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진 여의무쌍(進 如意無雙)!!!”
그녀의 외침에 반응이라도 하듯 그녀의 7개의 여의주는 파이어 볼의 불꽃만큼이나 강렬한 불길을 뿜어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길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여의주는 먹이를 노리는 맹금류처럼 여포에 빙의한 샤오천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천화극마저 던져 버린 터라 달리 방어할 방법도 없는 여포에게 불타는 여의주의 무쌍이 시작됐다.
상하좌우 360도를 아우르는 공격에 여포는 폭풍 속의 낙엽처럼 연신 두들겨 맞았다.
“크헉 크허억! 믿을 수 없다!”
순수한 물리 공격이었지만, 그 공격은 영혼을 뒤흔들 만큼의 타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소환된 여포의 영령은 샤오천의 몸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분리되고 말았다.
“네 이년! 이 치욕을 절대 잊지 않으리라!”
분노하는 여포. 하지만 시아라는 코웃음으로 그의 저주를 받아 넘겼다.
“크아아악!”
여포는 마지막으로 비명과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여포의 영은 자신이 있어야 할 망령의 세계로 사라졌다. 그러나 시아라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숙주를 그냥 놔둘 순 없죠. 그대로 죽어 주십시오.”
이미 의식을 잃은 샤오천의 육신을 매섭게 몰아치는 여의주의 난무. 이를 보다 못한 샤오랑이 시아라의 발에 매달렸다.
“그만, 그만하시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소!”
샤오랑의 이 말을 듣고서야 겨우 이성을 회복한 시아라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여의 난무를 멈췄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다리가 풀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기분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겨우 시아라는 겨우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조, 조금 위험했군요.”
너무 공격에 열을 올린 모양인지 시아라는 순간 심마에 지배를 당할 뻔했다.
만약 샤오랑이 시아라를 말리지 않았다면, 샤오천의 몸은 산산조각이 남은 물론하며 시아라 자신도 주화입마에 빠져 버렸을 터였다.
“역시 혈도술은 미완성인 기술. 당분간 봉인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입맛이 썼다. 나름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한 시아라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살의에 물들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뻔했던 것이다.
한계를 넘겨 살의에 물든 선술 사용자의 끝은, 흑신선이 되는 것뿐. 그녀 역시 그러한 함정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후우, 신선의 길은 멀고도 멀군요.’
평소라면 고마움이라도 표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경황조차 없었다. 시아라는 자신의 여의주를 회수해 허리춤의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쨌든 일단락은 지어진 것 같군요.”
긴 한숨을 내쉬는 시아라, 주위에 흘러넘치던 요기는 이미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마기에 중독되어 색(色)을 탐하던 진의 관료들도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자신의 몸을 가리기에 바빴다.
“이게 무슨 망측한 짓이오! 어서 떨어지지 못할까!”
“누, 누가 할 소리를! 내 비록 첩이라 할지라도 명문 서가의 아낙입니다. 모두 단단히 각오를 하셔야 할 거요.”
고성이 오가는 사람들. 아마도 이번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 이쪽도 전후 사정을 한번 들어 보도록 합시다.”
마하임은 시아라의 여의주에 두들겨 맞아 온몸이 멍투성이인 샤오천에게로 다가갔다.
여포에게 당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는 않은 마하임이었지만, 지금 자신의 몸보다는 샤오천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확보가 더 시급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샤오천. 흑신선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너희와 할 말은 없느니라! 죽여라. 패자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
이 말만을 남기고 샤오천은 입을 닫았다. 그러자 시아라가 샤오천의 배에 발을 올려 지그시 찍어 누르며 말했다.
“죽음이라고요? 이미 당신은 죽어 있습니다. 흡혈귀 주제에 죽음을 논하다니 웃기군요.”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시아라. 이를 본 샤오랑이 시아라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만하시오, 시아라. 못난 오라버니지만 그래도 소녀의 오라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시아라는 가볍게 샤오랑의 팔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을 이었다.
“실망했습니다. 씽의 명문가라 할지라도 혈연이 얽히면 약해질 수밖에 없군요. 애초에 그대의 백호라면 흡혈귀 정도야 가볍게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요?”
“…….”
샤오랑은 입을 닫았다. 그녀의 말 중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샤오랑 그녀가 소환한 환수 백호는 악에 대한 절대적인 파괴력을 지녔다. 제아무리 흡혈귀가 강하다 한들, 극상성인 백호와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런데도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그 흡혈귀가 샤오랑의 단 하나뿐인 오빠 샤오천이었기 때문이었다.
“자, 그만들 하시고. 사연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습니다. 한번 들어 보는 거야 어떻겠습니까?”
보다 못한 마하임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말했다. 샤오천의 사정이 어쨌든, 정보가 필요한 것은 마하임이었다.
“알겠습니다. 서방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한번 들어 보죠.”
팔짱을 끼는 시아라. 샤오천에게 딱히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마하임이 저렇게까지 말하자 마지못해 입을 닫는 시아였다.
“그럼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나는 할 말 없다. 어서 죽이래도!”
“오라버니!!!”
바로 그때 들려온 앙칼진 목소리. 샤오랑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샤오천은 순간 뜨끔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신 건가요?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됐잖아요! 제발 부탁, 부탁드려요. 옛날의 다정했던 그, 그 샤오랑 오라버니로 돌아와 주실 순 없나요?”
샤오랑은 샤오천을 바라보며 다시금 울먹이기 시작했다. 샤오천은 그런 샤오랑을 보며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샤오천은 공허한 눈으로 아서와 그리고 샤오랑을 바라본다.
“나는 복수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샤오천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 * *
그는 진 왕실의 장자로서 지금껏 그의 조상이 으레 그랬듯이 씽 제국의 서자로 끌려갔다.
하지만 말이 서자지, 사실상 포로나 마찬가지였다. 진 왕실의 장자인 이상 샤오천에게 선택권이란 존재치 않았다.
하지만 샤오천은 절망하지 않았다. 서자로서 씽에 있는 것은 보통 5년 정도로 정해져 있었다. 즉 5년만 지나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온갖 어려움과 차별 속에서도 샤오천은 꿋꿋이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 7년이 지나도 그리고 10년 지나도 샤오천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매해 달랐다. 법이 바뀌었다느니, 진이 세금을 포탈했다느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었지만, 샤오천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10년을 씽 제국의 수도에서 보냈다.
그리고 11년째 들어서는 해. 씽 제국은 샤오천에게 수도에 영구 거주를 명했다. 그것도 무려 씽 제국의 황명으로서 말이다. 샤오천은 그날 절망으로 울부짖었다.
“그런 나에게, 흑신선이 찾아왔다. 신시아 황제의 밀서를 가지고 말이지.”
황제의 조건은 간단했다. 자신의 실험에 참가해 주면, 복수할 힘을 주겠다고. 그 힘만 가진다면 씽 제국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고.
황제는 샤오천을 심연의 어둠으로 유혹했다.
처음에는 이 무슨 황당한 소린가? 하고 반문했지만, 그 실체를 안 샤오천은 황제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보거라, 이것이 바로 선술의 극치, 현자의 돌이다!”
샤오천은 갑자기 자신의 오른손을 치켜들더니 자신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퍼억! 우지직!
“무슨 짓이에요. 오라버니!”
깜짝 놀란 샤오랑이 샤오천에게 매달렸지만 샤오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가슴속 깊숙이 손을 찔러 넣어 무언가 커다란 것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붉은빛이 감도는, 주먹보다 조금 큰 매끈한 돌이었다.
군데군데 금이 가서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지만, 그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저건 현자의 돌!!!”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시아라였다. 저 현자의 돌은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도사’만이 만들 수 있는 신물(神物).
현재 이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시아라의 아버지 ‘시문’뿐이었다.
“저, 정말입니까? 저것이 현자의 돌 맞습니까?”
마하임의 반문에 시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저 현자의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분명 시문의 것이었다.
“확실해요. 저희 아버님, 시문 문주께서 만든 현자의 돌, 적황석이 분명합니다.”
원래 현자의 돌은 신선이 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영약이었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 샤오천과 같은 강력한 흡혈귀도 만들 수 있는 마약(魔藥)이었다.
그래서 현자의 돌을 만드는 방법은 시현 가문의 문주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일인 전승의 비급이었다.
“…소녀는 확인해 볼 것이 있어 먼저 돌아갑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미리 정해진 좌표로 순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귀환 주문서였다.
“제 추측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자세한 것은 학교에서 말해 드리겠습니다.”
시아라는 이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두루마리를 찢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과 함께 귀환 주문이 발동했다.
파파팟!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시아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한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마하임…이라 했던가?”
샤오천은 입을 열었다. 마하임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이미 죽은 자와 다름없다. 온몸이 부서져 가는 지금도 나의 육체는 신시아의 명령을 실행하기를 갈구하고 있지.”
샤오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샤오천은 이런 대량 살육까지는 저지를 생각이 없었다.
최소한의 병력만을 확보해 씽 제국을 쳐, 쿠데타로 황위를 찬탈한다.
그게 원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신시아의 목적은 달랐다. 막상 작전이 시작되고 이에 투입된 샤오천은 손가락 하나조차 신시아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살육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미안하구나, 샤오랑. 그저 나는 고향에 돌아와, 너를 만나고 싶었을 뿐인데, 그럴 뿐이었는데! 후, 신시아 더는 당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겠소. 이것이 바로 당신을 향한 마지막 반항이오!”
샤오천은 가슴에서 꺼낸 붉은 보석 ‘현자의 돌’을 자신의 손으로 부숴 버렸다.
피와 같은 붉은 보석이 산산이 부셔져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샤오천의 몸도 점점 생기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샤오랑, 부디 이 못난 오빠를 용서해 다오.”
“아니 됩니다. 오라버니! 이제 겨우 만났는데, 이대로는 안 됩니다!”
현자의 돌을 잃은 샤오천의 몸은 원자 단위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샤오랑은 그런 샤오천의 몸에 매달렸지만 마치 모래처럼 허물어지는 그를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부디…. 내 동생을 부탁한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샤오천은 붉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중앙청 양쪽으로 난 창으로 새벽을 알리는 여명이 새어 들어왔다.
기나긴 밤은 끝났다. 그러나 밤은 어김없이 돌아올 것이고, 그것은 이곳 거짓된 진실의 세계, 옵타티오에서 꿈을 꾸는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렇게 마하임의 씽 제국 원정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