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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73화 (73/194)

73화

축제가 끝나고 알타베르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알타베르나의 교육은 무척이나 엄격했기에 귀족의 권위건 뭐건 교칙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알타베르나의 뒤에는 제국이 있었고, 그 이전에 대륙 최고의, 최악의 마녀라는 수식어를 지니고 있는 윈디가 있었기에 그 어떤 국가도 알타베르나에 압력을 넣을 수 없었다.

덕분에 마하임 역시 싫든 좋든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고로 마법이란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마나 연성의 한 방법으로써….”

마하임은 멍하니 마법학개론 교수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놈의 마법학개론은 교양 필수도 아닌 전공 필수라 빠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마하임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과목이었다. 아무리 노력해 봐도 마하임은 3클래스 마법 이상은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아…. 5클래스까지만 사용할 수 있어도 좋을 텐데.”

아쉬웠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변하지는 않았다. 지금 마하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뿐이었다.

“씽이라….”

오늘 이 수업을 마치면 샤오랑의 고향, 씽으로 가기로 결정이 나 있었다.

마하임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약속은 해 버렸고, 어차피 그녀를 동료로 맞이하기로 한 이상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씽은 알타베르나에서 배를 타고 일주일 정도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도시 국가 연합이었다. 일종의 봉건제를 유지하는 나라였는데, 중앙의 가장 강력한 부족장이 다른 하위 귀족을 다스리는 형태였다.

특이한 점은 하위 귀족을 다스리는 형태가 각 하위 귀족의 자제 중 한 명을 강제로 부족장의 영지로 끌고 가 볼모로 잡는다는 점이었다.

윈디의 이야기로는 샤오랑의 오빠 역시 부족장의 인질, 다시 말해 ‘서자’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 어처구니없는 나라군. 왜 지금도 도시 국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알 것 같네.”

원래 도시 국가란 국가의 형태 중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것이었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씽이란 나라는 여러 가지 의미로 미개한 나라라 보아도 무방할 터였다.

“에, 오늘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휴일 잘 보내시고요. 월요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수업도 끝났다.

마하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성큼성큼 강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마하임.

마하임이 강의실을 도망치듯 벗어나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윈디의 집무실이었다.

“어서 와라요. 마하임.”

마하임이 들어오자 윈디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이미 샤오랑은 도착해 있었고 시아라도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마하임 도령.”

샤오량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녀는 영환도사들의 교복이라 할 수 있는 태극의를 입고 있었다.

비장한 표정의 샤오랑.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씽의 상황은 좋지 못해 보였다.

“이번 일은 흑신선과 관계 있는 일인 만큼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요.”

윈디는 자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시아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도 따라가고 싶지만, 리포트랑 수업 일수가 간당간당해서 유감입니다. 부디 무리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것을….”

시아라는 마하임에게 주먹보다 조금 작은 구슬 하나 건넸다. 구슬은 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무언가 액체 같은 것이 일렁이고 있었다.

“소환구(召喚毬)죠. 저희 가문의 가보 중 하나랍니다. 이걸 깨트리면 그 어떤 곳이라도 제가 단숨에 달려갈 수 있지요. 일종의 포탈이라고 생각하심 될 거예요.”

“이 귀중한 것을 어찌 저에게?”

“어머나, 서방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당연히 제가 도와야죠. 위험하면 망설이지 마시고 사용해 주세요.”

“고맙소. 시아라.”

얼굴을 붉히는 마하임. 아무리 들어도 여전히 ‘서방님’이란 단어가 어색한 마하임이었다. 마하임은 가볍게 시아라에게 인사했고, 시아라는 만족한 듯 미소를 흘렸다.

“허허, 깨가 쏟아지는구려. 옆에 있는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둘을 지켜보던 샤오랑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하지만 마하임과 시아라는 전혀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서로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러자 윈디도 더는 못 보겠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허험, 적당히 하라요. 포탈을 열겠다요. 흑신선이 눈치챌 수도 있으니 강력한 건 못 연다요. 이 포탈은 12시간이 지나면 닫힌다요. 그전에 포탈을 통해 돌아오라요.”

“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윈디 님, 이번 일의 후견인이 되어 준 것, 이 샤오랑 잊지 않겠소이다.”

“샤오랑, 그대와 같이 귀여운 소녀를 흑신선 그 변태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넘겨 줄 바엔 차라리 내 손으로 부숴 버리겠다요. 걱정 말고 다녀오라요. 여차하면 나랑 같이 살면 된다요.”

윈디의 뭔가 무시무시한 말에 샤오랑의 얼굴은 순간 구겨졌다. 하지만 대놓고 거절의 의사를 드러낼 수 없었던 그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고맙긴 한데 왠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구려.”

“하하하, 뭐 좋다요. 포탈을 열겠다요!”

윈디는 호탕하게 웃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그녀의 몸 주위에서 푸르스름한 기운들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분명한 의지를 지니고 한곳에 뭉치기 시작했다.

“나 윈디가 명령한다요. 열려라요, 차원의 문!”

그그그 드드드드득 드득.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 갑자기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마치 선명한 붉은 눈동자와 같은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리로 들어가면 된다….”

윈디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깜짝 놀란 마하임은 윈디를 재빨리 받아 들었다.

“괜찮으십니까? 왜 그러시죠?”

“신경 쓰지 말라요. 만물이 그러하듯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뿐이다요.”

“너무하십니다. 그런 몸으로 포탈 같은 고위 주문을 시전하시다니!”

마하임은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힘겨워하는 윈디를 바라보며 당황해 소리쳤다.

그녀의 상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빠지는 듯했다. 시아라와, 샤오랑도 걱정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서, 설마 돌아가시는 건 아니죠?”

“절대 그건 용납 못 하오! 아니, 몸이 이런데 왜 그리 무리한 짓을 하는 거요, 교수!”

“걱정하지 마라요. 사명이 있는 자 그 사명을 완수하기 이전엔 결코 죽지 않는다요. 그것이 바로 사명자의 특권이다요.”

윈디는 이렇게 말하고서는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과 같은 목소리로 힘차게 말한다.

“마하임, 샤오랑 들으라요. 흑신선들이 무슨 짓을 꾀하고 있는지 나로서도 알 수 없다요. 가서 너희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에게 보고한다요. 알겠다요?”

“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오!”

그렇게 말하고서는 샤오랑이 먼저 포탈 안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마하임 역시 곧장 뒤따라 포탈 안으로 걸어갔다.

붉게 빛나는 포탈은 샤오랑과 마하임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리고 포탈은 시공을 뛰어넘어 서슬 퍼런 음모와 살육이 넘실대는 씽으로 인도했다.

* * *

씽은 여러 개의 커다란 섬으로 이루어진, 다시 말해 열도(列島)였다.

그리고 지금 이곳은 그 열도 중에서도 두 번째로 큰 진(進)이라는 섬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경악할 만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사람 살려! 으아아악”

“영환도사는 다 어디에 있는 건가?!”

“도망쳐요, 아아아! 안 돼! 내 아기를!!”

그것은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 시작은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무렵, 한 무리의 강시들이 진의 관청이 몰려 있는 시내를 급습하는 데서 시작됐다.

씽은 예로부터 죽은 시체를 기부받아 강시로 만들어 노예를 부리는 일이 꽤나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철저한 검토 후에 승인을 받아 만들어졌고, 그나마 만들어진 강시도 전투용이 아닌 농업에 이용되는 비살상용 강시였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강시들은 그런 일반적인 강시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살육을 위해 만들어진 전투용 강시였다.

“화둔, 급급여율령!”

“토둔, 급급여율령!”

뒤늦게 출동한 영환도사 부대가 불과 땅의 기운이 담긴 부적 수백 장의 부적을 정체불명의 강시 무리에게 날렸다.

지금 그곳에는 아직 민간인들이 다수 있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퍼퍼퍼펑!

콰과과콰앙!

연이은 폭음과 함께 강시들과 민간인들이 불타오르거나 혹은 땅의 기운에 이끌려 흙 속에 처박혔다.

주변은 후끈거리는 연기와 폭발 후의 여파로 바로 코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더는 생존자의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 막아 냈나?”

진 최후의 영환도사 부대를 이끄는 대장, 서(緖)는 애써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며 중얼거렸다.

진에는 총 500명의 국가 영환도사가 존재했다. 이들은 100명 단위로 대장의 지휘를 받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이 강시들에 의해 이미 대다수가 사망하고 현재 남은 국가 영환도사는 지금 여기에 있는 50여 명이 고작이었다.

“맙소사…. 이건 말이 안 돼!

폭발의 잔재가 가라앉자, 보인 것은 조금도 상처 입지 않고 여전히 건재한 강시들이었다.

부적술, 화둔과 토둔으로 죽은 자는 강시들에게 희롱당하던 애꿎은 민간인들이 전부였다.

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는 도망갈 곳도 없었다. 죽더라도 여기서 놈들을 막아야만 했다. 서는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물러서지 마라! 여기가 최후의 방어선이다! 강시를 소환하라!”

“존명! 급급여율령! 강시강령술 발동!”

영환도사들은 이렇게 외치며 한결같이 품 안에서 은색 종을 꺼낸다. 이 종은 자신과 계약한 강시를 제어하는 종속의 종이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청아한 종소리가 연이어 이곳을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직후 하늘에서 남은 영환도사의 수만큼 강시들이 떨어져 내렸다.

쿠쿵 쿠쿠쿵.

50여 마리의 강시가 하늘에서 일제히 떨어지자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살육하던 그 강시들은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대장, 서가 이끄는 영환도사 부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소환한 강시를 벽으로 삼아 화력전을 펼친다! 남아 있는 부적을 아낌없이 쏟아부어라! 알겠나!”

“존명!!!”

서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오금이 저리는 공포에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자신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이다! 화둔, 토둔 급급여율령! 가진 모든 부적을 던져라!”

“존명! 급급여율령!”

수백, 아니 수천이 될지도 모를 부적들이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지금도 사람들을 학살하느라 여념이 없는 강시들을 덮쳤다.

콰콰콰콰쾅-!

그리고 이어진 거대한 폭발. 그것은 조금 전의 것과 비교해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요란한 폭음의 파도는 곧이어 잠잠해졌다. 서는 상대 강시들이 조금이라도 줄었기를 빌었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시궁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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