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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00화 (100/194)

100화

조용한 하늘, 바람은 여전히 불어왔다. 비록 따스한 햇살은 비추지 않았지만, 초여름의 알타베르나의 공기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겨우 시간을 맞췄나?”

마하임은 숨을 고르며 애써 몸을 가누었다. 프리드라하 저택에서 돌아온 지도 벌써 3일이 지났다.

아직도 그때 다친 상처 곳곳이 쑤셨지만, 가만히 집에 누워 있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알타베르나 교문 앞,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인적이 뜸했다.

물론 오는 길은 미로와 같은 길과 사람들의 파도를 몇 번이나 뚫고 지나와야 했지만 말이다.

활짝 열린 교문을 거쳐 마하임은 곧장 학교 안으로 향했다.

널따란 운동장과 교정 사이는 약 10분. 부드러운 잔디와 가로수로 연결된 길은 마치 공원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아, 날씨만 좋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내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흐린 날씨….

기이어 빗방울이 하나둘씩 돋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마하임은 손에 쥐고 있던 가방으로 머리를 가린 채 학교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오, 마하임 공. 이제 괜찮은가?”

바로 그때 들려온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샤오랑이었다.

샤오랑 역시 프리드라하 저택에서 다친 상처가 다 낫지 않은 모양인지 얼굴 군데군데는 새하얀 천 조각이 붙어 있었다.

“자, 빨리 들어갑시다. 이래선 또 수업에 늦겠소.”

다짜고짜 마하임을 손을 잡은 샤오랑은 알타베르나의 중앙 현관으로 향했다.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 아슬아슬하게 둘은 학교 중앙현관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휴, 이놈의 비! 정말 싫소.”

물기를 털어내는 샤오랑, 공교롭게도 현관 안에는 인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수업이 시작했을 시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저기 미안하오, 별로 도움이 못 되어서….”

샤오랑은 마하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프리드라하 저택에서 그녀는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마하임 덕분이라, 샤오랑은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괜찮습니다. 저 역시 그다지 한 게 없으니까요.”

이번은 운이 좋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앤더슨을 설득할 수 있었기에 아무런 희생 없이 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었지,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 마하임은 여기에 서 있을 수 없을 터였다.

“그러나저러나 이번 수업도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말이죠.”

“흠, 본인도 이 수업은 처음이오. 애초에 윈디 님의 수업을 패스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라. 하하하.”

어색하게 웃는 샤오랑. 마하임이 이번에 들을 과목은 ‘마법창조학’이라는 생소한 과목이었다.

물론 담당 교수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마하임이 아는 것이라고는 윈디의 그룹 수업을 패스한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알타베르나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수업이라는 것뿐이었다.

“뭐 일단 가 보면 알지 않겠소.”

이렇게 말하며 샤오랑은 앞장서 학교 안으로 들었다. 마하임은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곳은 신비스러운 마나의 향취가 물씬 풍귀는 강의실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이 강의실은 여타 강의실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천정을 가득 매우고 있는 복잡한 형태의 마법진은 물론하며, 벽과 심지어는 바닥까지 수많은 도형과 수식으로 이곳은 수놓아져 있었다.

“엄청나군. 마나가 가득찬 방이라니.”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온몸을 감싸는 엄청난 양의 마나,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새로운 마법을 창조하기 위해 특별한 구조의 방이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래, 마법사 녀석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마나의 방 맞긴 하지. 하지만 난 이 방이 싫다.”

이미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루다크는 투덜거렸다. 이렇게 강력한 마나가 모이는 곳이라면,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마나의 존재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루다크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왠지 기분 나쁜 공기의 흐름뿐이었다.

“너도 이 과목을 듣는 거냐?”

“바보 녀석. 이 과목도 조별 패스 과목이다. 같이 통과한 주제에 내가 이 과목을 듣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

루다크의 말에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한 번도 힘들었는데 또다시 조별 패스 과목이라니 프리드라하 저택에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 마하임은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알타베르나의 수업이 힘들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런 식일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마하임은 벌써부터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오셨어요. 마하임 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강의실 어디엔가에서 쪼르르 달려온 안나는 활짝웃으며 마하임을 맞이했다. 안나는 여전히 귀여웠다.

특히 머리 한 가운데 뾰족이 솟아오른 뿔은 그녀의 차밍 포인트였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머리카락….”

“네, 잘랐어요. 이상하나요?”

마하임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봐서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예전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보다는 단발이 오히려 잘 어울렸다.

“다행이다. 근데, 오늘 수업은 저희만 듣나 봐요?”

“그따위 황당한 난의도의 과제를 주는데 통과할 리 있나?”

루다크는 투덜거리며 팔짱을 꼈다. 교실 안은 마하임의 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루다크의 말처럼 윈디의 과제를 통과한 조는 마하임의 조뿐인 듯했다.

“전 정말 가슴이 두근거려요. 설마 칼시엘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된다니, 꿈만 같은걸요?”

두둔을 반짝이는 안나. 그녀의 말을 들은 마하임은 깜짝 놀라 외쳤다.

“저, 정말입니까? 칼시엘, 현자 칼시엘 님이 이 강의를 하신다고요?”

“아, 마하임 님도 아시나 보네요.”

“당연하죠. 현재 기록으로 남겨진 거의 모든 마법은 사실상 그의 손에서 체계화된 거나 마찬가지. 믿기지 않지만 천 년도 넘게 살아온 전설과 같은 분이죠. 그분이 이곳의 교수였다니!”

마하임은 너무나 기뻐 외쳤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경외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칼시엘 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니, 기쁘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좋아, 이건 기회다. 내가 왜 저클래스의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마하임은 3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그래도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던 전생보다야 나은 상태였지만.

마법의 창조라 일컬어지는 칼시엘이라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파아앗-!

갑작스레 밝아지는 강의실 안. 바닥이며 천정에 가득 그려진 마법진 들이 일제히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가뜩이나 날이 흐려 어두컴컴한 실내에 마법진의 복잡한 도형에서 푸른 섬광이 쏟아져 나오자 강의실은 마치 조그마한 우주를 보는 것처럼 장엄하기까지 했다.

“또 폐강될 줄 알았는데 호오, 그래도 한 조는 패스했나 보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 마하임은 그의 모습을 보고 순간 눈을 비벼 보았다. 혹시나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푸르게 빛나는 마법진으로 둘러싸인 문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다름 아닌 여자.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꼬맹이’였다.

아무리 많이 잡아 봐도 10살. 아니 7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어린애였던 것이다.

“넌 뭐냐, 꼬맹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꼬마를 보고 루다크는 인상을 찡그렸다. 마하임은 순간 아차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역시 첫 인사는 실력 행사가 좋겠네.”

방긋 웃는 칼시엘 교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마나의 방에 있던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는 무거운 추에 깔리기라도 한 듯 바닥에 무너지듯 처박히고 말았다.

“사람이든 마나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란다, 아가야.”

부드럽게 말을 이어 가는 칼시엘. 반면 그녀가 시전한 마압(마력의 압력)에 눌려 꼼짝없이 바닥에 처박혀 있는 마하임의 일행들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신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 여기까지 하지. 내 이름은 칼시엘. 마법창조학 개론을 맡게 된 교수란다. 뭐 사실상 마법에 관련된 모든 과목은 내가 총괄하고 있으니 자주 보게 될 거야.”

칼시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압은 사라졌다. 겨우 몸을 일으키는 마하임과 그의 일행들.

“용케 기절은 안 했네. 윈디 그 녀석 다시 봐야겠어. 또 흐리멍덩한 놈들만 보낼 줄 알았는데.”

칼시엘은 만족한 듯 마하임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말은 험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인형을 보는 듯 귀여웠다.

마하임의 가슴에도 키가 미치지 않았지만 푸른색의 드레스에 그와 잘 어울리는 푸른색의 생머리.

물론 푸른색의 머리칼이란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는 색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너, 꽤 신기하네? 이름이 뭐야?”

마하임의 곁으로 다가온 칼시엘은 그를 바라보며 대뜸 물었다.

“마, 마하임입니다.”

“아아,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무투회 준우승자인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마나홀이 2개라, 너 마법 3클래스밖에 못 쓰지?”

“어떻게 그걸 아는 거죠?!”

눈을 부릅뜨고 마하임이 말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칼시엘은 마하임의 문제를 단숨에 간파하고 있었다.

마하임은 다급하게 칼시엘에게 말했다.

“해결 방법은 있습니까? 제가 상위 클래스 마법을 사용할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마하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은 마법을 쓸 수 있다지만 이전 생에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 아르케비니아에서 온갖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또한 3클래스 가지고는 마법사 취급도 받지 못하니 결국 아르케비니아에선 똑같은 차별과 멸시를 받을 것이 뻔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마하임은 상위 클래스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다.

“그 답은 내가 찾아 줄 수 없어. 언제나 답은 네 안에 있으니까 잘 찾아보도록. 어쩌면 이번 강의에서 네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들으렴.”

한결 밝아진 얼굴로 칼시엘은 말했다. 그리고 강단 중앙에 선 칼시엘은 손에 마법진을 띄웠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것.”

칼시엘 교수는 천천히 말을 이으며 마하임들을 바라보았다.

“마하임 군, 마나와 마법의 정의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렴.”

칼시엘의 말에 마하임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마나란 만물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에너지의 총칭. 그리고 이를 언력(말의 힘)으로 제어해 술사의 의지를 덧붙이는 행위를 마법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답변. 그것은 마하임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초보적인 것이었다.

“맞긴 하지만, 그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어.”

칼시엘은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양손을 좌우로 교차시키며, 자신만의 언어로 마나를 제어하기 시작했다.

“로 엘드 힐, 엔드 로 야드, 에루크.”

그녀의 마나는 이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듯한 화려함으로 일순간 마나의 방을 가득 채웠다.

“어때요? 아름답지 않나요?”

활짝 핀 백합으로 가득한 언덕. 그 옆에는 바닥까지 보일 정도의 더 없이 맑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답답한 천장으로 가로막혀 있던 하늘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더 없이 푸른 하늘이 청명한 날씨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허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지저귀는 새소리 하며, 달콤하기 이를 때 없는 꽃내음.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실존’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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