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폭주? 젠장!’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마하임.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자신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회전해 다가오는 철완강시를 본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축지!”
쿵-
그리고 순간 마하임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샤오랑의 맞은편 앞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샤오랑 군. 강시가 갑자기 왜 저럽니까?”
“모, 모르오.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오. 강시가 스스로 제어부를 뜯어내다니!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외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꽤 위험한 상황 같군요.”
저런 사술은 본래 세계의 균형을 어지럽히기에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을 마하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를 제어하기 위해 2중 3중 안전장치를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안전장치를 저 강시는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강시는 그야말로 제어 불능의 폭주 상황에 들어간 것이다.
“크르르릉 크아악!!”
철완강시는 입에서 녹황색의 액체를 뿜어내며 마하임과 샤오랑이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놈이 뿜어내는 살기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크아아아!”
철완강시는 살기 가득한 포효와 함께 다시금 죽음의 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튕겨지듯 둘에게로 날아왔다.
“떨어지시오, 마하임 도령! 화둔, 급급여율령!”
마하임을 밀쳐내고 예의 화염 부적술을 다시금 사용하는 샤오랑. 샤오랑이 던진 10개의 부적은 순간 10개의 불덩이로 변해 철완강시를 강타했다.
퍼퍼펑-!
요란한 폭음 소리가 경기장 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철완강시에 화둔은 정확히 명중했지만, 금강석 이상의 내구력을 자랑하는 철완강시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망할! 피해야 해!”
샤오랑은 마하임이 그랬던 것처럼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샤오랑은 마하임만큼 반사 신경이 좋지 못했다. 결국 샤오랑은 등에 깊은 상처를 입고 바닥에 굴렀다.
“크헉!”
피가 터지듯이 바닥을 적셨다. 그야말로 치명상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엘케인은 윈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윈디 님. 경기를 중단시킬까요?”
“흠. 아냐. 좀 더 지켜보자요. 어차피 죽더라도 3일만 지나지 않으면 살릴 수 있다요.”
윈디는 한때 소생자(蘇生者)라 불렸던 전설의 마녀였다. 하지만 그녀라고 아무런 제한 없이 죽은 사람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사하거나 온몸이 산산조각 나면 살릴 수 없다. 그리고 하루에 한 명 이상은 소생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제약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윈디의 힘은 상식을 초월한, 문자 그대로 ‘신’에 가까운 힘이었다.
“괜찮소!? 샤오랑?”
“크윽, 하아 하아….”
쓰러진 샤오랑에게 다가온 마하임. 샤오랑은 이미 전투 불능의 상황이었다.
출혈도 심해 이대로라면 5분은 고사하고 3분도 못 넘길 같다. 이쯤 되면 경기가 중단될 법도 했지만 윈디는 여전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시지?!’
마하임은 속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반드시 샤오랑은 죽는다.
“아, 아빠 미안해. 쿨럭쿨럭, 멋대로 행동한 거 용서…. 흐흐흑….”
고통 속에서 점점 의식을 잃어 가는 샤오랑. 그의 눈에선 피 섞인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게다가 철완강시는 마하임과 샤오랑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젠장! 또 이런 빌어먹을 상황이라니!”
마하임은 두 눈을 부릅뜨고 철완강시를 노려보았다. 절체절명의 상황. 그 처절한 미래의 기억들이 또다시 마하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하임 자신이 지키지 못하고 죽어 간 수많은 동료들. 그리고 마하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버린 동료들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리고 마하임은 분노했다.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자신의 나약함에 분노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곧 마하임의 힘으로 변해 갔다.
마하임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겨우 이 정도 위기에 굴한다면 앞으로 있을 제국과의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었다.
“물러설까 보냐!!”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이곳은 더는 물러설 곳 없는 마지노선. 후퇴할 배 따위는 불살라 버린 지 오래였다.
마하임은 그야말로 배수의 진을 쳤다.
“좋다! 무엇이 두렵단 말이냐! 마장기와도 단신으로 싸운 나다!”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외쳤다. 비록 경쟁 상대라 해도 샤오랑은 적이 아니었다.
같은 학교의 동료이자 앞으로 어쩌면 자신의 힘이 되어 줄 사람일지도 몰랐다.
사람을 얻는 자 천하를 얻으리라! 그것은 제왕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마하임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마나를 제어했다. 그리고 시전한 것은 파이어 볼, 그리고 매직 미사일.
“이중 마법장착!”
너무 위험해 사용해 본 적조차 없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순 없었다.
2개의 마법이 동시에 마하임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각각의 기운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지금 보셨습니까? 윈디 님. 파이어 볼과 매직 미사일을 자신의 양팔에 인첸트시켰습니다!”
“나도 처음 본다요. 저런 게 가능해다요?! 하나도 아니고 두 가지의 마법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믿을 수 없다요!”
윈디는 전부터 마하임이 숨겨 온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저런 상식을 송두리째 무시한 기술일지는 몰랐다.
“와라, 철완강시! 한번 죽어 보자!”
마하임의 말을 정말 듣기라도 한 듯 철완강시는 그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마하임은 자세를 가다듬는다. 마법 이중 장착은 성공했지만, 이것만으로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시현류(示現類) 유도 유선술(柔道柔仙術).’
마하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자세를 잡았다.
내공이 없는 자신은 그저 흉내만 낼 수준이었지만, 지금 사용치 못하면 죽는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마하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기발경!”
콰콰콰쾅-!
마하임의 외침과 함께 철완강시와 이중 마법장착으로 강화된 선기발경이 충돌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난 엄청난 폭발!
후끈한 열기가 관객석까지 몰아쳤다. 주위는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시야는 바로 코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그리고 잠시 후, 연기를 사라지자 경기장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마하임이 관객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하임은 살아 있었다. 비록 입고 있던 옷의 상의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버렸지만 특별한 상처 없이 무사했다.
드득, 덜거덕.
반면 마하임의 정면 바닥에는 상반신이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린 철완강시가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있었다.
와아아아아!
관중들은 그야말로 전율했다. 그토록 강한 철완강시를 단 일격에 쓰러진 것이다. 마치 경기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정말 멋진 공격이었다요. 시현류의 발경과 자신의 오리지날 공격의 하이브리드! 이런 건 처음 본다요! ”
“네, 그렇습니다! 저도 수없이 많은 전장을 누벼 보았지만 저런 기술은 처음입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의료진! 뭐 하나? 샤오랑을 보건실로 옮겨, 어서!”
엘케인은 마음이 급했다. 아무리 윈디가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경기 중 사망자가 나온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아, 네. 약간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일단 1부 순서는 여기서 마치고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점심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교내 식당을 이용하셔도 좋고 각자 자유롭게 식사를 하십시오. 1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 말을 끝으로 엘케인은 샤오랑이 있는 곳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하늘에는 몇 조각의 구름이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날씨는 여전히 맑았다. 알타베르나의 오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새하얀 벽과 새하얀 커버를 씌운 10여 개의 침대가 놓여 있는 이곳은 알타베르나 유일의 보건실이었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지는 수많은 의료 기구와 그 근원이 어딘지도 모를 소독약 냄새가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 보건실 한쪽 구석에는 치명상을 입어 의식을 잃고 있는 샤오랑이 누워 있었다.
그러나 샤오랑의 상처는 이미 깨끗이 치료되어 흉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케인이 직접 샤오랑을 치료했던 것이다.
“자, 이제 샤오랑은 괜찮을 겁니다. 출혈이 심했긴 하지만 곧 회복되겠죠. 다음 차례는 마하임 님입니다.”
“아, 네.”
마하임은 엘케인에게 자신의 다친 팔을 내밀었다. 다친 팔에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철완강시에게 당한 상처는 저주 때문에 지혈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조그마한 상처도 치명상이 될 수 있었다.
“약간 따끔할 겁니다.”
“윽!”
엘케인은 자신의 날카로운 부리로 마하임의 상처를 쪼았다. 그리고 새까만 무언가를 상처 부위에서 떼어냈다. 그것은 무슨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녹아내리듯 사라진다.
“철완강시의 저주입니다. 이걸 제거하지 않으면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죠.”
“저주란 무서운 거군요.”
“샤오랑의 철완강시, 아무래도 보통 물건이 아닌 거 같습니다.”
엘케인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강시는 일반적인 강시술로 만든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철완강시의 시신은 수습해 놨으니, 조사해 보면 답이 나올 터였다.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엘케인은 자신의 주특기인 시공역전을 사용했다. 각 물체에 부여된 시간을 역행시켜 훼손된 부위를 훼손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회귀시켜 버리는 궁극의 회복술이었다.
“끝났습니다.”
마하임은 방금 샤오랑 때와 마찬가지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엘케인의 시공역전은 철완강시에게 당한 깊은 상처를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치료, 아니 회귀시켜 버렸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엘케인 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나가서 식사라도 하시죠. 전 나머지 경기 준비 때문에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십시오.”
마하임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엘케인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마치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샤오랑과 마하임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샤오랑이 여자였다니….”
말투도 목소리도 영락없이 남자였지만 엘케인이 치료를 위해 그의, 아니 그녀의 도복을 벗겼을 때 드러난 것은 작고 아담한 가슴을 지닌 소녀의 몸이었다.
엘케인의 말에 의하면 부적술사의 부적술 중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변화시켜 귀신과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 기술의 응용일 거라 엘케인은 설명했다.
“오늘 깨어나기는 어렵겠지?”
이곳에 처음 샤오랑이 왔을 때는 그야말로 시체와 다름이 없었다. 너무 피를 많이 흘려 쇼크 상태였고, 심폐소생술을 써 봐도 호흡이 돌아오기는커녕 싸늘하게 식어 갈 뿐이었다.
만약 엘케인이 직접 나서서 치료하지 않았다면 샤오랑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쩌지?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격한 운동 뒤에는 언제나 공복이 따라왔다. 특히 철완강시를 쓰러트릴 때 사용한 기술들은 칼로리 소모가 엄청난 기술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하임의 위장은 당장 밥을 내놓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며 협박음을 끊임없이 외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꼬르르륵-
“일단 학교 식당에 가서 배부터 채우자.”
그렇게 생각하고 마하임은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