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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77화 (77/194)

77화

스르륵-

샤오랑은 갑자기 입고 있던 옷들을 한 꺼풀, 한 꺼풀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마기에 중독된 샤오랑에게 수치심 같은 감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그녀에게 남겨진 감정이란 들끓듯이 일렁이는 음욕뿐이었다.

“그래, 모두 벗어 던지거라. 그 알량한 사랑도, 수치심도, 그리고 가문도 명예도 모두 벗어 던지거라. 이곳은 나만의 영지. 네크로폴리스, 죽은 자가 산 자를 묻는 나의 세계니라.”

샤오천의 말은 곧 힘이 되어 사방을 진동시키기 시작한다. 마하임은 완력을 써서라도 샤오랑을 멈추게 하려 했지만 그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샤오랑이 소환한 백호 역시 자신의 주인을 구하려 발버둥을 쳤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땅에는 죽음으로 가득한 축복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라버니, 날 사랑해 주세요. 나의 피, 나의 모든 것은 오라버니의 것.”

샤오랑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샤오천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옮겼다.

그녀는 완전히 샤오천의 주술에 넘어가 흐릿한 교성을 흘리며 샤오천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을 뿐이었다.

저항도 못 한 채 죽음으로 걸어가는 샤오랑을 보던 마하임에게도 흥분감이 전이되었다.

‘젠장! 사술이 나에게도 영향을 주는 건가?!’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경솔했다. 이것 또한 분명 결계의 일종일 터!’

마하임은 피가 터져라 입술을 깨물었다. 현재의 마하임으로서는 이 결계를 파괴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라고는 3클래스가 고작이었고, 그 말고는 잡다한 선술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실전에서는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그 미래의 기억 속에서 건져 낸 또 하나의 비술이 있었던 것이다.

‘이판사판! 실패하면 죽는다! 파마(破魔)의 사자(獅子)여, 나의 부름에 답하라.’

“울어라! 사자후!”

크어어어어엉-!

마하임의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사자후의 파마의 기운은 그의 입을 통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곳을 가득 채우던 음울한 기운을 일격에 날려 버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샤오랑.

그와 함께 꼼짝도 할 수 없었던 마하임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 모든 힘을 총동원해 단숨에 승부를 보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었다.

‘파이어 볼 인첸트, 라이닝 인첸트, 매직 미사일 인첸트!’

몸이 부서질 것 같았지만, 마하임은 연이어 무영창 주문으로 오페라에 마법을 인첸트시켰다.

다중 인첸트 마법, 실패 시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리스크까지 있었지만, 이것조차 저 괴물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호오 그대는 마법 검사인가?”

“아니, 나는 마법 검사가 아니다.”

“그럼 그대는 무엇인가?”

“내 이름은 마하임! 네놈을 지옥으로 돌려보낼 자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앞으로 내밀며 샤오천을 향해 말했다. 평소 같으면 광소를 하며 비웃었을 테지만 샤오천은 웃을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에게 향한 검, 오페라에서 흘러나오는 광대한 기운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샤오랑, 저 사람은 누구인가?”

샤오랑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저랑…. 백년가약을 맺을지도 모를 분입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마하임은 다시금 뒷골이 뻣뻣해짐을 느꼈다. 아직도 샤오랑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 그러한가? 우리 샤오랑이 선택했다면 보통내기는 아닌 것이 확실하고, 마하임이라고 했던가? 이렇게 된 인상 나랑 좀 어울려 줘야겠다. 네가 과연 샤오랑에게 어울릴 만한 남자인지 내가 시험해 주마.”

샤오천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는 자신의 키만큼이나 거대한 창 ‘방천화극’이 천천히 허공에서 날아와 그의 손에 쥐어졌다.

“하하하! 네가 선택한 남자를 보니, 간만에 타오르는구나. 어디 버텨 보아라. 나의 강림술을 5분만 버틴다면 내 너를 우리 샤오랑의 배필로 인정하마.”

그리고 샤오천은 방천화극을 땅에 힘껏 내다 꽂으며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오라! 비통함 속에서 절망하고 또한 절망한 영웅의 영령이여. 지금 이곳에 그대의 썩어 버린 육신이 다시금 눈을 떴으니, 그대가 못 이룬 이상을 지금 이 땅에서 이룰지어다!”

쿵. 쿵. 쿵.

다시 한번 방천화극의 창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샤오천. 그리고 그의 몸에는 아득히 먼 옛날 지구의 중국 후한(後漢) 말기를 호령하던 전설적인 무장의 영령이 지금 이곳에 다시금 눈을 떴으니….

그 영령의 이름은 여포(呂布) 자는 봉선(奉先). 무적이란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내였다.

“내 이름 여포 봉선! 감히 내 앞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는가!”

거창 방천화극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샤오천, 아니 여포 봉선은 포효했다.

“크으윽!”

마하임은 그 소리만으로도 압도당해 뒷걸음질 쳤다. 샤오랑은 이를 악물고 버티다 결국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소환한 백호 역시도 동시에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이번 생에야말로 중화를 내 손으로 통일해 억울하게 죽어 간 나의 아내, 초선의 명복을 빌어 주리라!”

“…….”

방천화극을 마하임에게 뻗는 여포. 그 압도적인 기세는 마하임이 지금껏 만나 본 그 어떠한 적보다 강했다.

이길 수 없음은 물론하며 도망치는 것마저도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절제절명의 순간이라 말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자, 이리로 오너라! 나와 자웅을 겨루어 보자!”

여포는 이렇게 말하며 순간적으로 도약했다. 그 기세는 그야말로 섬광. 마하임은 오페라를 치켜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부웅- 쩌엉-!

여포가 거침없이 휘두른 방천화극을 마하임은 오페라로 겨우 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막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아악!”

마하임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10m 이상 바닥을 구른 뒤에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제법이구나, 아가야. 날 실망하게 하진 않겠구나.”

“쿨럭쿨럭, 젠장!”

마하임은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피를 토해냈다. 지독한 내상이었다. 마하임이 오페라에 건 인첸트 주문은 단숨에 소멸해 버렸다.

멀린의 회복의 축복도 그 효력이 다한 상태라, 마하임의 내상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악화됐다.

[긴급 상황 발생. 폐, 간, 대장에서 대량의 출혈 감지. 사용자의 생체 반응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보호를 위해 나노머신을 임의 가속, 폭주시킵니다.]

이상 사태를 깨달은 오페라는 즉각 반응했다. 내상으로 인한 쇼크를 막기 위해 아드레날린을 제어하는 것은 물론 엔드로핀을 대량 발생시켜 통증을 억제시켰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마하임의 생체 신호는 급속하게 약해졌고 의식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신인(神人) 시스템 온라인. 사용자의 의식 수준을 알파 상태로 강제 회복시킵니다.]

흐려지던 의식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잘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위험 상황을 감지한 오페라가 숨겨진 기능을 사용한 듯했다.

[신인 시스템 유지 가능 시간 3분. 즉시 전장을 이탈해 주십시오.]

“오페라…. 나도 그러고 싶지만, 자신이 없군.”

자신의 눈앞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샤오천의 손에서 무사히 도망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럼 남은 것은 단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끌어내어 적을 섬멸하는 것뿐이었다.

“오페라 x12! 죽어도 좋아! 놈을 처부순다.”

[명령 확인. 오페라 x12 발동. 유지 가능 시간 60초]

이미 내상으로 다량의 나노머신을 사용하고 있는 마하임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웃었다. 그리고 힘껏 포효했다.

“크아아아!!!!!”

마하임은 돌격했다. 방어 따위는 없었다. 관절이 삐꺽이고 근육이 파열음을 연이어 냈지만, 마하임은 멈추지 않았다.

“뭐, 뭐지?!”

샤오천에게 빙의한 여포는 당황했다. 자신에 비한다면 왜소하기 그지없는 몸집에 가진 무기라고는 장난감 같은 검이 고작인 마하임의 저돌적인 돌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기세는 여포 자신을 능가했고 그의 울부짖음은 천지를 격동하는 듯했다.

“허나! 이 여포를 쓰러트릴 수 없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그리고 방천화극과 마하임의 오페라가 격돌했다.

콰콰콰쾅!!!

두 병장기가 부딪치자 요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파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 합을 나눈 결과일 뿐이었다.

쾅 콰쾅!

쩡 쩌쩌쩡!

창과 검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튀고 바위가 부서지고 나무가 쓰러졌다.

창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쾌속! 그 순간 속력은 음속을 능가했다. 그러나 마하임은 일말의 망설 없이 검술을 이어 나갔다.

그저 떠올렸을 뿐인데 마하임의 육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를 구현했다. 이것이야말로 신검합일의 경지. 저 여포조차도 이루지 못한 극한의 무공이었다.

깡!

퍼억! 슈칵!

검과 창이 부딪칠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기교는 마하임이 압도적이었지만, 힘은 여포 그 자체가 되어 있는 샤오랑이 훨씬 더 강했다.

승부 그 자체는 막상막하였지만 마하임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길게 끌면 진다. 기회는 단 한 번!!! 그것에 나의 모든 것을 건다!’

마하임은 방천화극의 매서운 공격을 이를 악물고 피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언제나 그렇듯이 마하임에게 찾아왔다.

“하합!”

힘찬 기합과 함께 마하임은 쏟아지듯 날아오는 방천화극을 오페라로 쳐 냈다.

갑작스러운 마하임의 반격에 몸을 휘청이는 샤오천. 이를 놓칠 마하임이 아니었다.

“파이어 볼 인첸트!”

할 수만 있다면 다른 마법도 인첸트시키고 싶었지만, 지금 이것이 마하임의 한계였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며 휘청이는 샤오천의 배를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발경!!!”

퍼억 콰아아앙!

터질 듯한 강렬한 섬광과 함께 마하임의 발경이 작렬했다.

그것은 평범한 발경과는 수준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마하임은 그 엄청난 기세에 밀려 튕겨지듯 뒤로 밀려났다.

“하아. 하하…. 쓰러트렸나?”

분명 느낌이 왔다. 샤오천, 아니 여포가 아무리 그가 강하다 할지라도 이 공격을 견디지는 못할 것이다.

“네 이노오옴! 감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바로 그때 터져 나오는 일갈! 마하임은 섬뜩한 살기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 방천화극의 커다란 검신이 마하임을 스치듯 지나갔다.

“크흐흐, 미꾸라지 같은 놈! 너의 주먹맛 잘 보았다. 나 역시 지금부터 주먹만으로 네놈을 상대해 주마!”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여포가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흐릿해지는 마하임의 시야. 그의 귀에 오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x12 유지 가능 시간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나노머신 슬립 모드에 진입. 사용자는 즉시 전장에서 이탈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사용자는 즉시 전장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오페라의 목소리가 마하임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이게 나의 한계인가?’

손끝도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포의 살기로 일렁이는 무지막지한 주먹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 선명히 보였지만, 그는 더는 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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