 입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굶주린 야수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쿠에에엑!!”
마치 커다란 맹수처럼 철완강시는 포효했다. 그리고 몸을 마구 비트는 철완강시.
샤오랑은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고 철완강시를 뒤로 물렸다. 아니, 물리려 했다.
그러나 철완강시는 더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녀석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이마에 붙어 있는 부적을 찢어 버렸다.
“크르르르릉 카아아악!”
허리를 뒤로 젖히며 다시금 포효하는 철완강시. 녀석은 마하임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어, 어째서?! 멈춰 철완강시!”
샤오랑은 미친 듯이 자신의 종을 흔들어 봤지만 철완강시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강시를 제어하기 위한 부적, 제어부(制御符)가 뜯겨 나간 뒤라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