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샤오랑 님. 설마 일부러 잡힌 건 아니겠죠?”
“무슨 그런 농담을! 부적을 깜박 잊고 챙기지 못했을 뿐이오!”
샤오랑은 그렇게 외쳤지만 부적술사가 부적을 깜빡했다니, 마하임은 이를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강시술은 둘째 치고 부적술만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라 제아무리 루다크라고 하더라도 간단히 잡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절대 금전적 거래라던가 그런 것은 없었소!”
“…….”
대충 짐작은 갔다. 샤오랑의 집안은 지난번 사건에 사실상 망했다. 집에서 받던 돈이 끊어지자 용돈이 궁했던 샤오랑을 루다크가 포섭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그,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 닥치고 나를 이겨 봐라. 그럼 미션이든 노예든 뭐든 하마!”
“시오니아의 키메라와 싸울 생각은 없다만.”
시아라는 간단히 제압했지만, 키메라를 상대하는 건 지금의 마하임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나의 힘은 대부분 봉인된 상태다. 정정당당하게 권으로만 승부하자!”
“네놈 입에서 정정당당이란 말이 나오다니 의외군.”
“닥쳐!”
화가 난 루다크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시아 황제의 명으로 다시 알타베르나에 온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하임을 보호하라니,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명령인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좋다. 나도 졸업은 해야 하니, 내가 이기면 군말 없이 따른다고 약속해라.”
“당연하지. 승부다!”
주먹을 불끈 쥐는 루다크. 마하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 싸움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체력적이나 체급이나 그 어느 쪽도 마하임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루다크를 믿을 수 없었다.
루다크는 누가 뭐래도 마하임의 적이었다. 지금은 일개 학생에 불과하지만 다가올 미래, 마하임의 최대 라이벌이 될 인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죽여 두는 게 최고의 판단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졸업은 물 건너간다.
거기다 시오니아 제국의 눈 밖에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지금은 가까이, 될 수 있으면 마하임의 손안에 두고 싶었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고 했던가?’
여기서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 마하임은 땅을 박차고 루다크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루다크에 비해 리치가 짧은 마하임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접근전을 펼쳐야만 했다.
“훗, 이 정도의 공격쯤이야!”
루다크는 양팔로 가슴을 가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마하임이 노리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퍼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루다크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마하임의 로우킥이 그대로 루다크의 오른쪽 허벅지 안쪽을 강타했던 것이다.
아무리 근육으로 잘 단련되었다 하더라도 허벅지와 같은 곳은 약하기 마련. 마하임이 이를 간과할 리 없었다.
하지만 이 공격은 다음 공격을 시작하기 위한 발판에 불과한 것이었다. 마하임은 휘청거리는 루다크의 무릎을 밟고서는 돌려차기로 카운터를 날렸다.
빡!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타격음과 함께 루다크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마하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루다크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째서. 방어는 완벽했는데!”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루다크의 코에서는 검붉은 피가 끊임없이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얼얼한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피….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툭 튀어나온 코뼈. 아마도 마하임의 이 일격 때문에 코뼈가 탈골된 것 같았다.
“생체 병기로서의 힘을 봉인한 넌 아무것도 아니다. 어차피 그 근육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너의 뻔한 움직임을 간파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
마하임의 도발에도 루다크는 아무 말도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부러진 코를 단숨에 바로 잡았다.
“하하, 좋아, 좋아. 이 정도는 해 줘야 싸울 맛이 나지.”
루다크는 전혀 대미지가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마하임에게로 몸을 날렸다.
“그런 공격은 안 통한다 했을 텐데!”
달려오는 루다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마하임. 그러나 루다크는 마하임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으로 주먹을 내지르는 루다크.
퍼, 퍼억-!
마하임도 루다크도 서로의 공격을 피할 순 없었다. 각자의 얼굴에 주먹이 내리꽂힌 둘.
“제법이군. 루다크.”
“흥. 이제부터 시작이다!”
루다크는 마하임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섰다. 루다크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암흑투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보아할 때 정말 능력이 봉인된 듯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상대는 시오니아 제국의 제일검이라 불릴 강자였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루다크는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부웅-!
키 190의 장신에서 나오는 파워는 이능력이 없더라도 살인적인 파워를 자랑했다. 더욱이 바짝 붙어 있는 상태에서 날린 주먹은 피할 수조차 없었다.
마하임은 순간 몸을 웅크리며 양팔을 교차해 크로스 가드 형태를 취했다.
콰득-!
“으흑!”
순간 마하임은 팔이 부러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비록 방어는 완벽했지만,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는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마하임은 팔을 움켜잡고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걸 막다니, 역시 내 라이벌.”
“시끄러워! 누가 라이벌이라는 거냐!”
발끈한 마하임은 외쳤다. 순간 오버클럭을 사용해야 하나 하고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루다크도 자신의 힘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만 사용한다니, 왠지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싸움에 정정당당이라니 우습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자신도 능력을 사용치 않고 싸워 보고 싶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 오버클럭 없이 어느 정도 싸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하임은 자세를 낮추었다. 오버클럭이 없더라도 마하임에게는 시아라에게서 배운 시현류의 무예가 있었다.
“축지!”
땅을 박차는 마하임. 마하임은 순식간에 루다크와의 거리를 줄였다.
“흥 또 그 기술이냐?! 당하지 않는다!”
루다크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옆으로 피했다. 축지의 가장 큰 단점은 갑자기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목표를 잃은 마하임.
“잡았다!”
힘찬 기합과 함께 루다크는 마하임을 향해 자신의 체중을 실은 묵직한 주먹을 내질렀다.
부웅-!
그야말로 살인적인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
마하임은 가볍게 허리를 숙이는 걸로 간단히 루다크의 공격을 피했다.
“같은 공격이 두 번 통할 거라 생각하나? 그리고 힘이란, 이렇게 쓰는 거다.”
마하임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순식간에 그의 품으로 파고든 마하임은 루다크의 멱살을 잡고 단숨에 그를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쿵-!
그의 거대한 덩치는 마치 거짓말처럼 허공으로 치솟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어서라. 루다크. 원대로 제대로 싸워 주마.”
“칫, 두말하면 잔소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루다크는 몸을 일으켰다. 단숨에 마하임을 부숴 버릴 듯 연이어 공격을 날리는 루다크.
압도적인 체급에서 나오는 루다크의 파워라면 한 방, 한 방만 제대로 맞출 수 있다면 이 싸움은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걸 마하임이 맞아 줄 리가 없었다.
“동작 하나 하나가 너무 크다. 그런 기술로는 파리도 못 잡을걸?”
마하임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루다크의 조잡한 공격을 간단히 피해 버렸다.
그러나 피하기만 해서는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마하임은 루다크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순간 그의 복부로 파고들었다.
“기다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루다크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하임이 접근하자 돌연 움직임을 멈춘 루다크는 자신의 억센 손으로 그를 덥석 잡아 버렸다.
“흐흐흐, 끝이다!”
루다크는 마하임을 양손을 잡고 번쩍 들었다. 아니 들려고 했다. 그러나 마하임은 땅에 박힌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루다크는 온 힘을 다해 마하임을 들어 올리려고 해 보았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천근추(千斤錘)라는 거다. 익힌 지 얼마 안 됐지만, 이런 마술도 부릴 수 있지.”
“흥! 네놈은 광대냐?! 그런 건 서커스장에서나 하라고!”
뒤로 재빨리 물러서는 루다크. 아무리 봐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을 듯 했다.
“비록 암흑투기를 봉인당했어도, 나한테도 남아 있는 카드 한 장 정도는 있다!”
그는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바로 그때였다. 루다크의 터질 것만 같은 근육들이 그에 호응하듯 일제히 팽창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고 근육에 이어 그의 신장까지도 급격히 커져 갔다. 뒤이어 루다크는 얼굴마저도 마치 악귀가 연상될 정도로 험하게 변해 갔다.
변화는 이내 끝났다. 3미터가 넘는 거대한 키, 그리고 그 몸을 뒤 덥고 있는 엄청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근육들.
“투체 변신술인가?”
적어도 생소한 기술은 아니었다. 무투회에서 루다크가 시아라와 싸울 때 보여 준 바로 그 기술이었다.
상대하기에 확실히 껄끄러운 기술이었지만 그렇다고 이기기 불가능한 기술은 아니었다.
마하임은 인상 하나 바뀌지 않고 루다크에게 다가왔다. 그런 마하임을 바라보는 루다크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비록 대부분의 힘을 봉인당해 투체 변신술 역시 완전히 사용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투체 변신술의 힘은 일반인 정도는 간단히 죽일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마하임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가운 눈빛만을 흘릴 뿐이었다.
“젠장! 그렇게 죽고 싶다면 죽여 주마!”
루다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거대해진 것만이 아니었다. 덩치가 커진 것만큼 움직임도 배 이상은 빨라진 것 같았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마하임은 그의 움직임을 따라 잡을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하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퍽!
루다크는 믿을 수 없었다. 그가 내지른 주먹은 정확히 마하임의 흉부를 직격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공격은 정확히 들어갔고 또한 힘과 스피드도 충분하리만큼 쏟아부었건만, 마하임은 미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 그의 주먹이 마하임을 가격했을 때의 느낌이란 마치 무거운 쇳덩이를 때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미완성이긴 하지만, ‘경기공’이란 것이다.”
자신과 세계를 단절시켜 모든 물리 공격을 무로 돌리는 궁극의 기술, 경기공.
시아라의 경기공과 비교한다면 발끝에도 못 미쳤지만 그 위력은 루다크의 기술을 무효하기에는 충분했다.
“이제는 내 차례다. 한번 견뎌 봐라.”
마하임은 루다크의 배에 주먹을 가볍게 가져다 댔다.
“발경(發勁)!!!”
텅!
마치 북을 두드리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루다크는 전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해야만 했다.
마하임은 힘 하나 주지 않고 그저 루다크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대었을 뿐인데, 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해머에게 직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뒤로 튕겨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격렬한 고통.
루다크는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