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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71화 (71/194)

71화

피유우웅- 퍼펑!

펑 퍼퍼펑-!

때마침 하늘에서 또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몇몇 드워프들과 노옴들이 서로 경쟁하듯 폭주를 쏴 대는 바람에 알타베르나의 하늘은 그야말로 오색찬란하게 수놓아졌다.

“지금은 그보다도, 축제의 마지막 밤을 즐기심은 어떠신지요.”

마하임은 정중하게 시아라의 앞에서 무릎을 굽히며 손을 내밀었다. 전형적인 궁정 예절에 부합하는 완벽한 예법이었다.

“후훗, 좋아요. 서방님.”

“…….”

시아라는 마하임이 내민 그의 손을 살며시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물론 마하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음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리 들어도 ‘서방님’이란 단어는 익숙해질 수가 없는 마하임이었다.

마하임과 시아라는 곧장 탑에서 내려와 한참 무도회가 진행되고 있는 아침의 영광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잠시 멈췄다.

마하임과 시아라가 나타나자 학생들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이번 알타베르나의 가을 무투회 최종 결승까지 진출하여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은 두 사람에 대한 예우였다.

그리고 음악은 다시 흐르고 학생들은 저마다 춤을 추거나 경기장 외곽에 배치된 테이블 위의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마하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을 내밀자 시아라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둘은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화려한 스텝은 아니었지만, 둘의 움직임은 마치 자로 잰 듯한 깔끔함이 있었다.

시아라는 마하임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대체 지난 4개월 동안 무슨 일을 겪으신 거죠?”

“후, 정말 돌이켜 생각해도 굉장한 일이었죠. 제 삶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정말 궁금하군요. 그 굉장한 일이라는 거.”

“정말 그렇게나 궁금하십니까?”

“물론이죠. 그 어렵다는 중간고사에서 수석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번엔 무투회 결승까지 올라오시다니……. 이건 저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시아라는 그렇게 말하며 마하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아라의 반짝이는 푸른 눈이 오늘따라 더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마하임이었다.

“좋습니다. 데이트 장소를 제가 정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 주신다면, 오늘 밤 제가 겪었던 모든 일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녀 앞에서 비밀은 무의미했다. 시아라가 믿건 안 믿건 자신이 본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그 미래를 같이 바꾸어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 말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아라는 마하임의 가슴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계속되었고, 시아라는 마하임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알타베르나의 여름, 그 마지막을 즐겼다.

* * *

무도회가 끝나고 마하임이 시아라를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윈디의 저택이었다.

이미 날은 저물어 밤이었고, 저택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시아라는 마하임이 윈디의 집으로 자신을 데려온 데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도 예전에 윈디 님의 저택에는 와 본 적이 있습니다만, 굳이 이곳을 데이트 장소로 택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후후, 그건 일단은 비밀입니다.”

마하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시아라의 궁금증은 더 커졌다.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될까요?”

“수영복은 왜 챙겨 오라고 하신 거죠?”

시아라는 조그마한 가방에 든 자신의 수영복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마하임은 전과 마찬가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것 역시 지금은 비밀입니다. 직접 그곳을 보신다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될 겁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어느덧 둘은 윈디의 저택의 현관 앞에 와 있었다. 마하임이 현관문을 열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발광석이 희미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빛은 벽을 타고 이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공간을 비추기 시작했다.

“저, 정말 대단해요! 전에 왔을 땐 낮이라 몰랐는데, 이렇게 많은 발광석은 처음 봐요.”

“그렇죠? 저도 여기에 와서 처음 이걸 봤을 때 꽤 놀랐었죠.”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발광석은 저마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고 있다. 그 빛은 마치 반딧불의 빛을 수백 배 증폭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리 작은 발광석도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쌌다. 그래서 웬만한 귀족들조차도 이를 사용할 엄두를 못 낼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이걸 보여 주기 위해 데려오신 건가요?”

“설마요. 이건 어디까지나 맛보기입니다. 자, 따라오세요.”

마하임은 시아라의 손을 이끌고 ‘그 방’으로 향했다. 시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마하임의 손에 이끌려 갈 뿐이었다.

‘따스하다.’

마하임의 따스한 체온이 시아라의 차가온 손으로 이어졌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그녀는 어린 나이에 무리한 환골탈태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유증으로 시아라의 몸은 언제나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녀는 후사를 볼 수 없는, 즉 불임의 몸이 되고 말았다.

환골탈태 이후 시아라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 무엇을 봐도 감흥이 없었고, 그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뜬금없이 나타난 자신의 약혼자 마하임이 시아라의 식어 버린 마음에 다시금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두근두근.

언제나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이지만 오늘따라 그 소리가 크게만 느껴졌다. 심지어는 마하임의 귀에까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하임은 그런 시아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택의 현관을 지나 복도 모퉁이를 돌아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문 앞에 멈춰 섰다.

“이곳입니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

“에? 이 방에서요?”

“네, 이상한가요?”

“충분히 이상…할 정도가 아니잖아요!”

시아라는 얼굴을 붉혔다. 청춘 남녀가 눈앞의 조그마한 문이 달린 방 안에서 할 만한 짓은 몇 되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오해를 하시는 모양인데, 일단 저 문을 열어 보시면 제가 이리로 시아라 님을 데려온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자, 어서요. 열어 보세요.”

마하임은 시아라의 차가운 손을 방문의 손잡이 위에 얹어 주었다. 시아라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마하임을 한 번 바라본 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은 기분 좋은 울림과 함께 천천히 열렸다.

끼이익-

그리고 시아라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문을 열자 가장 먼저 그녀를 맞이한 것은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었다.

새하얀 하늘에는 눈송이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고 바로 앞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새하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시아라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야말로 이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시아라는 넋을 잃고 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 이곳은 어디죠?!”

“위치는 저도 잘 모릅니다. 윈디 님이 만드신 포탈로 이동한 것이죠. 마법으로 공간과 공간 사이에 구멍을 내어 원하는 공간으로 단숨에 이동하는, 동방에도 이 비슷한 것이 있지 않나요? 그림 속으로 이동하는 도술.”

“아, 전우치의 도술 말인가요? 그건 실전되어서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죠. 그건 그렇고, 이 곳…. 마치 다른 세상 같아요.”

시아라는 포탈 너머의 새하얀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차가운 기운이 시아라의 발을 타고 머리까지 오싹하게 만들었다.

뽀드득뽀드득.

새하얀 눈밭에 시아라의 발이 닿자 귀를 간질이는 눈들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양손을 활짝 벌린 시아라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 몇 개를 받아 들었다.

차갑고 동글동글한 눈송이들은 이내 녹아 물이 되어 버렸다. 시아라는 바닥의 눈을 한 주먹 쥐어 입에 넣어 봤다.

“아- 시원하다.”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듯한 청량감에 시아라는 두 눈을 감고 천천히 그 차가움을 음미했다.

“한여름에 이런 곳이라니! 서방님이 왜 이곳으로 절 데려왔는지 이제야 알 것 같군요.”

시아라는 이제 마하임을 부를 때, ‘서방님’으로 명칭을 굳혀 버렸다. 마하임은 ‘서방님’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절로 뜨거워졌지만,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맞은편 보이시죠.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곳, 저쪽으로 가면 온천이 있습니다. 전 돌아서 있을 테니 수영복으로 갈아입으세요. 온도도 적당하고 물이 정말 깨끗하답니다.”

“네, 알겠사옵니다. 서방님.”

시아라는 이렇게 말한 후 마하임의 뺨에 살짝 키스했다. 그리고 마하임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지고 온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마하임은 뒤돌아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시아라가 옷을 갈아입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마하임의 귀에는 너무나 자극적으로 들려왔다.

무심코 몇 번이나 뒤돌아볼 뻔했지만 마하임은 눈을 지그시 닫고 그 자리를 고수했다.

“자, 됐습니다. 이제 돌아보셔도 돼요.”

“아, 그…. 네.”

새하얀 눈발이 휘날리는 가운데 시아라의 수영복 차림이 마하임의 눈에 들어왔다.

수영복이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몸에 착 달라붙는 비단 재질의 치파오를 약간 손본 것이 다였지만 마하임의 눈에는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잘 어울리는군요.”

“과찬의 말씀을. 그럼 가도록 하죠.”

시아라는 곧장 눈앞에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꽤나 깊어 보이는 노천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여, 어서 온다요. 제군들.”

그러나 이곳에는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으니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반갑소, 마하임 도령 늦어서 걱정했잖소.”

“그러게요, 저랑 데이트해 준다고 약속해 놓고선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따스한 온천 안에는 이미 윈디를 비롯하여 샤오랑, 안나, 그리고 엘케인까지 따끈한 온천의 열기를 즐기며 왁자지껄한 만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서들 오시지요. 마하임 님, 시아라 님.”

엘케인은 소리 없이 둘 사이에 다가가 목욕 가운과 와인이 담긴 유리잔을 둘에게 건넸다.

마하임과 시아라는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표정으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뭐 하고 있다요. 날이 차다요. 빨리 들어오라요.”

“…….”

“…….”

마하임과 시아라는 동시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둘만의 환상적인 데이트는 이미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건너간 듯했다.

“뭐 할 수 없죠. 간만의 노천욕이라니, 일단은 감사히 즐기겠습니다.”

시아라는 목욕 가운을 입고는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간다.

풍덩-

시아라가 일으킨 잔잔한 물결이 잔잔한 파문을 그리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하임 역시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목욕 가운을 받아 입었다.

안나는 마하임의 군살 하나 없는 완벽에 가까운 상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적당히 하라요. 마하임 군이 부끄러워한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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