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마하임은 그와 동시에 축지를 시전했다. 그리고 돌로 포장되어 있는 중앙로를 따라 중앙청사가 있는 곳으로 쏘아진 듯 날아갔다.
마하임의 축지가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10미터 내외. 한 번 시전이 끝나면 2-3초 정도는 쉬어 주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나마 마하임이 사용할 수 있는 선술 중 가장 믿을 만한 범용 이동 기술이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주위에 널려져 있던 시체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하임의 앞에는 목재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의 중앙청, 다시 말하자면 각종 공무를 집행하는 시청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건물이었다.
평소라면 한밤중도 환히 밝혀져 있어야 정상이었지만 지금은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음침한 요기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도 이미 늦은 것 같군요.”
“…….”
샤오랑은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이곳 중앙청의 청장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이곳의 숙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샤오랑 이렇게 세 명이서 그다지 단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평범하게 살아왔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이야기였다.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샤오랑.”
“나, 나도 알고는 있소…. 하지만…. 하지만!”
샤오랑은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만다. 엄한 아버지 아래서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자라 온 그녀였지만, 누가 뭐래도 이곳은 샤오랑의 고향이자, 가족들이 기다리는 소중한 장소였다.
데에에에엥-!
바로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커다란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캄캄했던 중앙청 내부로부터 빛이 터지듯 흘러나왔다.
“오오, 기다렸노라. 샤오랑. 이제야 왔느냐?”
뒤이어 들려온 엄청나게 큰 목소리. 그 목소리에 마하임과 샤오랑은 귀를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마하임은 오페라를 꺼내 들고 소리쳤다. 하지만 주변에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중앙청 안에서 흘러나온 흑청색 빛은 엄청난 요기를 머금고 있었기에 주변을 밝혀 주었지만, 오히려 이곳을 더욱더 기괴하게 만들었다.
“호오? 그대는 누구인가?”
“내 이름은 마하임!. 윈드시크릿의 영주다!”
“윈드시크릿? 처음 듣는 곳이로군. 그래, 동생아 저 사람은 네 친구냐?”
“…….”
샤오랑은 혼란스러웠다. 지금의 저 목소리…. 어디선가 분명 들어 본 목소리였지만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샤오랑의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설마, 샤오천 오라버니?”
“하하핫!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구나. 그래, 나 샤오천, 신시아 황제의 신임을 얻어 이렇게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노라. 하하하하하! 자,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들어오려무나, 지금 한참 잔치 중이었으니.”
그의 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겹겹이 닫혀 있던 중앙청의 정문들이 일제히 활짝 열린다.
그리고 뒤이어 후끈한 요기가 둘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하임과 샤오랑은 그 요기에 완전히 질려 버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아직 요기가 너무 강한가? 이 힘을 제대로 제어하기가 힘들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샤오랑. 그리고 샤오랑의 친구여.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대는 나의 친구로 인정해 주마. 누가 뭐래도 샤오랑은 나의 하나뿐인 여동생이니까.”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샤오랑은 그제야 확실히 떠올릴 수 있었다.
샤오랑의 나이 8살 될 무렵 샤오천은 유학을 빌미로 씽의 수도로 끌려갔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옛이야기였다.
그 이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기별조차 없었던 샤오랑의 오빠가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저, 정말 오라버니 맞으신가요.”
“미안하구나, 샤오랑. 내가 곁에서 널 지켜 줬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한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 주려무나.”
한결 살기가 약해졌다. 샤오랑은 다시금 울먹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샤오랑은 외쳤다.
“왜 이제야 나타나신 거예요! 제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은 줄 아세요? 아버진 가문의 일밖에 모르시고, 어머닌 건강이 안 좋으셔서 언제나 몸져누워 계셨죠. 이젠 저도 못 알아봐요….”
샤오랑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동안의 설움을 내뱉었다.
“게다가 전 딸 취급도 못 받고 천재였던 오라버니와 비교 거리가 됐답니다. 거기다 타 가문에 팔아먹을 정략결혼의 대상으로밖에 취급되지 않았지요. 그래서 전 오라버니가 싫습니다. 정말 싫다고요!”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는 달랐다. 그녀의 나이 8살, 그러니까 씽으로 오빠가 끌려간 이후 그때부터 단 한 번도 샤오랑은 오빠를 잊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오빠는 일가친척 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듬직한 친구이자 유일한 혈육이었다.
샤오천은 샤오랑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가문에서 멸시를 받을 때면 어김없이 그녀의 힘과 방패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샤오랑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샤오천에게로 도망쳐 왔다. 그리고 샤오천도 그런 그녀를 단 한 번도 박대하지 않고, 전심으로 그녀를 지켜 주었다.
그러나 그런 샤오천이 씽의 서자로 끌려가면서 이 유대는 종언을 맞고 말았다.
“미안하구나, 샤오랑. 허나 이제 더는 걱정 말거라. 이 샤오천이 신시아 황제께서 하사한 이 힘으로 씽 전부를 지배할 테니 말이다. 으하하하하하!”
다시 한번 강렬한 요기가 사방으로 몰아쳤다. 활짝 열린 청사의 문은 미친 듯 요동쳤다.
“오너라, 나의 동생이여! 오늘은 즐거운 날, 모두가 즐기고 있느니라. 너도 나의 잔치에 참여하여, 이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꾸나.”
청사의 안쪽을 마하임은 말없이 노려봤다. 살기와도 비슷했지만 그와 조금 달랐다. 마치 온몸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느낌의 기운.
“이게 바로 마기(魔氣)란 것인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인간이 요기에 노출되면 미쳐서 죽든지, 변이하여 마귀가 된다.
한 번 마귀가 된 인간은 결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적어도 마하임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샤오랑 님. 각오를 다지셔야 할 겁니다. 저 사람은…. 이미 당신의 오빠가 아닌 듯합니다.”
“…나도 그쯤은 알고 있소! 오천 오라버니가 저런 마기에 빠져들다니 믿을 수 없어…. 이게 정녕, 오라버니의 기란 말인가!”
샤오랑은 가슴을 치며 통탄했다. 분명 저 목소리는 샤오랑의 오빠, 오천의 목소리가 맞았지만 이미 그는 샤오랑이 아는 상냥하고 자상한 오빠와는 거리가 멀었다.
확인할 것도 없이 지금의 이 지옥은 샤오천이 만들어 낸 작품일 터였다.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샤오랑 자신의 친오빠라 할지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갑시다. 마하임 도령!”
샤오랑은 양손에 동전검과 목검을 치켜들고 앞장섰다. 마하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뒤 그녀의 뒤를 따랐다.
청사 안은 청사 밖보다 훨씬 요기가 진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청사의 구석구석에는 푸르스름한 도깨비불이 두둥실 떠다녔다.
마기가 점점 진해지자 샤오랑의 동전검이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근처에 강시와 같은 요괴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팽팽한 긴장감에 샤오랑의 손은 절로 힘이 들어갔다.
“하악- 하아-”
그리고 들려오기 시작한 여성의 교성. 마하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사의 중앙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 펼쳐진 광경은 마하임과 샤오랑을 경악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노려보았다. 회의실에는 벌거벗은 나신의 여성들과 남성들이 서로 뒤엉켜 미친 듯이 서로를 탐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진의 관료, 그리고 상급 판관 등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벗겨 놓으니 누가 누군지 구별도 잘 안 되었고 색에 미쳐 날뛰는 모습은 그야말로 추잡하기 그지없었다.
샤오랑은 역겨움에 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전장.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어서 와라, 샤오랑. 이 오빠가 기다렸느니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샤오랑의 오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중앙 회의실 최상석인 원래 샤오랑의 아버지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론 샤오천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마하임보다는 덩치가 컸지만 키는 그보다는 약간 작았다.
그의 피부는 마치 여성의 피부처럼 잡티 하나 없었는데 깔끔하고 잔근육 하나 없는 몸매 덕에 여성의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샤오천의 매끈한 몸을 무려 여섯 명의 미모의 여성이 껴안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게 다 무슨 일이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샤오랑은 눈을 부릅뜨고 샤오천을 향해 소리쳤다. 샤오랑의 눈에는 다시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고대했던 오빠 샤오천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저곳에 있는 샤오천은 그야말로 마도(魔道)에 물든 사악(邪惡) 그 자체였다.
“샤오랑, 진정하거라.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시아 황제가 주신 이 힘은, 음기(淫氣)를 바탕으로 하는 마공(魔功). 이건 일종의 힘을 기르기 위한 의식이다.”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는 샤오천. 그리고는 자신을 껴안고 있던 여성 한 명의 목을 부여잡고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보아라, 샤오랑. 이 아녀자는 썩어 빠진 씽의 귀족 중 하나다. 나의 이 마공만 있으면 이 자존심만 센 허영덩어리도 나의 명령만 듣는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지.”
허공에 들려진 여성은 숨이 막혀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샤오천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그녀의 목을 물어뜯는 샤오천.
우지직-
경동맥과 목 관절이 끊어지는 소리가 마하임과 샤오랑이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여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무, 무슨 짓이에요. 오라버니!”
“보면 모르겠느냐 동생아. 식사 중이란다. 크하하하하!”
샤오천은 그렇게 말하며 여성의 목에서 샘솟듯 솟구치는 피를 게걸스럽게 빨기 시작했다.
“역시, 흡혈귀가 되어 버린 것인가?”
이미 철완강시가 변하는 모습을 본 마하임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흡혈귀 바이러스에 감염된 순결하지 않은 남성이나 여성이 흡혈귀의 노예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 바로 늑대인간화였으니 말이다.
물론 제국의 생체 병기로서 만들어진 늑대인간, 워울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흡혈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변한 늑대인간의 열화된 버전에 불과했다.
“화둔! 급급여율령!”
예고도 없이 샤오랑은 화둔의 부적을 샤오천에게 던졌다. 그러나 그녀의 부적은 힘없이 허공을 날 뿐이었다.
“소용없단다. 나의 동생이여. 이곳은 술법의 힘이 닿지 않는 나의 영지다. 자, 오너라. 나의 여동생이여, 함께 금단의 강을 건너, 영원을 맛보자꾸나!”
샤오천은 샤오랑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샤오랑과 눈을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를 본 샤오랑은 순식간에 온몸에 힘이 빠짐을 느꼈다. 무언가 몽롱한 기분에 묘한 쾌감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샤오랑은 천천히 오천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멈추십시오, 샤오랑 님! 샤오랑 님, 정신 차리세요!”
마하임이 소리쳐 봤지만, 샤오랑의 귀에는 이미 마하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오천의 마기에 이끌려 흐느적거리며 그에게로 걸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