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괜찮으십니까?”
“…….”
마하임이 서에게 말을 걸었지만 서의 멘탈은 이미 붕괴 직전이었기에 그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어쩔 수 없군. 혈도술은 자신 없는데, 해 보는 수밖에.”
시현류의 비전 기술에는 치료술도 다수가 존재했다.
대상의 정신을 맑게 해 줌과 동시에 정신 공격의 내성을 길러 주는 기술도 다수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마하임이 아는 것은 그중에도 극히 일부뿐이었다.
마하임은 서의 등 뒤로 다가가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 서의 척수와 단전 부근의 혈을 천천히 짚어 나간다.
‘시현류, 유도 혈도술, 4식 통혈!’
서의 등을 장법으로 거침없이 내려치는 마하임. 상당한 충격을 받았겠지만, 서는 여전히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하임은 뒤이어 시현류의 술식에 따라 장법으로 연이어 서의 혈도를 자극했다.
파팍 팍 파파팍-
마하임의 손놀림은 갈수록 빨라졌고 서는 폭풍 속의 갈대처럼 좌우로 흔들렸다. 그리고 마하임은 서의 중추혈을 마지막으로 압박했다.
터어엉!
서의 등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날 정도의 엄청난 일격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서는 입에서 시커먼 덩어리를 토해내며 정신을 차렸다.
“우에엑 쿨럭, 쿨럭쿨럭.”
“정신이 드오, 저 샤오랑이오. 기억하시오? 서.”
샤오랑이 서의 등을 두드려 주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서는 그제야 겨우 막혔던 말문을 열었다.
“하아- 쿨럭쿨럭. 사, 살아 계셨군요. 공녀.”
“대체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이오. 다른 영환도사들은 모두 어디에 있소?”
“죽었습니다. 모두 죽었단 말입니다. 크흐흑 흐흑!”
흐느끼기 시작한 서. 합종귀의 급습에 영환도사들의 저항은 그저 무력하기만 했다.
그들의 부적은 거의 통하지 않았고, 영환도사들이 부리는 강시들 역시도 합종귀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공녀. 합종귀가 아직 더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학살당하고 있소이다!”
“마, 맙소사! 어찌 그런 일이!”
샤오랑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곳만 해도 영환도사의 시체와 민간인의 시체로 지옥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아직도 합종귀가 더 남아 있다니, 국가 영환도사도 못 막은 합종귀를 민간인이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일단 마을로 갑니다. 생존자를 찾아보도록 하죠.”
“하지만 서가….”
“전 괜찮습니다, 공녀. 시간이 없습니다. 지체치 마시고 마을 사람들을 부탁합니다.”
샤오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지금 여기서 지체할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마하임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오페라를 거침없이 뽑아 들었다. 지금은 실전이었다. 힘 조절 같은 것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오페라, 주변을 살펴 줘.”
[네. 초음파 스캔을 시작합니다. 스캐닝 반경은 100m. 인간 크기를 기준으로 스캔합니다.]
위잉 위잉 위잉-
오패라가 낮게 진동했다. 그리고 곧이어 결과가 마하임에게 전해졌다.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 20개체 급속 접근 중. 1분 이내로 조우가 예상됩니다.]
마하임은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도망치기는 이미 늦었다. 이곳의 지리도 잘 모를뿐더러 지금 저 놈들을 처지하지 않으면 민간인의 피해가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쿵 쿵 쿵 쿵 쿵.
땅을 울리는 합종귀들의 기분 나쁜 울림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합종귀들.
방금 마하임이 쓰러트린 녀석들과 외견은 같아 보였지만, 놈들의 뿜어내는 짙은 죽음의 기운은 전보다 훨씬 강했다.
“크르르르르-”
성난 백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단숨에 뚫겠습니다. 뒤처지지 마십시오. 샤오랑.”
“두말하면 잔소리! 갑시다!”
마하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시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저주받은 강시여,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축지를 시전하는 마하임. 마하임은 순식간에 강시 무리의 중간으로 파고들었다.
[초진동 모드 작동합니다. 유지 가능 시간은 5분, 재사용 대기시간은 30분입니다.]
촤아앙!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마하임의 오페라는 합종귀 사이를 갈랐다.
오페라의 검신은 초당 10만 번 이상 진동하기 시작했고, 검신이 합종귀의 몸에 닿기가 무섭게 마치 종이 잘리듯 합종귀의 몸통은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이건…. 사람에게는 사용치 말아야겠군.”
마하임은 눈앞의 참혹한 광경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검을 대었을 뿐인데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시아라의 ‘검기’에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헐…. 아직도 숨겨 둔 힘이 있었던 거요? 마하임 공자.”
“숨겨 두지는 않았습니다. 좀 위험한 기술이라서 안 쓴 것뿐이죠.”
마하임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샤오랑은 자신의 백호에 올라타며 지지 않겠다는 얼굴로 외쳤다.
“우리도 가자, 백호!”
“크아아아앙”
백호가 우렁찬 울부짖음과 함께 앞으로 튀어나갔다. 샤오랑을 태운 백호는 합종귀 사위를 종횡무진 누볐고, 합종귀는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대로 돌파합시다!”
“그럽시다!”
“크어어어엉!”
마하임과 샤오랑, 그리고 백호는 마치 한 몸처럼 지옥으로 변한 진의 시내를 가로질렀다.
이미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다. 사방은 생존자를 찾아 떠도는 합종귀로 넘쳐났다. 그러나 그 녀석들은 마하임 일행의 상대가 아니었다.
마하임은 물론하고 샤오랑 역시 일반적인 영환도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거침없이 진의 시내를 돌파한 마하임과 샤오랑은 그녀의 본가가 있는 진의 중앙청에 이르렀다.
“허어, 산 넘어 산이라더니….”
“설마 저놈들 전부가 철완강시는 아니겠죠?”
“전부 철완강시 맞소. 망할….”
중앙청 정문에는 정확히 10마리의 강시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 강시들은 마하임이 이미 한 번 겪어 본 철완강시들이었다.
한 마리도 상대하기 까다로웠는데 한꺼번에 10마리라니, 등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쿠그그그그-
마하임과 샤오랑이 철완강시에게로 다가가자 10마리의 철완강시들이 동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구름 가득한 검푸른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아우우우우우우-
그리고 변하기 시작했다. 철완강시들의 온몸이 털로 뒤덮이기 시작하더니 얼굴의 형태가 마치 늑대처럼 변했다. 옷이 찢어지며 근육이 미친 듯 부풀어 올랐다.
철완강시들은 저마다 기괴한 소릴 내지르며 변하기 시작했다.
“벌써 개발에 성공한 건가….”
마하임은 차갑게 식어 갔다. 저놈들에 대해서라면 마하임 역시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제국이 만든 생체 병기 중 가장 골치 아프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워울프’였다.
무엇보다 저놈들에게 치명상을 입어 죽게 되면 죽은 자도 워울프로 부활하게 된다. 그야말로 최악의 생체 병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변하게 놔둘 성싶으냐! 샤오랑! 변신할 때가 기회입니다. 단숨에 섬멸합시다!”
마하임은 축지를 시전하며 외쳤다. 그리고 단숨에 워울프들과의 거리를 줄인 마하임은 오페라에 파이어 볼을 인첸트했다.
그러자 오페라의 검신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일섬(一纖)! 화염검!”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오페라. 파이어 볼의 기운이 담긴 오페라의의 검신은 그 자체가 파이어 볼과 동일했다.
부우웅- 퍽!
콰과쾅! 콰쾅-!
마하임의 오페라에게 스치기만 해도 워울프들은 문자 그대로 폭발했다.
파이어 볼의 속성이 더해진 오페라는 그것을 일종의 저주 형태로 자신의 검신에 접촉한 워울프에게 파이어 볼의 폭발 그 자체를 부여해 버린 것이다.
‘파이어 볼’이라는 색다른 저주에 걸린 워울프들은 속절없이 터져 나갔다.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제아무리 철완강시의 몸을 지니고 있더라도 원래 철완강시의 근원은 금강석. 그리고 금강석의 천적은 불이었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늑대인간에게 흩뿌렸다.
콰쾅 콰콰쾅!
쿠르르릉 콰와쾅!
사방에서 붉은 열기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오페라에 베인 워울프들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터져 나갔다.
“이거 뭐, 누가 악당인지 구분이 안 되는구려.”
“크르르르….”
백호 역시 마하임의 기세에 질려 버린 모양인지 그의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꺼렸다.
그렇게 10분도 채 되지 못해 20마리의 워울프들은 변신조차 완료치 못하고 한줌의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대충 정리를 했으니 가보실까요?”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마하임 도령. 힘 조절 좀 하시오. 보고 있자니 무섭소, 정말.”
“그, 그렇습니까? 제가 좀 흥분한 모양입니다.”
애써 웃고 있는 마하임이었지만, 그의 가슴은 메어 터질 것만 같았다.
바닥에 널려 있는 수많은 시체들. 그들 중에는 아직 젓도 떼지 못한 어린 아기들도 상당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죽는 건 힘없고 약한 노약자들이었다.
그런 것을 수도 없이 보아온 마하임이었기에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구그그그그-
바로 그때 굳게 닫혀 있던 중앙청 문이 열렸다. 그리고 중앙청 안에서 쏟아지듯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 그 기운을 바라보기만 해도 등골이 섬뜩할 정도였다.
“들어오란 소리 같으오.”
“그런 것 같습니다.”
마하임은 짧게 답하고서는 성큼성큼 정문 안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샤오랑의 본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정문 안쪽은 제법 잘 꾸며진 정원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변 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중앙청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물론하며 국가 영환도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 크윽…. 아버님이, 어머님이 위험하시다!”
샤오랑은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에 경악했다. 그리고 본가 쪽으로 곧장 달려가는 샤오랑. 마하임은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멈추시오! 샤오랑. 무턱대고 가면 자살 행위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놔! 이거 놓으시오! 아버님이! 어머님이! 으아아아아!”
목 놓아 우는 샤오랑. 마하임은 샤오랑이 진정될 때까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로 놔주지 않았다.
샤오랑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지난달 부모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출하다시피 알타베르나에 와서 한동안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련히 잘 계시겠지, 추측만 했을 뿐, 본가가 이렇게 지옥도로 변해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제 됐으니 놔주시오. 미안하오, 마하임 도령. 내가 좀 경솔했소.”
“아닙니다. 저라도 샤오랑 님의 입장이었다면 그랬을 겁니다.”
마하임은 입맛이 썼다. 대충 이런 상황이 펼쳐져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제국과 전쟁의 와중이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은 전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흑신선들이 이렇게 날뛰고 있었다니, 마하임 자신의 눈으로 보고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진정이 되셨으면 이제 가십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건 샤오랑 님도 아시죠?”
샤오랑은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선 이제 더 이상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를 걱정스러운 듯 옆에서 지켜보던 백호는 마치 고양이처럼 자신의 투명한 몸을 그녀의 다리에 비볐다.
“괜찮아, 백호. 나, 이제…. 각오했으니까.”
“크르르릉.”
샤오랑은 자신의 소매 안, 주머니에서 동전검과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목검을 각각 꺼내 들었다.
백호는 고개를 숙이며 샤오랑에게 어서 타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분명 적의 매복이 있을 터. 머뭇거리지 말고 단숨에 통과합시다. 전 축지를 사용할 테니, 샤오랑 님은 백호를 타고 저를 바짝 쫓아오십시오.”
“알겠소.”
“그럼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