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퍽-!
바로 그때 둔탁한 소리가 마하임의 귀에 들려왔다.
나노머신의 보호가 사라진 이상 이 일격으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고통도 충격도 그 무엇도 없었다.
이미 자신은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바로 그때였다.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서방님.”
마하임은 눈을 떴다. 그리고 보인 것은 붉은 원피스를 입은 시아라의 뒷모습이었다. 시아라는 여포의 그 무시무시한 공격을 한 손으로 가볍게 막고 서 있었다.
“뭐냐, 넌!”
여포는 본능적으로 시아라와 거리를 벌렸다. 그녀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 자체가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제 이름은 시아라. 이름 높은 무신의 영령, 여포 님께 인사드립니다.”
씽긋 웃으며 여포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시아라. 겉보기에는 가냘픈 소녀에 불과한 그녀였지만, 여포 그가 느끼기에는 마치 거대한 산을 보는 듯했다.
“좀 더 빨리 오려고 했지만, 소환구가 문제를 좀 일으켜서요.”
시아라가 마하임에게 준 소환구는 마하임과 여포의 싸움에서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곳에 흘러넘치는 마기에 방해를 받아 소환구가 그녀를 이곳까지 소환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즉시 꺼져 주실래요? 아무리 전설적인 영령이라고 할지라도 심히 불쾌하군요.”
갑자기 시아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 그것은 여포의 살기를 가볍게 눌러 버리고 사방으로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깜짝 놀라 다시 한번 뒤로 물러서는 여포. 시아라는 그런 여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하아, 고집 센 서방님. 처음부터 절 부르셨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터인데.”
마하임의 입에서 흘러내린 피를 자신의 옷으로 닦아내는 시아라. 그런 그녀를 향해 마하임은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시아라….”
“아뇨, 서방님은 충분히 잘 싸우셨습니다. 더욱이 여포라면 충분히 고전할 만하죠.”
마하임의 손목 맥을 짚는 시아라. 그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맥이 약하긴 했지만 나노머신의 치유력 때문인지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았다.
시아라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내공을 끌어올리며 여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얼마나 강한 영령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허나,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있다는 것을 이 몸이 친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조용한 시아라의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힘은 그 깊이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여포는 난생처음으로 떨고 있는 자신을 목격했다.
“내가?! 이 몸이 떨고 있다고!”
“몸은 정직하니까요.”
시아라의 말에 여포는 이를 으드득 깨물었다. 확실히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강해 보였다.
그러나 일 대 일 싸움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당해 본 적 없는 여포는 이를 인정할 수 없었다.
“닥쳐라! 계집! 내 생을 걸고 너를 멸하리라!”
여포는 거침없이 시아라에게 주먹을 날렸다. 시아라는 그 무시무시한 공격에도 오른손을 검지를 치켜들었을 뿐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았다.
팍!
순간 여포의 주먹이 멈췄다. 그리고 그것을 멈춘 것은 시아라의 검지 하나가 전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힘의 차이란 것을 보여 드리죠.”
여포는 무차별로 시아라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시아라는 그 모든 공격을 자신의 검지 하나로 다 튕겨내 버린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여포가 미처 눈치채기도 전, 그의 바로 앞까지 파고든 시아라는 그의 배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진 선기발경.”
터어어엉!
시아라의 손에서 시작된 가공할 힘이 여포의 배에 작렬했다. 여포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망치에 두들겨 맞은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큭! 네년도 기공술사냐!”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어디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조조의 계략에 넘어가 전쟁에서 패배한 겁니다.”
“네년! 이 여포 봉선이 반드시 찢어 잘근잘근 씹어 주마!”
“그건 여포 님의 희망 사항이겠죠?”
시아라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풀었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 7개의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구슬이 쏟아져 내린다.
“이걸 7개 모으면 소원을 이루어 준다 하여 고생해서 모았건만 정작 다 모으자 야시시한 가슴가리개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지더군요. 뭐, 워낙 단단해 금강석도 씹어 먹을 정도라 이런 용도로는 더없이 좋지만 말입니다.”
시아라는 7개의 구슬을 시현류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의 술식으로 허공에 띄웠다. 구슬들은 저마다 시아라를 중심으로 궤도를 그리며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펼칠 이 기술은 제가 개발한 신기술입니다. 제 서방님을 손봐 주신 여포 님께 드리는 제 성의이니 충분히 맛보시고, 마땅히 돌아가야 할 그곳으로 돌아가시길.”
“너어! 너어! 감히 이 여포 봉선 앞에서!”
여포는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이런 멸시는 받아 본 적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으로 몰아넣은 조조조차도 자신을 이렇게 대하진 않았다.
“닥치세요! 진정 그대가 용사라면! 진정 그대가 신의 무를 자랑하던 용장이라면! 이따위 주술에 휘말려 하계로 돌아오는 우는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아라는 눈을 부릅뜨며 여포를 꾸짖었다. 시아라의 주위를 맴도는 구슬들의 움직임은 더욱더 빨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허나 그대의 천명은 이미 수천 년도 전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새로운 천명이 하나 있으니, 죽음의 신성함을 모독한 그대를 다시금 그대가 있을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시아라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주변을 돌던 구슬들은 허공에 굳은 듯 멈췄다.
“시현류 이기어검술 제2식 여의무쌍(如意無雙)!”
시아라가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여포를 향해 가리키자 허공에 멈춰 있던 여의주는 물 찬 제비처럼 허공을 가르며 여포를 향해 쏘아졌다.
“그런 사술에 당할 쏘냐! 흐랴압!”
여포는 자신의 방천화극을 양손에 거머쥐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7개의 여의주를 바라보며 방천화극을 매섭게 돌리기 시작했다.
“그따위 구슬, 이 방천화극으로 박살을 내 주마!”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죠?”
싸늘하게 웃는 시아라. 그녀의 여의주는 여포의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그를 포위하기라도 하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여포를 중심으로 멈춰 섰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여의주는 여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혔다.
“흐으럅!”
깡-! 카캉-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여포는 여의주의 첫 번째 두 번째 공격을 방천화극으로 가볍게 튕겨내 버렸다.
그리고 뒤이은 네 번째 다섯 번째도 어렵지 않게 피하거나 쳐 낼 수 있었다. 용기백배해진 여포는 시아라를 향해 외쳤다.
“보았느냐? 이 여포 봉선을 쓰러트리려면 그 정도론 어림도 없다.”
“글쎄요. 그건 당신 생각이죠. 공격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여의주의 유일한 강점은 엄청나게 단단하다는 점이었다. 이것의 재질은 시아라 자신도 몰랐다. 나름 고대 유적에 정통한 여러 상인에게 물어봐도 한결같이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시아라는 더는 이 구슬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대신 이기어검술을 응용한 그녀의 신기술을 완성시키는 도구로 선택한 것이었다.
“잘 막으셨습니다. 그럼 두 번째는 어떨까요?”
처음 공격은 단순한 시간차 공격이었다면, 지금 시아라가 하려는 것은 7개의 구슬을 모아 한 번에 사방에서 몰아치는 연합 공격이었다.
7개의 구슬은 시아라의 이기어검의 술식에 따라 여포에게로 다시금 쏘아졌다.
퍽, 파챙! 파파팍!
“겨우 이 정도냐? 어림도 없다!”
여포는 이번에도 방천화극을 휘둘러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 냈다. 그러나 전보다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 시아라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3번째 갑니다!”
다시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여의주. 여포는 사력을 다해 막아 봤지만, 그의 몸 여기저기는 상처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역시 여포. 보통은 이쯤이면 쓰러지고도 남을 텐데 말이죠. 자, 또 갑니다.”
슈리리릭 휘잉 휭잉-
파파팍!
“크윽 크으윽!”
점점 철통과 같은 여포의 방어가 뚫리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여포는 그 와중에도 시아라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네년! 능지처참해서 저작거리에 내걸리라!”
“할 수 있으면 또 해보시죠. 이번은 더 강할 겁니다. 5번째 갑니다!”
후두두둑 두둑.
치깡!
“크아악! 이런 말도 안 되는…!”
구슬의 공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매서워졌다. 시아라의 여의주는 마치 살아 있는 양 매섭게 여포를 몰아쳤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사방에서 몰아치는 구슬들을 다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제기랄! 이렇게 된다면 본체를 친다!”
여포는 여의주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시아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비록 기술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하드웨어, 즉 육체적 차이는 여포가 압도적이었다.
“근접전이면 이길 것 같습니까? 심지어는 자기 육체도 아닌 타인의 육체를 빌려 싸우면서.”
“에이잇 시끄럽다. 받아 보아라! 으랴랴압!”
부웅-
여포는 자신의 방천화극을 온 힘을 다해 시아라를 향해 던졌다. 허를 찌르는 멋진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기에 피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설령 피한다 할지라도 여포가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위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하지만 시아라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기만 했다.
“제가 분명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현류 유도 방어술, 금강불괴(金剛不壞).”
챙깡-
그 직후 방천화극이 시아라의 몸과 격돌했다. 보통의 몸이라면 단번에 꽤 뚫려야 정상이었겠지만, 시아라의 몸은 이미 보통의 몸이 아니었다.
방천화극은 시아라의 몸에 조금의 상처도 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퉁겨져 버렸다.
그녀가 사용한 심법은 시현류 유도 방어술의 극치인 금강불괴였다.
금강불괴는 도검불침의 금강지체와 수화불침의 불괴지체 등을 모두 통달한 자만이 익힐 수 있는 궁극의 방어술이었다.
‘벌써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희미한 의식 속에서 마하임은 시아라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가 알고 있던 미래의 시아라는 금강불괴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경기공을 통한 공격 흘리기가 그녀의 유일한 방어 술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는 시아라는 금강불괴의 경지까지 이룩한, 그야말로 달인 그 자체였다.
“금강불괴? 웃기지 마라 그딴 헛소리를 믿으란 말이냐!”
“당신이 믿건 말건 상관치 않습니다. 그만 끝내도록 하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유지하는 시아라.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아라의 허세였다.
‘역시 여포 님은 강하군요. 시간을 끌면 질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시아라는 자신의 특기인 혈도술을 이용해 전신의 혈을 완전 개방하여 평소의 200% 이상의 힘을 끌어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단전의 기혈은 한계치까지 들끓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주화입마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더는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다급해진 시아라는 두 손을 불끈 움켜쥐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