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그대의 마법은 이제 봉인되었소. 적어도 30분 내에는 사용이 불가능할 터. 자, 이제 어떻게 하시겠소.”
멀린은 여유롭게 말했다. 하지만 마하임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마법을 못 쓰는 건 나에게 있어 큰 리스크가 아니지. 애초에 난 3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못 쓰니까.”
“거짓말 마시오. 내가 철완강시와 싸우는 그대를 못 봤으리라 생각하오? 그대의 마법은 그대가 생각하는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소.”
“입으로 싸울 작정인가? 어디 한번 보여 주시지? 그 잘난 신성력을.”
사실 마하임은 신관이 싸우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가 어떻게 싸울지 궁금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멀린이 듣기로는 두말할 것 없는 도발 그 자체였다.
“…….”
마하임의 말에 멀린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처음의 호탕한 웃음을 쏟아내며 외쳤다.
"으하하하하 좋소, 마하임 공자. 과연 신탁받은 대로구려. 그럼 시작해 봅시다! 사랑의 열매!"
땅을 박차고 마하임에게로 달려오는 멀린. 그 큰 덩치로 달리는데도 발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하임의 바로 앞까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멀린은 손에 쥐고 있는 모닝스타에 신성령을 한계까지 모아 마하임을 향해 내려쳤다.
‘온다!’
너무나 빠른 움직임. 보통의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마하임은 재빨리 오페라를 작동시켰다.
‘오페라 x8!’
시작은 x4부터 해야 무리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그럴 여유는 없었다.
마하임의 명령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오페라에 의해 활성화된 마하임 몸속의 나노머신이 즉각 반응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멀린의 모닝스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하임이 서 있던 곳에 박혀 있었다.
마하임은 가볍게 뒤로 점프해 멀린과의 거리를 벌렸다.
“호오, 그건 시현류의 무공이오?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소이다.”
멀리는 경탄에 마지않았다. 멀린의 눈에는 마하임이 순간 사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착각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시현류는 아니지.’
마하임은 언제나 그렇듯 나노머신의 후유증에 속이 울렁이는 것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오페라와 시현류의 무공은 상성이 잘 맞지 않았다. 시현류의 무공은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힘을 끌어내는 것을 중점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현류의 무공과 오페라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 신체 밸런스가 깨져 버려, 근육 파열이나 골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곳 알타베르나에 오기 전 시험 삼아 오페라와 시현류의 기술을 동시에 사용했다가 근육이 파열되어 죽을 고비를 넘은 적도 있었기에 더욱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좋소! 이것도 한번 받아 보시게나! ‘사랑은 오래 참고!’”
모닝스타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멀린. 그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지만 그 위력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페라가 정상 작동하고 있는 이상, 멀린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마하임에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리게 보였다.
팟 파파팍!
마하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닝스타를 피하거나 살짝 밀쳐 내며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간단히 멀린의 공격을 피했다.
이를 본 멀린은 발끈해 더욱더 모닝스타를 빨리 휘둘렀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실망이군. 무슨 거창한 기술인 줄 알았는데 그저 모닝스타를 빨리 휘두를 뿐이지 않은가?”
모닝스타를 손쉽게 피해 내며 그를 도발하는 마하임. 멀린은 휘두르던 모닝스타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과하오. 그대를 너무 얕본 모양이오. 이제부터 진지하게 상대해 드리지. 한번 받아 보시겠소?! ‘사랑은 온유하며!’”
멀린의 터질 듯 같은 근육이 다시 한번 부풀어 올랐다. 붉게 달아오른 멀린의 근육에서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쏟아지는 멀린의 공격.
그것은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한 마리의 야수이자 포효하는 전설상의 괴수, 바로 그것이었다.
‘젠장! x10!’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오페라 x8로는 멀린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모두 피할 수 없었다.
지금 마하임의 몸으로는 멀린의 공격에 단 한 번이라도 맞게 되면 그것으로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했기에, 오페라를 10단계로 상향 조정해야만 했다.
‘놀랍군. 진정 저것이 무공이란 말인가?’
멀린은 자신의 공격을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모조리 피하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마하임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실제 보는 것은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아직 멀었소!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멀린은 이를 으드득 깨물며 다시 한번 모닝스타를 휘두르는 간격을 좁혀 갔다.
찌르고 찍고, 휘두르고 올려치고 내려치고. 공격 방법은 단순했지만 그 순간 속도는 음속을 돌파해 소규모 소닉 붐이 생길 정도였다.
콰콰콰콰-
둘의 움직임은 이미 사람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었다. 멀린의 공격은 희미한 잔상으로밖에 안 보였고, 마하임은 그 잔상과 같은 공격조차 모조리 피해 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마하임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젠장, 한계야. 이 이상은 무리다.’
오페라를 이용한 오버클럭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사실 오버클럭이라고 해 봤자 신체의 잠재 능력을 모조리 끌어내어 사용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계는 분명했고, 이제 마하임이 오버클럭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멀린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 유익을 강구치 않고!”
멀린의 외침이 땅을 진동시켰다. 그의 움직임은 더욱더 빨라졌고, 강해졌다.
그의 강맹한 기술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일격 필살. 만에 하나 마하임이 단 한 번의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게임은 끝났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니!”
“오페라 x12!”
마하임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가속, x12는 비록 3분 이상은 유지할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도박을 걸어야만 했다.
“이제는 봐주지 않을 것이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근원이 될지니….”
파파팟- 그르르릉.
멀린의 몸 주위에 신성력이 폭발하듯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자 경기장 안은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마구 떨려 왔다.
“그런즉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리라!”
그의 신성력은 극에 달해 그를 똑바로 바라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바로 그때, 멀린은 자신의 신성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며 힘차게 외쳤다.
“그러나 그중 제일은 사랑이니! 영원의 끝까지 인류와 함께하리라!!! 시작의 빛이여 나와 함께하소서! 신성 대폭발, 홀리 샷건!”
바로 그 순간 멀린의 모닝 스타가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파편은 마하임에게로 그대로 쏟아졌다.
‘젠장!’
마하임은 눈을 부릅떴다. x12를 사용 중인데도 저 파편을 모두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두 피할 필요는 없어. 급소만 피하면 돼!’
마하임은 모닝스타의 파편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하지만 양팔로 치명상이 될 만한 파편은 착실히 걷어 냈다.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마하임은 이를 꾹 깨물며 참았다. 지금으로는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기회는 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틴다!’
영원할 것만 같은 홀리 샷건의 강력한 공격도 결국 끝이 났다. 강력한 신성력을 사용한 뒤의 리바운드로 잠시 움찔하는 멀린의 모습이 마하임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마하임은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선기발경!”
투캉!
분명 손에 느낌은 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하임의 착각이었다. 그의 발경은 멀린의 양팔에 막혀 그 위력이 현저히 줄어 있었다.
마하임은 곧장 손을 빼려 했지만 멀린의 무시무시한 악력에 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정도면 됐소.”
멀린이 부드럽게 말했다. 마하임은 움찔했지만 다시 공격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멀린이 뿜어내던 무시무시한 살기가 완전히 사라졌던 것이다.
“마하임 공자. 당신이 이겼소.”
멀린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마하임의 팔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마하임의 오른손을 자신의 손으로 부여잡고는 하늘로 향해 힘껏 들어 주었다.
와아아아아아-!
쥐 죽은 듯 조용하던 경기장이 관객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 어떤 관객은 눈물을 펑펑 흘리기까지 했다.
마하임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들으시오. ‘옵타티오’의 백성이여! 내 마지막으로 예언을 하나 남기리다.”
그는 두 손을 하늘로 뻗은 후 사람들을 향해 신성력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라! 정녕 인류는 졌도다. 지옥의 사도에게! 인류를 침범하는 악의 무리에게!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인류여 절망하지 말지어다! 신께서 인류를 사랑하심이 영원하리로다! 그 은혜가 이 거짓된 세상에 충만하니, 보라! 여기 한 사람을 택하여 이 시대의 모세로 삼으니!”
멀린의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의 가슴은 감격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어떠한 의심도 불안도 존재하지 않았다.
“돌아가리로다, 돌아가리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우리의 고향, 지구로! 때가 이르고 기한이 차면 신이 정하신 바로 그때가 도래하리니! 보라, 이 소년의 어깨에 인류의 명운이 지어질 그때가 반드시 오리라!”
멀린은 이렇게 말하고선 마하임의 머리에 손을 얻는다. 신성력 가득한 그의 손길이 닿자 마하임의 몸에 난 크고 작은 상처가 순식간에 치료됐다.
그리고 멀린의 예언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나 그날이 오면 이 한 생명 불살라, 두 팔 가득 벌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리니. 신이시여, 이 소년을 축복하소서! 인류를 축복하소서!”
두 손을 높이 든 멀린의 예언은 마치 노래처럼, 마치 고고히 흐르는 강처럼 이곳을 채웠다.
“당신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 이 공허의 우주를 가득 채움을 나 이곳에서 보았으니, 지금 이곳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도다! 부디…. 부디! 그 축복이, 그 사랑이! 이 세상 끝까지 인류와 함께하길 나 간절히 갈망하고 또한 소망하며, 기원하나이다.”
멀린의 예언은 그것으로 끝났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윈디까지. 그야말로 장내는 말할 수 없는 감격의 눈물로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물론 마하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말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의 말 그의 신성력, 그것의 울림은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되어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졌다.
그리고 멀린은 이 말을 끝으로 경기장 밖으로 소리 없이 퇴장했다.
그렇게 무투회 8강 경기는 성대하게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