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뭐!?”
“이건 점경이라고 하는 겁니다.”
퍼억!
시아라의 장법이 루다크의 배를 강타했다. 강렬한 충격에 허공으로 살짝 떠오르는 루다크.
시아라는 이를 놓치지 않고 다시금 루다크에게로 주먹을 내밀었다.
“절 능욕하시겠다고 하셨죠? 그 능욕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파파파팍!
“크아아아!”
루다크의 비명이 장내에 순간 가득 찼다. 시아라의 움직임은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루다크는 압도적인 연타 공격에 허공에 뜬 채 바닥으로 내려오질 못하고 있었다.
“오옷, 시아라의 절명기, 팔쾌연타다요! 느린 화면으로 다시 한번 보자요!”
윈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기장 중앙 상단에 순간 입체 영상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입체 영상은 시아라의 팔쾌연타를 느린 화면으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난타하는 것 같았지만 시아라의 공격은 요추, 명치, 숨골로 이어지는 급소만을 노려 정확히 타격하고 있었다.
“역시 시현류의 선술은 무섭군요. 저 루다크가 주먹조차 제대로 못 휘두르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당연하다요. 루다크의 기술들은 따지고 보면 시현류의 아류일 뿐. 게다가 암흑투기 역시 미완성인 거 같다요. 시아라의 압승은 보나 마나다요.”
윈디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하임 역시 전적으로 동의했다. 시아라는 그야말로 루다크를 ‘능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선기발경 같은 것은 아직 사용치도 않았다. 그저 선술 최하위 단계인 팔괘장을 응용한 공격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럴 순 없어! 폐하 앞에서 질 순 없다고!!!”
그와 중에 필사의 힘을 다해 몸의 균형을 잡은 루다크는 시아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기다렸습니다. 절초!”
시아라는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루다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 냈다. 그리고 그의 하체에 하단 차기를 구겨 넣어 균형을 무너트렸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시아라는 또 다른 시현류의 기술을 시전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승룡전신!!!”
슈우욱! 퍼퍽!
“크아아아아!”
중심을 잃어 뒤로 넘어지던 루다크의 등에 시아라의 강렬한 어퍼컷이 작렬했다.
루다크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루다크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경기장 안을 비참하게 울렸다.
“역시 상대가 되질 않군요. 사실 이 경기에 시아라가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반칙이죠.”
“초반에 도발할 때 알아봤다요. 주제 파악을 해야지 쯧쯧.”
혀를 차는 윈디, 너무나 일방적인 경기였기에 더는 보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아마도 이번 공격으로 루다크는 의식을 잃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윈디는 시합을 중지시킬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가끔은 본보기도 필요했다. 쓸데없이 입을 놀리면 어떻게 된다는 본보기 말이다.
털석- 크억…!
루다크는 힘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꿈쩍도 못 하고 축 늘어진 루다크. 불행 중 다행히도 아직 루다크의 숨은 붙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시아라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고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멍청한 것! 대체 뭐 하고 있는 것이냐! 루다크! 일어나라. 눈을 떠라! 네 투체 변신술은 그게 끝이 아닐 텐데!”
갑작스러운 외침이 대회장 귀빈석에서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근원에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표정의 제국 황제, 신시아가 서 있었다.
“승리는 제국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리미트 해제를 허락한다!”
그녀의 외침은 윈디의 언령 마법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 목소리는 점점 식어 가던 루다크의 전투 본능을 다시금 눈 뜨게 만들었다.
“크르르르르….”
루다크가 몸을 일으키자 시아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얼핏 봐도 빈사 상태였고, 실제로 루다크의 온몸은 기혈이 완전 다 비틀어져 당장이라도 주화입마에 빠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아직 더 할 생각입니까? 그러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항복하면….”
“크아아아아!!!!”
시아라는 자신의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갑자기 루다크가 괴성을 지르며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아라는 축지로 재빨리 물러선다.
“자기 몸도 파악 못 하는 얼간이라니….”
“크르르르르르….”
이미 루다크에게는 이성이란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전투 본능만이 그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피투성이의 몸은 또다시 팽창하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더 빠르고 더 거대하게.
이번에는 단순히 덩치만 커지는 것이 아니었다. 몸 전체를 순식간에 뒤덮는 뻣뻣한 검은 털. 그리고 루다크의 이마에는 커다란 2개의 뿔이 솟아올랐다.
“저건, 설마 발록이다요?”
“네, 아마도 키메라인 듯합니다. 인간과 발록의….”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요!”
윈디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몬스터와 인간의 융합이라니, 그것은 이 거짓된 세계의 규칙에 위반되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부 반응이 일어나야 할 것은 물론이며, 서큐리티 시스템이 작동하여 있어선 안 될 저 ‘버그’를 제거해야만 했다.
하지만 거부 반응은 고사하고 서큐리티 시스템조차 가동되지 않았다. 그리고 루다크, 아니 이젠 발록이 되어 버린 괴물이 포효했다.
크아아아-!
경기장을 뒤흔드는 포효 소리. 그 압도적인 살기에 관객들은 전율했다. 저도 모르게 경기장 밖으로 도망치는 사람도 속출했다.
“닥쳐요, 똥강아지!”
퍼억!
“깨깽-!”
그것은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것이다. 축지로 순식간에 발록에게 접근한 시아라의 발경이 녀석의 배에 작렬했던 것이다.
발록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후우, 변신을 한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요? 인간을 버리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나요? 어림도 없습니다!!”
시아라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자후(獅子吼)의 기운을 듬뿍 담아 외쳤다. 발록은 그 목소리에 움찔거렸지만, 발록 역시 전설상의 괴수인 만큼 절대 밀리지 않았다.
발록은 시아라의 기세에 밀리지 않으려는 듯 다시 한번 포효했다. 그리고 자신의 육중한 몸을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순발력을 보여 주며 시아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아라와의 간격을 좁힌 발록은 자신의 통나무보다 두꺼운 팔을 시아라를 향해 휘둘렀다.
부웅-!
그리고 발록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아라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두리번거리며 시아라를 찾는 발록. 바로 그때 시아라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어디를 보시는지요? 전 여기 있습니다.”
시아라는 발록이 휘두른 육중한 팔 위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뭐, 제가 말해도 이해는 못 하겠지만, 일단은 경기공(硬氣功)이라 불리는 것이죠.”
이를 본 관객들은 넋을 잃고 시아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이곳을 진동시킨다.
“나왔습니다. 시아라의 궁극 방어기, 경기공입니다. 경기공이 높은 경지에 이르면 자신의 질량, 즉 무게조차 지울 수 있다고 하지요?”
“그렇다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물리 세계에서 자신을 완전 단절시켜 절대적인 방호력을 획득한다요. 아마도 시아라는 이미 그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요.”
윈디는 주먹을 불끈 쥐고 해설에 여념이 없었다. 관객들은 시아라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고 바야흐로 경기는 클라이맥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크라라아아아!”
발록으로 변한 루다크는 자신의 팔 위에 서 있는 시아를 단숨에 움켜쥐려는 듯 다른 한쪽 팔로 시아라를 후려쳤다.
하지만 시아라는 뒤로 물러서는 것만으로 간단히 이를 피해 버렸다.
“슬슬 비도 그쳐 가고 끝낼 때가 된 것 같군요. 이 일격에 저의 모든 것을 담아 보겠습니다. 그 잘난 몸뚱아리로 한번 감당해 보시죠.”
시아라는 성큼성큼 발록에게로 다가왔다. 그 어떠한 공격 자세도 없이 그냥 일직선으로 발록을 향해 걸어왔지만, 그 박력이란 발록이 순간 뒷걸음질 칠 정도로 엄청났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아앙!”
발록은 그런 자신을 책망이라도 하듯 괴성을 질렀다. 그리곤 땅을 박차며 시아라에게로 달려가는 발록. 시아라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걸린다.
“축지!”
퉁-
힘찬 진각 소리와 함께 시아라는 순간 발록의 시야에 사라졌다. 발록은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끼며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한번 받아 보세요. 저희 가문의 비기를. 진! 선기발경!”
퍽! 퍼퍼퍼펑!
살이 튀고 피보라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시아라의 궁극 오의라고 할 수 있는 ‘진 선기발경’의 위력은 웬만한 것들은 일격에 분쇄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런 기술이 발록의 배에 완벽한 타이밍으로 들어가자 발록의 배에는 순간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크르르르르….”
그러나 발록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손상된 부위가 수복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회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호오, 역시 그랬군요. 레비아탄의 세포와의 키메라. 그게 진실인가요? 헌데 이걸 어쩌나. 당신에게 딱 알맞은 기술을 제가 알고 있거든요.”
시아라는 웃었다. 얼마나 찾아왔던 적이던가?
얼마 전 그녀의 본가를 급습해 수많은 피해를 냈던 ‘그것’과 연관 있는 자를 무투회에서 만나다니, 이건 신이 점지해 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시아라는 자신의 양 주먹을 십자로 교차한 뒤 자신의 눈앞으로 천천히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주먹에서 붉은 기의 파동이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아라는 사자후의 기운이 가득 담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나의 손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승리를 움켜쥐라고 외친다! 폭렬! 무쌍! 시현류! 극 오의!”
그리고 잠시 숨을 들이켠 시아라는 두 팔을 펼치며 목청껏 소리쳤다.
“뼈와 살을 분리해 드리겠습니다! 발동, 패황상후권!”
기이이이이잉-
파아아앗!
시아라가 교차한 주먹을 힘차게 앞으로 뻗자 그녀의 손에 이글거리던 붉은 기운은 가공할 열량의 에너지로 변하여 루다크, 아니 이제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되어 버린 그것을 휩쓸었다.
“크아아, 크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패황상후권의 공격에 저항하는 괴물. 그러나 녀석의 뛰어난 재생력으로도 패황상후권의 파괴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패황상후권은 그야말로 기공술의 극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장풍 계열 기술의 최종기였다.
그 위력은 고대 인류가 사용했던 대함 병기 ‘양자포’와 동일. 그 파괴력은 진행 경로의 모든 물체를 원자 최소 단위로 분해하는 가공할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을 포기한 대가입니다. 편히 쉬시길.”
시아라는 점점 소멸되고 있는 루다크를 보며 말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마하임은 그야말로 전율했다.
엘케인은 물론, 윈디까지 입을 쩍 벌린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쯤하시죠. 시현류의 후계자여.”
그때 그 강렬한 패황상후권의 넘실거리는 에너지의 파동 속에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니 그녀는 다름 아닌 제국의 황제, 신시아였다.
그녀는 시아라의 패황상후권을 한 손으로 가로막으며 패황상후권을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경기장 외곽에 펼쳐진 이터널 실드에 부딪힌 패황상후권의 에너지 파동은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경기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