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91화 (91/194)

91화

“고작, 이 정도인가? 네놈도 한낱 인간일 뿐이군.”

“이 다크엘프 년이! 짓뭉개 버릴 테다!”

헥사스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이 났다. 그는 아나모네를 단숨에 뭉개 버리려는 듯 마장기의 손에 힘을 주었다.

“그건 허락할 수 없다!”

그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검고 커다란 무언가가 헥사스 자신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헥사스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서걱-!

그리고 믿기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검고 커다란 무언가는 다름 아닌 마장기였다.

그리고 그 마장기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은 단숨에 아나모네를 붙잡고 있는 팔을 잘라 버렸다.

“마장기는 네놈의 전유물이 아니지.”

마하임은 싸늘하게 헥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헥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네놈! 어디서 마장기를 손에 넣은 거지?”

마하임은 대꾸도 않고 아나모네에게 다가갔다. 불행 중 다행히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요한 역시 부상을 당한 상태이긴 했지만 치명적이진 않은 듯했다.

“요한, 아나모네를 부탁한다.”

“네! 알겠습니다.”

아나모테를 안아 든 요한은 재빨리 성벽 아래 본진으로 퇴각했다. 성벽 위에 남은 사람, 아니 마장기는 마하임과 헥사스의 마장기 두 대뿐이었다.

“풋, 크하하하하!”

갑자기 폭소하는 헥사스. 그는 미친 듯 웃기 시작했다. 마하임은 그저 묵묵히 그런 헥사스를 노려볼 뿐이었다.

“킥! 그래. 어디서 주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마장기가 있다고 나의 마장기 ‘에테르’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마하임의 검에 의해 잘린 에테르의 팔이 다시금 재생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재생하는 마장기 에테르, 마하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그 미래에서 저 마장기에 희생된 반 제국 연합 병사들의 수는 산을 이룰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에테르라도 만능은 아니었다.

“헥사스라 했던가? 보아하니 이미 에테르에게 먹혀 버렸나 보군.”

에테르는 마장기이면서도 살아 있는 생명체, 즉 생체 갑옷과 같은 개념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생체 갑옷의 제어가 어렵다는 것이었고, 최악의 경우에는 탑승자를 침식해 먹어 치워 버렸다.

그래서 시오니아 제국군들 사이에도 혐오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고 살아 있는 관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지?! 에테르는 극비일 텐데!”

“글쎄, 네놈 같은 잡졸이 사용할 정도면 극비랄 것도 없지.”

대놓고 도발하는 마하임. 아무리 자신도 마장기를 타고 있다고는 하지만 헥사스의 에테르와 비교한다면 모든 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 마장기는 시문에게 한 번 파괴당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마장기였다.

안나의 도움으로 응급 처치는 했지만 언제 멈춰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대로는 못 이겨. 에테르를 폭주시켜야만 이길 수 있다.’

벌써 마하임의 마장기에는 이상 징후를 알리는 붉은 램프들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많지 않았다.

“뭐 좋아. 너무 쉬워도 재미없으니까. 마장기에도 급이 있다는 걸 네놈의 몸에 새겨 주마!”

헥사스의 마장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하임의 마장기 역시 전투용으로서는 절대 밀리지 않았지만, 헥사스의 에테르는 움직임부터 달랐다.

3미터가 넘는 거구가 움직이는 데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점점 다가오는 에테르.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시간을 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다.’

모든 상황이 불리했다. 시간을 끌어야 에테르에게 이길 수 있었지만, 지금 마하임이 타고 있는 마장기 또한 운용 시간에 제약이 있었다.

무엇보다, 헥사스의 에테르는 마하임의 마장기와 본질적으로 스펙 차이가 확연했다.

쾅-!

소리 없이 움직이던 에테르는 땅을 박차고 마하임에게 돌격했다. 마하임은 재빨리 반응했지만, 그의 마장기는 생각한 것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콰직!

에테르는 그야말로 한 마리의 짐승처럼 마하임에게 달려들었다. 마하임은 필사적으로 마장기의 몸체를 비틀어 에테르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헥사스는 에테르의 팔을 날려 버린 마하임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마장기 한쪽 팔을 뜯어내 버렸다.

“쉽군. 너무 쉬워. 크하하하하!”

마장기의 팔을 뜯어낸 헥사스는 광소했다. 에테르가 특별한 마장기라는 것은 헥사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쉽게 다른 마장기와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줄지는 몰랐다.

“자, 날 즐겁게 해다오! 마하임!”

헥사스는 에테르를 마치 수족처럼 사용하며 마하임의 마장기를 농락했다.

마하임은 필사적으로 방어해 보았지만 마장기 자체 스펙상 에테르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쾅! 퍼억!

외부 장갑이 부서져 내렸다. 남아 있던 한쪽 팔 역시 날아가 버렸다.

몸체와 다리만 남은 마하임의 마장기. 하지만 마하임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 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던가! 이렇게 쉽게 진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퍼억-!

방어도 없이 무차별 공격하던 에테르를 향해 마하임은 회심의 발차기를 구겨 넣었다.

마장기의 다리 역시 성하지는 않았지만,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마하임은 놓칠 수 없었다.

“오오! 대단해. 대단하고말고. 감히 이 몸에게 공격을 했다는 거냐?”

건들거리며 헥사스는 마하임에게 다가왔다. 에테르의 침식이 가속화되면서 헥사스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몸이고 어디까지가 에테르인지도 구별하지 못했다.

“마음에 들어! 정말 마음에 들어! 이제부터 주욱 나랑 놀자. 절대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크큭 크으윽.”

점점 붕괴되어 가는 헥사스의 자아. 엄청난 두통이 순간 그의 머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헥사스의 뇌까지 에테르가 침식해 들어왔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난 아직 죽을 순 없단 말이야!”

본능적으로 헥사스는 에테르에 저항했다. 몸을 비틀고 에테르의 외장 장갑을 뜯어낼 듯 팔을 휘저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몸은 이미 에테르에게 먹혀 버린 지 오래. 남은 것은 뇌가 전부였다.

‘지금이다!’

마하임은 타고 있던 마장기에서 튕겨지듯 내렸다. 이미 그의 마장기는 반파된 상태. 더는 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안나에게서 빌려온 대검을 치켜들었다.

“원한은 없지만 죽어라, 헥사스!”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이번에 못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하임은 오버클럭의 모든 힘을 다 끌어내 힘껏 에테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발악하던 헥사스, 아니 에테르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어깨서부터 허리까지 에테르는 일격에 두 조각으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쿵-!

마하임은 숨을 몰아쉬며 두 조각이 난 에테르를 바라보았다. 그야 말로 천운이 따라 줬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폭주한 에테르가 한 대가 1만의 병사를 섬멸한 기록도 있었다. 그 에테르를 마장기의 힘도 아닌 마하임 자신이 쓰러트렸다니, 자신이 한 일이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마하임의 승리를 확인한 윈드시크릿의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제야 마하임은 지금의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이길 줄이야….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주님.”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하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하임과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에테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하임 님! 뒤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륜의 목소리를 들은 마하임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하임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쩍 쯔어억!

두 조각 난 에테르에서 검붉은 액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 액체는 조각난 에테르의 몸체를 순식간에 하나로 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대응할 시간도 없었다. 마하임은 그저 눈앞에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크아아아-!

조각난 몸이 하나로 이어진 에테르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라도 하듯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마하임의 몸을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떨려고 하지 않아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본능은 도망치라고,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마하임에게 물러날 곳은 없었다.

‘후우, 침착하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폭주한 에테르를 상대로 승산은 희박했다. 시오니아 제국에서 폭주한 에테르를 제압하기 위해 마장기 백 대가 동원되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런 에테르를 혼자 상대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

“오페라 x12!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순 없다!”

[명령 확인. 오페라 x12 발동. 유지 가능 시간 60초]

언제나처럼 오페라의 목소리가 마하임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1분.

전력을 다해 에테르를 제거한다. 마하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을 뗐다.

“축지!”

단숨에 축지로 에테르와의 거리를 좁힌 마하임. 그리고 무영장으로 파이 볼을 주먹에 인첸트시켰다.

“발경!”

쿵!

마법장착과 발경을 동시에 시전하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 물론 그 반동 역시 배가 되어 팔이 부러질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펑-!

케에엑!

마하임의 주먹이 에테르의 배를 강타하자 강렬한 폭음과 함께 에테르가 밀려났다. 그리고 에테르의 배에는 검붉은 액체가 울컥 쏟아졌다.

일반적인 마장기는 기계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에테르는 문자 그대로 하나의 생명체. 괴물이라고 불리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칫, 역시 큰 타격을 줄 순 없나?”

보통의 인간이 맞았다면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렸겠지만, 에테르에게는 겨우 상처를 조금 냈을 뿐이었다.

으드득.

마하임은 빠져 버린 어깨 관절을 다시 맞추어 넣었다.

오버클럭과 시현류, 거기에 마법장착까지 동시에 사용하자 마하임의 몸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의 몸속의 나노머신 덕분에 고통은 심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몸에 데미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한 번, 무리를 해도 두 번뿐.’

이미 마하임의 오른팔은 정상이 아니었다. 나노머신이 즉시 치료에 들어갔지만, 발경에 마법장착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은 앞으로 한 두 번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더욱더 큰 문제는 굳은 듯 멈춰 서 있던 에테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르르르르.

에테르의 움직임은 기계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야수를 보는 것만 같았다.

마하임의 공격에 의해 생긴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천천히 마하임을 노려보는 에테르, 그 순간 놈이 움직였다.

“망할!”

마하임은 오버클럭까지 사용하고 있었지만 순간 에테르의 움직임을 놓쳤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그극!

반사적으로 검을 치켜드는 마하임, 그 순간 에테르의 주먹이 마하임의 검을 날려 버렸다.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라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젠장. 젠장!”

마하임은 식은땀이 절로 났다. 아직 에테르의 본격적인 공격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적의 움직임조차 볼 수 없다니,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빈틈을 보여선 안 돼.”

에테르와 직접 싸워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놈의 앞에 서자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미 저건 헥사스가 아니라 한 마리의 짐승이라는 것을.

에테르는 마치 늑대처럼 마하임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며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살의. 마하임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세에서마저 밀리면 돌이킬 수 없었다. 마하임은 어금니를 악물며 에테르를 노려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