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대륙 유일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알타베르나는 총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첫 번째 건물은 대부분의 강의실이 몰려 있는 30여 층 높이의 본관.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엔터테이먼트 타워(복지관), 기숙사. 그리고 도서관이 중앙 탑을 감싸듯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규모 면에서도 여타 다른 나라의 학교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시설 면에서도 대륙 최고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특히 중앙 탑 좌측에 위치한 복지관은 알타베르나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시설이었다.
하이엘프들이 남긴 유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천여 명의 인원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식당과 3층 옥상에 있는 실외 수영장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오버 테크놀로지의 산물이었다.
지금 마하임과 샤오랑은 복지관 1층에 위치한 대식당에 와 있었다.
예전에도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므로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언제 봐도 이곳의 규모는 정말 대단하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렸다.
“광활하구려.”
그것이 이곳을 본 샤오랑의 첫 감상이었다. 이 식당에 온 것은 마하임 역시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생각은 샤오랑과 별다를 게 없었다.
식당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지만, 두 남녀에 대해 특별히 관심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가뜩이나 많은 관중이 식당을 이용하고 있는 중이라 둘의 존재감이 완전히 묻혀 버린 것이다.
“일단 뭐라도 먹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점심시간 1시간 중 30분이 지나 있었다. 그냥 대충 입 속에 집어넣고 달려가도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제시간에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듯하오.”
“그렇군요.”
지금 알타베르나는 축제 기간이었다. 축제 기간의 점심은 전액 무료였기에 인근 주민들 하며, 축제를 보기 위해 온 관광객까지. 축제는 안 봐도 공짜 밥은 놓칠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에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양심도 없는 드워프 같으니라고, 드워프라면 돈이 썩어 나잖아? 밖에 나가서 좀 사 먹어!”
얽히고설켜 있는 대기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아마도 저 목소린 엘프인 듯했다. 그리고 뒤이어 우렁찬 목소리가 마하임이 서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드워프라고 돈 많다고 생각하면 편견이오! 물론 돈은 많지만, 공짜로 먹는 밥이 더 맛있다는 것은 진리 아니겠소! 그러므로 이 자리는 내 것이야. 불만 있으면 덤벼라! 엘프 새끼야! 뚝배기를 깨 주마!”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는 대기 줄. 근처를 순찰하고 있던 황제의 엠페러 가드 몇 명이 이들을 말리려 달려갔지만 쉽게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길 간다면 무투회 시작하기도 전에 힘을 다 빼겠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이제 어쩌시겠소.”
마하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도시락이라도 싸왔을 텐데, 지금에 와서 후회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군들, 거기서 뭐 한다요. 어서 와라요. 기다렸다요.”
마하임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곳에는 윈디와 엘케인이 식당 테이블 한 상을 차지하고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조금 전만 해도 그곳은 텅 비어 있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보지 말라요. 샤오랑이 사용한 투명부와 비슷한 원리다요. 뭐,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는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내 것이 훨씬 상위지만.”
언제나처럼 윈디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엘케인은 씽긋 웃으며 마하임과 샤오랑을 인도하여 음식이 차려진 식탁으로 안내한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잘 먹겠습니다.”
“감사히 먹도록 하겠소.”
둘은 말없이 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마하임뿐만 아니라 샤오랑 역시도 배가 무척이나 고팠기에 음식을 입에 가져다 넣기에 바쁜 둘이었다.
“먹으면서 듣는다요. 샤오랑의 철완강시를 조사해 본 결과, 미심적인 부분이 많다요. 그 폭주도 그러하고.”
샤오랑 역시 그 부분이 무척이나 걸렸다. 일반적인 강시는 절대 폭주할 수 없다. 적어도 이마에 부적이 붙어 있는 한 말이다.
그런데 철완강시는 부적이 붙어 있는데도 샤오랑의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폭주해 버렸다.
“단도직입적으로 샤오랑에게 묻겠다요. 흑신선(黑神仙)과의 거래가 있었다요?”
“…….”
샤오랑은 손을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본인도 반대했소! 헌데 아버님의 일방적으로…. 게다가 본인은 얼굴도 못 본 흑신선의 수장과 혼사까지 치를 판이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크흑, 흑흑흑.”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우는 샤오랑. 보다 못한 마하임은 호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손수건을 받을 경황마저 없었다.
“마하임. 특명을 하나 주겠다요. 이번 축제가 끝나면 샤오랑과 함께 그녀의 본가로 가서 사태를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한다요. 샤오랑처럼 이쁜 소녀를 그 변태 로리콘에게 넘길 수는 없다요.”
“….”
어째서 흑신선의 수장이 ‘변태 로리콘’이 되어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학기 중이었다.
어쨌든 ‘졸업’을 해야 하는 마하임의 입장으로서는 함부로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만, 수업은요? 수업에 한 번이라도 빠지면 낙제…. 졸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온다요. 그리고 만에 하나 강제로 혼사까지 치르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내 저택으로 데려온다요. 내가 책임지겠다요.”
무언가 흑심이 가득 담겨 있는 음흉한 목소리였지만, 마하임은 그러려니 했다. 흑신선이 얽힌 이상 마하임 역시 그냥 있을 수만은 없었다.
흑신선. 시아라의 가문을 멸문으로 몰아넣은 당사자가 바로 그들이었다.
원래 시현류의 한 문파였던 이들은 영생을 추구하다, 생체 실험과 더불어 금지된 선술을 사용함으로써 시현류에서 파문당했다.
이후 흑신선이라 자신을 칭하면서 온갖 인륜을 벗어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암약한다.
그리고 시오니아 제국이 대륙 통일 전쟁을 시작하자 제국 측에 붙은 흑신선들은 최후까지 저항하던 시아라의 가문을 대규모의 마장기와 함께 급습해 결국 멸문으로 이끌었다.
시아라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자신과 몇몇 가신들만 이끌고 겨우 탈출해 마하임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것이 마하임이 기억하는 미래의 기억이었다.
“맡겨 주십시오. 저 역시 흑신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습니다.”
“후후. 좋다요. 선물로 좋은 정보를 하나 주겠다요. 너의 다음 상대는 시온교의 ‘전투사제’다요. 그리고 밥은 천천히 먹어도 좋다요. 포탈을 사용해서 바로 이동할 거다요.”
윈디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원래 포탈이란 마법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기가 더 어려운 기술이었다.
더욱이 여기서 아침의 영광 경기장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 그것은 8클래스 마법사조차도 꽤 힘든 일이었다.
“네. 음, 샤오랑 님 진정하시고 좀 드십시오. 흑신선에 대해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이오?!”
“물론입니다. 일단 밥부터 드십시오.”
“감사하오. 정말 감사하오. 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으리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샤오랑은 마하임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어차피 흑신선과의 악연은 마하임 역시 언젠가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 시기가 조금 더 당겨진 것뿐이다.
마하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뱃속에 음식물을 채워 넣었다.
* * *
와아아아아아아!!!!
지금 이곳은 아침의 영광 경기장 안. 관객들의 함성이 대기를 뒤흔들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 샤오랑 때보다 관객은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마하임은 고개를 들어 경기장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하임의 숙적, 루다크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시온교의 사제가 우뚝 서 있었다.
“으하하하하! 시온교 사제 멀린, 인사드리오!”
호탕하게 웃고 있는 그는 한눈에 봐도 거대함 그 자체였다.
그 키는 2m를 가볍게 넘겼고, 그의 손에는 그의 키의 2/3에 이르는 속칭 ‘별사탕’ 흔히들 모닝스타라 불리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하의만 입고 있었지, 상의는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는 맨몸. 드러난 피부는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로 잘 발달된 근육이 온몸을 갑옷처럼 뒤덮고 있었다.
“엄청나구나, 정말.”
멀린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 보니 그 대단함은 마하임의 상식을 간단히 초월하고 있었다.
일단은 아인족이 아닌 순수 인간인 것 같은데 인간치고는 지나치게 컸다. 키도 키였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근육은 마장기의 강철 장갑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강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건 책으로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일반적으로 사제라 함은 신성력을 바탕으로 치료와 해독을 전문으로 하는 클래스였다.
하지만 마하임 앞에 나타난 저 사제는 그야말로 신벌을 지상에 내리기 위해 강림한 대천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들으시오. ‘마하임’의 이름을 계승하는 자여.”
멀린은 그렇게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첫 운을 뗐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알 수 없는 힘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을 단숨에 멀린에게로 집중시켰다.
“내가 여기 나온 것은 여황제가 건 돈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당신과의 데이트를 위함도 아니외다. 여기 내가 온 이유는 오직 하나. 마하임 당신에게 내려온 신탁 때문이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힘차게 말했다. 반짝거리는 대머리가 유독 눈에 거슬렸지만, 그 누구도 멀린을 조롱하는 자는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신성력이 가득 담겨 있었기에 장내는 숙연한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신탁?”
“그렇소. 이 죽음의 사막과 같은 우주에서 고아처럼 방랑하는 우리 인류에게 내려진 크나큰 축복. 이 시대 ‘모세’의 사명이 당신에게 임했다는 신탁이었소.”
마하임은 순간 멍해졌다. ‘신탁’이라 하면 쉽게 말해 신이 인간에게 내린 메시지, 일종의 계시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는 ‘모세’라니. 마하임이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난 믿을 수 없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우리 한번 신명나게 놀아 봅시다그려.”
자신의 이두박근을 과시라도 하듯 그는 몸의 근육을 한껏 부풀렸다. 마하임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뒤, 멀린을 향해 말했다.
“나도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도 동방인인가?”
“하하하! 나는 동방인도 서양인도 아닌 ‘지구인’이외다! 각오하시오, 마하임 공자!”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멀린. 마하임은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그런 마하임을 향해 멀린은 호탕하게 외쳤다.
“시작은 가볍게 사랑의 열매로 해 봅시다! 갑니다!”
멀린은 자신의 키의 3배 이상을 뛰어올라 마하임에게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마하임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그의 공격을 피해 냈다.
묵직한 울림과 함께 바닥에 착지한 멀린은 신성력을 가득 담아 말했다.
“지금부터 그대의 불완전하고 거짓된 힘. ‘마법’을 봉인하리다. 성령이여, 지금 여기에 임하소서! 홀리 그라운드!”
그의 외침과 함께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태양보다 눈부신 거대한 무언가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것은 찬란하게 빛나는 새. 마치 전설상의 피닉스를 보는 듯했다.
그 새는 하늘에서 내려와 경기장 내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은 마법의 근원 ‘마나’가 접근할 수 없는 ‘성지’로 변화했다.
‘광역 마법 봉쇄기, 안티 매직 쉘인가?’
그야말로 전설상에나 등장하는 기술. 마하임 역시 책에서나 보았지 실제 보기는 처음이었다.
멀린의 기술이 정말이라면 이제부터 이곳에서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마법장착이 주력 기술인 마하임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기술이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하임에게는 아직 ‘오페라’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