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80화 (80/194)

80화

솨아아-

본격적인 여름을 시작하는 비가 알타베르나 전체를 적시고 있었다.

알타베르나 본관 1층. 시아라는 자신의 긴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서성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마하임이 나타났다.

“늦었군요. 서방님.”

“엘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늦게 알아서 늦었습니다. 많이 기다렸나요.”

“엘리? 아하, 그 망할 엘리베이터 말씀이시군요.”

시아라 역시 엘리의 악명을 모를 리 없었다. 자칭 세계 최강의 엘리베이터라고는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세계 최강이 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걸핏하면 고장 나는 ‘엘리’의 명성은 알타베르나의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이번 무투회 때 아무것도 모르는 안나를 꼬셔 무투회에 무단 참가하여 무투회 자체를 엉망으로 만들 뻔했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은 봉인되어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서방님, 그 엘리베이터는 최대한 타지 않는 것을 추천 드려요. 뭐, 이제 방학이라서 탈 일도 없으려나?”

활짝 웃으며 말하는 시아라. 마하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사람들의 이목도 있는데 ‘서방님’이란 표현은 좀 삼가해 주셨으면 하는데….”

“어머나. ‘서방님’이 어때서요?”

시아라는 일부러 서방님이란 단어를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으며 마하임의 팔짱을 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시아라의 팔짱을 더욱 단단히 그러쥐었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던가요? 내일부터는 한동안 이별이니까, 데이트하려면 지금뿐이잖아요.”

내일부터 알타베르나는 길고 긴 방학에 들어간다. 알타베르나는 여름에 단 한 번 방학을 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4개월이나 되었다.

알타베르나의 학생들은 대부분 귀족인지라 딱히 여름이라고 해도 학교에 다니는 것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알타베르나에서는 관성적으로 이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학이라고 꼭 학교를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어서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은 꽤나 많았다.

시아라 역시 원래 돌아갈 계획이 없었지만 갑자기 문제가 생겨 버린 것이다.

“역시 시문 님 때문입니까?”

“현자의 돌이 그런 식으로 사용된 것을 보고서야 가만있을 수는 없죠.”

시문은 현재 행방불명이었다. 제국에 있는 것으로 추측되어 알아보았지만 그의 흔적은 제국 내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뭐 그런 재미없는 이야긴 됐고, 어서 가요. 서방님. 하루는 짧다고요.”

마하임은 시아라의 팔에 끌리다시피 알타베르나의 상업 구역으로 향했다.

알타베르나의 상업 구역은 알타베르나 종합 대학이 생기면서부터 같이 커온 종합 물류 유통 단지로서, 단순한 시장의 역할을 넘어선 일종의 중계 무역 시장이었다.

대륙의 내부의 상인들과 해상을 근거지로 둔 국가들, 그리고 동방의 상인들까지 이곳은 그 3개의 세력이 서로 어울려 거래하는 대륙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시장이었다.

“여긴 언제 봐도 복잡하군. 무슨 길이 이 모양인지.”

마하임은 또다시 펼쳐진 미로와 같은 골목을 보고선 한숨부터 나왔다. 지난번 안나의 가게를 찾다가 길을 잃었던 기억이 다시금 마하임을 괴롭혔다.

이런 오래된 도시에 도시 계획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냥 마을이 커짐에 따라 멋대로 길이 만들어지고 없어지고를 반복한 거리인지라 길은 웬만한 던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복잡했다.

그래서 이곳의 별칭이 알타베르나의 미궁이었으니, 대륙에서도 유명하다면 유명한 곳이었다.

“뭐 어때요, 여긴 여기 나름대로 정취가 있어 좋기만 한데. 오늘은 저 시아라가 한턱 제대로 쏘겠습니다. 한눈팔지 말고 빨리 가요.”

시아라는 마하임은 머뭇거릴 틈조차 주지 않고 계속 골목과 골목으로 이어진 곳으로 끌고 갔다.

끝없이 이어진 사람들의 물결 속에 뒤엉킨 마하임은 더는 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아라의 등 뒤만 따랐다.

그러길 얼마나 걸었을까? 마하임은 눈앞에는 ‘드렁큰 타이거’라는 간판이 달린 꽤 커 보이는 주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저 술집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구조였다.

나지막한 2층 구조의 입방체 모양으로 만들어진 건물. 외장은 나무와 돌이 적절히 쓰인 구조였다.

이와 붕어빵처럼 닮은 건물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 마하임이 얹혀살고 있는 윈디의 저택이었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지요?”

“윈디 님의 저택과 너무 똑같아서요.”

“아하! 아마도 그건 저 건물도 ‘유적’이라서 그럴 거예요.”

“유적?”

“네, 고대인들의 지식이 담긴, 뭐 마장기랑 같은 계열의 건물이라 보면 되지요.”

“…….”

마하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윈디의 저택에 뭔가 특별한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설마 유적이었으리라곤 생각 못 했던 마하임이었다.

“여기에 무엇이 있습니까?”

“보다시피 제 친구가 운영하는 주점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보시면 놀라실 거예요. 사양치 마시고 들어오세요.”

시아라는 마하임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마하임에겐 이미 저항할 힘 같은 것은 없었다. 그 골목길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어휴, 우리 서방님, 인제 보니 방향치였나 보네요. 이를 어쩌나?”

“그만 놀리시죠. 길을 좀 못 찾긴 하지만 방향치까지는 아닙니다.”

발끈한 마하임이 소리쳤다. 마하임이 가장 자신이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길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방향 감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유독 좁은 골목길이 뒤엉킨 이곳과 같은 곳에만 오면 마하임은 반쯤 공황 상태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런 방향치가 되어 버렸는지는 자기 자신도 몰랐다.

“어머나 우리 서방님, 화내는 거도 귀여우시네. 자 일단 들어가실까요? 서방님~”

“…….”

마하임은 더는 화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시아라의 팔에 이끌려 ‘드렁큰 타이거’란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 * *

“어서 옵쇼!”

드렁큰 타이거에 들어오기 무섭게 들린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붉은 정장 상의에 검은 바지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웨이터였다.

“마담 테레사 좀 불러 줄래. 시아라가 놀러 왔다고 전해 줘.”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웨이터는 이 말을 남기고는 어두침침한 건물 안쪽으로 사라졌다.

곧 발 구름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사람이 한 명 튀어나왔다.

“어머머. 왔구나, 시아라. 무슨 일 있었어? 자주 좀 놀러 오지.”

아랑족 특유의 뾰족한 귀와 풍성한 꼬리가 인상적인 수인이었다.

“다, 당신은?!”

마하임의 눈동자가 커졌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확실해졌다.

그 미래에서 마하임 자신과 함께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수인족 여전사, 테레사. 그녀가 이런 곳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름 좀 바빴어. 그런데 너 요즘 또 몸매 관리 안 하구나. 이 뱃살 좀 봐.”

“꺄아악, 이놈의 계집애가 어딜 만져!”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둘을 바라보며 마하임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것은 명백히 또 하나의 기회였다. 그 미래에서의 테레사와의 첫 만남은 그 시작부터 처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국의 일방적인 침략에 테레사의 수인족 공화국은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리고 그 최후의 생존자들이 피난민을 이끌고 마하임의 윈드시크릿으로 망명해 왔던 것이다.

절망에 빠져 분노하는 수인족 최후의 왕녀의 울부짖음은 아직도 마하임의 귀에 선했다.

그렇게 수인족의 잔존 병력과 마하임의 윈드시크릿군은 연합 전선을 펼쳤다.

그리고 피를 피로 씻는 지겹고도 끔찍한 전쟁의 끝에 그녀는 장렬히 전사했다. 그것이 마하임이 알고 있는 테레사의 다가올 운명이었다.

“얘가 네 약혼남?”

“어, 뭐 그렇게 됐어.”

시아라는 부끄러운 듯 말꼬릴 흐렸다. 테레사는 피식 웃더니 마하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투회 때 정말 재밌게 봤어요. 제 이름은 테레사. 드렁큰 타이거의 안주인이죠. 그냥 마담 테레사라 불러 주시면 돼요.”

당돌하게 손을 내미는 테레사. 마하임은 이를 보고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그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미안함과 그리움. 그 미래에서의 마하임은 아무것도 테레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울부짖을 때 어깨 한 번 두들겨 줄 수 없었고, 시아라가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지자 홀로 제국의 1만 대군과 상대해야 했을 때도 무운을 빌어 주는 것이 마하임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마하임은 떨리는 손을 뻗어 테레사의 손을 부여잡았다. 온몸에 전기가 찌릿하고 흐르는 충격에 마하임은 결국 애써 참고 있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나 미안했다. 너무나 반가웠다. 이렇게 살아 있는 테레사를 설마 이곳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야말로 우연이 만들어 낸 기적, 그 자체였다.

“어라? 어이 네 서방님 운다. 미리 말하는데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손님, 울지 마세요, 왜 갑자기 우는 거예요?”

마하임이 자신의 손을 붙잡고 펑펑 울어 버리자 테레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테레사는 그 미래에서 줄곧 보던 모습, 그리고 화법 역시 똑같았다. 믿기지 않는 현실…. 마치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흠. 서방님. 뚝, 남자가 그리 쉽게 눈물을 보여선 안 되죠. 설령 그것이 미래의 인연이라 할지라도….”

무투회가 끝나고 마하임은 시아라에게 자신이 본 미래에 대해 고백했었다.

마하임은 시아라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시아라는 마하임의 말을 믿어 주었다.

마치 자신이 직접 본 것처럼 말이다. 마하임은 의아해했지만, 시아라가 자신의 말을 믿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미안합니다. 시아라. 이제 괜찮습니다.”

마하임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순간 감정에 복받쳐서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렇게라도 테레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하임은 더없이 고마웠고 또한 행복했다.

“테레사, 뭐 해? 손님 안 받을 거야?”

머뭇거리는 테레사를 향해 시아라가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테레사는 자신의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소리 좀 낮춰. 애 떨어지겠다. 얘들아, 0번 방으로 손님 모셔라.”

“예스 마담!”

우르르 몰려든 붉은 정장의 남성들은 마하임과 시아라를 안내해 주점 깊숙한 곳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커다란 발광석이 천정에 달려있는 자그마한 방이었다.

방의 양쪽엔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가 놓여 있고 중앙에는 안주와 술들이 가득 놓여 있는 테이블이 보였다.

그리고 그 한쪽 구석에는 자기 얼굴보다 더 큰 포도를 들고 있는 윈디가 허공에 멈춘 듯 날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