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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96화 (96/194)

96화

“쓰러질 수 없어. 적어도, 아직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킨 루다크. 루다크는 직감했다. 이후 한 번이 자신의 마지막 공격이 될 것이라는 것을. 루다크는 다시금 주먹에 힘을 주었다.

한 번…. 한 번이면 족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후회하기 싫었다. 루다크는 그야말로 최후의 힘을 짜내어 마하임에게 주먹을 날렸다.

“뭐, 뭐지?”

루다크는 주먹이 마하임에게 닿았을 무렵, 순간 마하임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당황한 루다크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루다크는 마하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는 경악했다. 마하임이 지금 위치한 곳은 다름 아닌, 힘껏 내지른 그의 주먹 위였던 것이다.

마하임은 마치 당연하다는 모습으로 그 위에서 루다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역시 경기공을 응용한 것이지. 자신과 세계를 일체화시켜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시현류 유도 유선술의 오의.”

“으아아악!”

루다크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러 그를 떨쳐냈다. 마하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돈 뒤, 바닥에 착지했다.

그는 주먹을 내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졌다. 맘대로 해라. 죽이든 살리든.”

자포자기하는 루다크. 마하임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루다크는 확실히 마하임의 적이었다. 그것이 앞으로의 미래. 하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걸 몸소 겪어 본 마하임은 마음을 바꿔먹었다.

“그런 건 관심 없다. 게다가 널 죽이면 난 퇴학이다.”

마하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루다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루다크는 마하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역사는 또 한 번 바뀌고 있었다.

* * *

알타베르나에서 걸어서 하루 정도 걸리는 나지막한 분지. 썰렁하기 그지없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달은 떴다.

약간은 차가운 느낌마저 드는 두개의 달, 흔히들 에다와 시다로 불리는 이 쌍둥이 달은 이미 그 빛이 절정에 다 달아 있었다.

이렇게 두 개의 달이 같은 하늘에 있을 무렵이면, 설령 밤이라도 하늘은 대낮처럼 환했다.

그러나 지금은 밤늦은 시각, 더군다나 이곳은 예전부터 나쁜 소문이 많이 도는 곳인지라 인적이 대낮에도 뜸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곳에 오늘은 웬일인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곳의 정적을 송두리째 깨고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올해 최악의 미션에 당첨된 마하임의 조였다.

“제가 조사해 온 것을 다시금 정리해 보겠어요. 우리의 목표는 500년 이상 이곳에 묶여 있다고 전해지는 지박령으로서, 영력 물리력 모든 면에서 최상의 힘을 보여 주는 영체로 판단돼요.

유감스럽게도 지난 도서관의 화재로 인한 구체적인 자료가 모두 불타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런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안나는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을 바라보며 쓴맛을 다셨다.

이 책은 시노쿠 대륙의 3대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프리드라하 저택의 눈물’이라는 희곡이었다.

원래라면 지금까지 이 지박령과 싸운 파티들의 전적, 그리고 구체적인 지박령의 능력치 등을 모두 학교 측에서 제공받아야 했지만, 관련 자료가 있던 도서관이 몇 달 전 홀라당 불타 버렸다.

덕분에 남은 자료라고는 이런 것이 전부였다.

“하! 어처구니가 없군. 그냥 죽으러 가라는 소리도 아니고 뭐 이따위 미션이 다 있지?”

루다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마하임의 결투 끝에 얻은 훈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허나 낭만적이지 않소? 죽어서도 서로를 못 잊어 아직도 이승을 떠도는 연인이라니. 본인은 이 이야기 마음에 드오.”

영환도사의 도복을 차려입은 샤오랑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실화였던 것이다.

옛날 시오니아 제국이 세워지기 이전, 이곳에는 3개의 국가가 난립하고 있었다.

이들은 늘 분쟁에 휩싸여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벌였다. 그 전쟁의 와중, 프리드라하 공국과 카오디우스 왕국이 동맹을 맺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늘 아옹다옹하던 두 왕국의 전격적인 동맹은 다름 아닌 프리드라하 공국의 공주 ‘레이 아휴아스’와 카오디우스 왕국의 ‘앤더슨 퓨리엔드’ 왕자, 이 둘 간의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도둑 연애가 사실로 드러나면서였다.

둘은 그 치열한 전쟁의 와중에서도 몰래 사랑을 꽃피우다 우연찮게 그것이 들통나 버렸던 것이다.

물론 두 왕실에서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결혼이 아니면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치는 이 철없는 왕자와 공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맹은 체결됐다. 이어진 약혼. 하지만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들의 행복을 바라지 않았다.

이 둘의 동맹에 위협을 느낀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마사이드 제국이 두 국가를 향해 선전 포고를 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피의 강이 흘렀다. 동맹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정말 선전을 했지만, 마사이드 제국의 국운을 건 총력전에 결국 밀리고 말았다.

그 결과는 처절했다. 선두에서 군을 지휘하던 앤더슨 왕자는 전장에서 행방불명. 그리고 동맹군은 거의 괴멸 상태….

프라드리하 공국과 카오디우스 왕국은 마사이드 제국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레이 공주는 절망했다. 그녀의 조국은 마사이드 제국에 처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제국의 정략결혼 요청.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지박령에게 지금까지 목숨을 잃은 사람은 기록된 것만 30여 명이 넘는다고 해요. 성직자들의 턴언데드 따위는 아예 먹히지도 않았고, 강제 퇴마 의식도 전혀 안 통한다고 하네요.”

안나의 설명은 침착하고도 깔끔했다. 역시 노옴 출신의 정보 수집을 따라갈 만한 사람은 없었다.

“샤오랑 님.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없소이다. 저도 발품을 팔아 봤지만 프리드라하 저택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불길하다고 다들 생각해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소.”

“흥, 그딴 정보는 필요 없다! 까짓거 유령 따위 이 루다크 님께서 단번에 날려 주겠어.”

기세 좋게 말하는 루다크. 그러나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그의 말처럼 간단히 끝낼 수 있는 미션이라면 AAA등급을 받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하임 도령. 도령의 생각은 어떻소?”

갑작스러운 샤오랑의 질문. 마하임은 잠시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일단 정찰 겸 가볍게 부딪쳐 보는 거 말고는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하임 역시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싸워야 하는 지박령, 즉 유령이 보통의 유령이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결정 난 것이오? 지박령의 위치라면 내가 알 수 있소.”

샤오랑은 품속에서 나침반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풍수반, 일반적으로 땅의 힘, 다시 말해 지력을 측정하는 영환도사의 장비였다.

하지만 샤오랑은 이걸 약간 개조해 영력을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나침판으로 만든 것이다.

“일단 두 곳에서 반응은 있는데, 숲 쪽이 그나마 약한 듯하오.”

“두 곳?”

마하임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 마리로도 위험한데 두 마리라니.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일단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죠. 부딪쳐 보기 전에 결론을 낼 수는 없으니까.”

마하임의 말이 떨어지자 누구 하나 군말 없이 각자의 장비를 챙겨 일어섰다.

“그거, 루다크 님 무기예요?”

그 장비들 중 가장 유독 눈에 뛰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루다크가 가지고 온 몽둥이였다.

총 길이가 적어도 2미터에 필적하는 이것은 손잡이를 위시한 모든 부분이 강철로 만들어진 듯,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루다크는 그 몽둥이를 마치 나무 막대 만지듯 가볍게 다루고 있었다.

“처음 보나? 이게 속칭 도깨비 방망이란 거다. 우하하하!”

몽둥이를 자랑스럽게 치켜드는 루다크. 마하임은 그런 루다크를 바라보고선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샤오랑은 풍수반을 들고 앞장을 섰고 나머지 사람은 그 뒤를 따랐다.

길은 갈수록 험해졌고, 알 수 없는 음울한 기운이 안개처럼 주변을 뒤덮었다.

영적인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루다크였지만 점점 진해지는 기운에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마하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숲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몸이 움츠려짐을 느꼈다.

“도착했소. 바로 이 앞이오.”

어두운 얼굴로 샤오랑이 말했다. 모두의 시선은 그녀의 시선이 닿는 끄트머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은은하게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마저도 지금은 들리지 않았다.

지독하리만큼의 적막. 그리고 그 끝에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 대단한 기운이에요. 마하임 님.”

겁에 질린 듯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안나가 말했다.

지금 그들 앞에 모습을 나타낸 이것은, 다름 아닌 플레이트 아머라 불리는 중장갑옷이었다.

“그대들은 뭔가?”

무언가 위엄마저 느껴지는 목소리. 그것은 저 갑옷에서 울려 온 소리였다.

구름 속에 잠시 모습을 감추었던 달이 때마침 그 희미한 자태를 드러냈다.

으스스한 달빛에 비친 갑옷은 검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지금도 피가 뚝뚝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란 정말 귀갑(神甲)이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의 서슬 푸름을 자아내고 있었다.

“네가 그 악령인가?”

마하임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갑옷은 아무 말도 없이 침묵했다.

음울한 기운은 터질 듯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숲 곳곳에는 그 영향으로 도깨비불까지 두둥실 떠다녔다.

“악령…. 그 악이란 무엇인가?”

갑옷은 되물었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샤오랑이 외쳤다.

“자고로 생명의 불꽃이 다하면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 아직도 현세에 미련을 못 버려 방황하며, 사람들을 살육하는 것이 악이 아니면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하겠소!”

“그대는 퇴마사인가?”

“내 이름은 샤오랑. 그대를 저승으로 보낼 영환도사다!”

양손에 부적을 꺼내드는 샤오랑. 어차피 싸움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마하임도 알았기에 망설임 없이 그의 애검 오페라를 꺼내 들었다.

“어리석은 자. 또 나의 영지를 노리는 것인가?! 이곳은 나의 마지막 영지, 나의 영지를 노리는 자! 그 누구도 용서하지 않으리라!”

귀갑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뼈만 앙상한 사람의 뼈, 속칭 스켈레톤.

핏빛으로 물든 스켈레톤은 흐느적거리면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마물이오! 한두 마리가 아닌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샤오랑이었다. 루다크 역시 자신의 몽둥이를 거머쥐며 자세를 낮췄다.

“스켈레톤 따위, 단숨에 박살내 주마!”

말릴 사이도 없이 루다크는 스켈레톤 사이로 뛰어들었다.

주, 주인님의 명을 받든다.

우리는 이 땅의 수호자….

마지막 한 명이 남더라도 지킨다….

흐느적거리며 스켈레톤은 음산한 소리로 외쳤다.

하나둘 늘어가기 시작하던 스켈레톤은 이미 30마리를 넘어섰다. 루다크 역시 스켈레톤의 수가 생각보다 많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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