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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90화 (90/194)

90화

“항복하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마.”

“문답무용. 기사는 검으로 말할 뿐.”

요한은 검에 오라를 일으켰다. 비록 오라는 생명체밖에 타격을 줄 수 없었지만, 오라를 일으킴으로서 얻는 부수 효과, 근력 강화, 신체 강도 강화 등의 효과도 얻을 수 있었기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네년은 다크엘프인가? 넌 어떠냐, 항복하면 내 애첩으로 삼아 주마.”

헥사스의 말에 대꾸도 않고 아나모네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검에 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검기가 아나모네의 검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하하! 뭐, 충신이란 건가? 됐다. 모조리 죽어라!”

마장기의 주먹을 요한과 아나모네에게로 내뻗는 헥사스. 그리고 그 직후 헥사스의 마장기의 손에서 뜨거운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 화아아아아-!

그것은 마법도 정령술도 아니었다. 지금은 잊혀진 고대의 지식으로 만들어진 꺼지지 않는 불.

그 불길이 폭포수처럼 요한과 아나모네를 덮쳤다.

“오러 익스플로전!”

피할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뜸금 없는 화염 공격에 요한은 반사적으로 검에 오라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새하얀 오라의 기운이 폭발하듯 위로 솟구쳤다.

그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오라는 생명 에너지 그 자체. 생명체에게만 통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 불꽃에게는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헥사스가 뿜어낸 불꽃의 물결은 요한의 오라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헥사스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장기 에테르의 화염 방사기 공격은 강철마저 불태울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요한의 오라와 접촉하자마자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관없다. 꽤 높은 등급의 오라 사용자 같은데, 그 오러를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헥사스는 오러 유저는 아니었지만, 롤카에도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는 많았기에 오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오러 유저의 오러는 강력하지만 오래 지속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들도 비장의 카드로 오러를 사용할 뿐, 마구 난사를 하는 자는 없었다.

“큭!”

가뜩이나 뜨거운 열기에 요한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러 익스플로전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는 순간 이 용암만큼이나 뜨거운 불길은 순식간에 요한 자신과 아나모네를 덮칠 것이다.

“요한 님. 조금만 시간을 더 끌어 주시길.”

아나모네는 운기조식을 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나모네는 시아라의 아버지, 시문에게 직접 기공술을 배운 기공사였다.

물론 시아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공술이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검기로는 안 돼. 일격에 모든 것을 건다.’

현재 아나모네의 내공은 검기를 겨우 사용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검기만으로 저 괴물 같은 마장기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일격으로 승부해야만 했다. 아나모네는 자신이 모을 수 있는 모든 내공을 검에 집중시켰다.

“시현류 유도 유검술, 2식 검강(劍罡)!”

파캉-!

순간 아나모네의 검신이 박살 나며 청아한 푸른색 기가 불꽃처럼 솟아올랐다.

그것은 물리 세계 그 어떠한 것도 절단해 낼 수 있다는 전설적인 기공술, 검강.

유지 가능 시간은 고작 몇 초. 아나모네는 단숨에 헥사스의 마장기를 향해 달려갔다.

“어딜!”

아나모네의 움직임을 감지한 헥사스는 즉시 화염 방사기의 화염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검강의 기운을 실은 아나모네를 막을 수 없었다.

아나모네의 검강에 화염 방사기의 화염이 닿자 마치 물이 갈라지듯 화염이 양옆으로 갈라졌다.

“저럴 수가?!”

깜짝 놀라는 헥사스. 에테르의 화염을 가르다니,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저 다크엘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기운은 그가 타고 있는 마장기조차 단숨에 절단할 만큼 맹렬했다.

슈캉-!

화염을 가른 아나모네의 검강은 화염 방사기가 달린 마장기의 오른손을 단숨에 절단해 버렸다.

만약 헥사스가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절단된 것은 마장기의 본체였을 것이다.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은 순식간에 꺼졌다. 잘린 마장기의 팔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나모네. 과다한 내공 사용으로 인한 당장이라도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적을 베어냈다. 비록 쓰러트리진 못했지만 한쪽 팔을 자른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푸하하하하!”

마장기의 팔이 잘린 것을 본 헥사스는 갑자기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마장기의 잘린 팔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 내렸지만 헥사스는 웃고 또 웃을 뿐이었다.

“그래, 잔재주는 잘 보았다. 칭찬은 해 주지. 이 에테르의 팔을 자르다니, 대단해. 대단하고말고.”

웃음이 나왔다. 절단된 마장기의 팔에서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통증에 헥사스는 그제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헥사스는 하지 말아야 할 금기를 범했다.

그것은 바로 마장기와의 융합. 아니 정확히는 침식에 더 가까웠다.

시오니아 제국의 차세대 마장기 에테르는 미완성 실험체였다. 원래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물건이었지만, 헥사스는 자신의 몸을 담보로 에테르를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치명적이었다.

에테르는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 에테르는 헥사스를 침식해 들어갔고, 그의 몸을 마장기의 제어 장치로 일체화시켜 버렸다.

그 결과 헥사스는 인간도 기계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부글부글 끄르륵-

날카롭게 절단된 에테르의 오른팔 절단면이 들끓기 시작했다. 흘러내던 검은 액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뼈대를 이루더니 순식간에 증식해 나갔다.

뼈와 핏줄이 생겨나고 근육이 순간 만들어졌다. 그리고 뒤이어 검붉은 피부가 그 위를 뒤덮었다.

그리고 재생이 끝났다.

에테르의 오른팔은 원래의 크기, 아니 원래의 크기보다 훨씬 더 우람하고 거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시오니아 제국은 기어코 금기를 범하고 말았군요.”

하륜의 가면 속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저주받을 병기를 다시 부활시키다니, 하륜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인가요?”

저 병기 때문에 인류는 패망했다. 그리고 고향을 등지고 먼 우주로 피난길에 올라야만 했다.

아직도 그 끔찍했던 기억이 선명한 하륜에게는 지금 눈앞의 사건이 믿기지 않았다.

그 저주스러운 병기를 다시금 부활시키다니! 시오니아 제국은, 신시아 황제는 미쳤음이 틀림없었다.

“자, 클라이맥스다! 네놈부터 죽어라!”

마장기 에테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방금 전만 해도 둔하고 기계적인 딱딱함이 느껴졌던 에테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부웅-!

순식간에 요한과 거리를 좁힌 마장기는 재생된 육중한 주먹을 휘둘렀다.

쩌억!

채앵-!

요한은 이를 악물고 에테르의 주먹을 검으로 튕겨냈다. 다행히 튕겨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요한의 팔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히 골절되고 말았다.

“피, 피하십시오. 저건 이길 수 없습니다!”

아직도 검강 사용의 대미지를 떨치지 못한 아나모네를 향해 요한은 외쳤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아나모네는 전투 불능. 그의 부하들 역시 저 마장기, 아니 저 괴물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곳을 사수해야만 했다. 그가 지금 쓰러지면 윈드시크릿은 끝이었다.

으드드득-!

요한은 부러진 팔뼈를 원래대로 맞추었다. 그리고 오러를 일으켜 자연 치료를 촉진시켰다.

오러를 이용한 치료는 효과는 있었지만 노화를 촉진시켜 명을 단축시킨다. 그래서 오러 유저라면 그 누구라도 사용하기 꺼려 하는 기술이었지만, 지금의 요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법 근성은 있는 놈이구나. 하지만 인간 주제에 마장기와 상대가 될 것 같은가? 더욱이 이 에테르 앞에서!”

“상관없다. 윈드시크릿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상대해 주마.”

오러를 한껏 끌어올린 요한은 자신의 검을 치켜들었다.

각오는 했다.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요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그 미래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바로 기사의 긍지였고 요한의 신념이었다.

“변방의 기사 나부랭이가 입만 살았구나!”

더는 대화할 가치가 없었다. 헥사스는 이미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에테르를 움직였다. 그리고 있는 힘껏 요한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쩡!

요한은 반사적으로 검을 치켜들며 헥사스의 공격을 흘렸다. 그러나 무려 5톤이 넘는 마장기의 공격을 흘리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요한의 검은 일순간 산산조각 났고, 그의 몸은 맞은편에 위치한 망루까지 튕겨 날아갔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망루의 벽에 부딪힌 요한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일격에 즉사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요한은 살아 있었다.

“요한 님!!!”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나모네는 요한을 향해 달려갔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요한은 피를 울컥 토했다. 갈비뼈가 부러지며 폐를 찌른 모양이었다.

“도, 도망…. 저건 못 이깁니다….”

“시, 싫습니다. 저 혼자선 아무 곳도 안 갑니다.”

다시금 검에 내공을 흘려 보내는 아나모네. 온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이미 그녀의 내공은 바닥난 상태, 언제 주화입마에 빠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나모네는 멈추지 않았다.

“이 몸이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전 싸울 겁니다.”

단지 마하임이 자신의 루, 주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때 인간 따위, 인간의 마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윈드시크릿에 오기 전, 그녀에게 소중한 것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오고 난 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킬 겁니다. 이곳이 제가 살아가야 할 곳이기에.”

슈하하학-!

아나모네의 검에서 폭발하듯 검기가 솟구쳤다. 그것은 검강의 기운.

주화입마 같은 것은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눈앞의 적을 물리치는 것, 그를 위해 아나모네는 검과 하나가 되었다.

파깡-!

마장기의 주먹과 아나모네의 검이 부딪쳤다. 단순 체급으로 본다면 상대가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아나모네는 버텨냈다.

“하하핫 놀랍군. 정말 대단해! 노예나 딱 어울릴 다크엘프가 내 주먹을 막다니! 그런데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헥사스는 아나모네를 비웃었다. 그녀는 필사적이었지만, 그 필사적인 몸부림은 헥사스에게는 닿지 않았다.

제아무리 검강이라고 하지만, 헥사스와 융합한 에테르의 표면 장갑에 약간의 균열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됐다. 유흥은 끝났다. 약속한 대로 모조리 찢어 죽여 주마.”

헥사스는 가볍게 에테르의 주먹을 휘둘렀다. 힘이 다한 아나모네는 끊어진 연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바닥에 처박혔다.

쓰러져 있는 아나모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는 헥사스. 그는 마장기의 거대화된 오른손으로 아나모네를 거머쥐었다.

우득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아나모네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 온몸을 뒤흔들었지만, 그녀는 차갑게 웃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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