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마법? 아니…. 고대 유적인가?’
마법이라면 마하임이 못 느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주술의 그 기묘한 불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하륜이 사용하던 광학미체. 그걸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
마하임은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 오페라를 휘둘렀다.
부웅-!
큭!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허공이 일렁였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오페라를 통해 뭔가가 스친 것이 틀림없었다.
허공이 일렁이며 허겁지겁 뒤로 물러서는 암살자. 그 역시 마하임이 광학미체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대응하는 것을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한 명은 아닌 듯하고…. 3명인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존재감만큼은 분명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꽤 고전했겠지만, 그동안 알타베르나에서의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덕분에 기량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진 마하임이었다.
“광학미체는 통하지 않는다. 누가 뒤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오페를 치켜든 마하임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암살자로 보이는 자들의 움직임이 텅 빈 허공에서 일렁였다.
강해진 살기. 아마도 한 번에 공격해 올 모양이었다.
“어림없다, 선수 필승!”
마하임은 축지로 순식간에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가차 없이 허공을 향해 오페라를 휘둘렀다.
서걱-!
그리고 뒤이어 피가 허공에서 치솟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암살자의 목.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새하얀 마스크는 하륜의 것과 흡사했다.
“저, 정말 간파 당했나?!”
“믿을 수 없어! 광학미체가 발각되다니!”
살아남은 암사자들은 이를 보고 경악했다. 지금껏 수도 없이 암살 임무를 해 온 그들이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칫, 광학미체를 풀어! 단숨에 죽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암살자. 그들은 각자 양손에 짧은 단검을 쥐고 마하임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리고 단숨에 마하임과의 거리를 좁히는 암살자들.
“네놈들 설마?!”
암살자들은 무모하게 마하임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것은 흡사 자살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라면 암살자 한 명은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마하임 역시 다음 암살자의 공격은 피할 수 없었다.
마하임은 인상을 구기며 오페라를 휘두르는 대신 선두에 선 암살자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발경!”
퍼어억-!
내공 없는 발경이지만 마하임의 발경은 웬만한 찌르기 공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녔다.
그리고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발경을 정면에서 맞은 암살자는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암살자 역시도 같이 휘말려 뒤로 나가떨어졌다.
“조금 과했나?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마하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 명의 암살자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두 명의 암살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몸을 일으켰다.
“힘 조절은 하지 않아도 되겠어.”
마하임은 다시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암살자 두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기량 차이는 명확했다.
근접 전투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을 깨달은 암살자들은 암기로 보이는 날카로운 단검을 일제히 뽑아 들었다.
“그런 건 광학미체가 들키지 않았을 때 썼어야지.”
비웃듯 마하임은 혀를 차며 말했다. 암살자들은 일제히 마하임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소리 없이 날아드는 단검. 크게 위협적이게 보이지 않았지만, 저 단검에는 말할 것도 없이 독이 발려져 있었다. 저 단검에 스치는 것만으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어림도 없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휘두르며 간단히 놈들의 단검을 쳐내 버렸다.
나노머신으로 활성화된 마하임의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은 이미 일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어 있었기에 저런 암기 공격이 통할 리 없었다.
“다음은 뭐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암살자들에게로 다가가는 마하임. 암살자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바로 그때였다. 암살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설마?!”
마하임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 암살자들은 자신의 목에 품 안에서 꺼낸 무언가를 꽂아 넣었다.
“롤카 왕국 만세!”
암살자의 외침. 그리고 놈들의 몸이 기괴하게 불끈거리며 커지기 시작했다.
마하임은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저것은 시오니아 제국이 만든 각성제,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금단의 약물이었다.
크르르르-!
암살자의 입에서 인간의 목소리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기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살과 뼈가 으스러지며 나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암살자의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
“변태하기 전에 죽여야 한다!”
마하임은 있는 힘껏 오페라를 가장 선두에 선 암살자의 몸에 찔러 넣었다.
푸욱-
그러나 마하임의 손에 전해져 오는 감각은 이미 인간의 몸을 찔렀을 때의 느낌이 아니었다.
마하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놈들의 몸은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집 천장에 닿았다.
“망할-!”
콰아아앙-!
그리고 일어난 대폭발.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뒤로 몸을 날렸지만, 이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다.
놈들이 ‘완성체’로 변하면 가장 먼저 대폭발이 일어난다.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아군 진형으로 제국의 약물을 맞은 병사들이 돌진하면 그 자체로도 엄청난 공포였다.
와르르르-!
윈디의 저택 1/3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윈디의 저택 역시 ‘유적’이었기에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그 폭발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젠장!”
폭발에 휘말려 집 밖 수 미터까지 튕겨나간 마하임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방심하지는 않았지만 적을 너무 얕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뜬금없이 시오니아 제국의 ‘괴물’을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크르르릉!”
무너진 윈디의 저택 잔해 속에서 두 명, 아니 이젠 두 마리가 되어 버린 ‘괴물’이 꾸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녀석들의 외모는 이미 인간의 형태는 남아 있지 않았다. 눈과 코와 입은 모두 녹아 버려 형체도 남아 있지 않았고, 다른 부위도 상황은 똑같았다.
그 모습이 흡사 불가사리처럼 보여서 사람들 사이에선 저것을 ‘죽음의 불가사리’로 불렀다.
“앞으로 10년 뒤에나 볼 줄 알았는데…. 악몽을 꾸는 것 같군.”
마하임은 입속에 고여 있는 피를 뱉어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10년 뒤에나 등장할 적이었다. 그런 괴물이 마하임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키에에엑-!
두 마리의 죽음의 불가사리는 마하임의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미친 듯 기어왔다. 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끔찍함 그 자체였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이미 저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죽음의 불가사리로 변한 인간이 다시금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예를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다.
“심문을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마하임은 맹렬히 달려오는 불가사리를 향해 거침없이 오페라를 휘둘렀다.
웬만한 검으로는 상처조차 입힐 수 없는 죽음의 불가사리였지만, 오페라의 초진동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간단히 두 동강 나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꿀렁꿀렁.
기괴한 울림과 함께 두 조각 난 죽음의 불가사리가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재생한 놈들은 순식간에 4마리가 되어 버렸다.
‘아차, 실수했다…!’
마하임은 인상을 구겼다. 죽음의 불가사리는 그 뛰어난 재생력 때문에 절단은 절대 금물이었다.
놈들을 죽이는 방법은 불로 태우거나 가공할 파괴력으로 아예 날려 버려야 한다.
4마리로 불어난 죽음의 불가사리는 전과는 다르게 마하임을 천천히 포위했다.
“길게 끌어선 안 돼….”
오페라를 갈무리하는 마하임. 그리고 즉시 마나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파이어 볼, 매직 미사일, 인첸트….”
2개의 마법이 마하임의 오른손에 부여되었다. 마하임의 또 다른 히든카드인 마법장착. 그 위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었지만, 놈에게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촤아악-!
죽음의 불가사리 중 한 마리가 순간 마하임을 덮쳤다. 마하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법장착이 되어 있는 주먹을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물컹. 콰아앙!
놈의 몸에 마하임의 주먹이 박히자 죽음의 불가사리는 순간 경직하더니 이내 폭발을 일으켰다.
마하임은 재빨리 몸을 뺐지만, 오른팔 전체에 화상을 입고 말았다.
[경고, 오른팔 2도 화상 발생. 긴급 치료합니다.]
오페라의 메시지와 함께 나노머신이 즉시 마하임의 팔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상 부위가 넓어 한동안은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연…. 윈디 님이 경고한 이유가 있었군.”
그러고 보면 저 죽음의 불가사리는 뭔가 이상했다. 시오니아 제국의 죽음의 불가사리는 검은색 계열의 투박한 형태였지만, 저 녀석들은 희미하긴 하지만 붉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분열에 더해 일정 대미지를 받으면 폭발까지 추가된 놈들….
“시오니아 제국의 작품이 아니란 건가? 그럼 롤카뿐이군.”
시오니아 제국만큼이나 고대 문명의 잔재를 많이 이용한 대륙 연합의 우두머리 격의 왕국, 롤카.
그러고 보니 암살자들이 죽음의 불가사리로 변하기 전에 외친 말도 ‘롤카 왕국 만세’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롤카에서 마하임을 암살하기 위해 저놈들을 보냈음이 분명해 보였다.
“역사가 또 달라져 버렸군.”
마하임이 기억하는 그 미래의 역사에서 ‘롤카’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3년 후.
벌써 이런 괴물을 찍어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저것들부터 다 없애야겠군.”
지금 저 괴물들을 눈앞에 두고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마하임은 자세를 낮추며 남아 있는 3마리를 바라보았다.
검을 쓰면 분열한다. 함부로 마법장착을 사용하면 폭발한다.
확실히 까다로운 적이었지만 마하임이 지금껏 싸워 왔던 적에 비한다면 그리 강하지도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요는 폭발하기 전에 피해야 한다는 건가?”
마하임은 다시금 마법장착을 왼손에 부여했다. 분명 폭발할 수도 있었지만, 그 타이밍이 미묘하게 느렸다.
그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못 피할 것도 없어 보였다.
“와라, 괴물!”
마하임의 도발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3마리의 죽음의 불가사리들은 일제히 마하임을 공격해 왔다.
“오페라 x10!”
[오페라 x10 기동. 예상 유지 시간 3분]
순식간에 모든 것이 멈춘 듯 느려졌다. 이미 수도 없이 사용한 기술이긴 하지만, 아무리 써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퍽! 파팍-!
마하임의 짧은 끊어치기가 놈들의 몸에 화살처럼 박혔다. 순간 놈들의 복부가 벌어지며 날카로운 입이 마하임을 단숨에 삼켜 버릴 듯 위협했지만, 마하임은 여유롭게 뒤로 물러섰다.
쿠에에엑-!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트는 죽음의 불가사리들. 마하임은 멈추지 않고 놈들에게 달려갔다.
“죽어랏!”
힘껏 사커킥을 날렸다. 마하임의 발차기에 맞은 죽음의 불가사리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다른 2마리가 반사적으로 마하임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림도 없지!”
몸을 바짝 바닥에 숙인 마하임은 연이어 발차기와 주먹 찌르기로 죽음의 불가사리들을 뒤로 튕겨 냈다.
퍼억-! 켁-!
죽음의 불가사리는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마하임의 오버클럭으로 강화된 공격은 그야말로 발석차에서 날아든 돌에 맞는 것보다 훨씬 큰 타격을 놈들에게 선사했다.
케륵 케에엑-!
죽음의 불가사리들은 몸을 비틀며 놈들의 입이라 생각되는 배 중앙의 구멍에서 검붉은 액체를 토해냈다.
그러나 죽음의 불가사리는 저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은 마하임이 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