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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69화 (69/194)

69화

“경기 중에 제삼자가 끼어드는 건 반칙입니다. 황제시여.”

“상관없습니다. 이 아이는 나의 것. 이미 경기는 귀하가 승리하셨습니다. 왜 확인 사살을 하려는지 모르겠군요.”

황제는 시아라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차갑고도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질문에 시아라는 입을 닫았다. 그녀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제시여. 한마디만 묻겠습니다. 우리 본가의 습격을 명한 것이 귀하이십니까?”

“글쎄요. 전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은 없습니다만, 제 부하 중 몇몇이 그대의 가문 시현류에 불만이 많아 보였습니다. 아마 그들 짓이 아닐는지.”

“…….”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이것은 긍정이 확실했다. 마하임과 이번 세계에서 첫 만남 이후 그녀가 급하게 고향으로 내려간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 그녀의 본가를 급습해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쳐 시아라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그만. 여기까지다요. 시합은 중단한다요. 승자는 시아라. 루다크의 반칙패다요!”

어느 사이에 경기장까지 내려온 윈디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시아라와 신시아 사이에서 외쳤다.

그야말로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몇 초만 더 이런 대치가 지속되었다면 둘 사이의 전투는 필연적이었다.

“생각 같아선 지금 여기서 시아라 당신과 끝장을 보고 싶지만, 윈디 님을 봐서 참습니다. 부디 조심하시길. 어쩌면 귀하의 본가 습격은 예고편에 불가할지도 모르죠. 부디 즐거운 마음으로 본편을 기대해 주시길. 나와라, 흑신선!”

“존명!”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4명의 인형이 황제의 주변에 나타났다.

“수도로 간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존명!”

전신을 검은 망토로 두른 흑신선 4명이 전투 불능에 빠져 있는 루다크를 일으켰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는 비공정에서 여러 가닥의 밧줄이 내려왔다.

흑신선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루다크를 그 밧줄에 묶었다. 그리고 흑신선은 처음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윈디 님, 죄송하지만 전 제국으로 급히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 못난 놈이지만 루다크는 제가 아끼는 놈입니다.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지요. 약속된 상금은 교무처에 맡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루다크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다요?”

윈디는 황제를 향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저 루다크의 존재는 명백한 ‘버그’였다. 그리고 저 황제는 그 버그를 악용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지금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엇을 하든 당신과는 관계없을 텐데요. 방관자, 윈디 님.”

“…….”

윈디는 입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윈디. 그런 윈디를 향해 황제는 입을 열었다.

“이제 곧입니다. 기대해 주시길. 저기 있는 시아라보다 훨씬 강한 괴물을 만들어 보여 드리겠습니다.”

광기로 번뜩이는 황제의 눈초리는 섬뜩한 기운마저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게 마지막 4강전은 시아라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다.

하늘의 비는 이제 그쳤다. 구름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뒤라 공기는 신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비공정이 완전히 사라지자 청명한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왔다. 알타베르나의 하늘은 그렇게 오늘도 흘러가고 있었다.

* * *

최대 수용 인원 5만 명인 아침의 영광 경기장은, 이미 그 수용 인원의 2배가 넘은 인원으로 가득했다. 정말 ‘발 디딜 틈도 없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은 이번 무투회의 결승전이 이번 대회의 상품으로 지목된 마하임과 시아라 이 두 명의 대결이라는 점이었다.

“정말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을 몰랐습니다.”

마하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시야라 역시 멋쩍은 듯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가 겨우 고개를 틀었다.

“이렇게 되면 누가 이겨도 데이트…인가요?”

“그렇게 되는군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라도?”

“아아…. 이건 분명 윈디 교수의 농간이 확실한 것 같군요.”

시아라는 정말 지금 이 상황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다른 쓰레기 같은 알타베르나의 학생들보다 저 마하임이라면 자신의 상대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기분이 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 상관없지 않습니까? 당신과 제가 완전 남남인 사이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이 작위적인 전개는…. 후. 뭐 됐어요.”

사실 마하임과 데이트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 학기 전의 마하임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지금의 마하임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을 거듭하는 화재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장을 보고 있자면 시아라의 차갑게 식어 버린 가슴이 다시금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많이들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이번 무투회의 결승전이 치러지겠습니다!”

엘케인의 힘찬 외침, 그리고 관객들은 미친 듯 환호한다. 알타베르나 축제의 정점, 무투회의 결승전이 지금 이 장소에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마하임!!! 마하임!!! 마하임!!!

넌 마법 전사의 자존심이다! 어깨를 펴라, 마하임!

만능의 힘 마나의 정수를 보여 주십시오. 마하임 씨!

시아라 언니 힘내세요. 남자 따위에 져선 안 돼요!!!

동방 무예의 정수를 보여 주시오! 시아라 공!

동방 불패 시아라, 만세! 만세!! 만만세!!!

장내는 두 패로 나누어져 그야말로 치열한 응원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 같은 것. 그 흐름에 이끌려 관중은 환호하고 즐기며 또한 눈물 흘렸다.

“겨우 시간은 맞춘 것 같다요.”

윈디는 마하임을 지긋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하임의 성장. 그것은 윈디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상의 성장이었다.

마하임의 주변에는 마법을 시전하지 않았는데도 마나가 들끓고 있었다.

윈디 정도의 대마법사가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할 작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가 무한의 가능성을 낳는다는 것을 윈디는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요. 암흑 물질의 인위적 제어. 역시 아버님의 선견지명은 탁월하다요.’

500여 년 전, 인류는 암흑물질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외계 지적 생명체 ‘레비아탄’에게 유린당하여 결국 패했다.

그 어떤 센서로도 감지할 수 없는 이 우주에 편만하게 존재하는 그 목적 없는 강대한 힘, 암흑물질은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의 힘을 단숨에 압도해 버렸다.

인류는 좌절했다. 인류는 절망했다. 그러나 인류는 포기하지 않았다.

승리를 향한 일념. 생존을 위한 필사의 투쟁. 그리고 꿈을 향한 무한의 도전. 그것이 인큐베이터급 우주 순양함 알타베르나가 만들어진 동기이자 목적이었다.

그리고 50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인고의 시간 동안 12척에 이르던 인큐베이터는 단 한 척, 마하임이 마지막으로 ‘갈아탄’ 알타베르나만을 남긴 채 모두 침몰했다.

그 이유가 레비아탄의 끈질긴 추적이든, 우주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에 의한 것이든, 이제 남은 것은 이 배뿐이었다.

이곳이 인류 최후의 희망이자, 상아탑이 될 것은 자명한 일. 그러나 이 상아탑에 주어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망설일 시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윈디는 언령의 마법을 담아 힘차게 외쳤다!

“제512회 알타베르나 무투회 결승전을 시작한다요!!!!”

우와아아아아아아-!

관객들의 함성이 땅을 진동시키고 하늘을 뒤흔들었다. 시아라와 마하임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 서서 가볍게 포권으로 예를 갖추었다.

“만약 그대가 나를 이긴다면, 이 시아라, 그대를 서방님이라 불러 드리죠.”

“저, 정말입니까?”

마하임은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마하임의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대가 나를 이겼을 때 이야기죠. 그것은 물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시아라의 무공은 마하임으로서는 절대 닿지 못할 영역이었다.

제아무리 자신의 모든 기술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경기공조차 뚫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 어두운 얼굴 하지 마세요, 마하임 공자. 그대와 권(拳)을 나누면서 내공까지 사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대 역시 시현류를 익힌 자. 이번 싸움에서 전 내공을 봉하고 권으로만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시아라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 말은 곧 전투가 아닌 마하임과 대련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 역시 마하임에게는 그다지 승산은 없었지만, 내공을 사용하는 시아라보다는 훨씬 쉬운 상대였다.

“좋습니다. 시아라, 저도 마법을 봉하고 권으로만 상대해 드리죠.”

“후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저의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이렇게 말하며 마하임도 자세를 잡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시아라는 그리 말하는 마하임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아라가 외쳤다.

“그럼 갑니다! 서방님.”

“……?”

마하임은 시아라의 이 한마디에 움찔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순식간에 마하임의 얼굴로 날아오는 시아라의 주먹.

마하임은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그녀의 손을 쳐 냈다.

“안타깝네요. 이 일격으로 끝내고 데이트나 가려고 했는데.”

뭔가 닭살 돋는 대사가 연이어 흘러나왔지만 관객들은 둘의 공방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고 있다.

“그럼 한번 막아 보세요. 진심으로 갑니다!”

시아라는 시현류 팔괘 유술의 독특한 보법으로 놀라운 속도로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날카로운 찌르기 공격, 하지만 그것이 허초라는 것을 마하임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시작부터 허초입니까?”

마하임은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찌르기 공격이 아닌 발차기가 마하임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역시…. 어디선가 상당한 실전을 쌓으신 모양인가 본데요.”

시아라는 마하임의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을 정확히 읽어 냈다.

무서울 만큼의 집중력과 신중함. 저것은 오랜 경험과 피나는 훈련, 그리고 지옥과 같은 전장에서의 실전 경험이 없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가 좀 험한 세월을 살아서 말입니다. 이번엔 제가 가죠.”

마하임은 훌쩍 뛰더니 시아라의 얼굴을 향해 킥을 날린다.

“하하, 그대도 허초?”

그러나 발 공격은 훼이크일 뿐, 마하임의 진짜 공격은 몸통 박치기였다. 시아라는 몸을 살짝 비틀며 몸을 던지다시피 한 공격을 간단히 피해 버렸다.

오오오오-

관객들은 두 사람의 절도 있는 공방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허초와 실초를 서로 주고받은 둘은 난타전과 다름없는 정면 대결로 다음 승부를 이어 갔다.

팍 파팍!

탁 타탁!

막고 후려치고 흘리고, 시현류 팔쾌장의 가장 기본적인 공방이었다.

너무 강한 힘을 내어도 안 되고 너무 힘을 빼도 안 된다.

강한 힘은 오히려 적을 강하게 하고 약한 힘은 적의 역공의 기회만을 허락해 주었다.

그 허초와 실초, 그 적절하면서도 절묘한 균형이 맞추어질 때 시현류 팔괘장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뭐랄까? 그대와 이렇게 권을 나누니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대련을 계속 나누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렇습니까? 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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