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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66화 (66/194)

66화

“모든 분기 우주에서 마하임 님이 소실됐습니다. 원인은 파악 불가! 더는 미래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방어, 아니 전장에서 이탈하세요, 안나 님!”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미래 예측이 없다면 안나의 공격은 그저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단순한 검격에 불과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하임은 그 공격을 간단히 피해 버리고는 안나의 몸 안쪽 깊숙한 곳까지 순식간에 파고들어 왔다.

“선기발경!”

그리고 가차 없이 안나의 복부에 발경을 날리는 마하임.

터엉!

“꺄아아악!”

발경에 직격당한 안나의 비명 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야차의 방호력 자체는 뛰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발경은 갑옷의 외피를 무시하고 내부를 파괴하는 데 특화된 기술이었으므로 야차의 장갑은 발경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안나 님, 정신 차리세요. 안나 님!”

마하임의 발경을 맞은 안나는 그 일격에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엘리는 그녀를 깨우기 위해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그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엘리는 순간 연산 에러가 날 정도로 당혹함을 느꼈다.

“크, 큰일 났다! 마하임 님, 빨리 안나 님을 깨워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갑자기 들려온 엘리의 말에 마하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큰일?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심리 그래프 역전?! 늦어 버렸네요…. 이젠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녀가, 그녀가 눈을 뜹니다.”

엘리의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있던 안나가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안나. 그녀의 눈동자는 자수정처럼 핏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감히! 누가 안나를 이리 만들었는가?!”

터져 나오는 살기에 마하임은 물론이며 관객들까지 움찔했다. 안나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안나의 머리카락은 그녀의 눈동자와 같은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내 이럴 줄 알았다요. 겨우 봉인해 놨는데.”

이를 지켜보던 윈디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손을 썼겠지만, 안나의 무투회 참전은 윈디로서도 예상 못한 돌발 상황이었던 것이다.

안나는 노옴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단순히 천재, 이런 것을 넘어서 완벽히 다른 또 하나의 뇌간이 그녀의 머릿속에 존재했다.

즉 안나는 한 몸에 2개의 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의 안나는 얌전하고 소심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녀였다. 하지만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평소에는 잠들어 있던 또 다른 뇌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인격, 윈디가 이름 붙이길, ‘레드안나’가 눈을 떴다.

“안나가 널 좋아하길래 오냐오냐 해 줬더니 감히 기어올라?! 용서치 않겠다!”

레드안나는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치켜들며 외쳤다. 그 외침에 담겨 있는 힘이란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다중 인격?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지금 마하임 앞에 선 안나는 예전의 안나와는 전혀 별개의 인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골격마저 달라져 수많은 전투를 치른 백전노장을 보는 듯했다.

‘그럼 답은 하나군. 광전사…인가?’

오직 전투에만 특화시켜 만들어진 인간, 광전사. 저것 역시 저주받은 고대 유물의 잔재였다.

마하임 역시 실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지금 안나의 모습은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광전사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만 같았다.

“각오하라! 그대의 죄! 내 친히 묻겠다.”

“하아….”

마하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런 전개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쏟아진 물은 담을 수 없는 법. 마하임은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엇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여기까지 온 이상 상대해 드리죠.”

확실히 그 미래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적어도 마하임이 알던 미래의 안나에게는 저런 능력이 없었다.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마하임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자세를 잡았다. 무시무시한 살기와 그리고 엄청난 박력이 느껴지는 레드안나였지만, 여전히 마하임의 마음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 성직자 때문일까?’

그가 남긴 말. 여전히 수수께끼와 같은 말이지만 아직도 마하임의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구, 인류의 고향. 그 단어에는 무언가 표현할 길 없는 그리움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쓰르르릉-

마하임은 허리에 차고 있던 오페라의 본체를 꺼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바스타드 소드처럼 보였지만, 이 검보다 뛰어난 검을 마하임은 본 적 없었다.

이 시대의 검은 대부분 절삭력도 약했을 뿐 아니라 강도가 약해 몇 번 휘두르지 않아도 부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페라는 그 어떤 충격도 견뎌 낼 뿐 아니라 절삭력도 약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오페라의 절삭력은 웬만한 검은 종이 자르듯 잘라 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래서 마하임은 알타베르나에서는 오페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실수라도 잘못 휘둘렀다가는 살인을 피할 길이 없었으니까.

[오페라 사용 준비 완료.]

가볍게 오페라를 고쳐 쥐는 마하임. 이를 본 레드안나는 차갑게 웃었다.

“드디어 싸울 마음이 들었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니까요. 그럼 시작해 볼까요? 비가 내리기 전에 끝내고 싶습니다.”

마하임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천둥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는 것을 보니 얼마 후 비가 올 것이 분명했다.

“하하하하! 좋다. 각오해라, 마하임!”

레드안나는 그 육중한 대검을 치켜들고 마하임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하임도 이에 질세라 검을 치켜들었다.

부웅- 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마하임은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에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마장기의 힘이라지만, 저 거대한 검을 마치 장난감처럼 레드안나의 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그 움직임이 너무나 빠르고 경쾌해 마하임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크으아아아!!!”

레드안나는 터질 듯 기합을 지르며 자신의 키에 필적하는 대검을 폭풍처럼 휘둘렀다.

그 기세가 얼마나 맹렬한지 검풍만으로도 마하임은 뒤로 밀려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 검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팡-

채앵 챙-!

사방에서 맹렬히 쏟아지는 그녀의 검격을 마하임은 오페라로 흘리거나 쳐 내면서 아슬아슬하게 막아 냈다.

정면으로 막으면 힘에 밀려 날아가 버릴 것이 뻔했기에 마하임은 검신을 비틀어 그녀의 검격을 흘리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기기는커녕 버티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손에 가해지는 충격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손목이 부러지거나 탈골이 될 확률이 높았다. 무언가 반전을 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한 조건에 딱 맞는 기술이 하나 있지.’

마하임은 그 처절한 미래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당시 검이라곤 잡아 보지 못한 마하임을 향해 검술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시아라의 목소리가 지금도 마하임의 귀에 쟁쟁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능이 없으면 기교로. 기교가 없으면 체력으로. 이것이 시현류 검술의 기본 이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부족한 것은 채우면 됩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그리고 검과 하나가 되세요.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이른다면 이능의 힘조차 무력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한 신검합일은 아직 무리였지만, 지금의 마하임에게는 이미 기교와 체력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멀린의 축복은 마하임에게 가장 완벽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현류 유도 유검술….’

마하임이 시아라에게 직접 전수받은 시현류의 비기.

마하임은 레드안나의 무시무시한 검격을 이리저리 흘리며 기회를 찾고 있었다.

가장 완벽한 순간, 가장 완벽한 타이밍이 필요했다. 레드 안나의 저 파워풀한 공격을 버텨 내려면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만 했다.

피하고, 막고, 흘리고, 막강한 공격이라 하지만 못 피할 것도 없고 못 막을 것도 없다.

마하임이 필요한 것은 단 한순간의 ‘틈’이었다. 그리고 그 틈은 곧이어 찾아왔다.

마하임이 레드안나의 검격을 살짝 흘려 버린 직후, 마하임이 바란 그 틈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일식, 착검(着劍)!’

콰직!

레드안나의 대검이 마하임을 단숨에 두 조각 내버릴 듯이 날아오자 마하임은 오페라를 거둬들이며 옆으로 살짝 피했다.

그리곤 자신의 검으로 안나의 대검을 힘껏 찍어 눌렀다. 그러자 안나의 대검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에 처박혔다.

까각- 끼끼긱-

“큭, 검이 왜?!”

“빠지지 않죠? 당연한 겁니다.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니까.”

이건 기나 무슨 특별한 이 능력이 따로 필요한 기술이 아니었다. 오직 타이밍과 균형, 그리고 그에 걸맞은 적절한 힘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거기다 가뜩이나 큰 대검인지라 마하임의 착검에 말려들자 땅에 박혀서 다시 뽑아들 수가 없었다.

레드안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금 검을 치켜들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 이놈!”

레드안나의 눈에 핏줄이 섰다. 이 정도에 포기할 레드안나가 아니었다.

광전사의 체력은 그야말로 무한대! 그녀는 광전사 본연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려는 듯 온몸이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힘과 마장기의 힘을 모두 모아 마하임을 자신의 검과 함께 들어 버렸다.

“정말 대단한 힘이군요.”

마하임은 내심 감탄하며 뒤로 물러섰다. 역시 힘으로서는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이제 마법은 사용할 수 있었지만, 광전사는 기본적으로 마법 면역이라는 사실을 마하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닥쳐라! 그리고 들어라! 나는 안나를 수호하는 붉은 검이 될지니….”

무서울 만큼의 강력한 투기였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그 투기는 루다크의 암흑투기를 능가할 정도였다.

검을 다시금 고쳐 쥔 레드안나는 마하임을 노려봤다.

“나의 검이 베지 못할 것은 없다! 크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쏘아진 화살처럼 앞으로 내달리는 레드안나. 그러나 마하임은 전혀 동요치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다! 기회는 한 번.’

길게 끌어선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광전사의 무한에 가까운 체력은 아무리 나노머신의 힘을 이용한다고 해도 버텨 낼 수 없었다.

부웅-!

파아앗!

그야말로 360도 전 방향에서 쏟아지는 레드안나의 무차별 검격.

이것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압도적인 체력과 본능적인 전투 감각이 만들어 낸 하나의 예술에 가까웠다.

‘젠장!’

이대로는 이길 수 없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오페라를 발동시켰다.

“오페라 x12!”

[오페라 x12 발동. 유지 가능 시간 1분]

오페라의 안내 메시지가 끝나기도 전, 시간은 정지한 것처럼 느려졌다.

대뇌 오버클럭의 발동.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인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이런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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