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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93화 (93/194)

93화

“후우, 어쩔 수 없죠. 시오니아 제국의 향방은 저도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륜이 풀어 놓은 정보원들이 전해 오는 시오니아 제국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였다.

모든 국가 간 전쟁은 어떤 이유든 간에 명분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시오니아 제국은 그런 것에 상관하지 않고 최근에는 선전 포고도 없이 타국에 쳐들어가 일방적인 학살을 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시오니아 제국의 병사들이 지나간 곳에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럼 언제 돌아가나? 루….”

아나모네가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마하임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1주 정도는 시간이 있을지도.”

윈디에게 일단 이야기를 해 뒀기에 아직 시간은 있었다.

신시아 황제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알타베르나에 잡아 두려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알 길이 없었지만, 지금은 따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럼 일단 축제다! 우리 영주님이 오셨으니까!”

세실이 외쳤다. 마하임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이번 일도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했다.

* * *

시오니아 제국의 수도 시온. 사계절 내내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이곳은 제국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다.

한여름에도 폭설이 내리는 이곳은 사실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적당하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제국의 중심부가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고대인의 도시가 이곳 지하에 묻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충-!”

시온 중앙에 위치한 황성(皇城) 안. 시문은 삼엄한 경비를 지나서 지하 고대인의 유적지로 이어지는 통로를 걷고 있었다.

수십 명이 넘는 경비들 중 그 누구도 시문을 막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시문이 멈춘 것은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 앞이었다.

“충-! 어디로 가십니까? 시문 님.”

“지하 발굴장. 황제 폐하께서는 그곳에 계시나?”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완전 무장한 황제 직속 호위 부대 엠페러 포스가 답했다.

여기부터는 절대 보안 구역. 설령 재상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접근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시문만은 예외였다.

쿵!

육중한 충격음과 함께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지하 발굴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였다. 이것 역시 고대 유적이라 정확한 작동 원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문은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향했다.

쿵-!

다시 한번 충격음이 울렸다. 그리고 시문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시문은 굳은 얼굴로 묵묵히 서있을 뿐.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쯤 흘렀을까? 엘리베이터는 움직임을 멈췄다.

[메트로 바이오 테크놀로지 연구 센터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본 연구 시설은 Z등급의 극비 시설이므로, 해당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지금은 잊혀진 고대인의 언어가 흘러나오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보인 광경은 거대한 공동(孔東)이었다.

높이는 족히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고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넓이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그 동공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탑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충-!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엠페러 포스 한 명이 시문에게 다가왔다. 시문이 고개를 끄덕이자 엠페러 포스는 시문을 동공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구조물로 시문을 데려갔다.

“제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황제 페하는 저 건물 안에 계십니다.”

이 말을 남기고 엠페러 포스는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시문은 엠페러 포스의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그이 눈앞에 붉게 빛나는 검은색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렸다. 시문.”

소리 없이 나타난 신시아 황제. 그녀는 몸에 착 달라 붙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시문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하지만 시문은 황제를 보았음에도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말했다.

“목표는 달성했다. 허나 실험은 실패했다.”

“아아, 역시나 그랬었군. 롤카의 꼭두각시는 어떻게 됐지.”

“폭주해 스스로 먹혔다.”

“거짓말.”

고개를 가로젓는 황제. 황제는 시문의 무표정한 턱을 스치듯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 애송이, 마하임이라고 했던가? 또 그 녀석 짓이지?”

대외 활동을 하는 제 인형이 만나 봤던 마하임. 그가 계속 거슬렸다.

알타베르나에 묶어 놓긴 했지만 윈디의 간섭으로 실험은 엉망이 되었을 터.

황제의 물음에 시문은 침묵했다. 그러자 황제는 고개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기적을 믿지 않아. 하물며 AI와 손잡은 통합 지구군의 히든카드라면 더욱이.”

“그럼 왜 그를 죽이지 않나?”

시문은 황제의 말에 반문했다. 그의 행보는 시문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하임은 그들의 목표에 걸림돌이 되는 명백한 적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이상하게도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보험이랄까? 아무리 나라고 해서 100% 승리하리라는 보장은 없거든.”

피할 수 없는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그 걸림돌이 의외의 결과를 이루어 낼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고 여기까지 왔던가?

이제는 결말을 낼 때였다. 그리고 그 결말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황제였다.

“관심 없다. 난 그저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시문은 뒤돌아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어둠의 동공을 거슬러 걸어갔다. 황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네 소원은 이루어 질 거야.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끝은 다가오니까.”

* * *

알타베르나의 방학이 끝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여곡절 많았던 방학이었다.

윈드시크릿의 설탕무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롤카를 물리친 윈드시크릿에 테클을 걸 만한 국가는 이제 시오니아 제국뿐.

다행히도 시오니아 제국에서는 별 말이 없었다. 물론 그것이 언제까지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역시나 돌아오지 않았구나.”

지금 마하임의 걱정은 단 하나. 시아라가 방학이 끝났는데도 알타베르나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짐작이 가는 바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마하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이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다였다.

“근데 이 수업은 대체 뭐지?”

교실 안에는 백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알타베르나의 수업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수업을 학점에 맞게 자유롭게 골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수업은 알타베르나의 학생이라면 무조건 들어야 하는 유일한 필수 과목이었다.

심지어는 이 과목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마하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하임 님도 이번에 이 과목 들으시나 봐요.”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 그는 다름 아닌 안나였다. 안나는 마하임 옆에 앉으며 활짝 웃었다.

“네. 졸업을 하려면 일단은 무조건 이수해야 된다고 들어서요.”

“하아, 그러게요. 사실 저 이 과목을 이수 못 해서 벌써 3번째 듣고 있어요.”

“네에?”

마하임은 반문했다. 안나는 노옴일족답게 머리가 좋아서 거의 모든 과목에서 상위권을 석권하고 있었다.

그런 안나가 이수를 하지 못해 3번이나 다시 듣는 과목이 있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못 들으셨어요? 이 과목에 대해.”

“네….”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지는 게 좋을 거예요. 아무리 마하임 님이라도 쓴맛을 보기 딱 좋은 과목이니까요.”

인상을 찡그리며 안나는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하임은 왜 안나가 인상을 구겼는지 알 수 있었다.

“안녕하다요?! 제군들.”

갑작스럽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윈디였다. 윈디는 언제나 그렇듯 쾌활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익숙한 얼굴도 있긴 한데 일단 내 소개를 하겠다요. 내 이름은 윈디. 알타베르나의 명예 교수다요.”

웅성거리는 학생들. 학생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 대부분이 이 과목을 두 번 이상 수강했었고, 심지어 6번째 재수강을 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 과목을 패스하지 못해 졸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이 과목을 패스 못 하면 절대 졸업하지 못하니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요.”

“네….”

학생들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족도 성별도 모두 가지각색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어두웠다.

대체 어떤 과제를 내주기에 저런 것일까?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자,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수업은 조별 과제가 나간다요. 각 조는 운명 공동체. 과제를 이수하지 못하면 모두 탈락이다요. 자, 그럼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은 같은 조다요.”

윈디는 차분하게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첫 조가 짜여졌다. 조별 과제 같은 것은 다른 과목에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마하임이 속한 조의 편성이었다.

“마하임, 안나, 샤오랑….”

…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안나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샤오랑은 무투회에서 싸워도 봤고 그녀의 고향에 직접 가 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마지막 한 사람이었다.

“루다크다요. 그럼 다음 조를 호명하겠다요.”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루다크라면 훗날 시오니아 제국 제일검, 아니 무투회에서 밝혀진 그의 진짜 정체는 생체 병기였던 것이다.

“크큭!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사실이었군!”

마하임에게 다가온 루다크는 피식 웃었다. 겉보기에는 일단 보통의 인간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마하임은 웃기지도 않는 이 사태에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았는데?”

“보다시피 돌아왔다. 기대해라, 네놈은 꼭 내가 죽여 줄 테니.”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루다크. 마하임은 어처구니가 없어 순간 머릿속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마하임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윈디를 향해 외쳤다.

“질문 있습니다.”

마하임의 갑작스러운 외침에 조 편성 중이던 윈디는 말을 멈추고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뭐냐요?”

“조 편성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만.”

“내 마음대로다요. 참고로 조는 절대 안 바꿔 줄 테니 그리 알라요.”

단칼에 마하임의 말을 자르는 윈디. 할 말을 잃은 마하임은 그저 우두커니 서서 윈디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자 윈디는 그런 마하임을 보고 말했다.

“왜. 불만 있다요?”

반문하는 윈디의 말에 마하임은 긴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저 님프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마하임이 잘 알았다.

자포자기한 듯 마하임이 자리에 앉자 눈치만 보던 샤오랑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뭔가 우리 조 분위기가 참 싸하구려.”

“흥! 영광인 줄 알아라. 시오니아 제국 제일검 나 루다크와 같은 조가 된 것을.”

“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사람이랑 같은 조가 되어 버린 것 같소.”

식은땀을 흘리는 샤오랑, 시오니아 제국 사람들은 뭔가 특이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저 루다크라는 사람은 특히 더한 것 같았다.

샤오랑이 입을 닫자 다시 분위기는 급격히 썰렁해졌다. 모두의 눈치를 보던 안나가 마지못해 입을 뗐다.

“안나예요. 보다시피 노옴족이고….”

“알고 있소. 저도 무투회에서 그대의 모습을 봤소이다.”

샤오랑의 말에 안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버렸다. 무투회에서 자신을 봤다는 것은 마하임에게 고백했다는 것도 봤다는 이야기였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칼부림이 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마하임과 루다크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근데 우리 조…. 이대로 괜찮겠소?”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마하임과 루다크를 본 샤오랑은 말했다.

안나는 그저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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