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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67화 (67/194)

67화

‘단숨에 쳐 낸다!’

오페라를 횡으로 휘두르며 마하임은 레드안나의 공격을 흘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하임의 몸에 상처는 늘어 갔고 체력을 급속하게 떨어져 갔다.

‘칫, 적당히 해선 이길 수 없어.’

레드안나의 공격은 너무나 맹렬했다. 마하임은 그녀가 다치는 것을 피하려고, 힘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미 한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필살의 각오로 임한다면 정말 안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

‘어떡한다…?’

그야 어찌 되었건 마하임에게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안나는 앞으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지금 이대로 그녀와 싸워 이겨 버린다면 그녀와 기껏 세운 ‘플래그’는 단숨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피해야만 했다.

‘할 수 없지. 그 방법을 써 보는 수밖에.’

광전사란 것은 일종의 기생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숙주가 위험하거나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으면 자신에게 가해진 공격과 같은 것으로 보고, 숙주의 의식을 잠재운 뒤 자신이 숙주의 몸을 장악하여 반격에 나선다.

다시 말해 잠든 숙주를 깨울 수만 있다면 저 레드안나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축지.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마하임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축지를 사용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마하임과 레드안나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정확히 마하임을 노리고 반격해 왔다.

“축지!!”

쾅-!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역방향으로 다시 한번 축지를 사용했다. 마하임의 발 구름에 바닥이 움푹 파였다.

관성 때문에 마하임은 모든 걸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부웅-

레드안나의 검격을 간발의 차이로 마하임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이제 더 이상 축지는 사용 불가능했다. 몸은 이미 한계…. 승부를 내려면 지금뿐이었다.

마하임은 그대로 레드안나 품속으로 파고들어 그녀를 덥석 껴안았다.

“제발 이제 그만하세요! 데이트든 뭐든 해 드릴 테니!”

마하임의 품에 안긴 안나는 순간 굳은 듯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격렬했던 전장에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마하임은 터질 듯한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제발 안나가 의식을 회복하기만을 빌 따름이었다.

“저, 정말요?”

약간은 떨리는 듯한 안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마하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의 붉게 변한 눈동자는 다시금 갈색으로 돌아왔다.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던 승부수가 일단은 통한 모양이었다. 마하임은 그녀를 보고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입니다.”

“그럼, 제게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죠?”

“일단…. 친구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마하임은 말꼬리를 흐렸다. 안나는 자신의 검을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 마장기의 가슴 부위가 열리면서 밖으로 나온 안나는 마하임의 품에 안겼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저랑 친구해요.”

안나는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안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노옴과는 달랐다. 안나가 가는 곳마다 그녀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천재’였다.

그러나 그 ‘천재’라는 수식어는 그녀를 한없이 외롭게 만들었다.

고향 사람들, 심지어는 그녀의 부모조차 ‘천재니까 당연히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항상 안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갔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안나는 자신의 생명을 끊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살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안나의 몸은 이미 안나 자신의 몸이 아닌 노옴 공동체 ‘가르샤’의 것이었다.

안나의 몸에는 이미 생체 신호 감지기라는 기계가 그녀 몰래 심어져 있었고, 그 기계는 안나를 죽을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안나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안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절망의 심연으로 가라앉은 그녀에게 어느 순간 레드안나가 다가왔다.

‘이 울보. 그만 좀 울어. 이쁜 얼굴 다 망가지겠다.’

자신과 똑같이 목소리, 똑같은 얼굴. 다른 것이라고는 붉은 눈동자뿐이었다.

안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레드안나는 말했다.

‘너도 친구가 없어 우는구나. 좋아, 나랑 친구할래? 나도 친구가 없어서 걱정이거든.’

그렇게 레드안나는 안나 유일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안나는 그날 밤 가출해 알타베르나로 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안나는 여전히 친구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지금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겼다. 안나는 마하임의 품속에서 울고 또 울었다. 그동안의 외로움을 그리고 괴로움을 모두 날려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마하임의 4강 경기는 안나의 기권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마하임의 결승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

점점 흐려지던 알타베르나의 하늘은 급기야는 비까지 뿌려 대기 시작했다.

황제의 비공정이 하늘을 가로막아 어느 정도는 비를 막아 주었지만, 내리던 비가 장대비로 바뀌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떡할까요? 윈디 님.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요?”

엘케인은 걱정스러운 듯 말꼬리를 흐리며 윈디에게 말했다.

이미 경기장 바닥은 물로 흥건했고 빗방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 위로 다시 튀어올랐다. 이 정도면 거의 폭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투툭 툭 쏴아아-!

“경기를 중단시킬 순 없다요.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요.”

윈디 역시 시합을 중단시키려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좋은 생각 같지 않았다.

황제가 직접 건 포상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번 경기에 너무나 많은 관중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이 엄청난 폭우 속에서도 관객들은 단 한 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았다.

관객석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경기는 알타베르나 최고의 무력을 지녔다고 알려진 시아라와 루다크의 대결인 것이다.

와아아아아-!

관객들의 함성이 윈디가 있는 곳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윈디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셨다.

전장에 비가 온다고 싸움이 그치지는 않는 법.

윈디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케인은 비를 가르며 경기장 가운데 올라섰다. 그리고 폭풍과 같은 정령력을 흩뿌리며 외쳤다.

“그럼 속행하겠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4강 마지막 경기가 시작됨을 선포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은 다시 한번 경기장을 휩쓸었다. 사람들이 뿜어내는 후끈한 열기가 사방으로 넘실거렸다. 그리고 이번 4강 경기의 주인공, 시아라와 루다크가 경기장 위로 올라섰다.

“크큭, 반갑군 시아라. 이날만을 기다렸다.”

루다크가 살기로 번뜩이는 눈으로 시아라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시아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차갑게 입을 열었다.

“전 그다지 반갑지는 않군요. 당신과 무(武)를 겨루어야 한다니….”

“너의 감정 따윈 상관치 않는다. 널 여기서 쓰러트리고 마하임을 찢어 죽인 다음, 네년을 락슌에 중독시켜 주지. 어때, 정말 멋진 계획이 아닌가?”

“…….”

이 말을 들은 시아라는 입을 닫고 매섭게 루다크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시아라 주변의 기류가 묘한 파문을 그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관객들의 탄성이 연이어 터졌다. 이 장대비 속에서도 시아라의 주변에는 투명한 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비 한 방울도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손속을 두어 적당히 당신을 상대해 드리려 했는데 방침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고향에 이런 말이 있죠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비웃듯 시아라를 향해 루다크는 말을 던졌다. 하지만 시아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걸 제가 몸소 당신의 그 썩어 빠진 몸뚱아리에 보여 드리려고요.”

시아라는 두 손을 허리 뒤로 보내 뒷짐을 졌다. 그리고 꼿꼿이 선 자세로 루다크에게로 걸어갔다.

루다크는 순간 시아라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쳤지만, 이내 그의 주특기인 암흑투기를 뿜어냈다.

“그딴 잔재주가 통할 거 같은가?”

슈아아악-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암흑투기. 루다크는 주먹을 휘두르며 마하임과 싸울 때 사용한 예의 그 암흑권풍을 시아라를 향해 날렸다.

“받아랏! 암흑권풍!”

콰콰콰콰-

시커먼 암흑투기의 파도가 시아라를 단숨에 날려 버릴 듯 엄습했다. 하지만, 시아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이따위 권풍, 피할 필요조차 없죠.”

시아라는 가볍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암흑권풍은 너무나 허무하게 암흑권풍은 사라져 버렸다. 이를 본 루다크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그래야 나의 호적수지. 좋다. 지금부터 네년을 나의 진정한 적으로 인식하겠다. 투체전환!”

괴성과 함께 루다크의 상체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티셔츠 차림의 루다크의 몸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가 단숨에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눈에 보일 정도로 진한 암흑투기를 뿜어내는 검은색으로 번뜩이는 근육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키도 눈에 띌 정도로 커졌다. 이미 그 키는 시아라의 2배는 가볍게 넘기고 있었다.

“투체 변신술은 외공을 연마하는 자들만 쓰는 사술. 내공 사용자이면서 투체 변신술이라니 자존심도 없습니까? 루다크 공자.”

“마음껏 지껄여라! 지금 이 자리에서 네년을 짓밟아 주마!”

“정말 못 쓰겠군요, 그 입. 먼저 그 입부터 제가 박살 내 드리죠!”

파팍!

시아라의 섬광과 같은 주먹이 루다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루다크 역시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볍게 시아라의 주먹을 막았다.

어디를 봐도 시아라에게 유리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투체 변신술로 인해 극도로 강화된 루다크의 파상 공세는 마하임과 싸웠던 그 멀린과 비해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시아라는 그 파상 공세에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그것도 오른손 하나로 이 모든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냈다.

“제법 빠르기는 하나 아직 한참은 멀었습니다. 루다크 공자.”

“그 입 다물라!”

화가 난 루다크의 공격은 더욱더 힘이 들어갔고 사방으로 난무하는 암흑투기는 관객석까지 날아들었다. 이를 본 객석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파징-

그러나 루다크의 암흑투기는 관객석에 채 닫기도 전에 소멸해 버렸다. 엘케인은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관객 여러분 동요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객석은 절대 방어 주문 ‘이터널 실드’가 전 방위에 걸쳐 시전되어 있습니다. 절대 안전하오니 경기 관람에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 와중에도 시아라와 루다크의 격렬한 공방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를 보아도 시아라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루다크는 손이며 다리 모두를 다 사용해서 무차별 난타를 벌였지만 시아라는 한 손으로 이를 다 막아 낸 것이다.

“겨우 이 정도인가요? 루다크 공자?”

“이이익-!”

루다크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실력의 차이는 명백했던 것이다.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도록 하죠.”

시아라는 등짐을 지고 있던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시현류 고유의 보법으로 루다크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잔재주를!”

“원래 빈 깡통이 요란한 법.”

“뭐라! 반드시 찢어 죽여주마!”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죠?”

“으아아아아!!!!”

시아라의 도발에 루다크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아라의 노림수였다. 시아라는 뒤로 피하지 않고 오히려 루다크의 품으로 달려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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