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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03화 (103/194)

103화

가르샤로 가기 전, 마하임은 먼저 윈디에게 자초지점을 설명했다.

물론 레비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일단 믿어 줄지도 의문이었고, 솔직히 마하임 자신조차 레비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르샤? 또 그 노옴들이 사고를 쳤나 보다요. 다녀오라요.”

윈디는 별말 없이 마하임의 가르샤행을 승낙했다. 너무 간단히 승낙해서 이상할 정도였다.

“올 때 선물 잊지 마라요. 가르샤는 특제 햄이 최고 인기라는데 그게 좋겠다요.”

“…저 놀러 가는 거 아닌데요.”

“가는 길에 사 오는 거다요. 꼭이다요.”

두 눈을 반짝이며 마하임을 바라보는 윈디의 모습에 마하임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마하임은 간단히 짐을 챙겨서 다른 일행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알타베르나의 정문 쪽을 향했다.

정문에는 이미 안나를 비롯한 모두가 도착해 있었다.

“애송이, 도망치지 않고 왔네?”

“하아, 너랑 말 섞을 여유 없으니 이번만은 조용히 가자.”

“뭣이?! 감히 날 무시하는 건가?”

발끈하는 루다크. 그런 루다크를 바라보며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근육 바보랑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녀야 할 것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 마하임이었다.

치익 치익 위이이잉!

바로 그때 들려온 생소한 굉음에 모두의 둘의 대화는 중단됐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차와 비슷한 무언가가 마하임이 있는 곳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저건 뭐지?”

“피, 피해야 해요!”

다급하게 소리치는 안나. 바로 그 순간에도 마차와 비슷한 무언가는 맹렬히 마하임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비공정은 어디다 두고 저 고물을 몰고 왔지? 어서 피해요!!”

안나는 허겁지겁 자리를 박차고 몸을 피했다. 마하임과 루다크, 그리고 샤오랑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르릉 그르르륵.

콰앙-!

그 마차와 같은 것은 괴성을 내뿜으며 방금 전 마하임이 서 있었던 학교 정문과 정면 충돌을 하고 난 뒤에서야 겨우 움직임을 멈췄다.

“마차는…. 아닌 것 같은데 저건 뭐죠? 안나 님.”

멈춰선 그것의 모습은 실로 기괴하기까지 했다. 마차라면 마차를 끄는 말이 있어야 할 터인데 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이 마차에는 창문 같은 것 하나 보이지 않았고, 전신을 강철로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수송용 장갑차예요. 결함이 많아서 개발 중단된 걸로 아는데, 용케 굴러다니네요.”

노우스랜드의 가르샤는 지명이기도 했지만, 노옴 일족 공동체를 뜻하기도 했다.

가르샤 일원들은 대부분 고대 인류가 남긴 유적을 발굴해 먹고사는데, 아마도 저 장갑차도 그중 하나인 듯했다.

덜컹. 끼이익-

바로 그때 장갑차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쇳소리에 마하임의 파티원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수송차 쪽으로 집중되었다.

“으아-! 죽을 뻔했네. 쿨럭쿨럭.”

장갑차의 뒷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안나만큼이나 작은 키의 노옴이었다. 하지만 이 노옴은 안나보다 나이가 많은 모양인지 목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지닌 남자였다.

“공녀님 안녕하셨습니까? 집사 해운 인사드립니다.”

안나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하는 해운. 그와 안나는 이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했다.

“오랜만이야, 해운. 근데 왜 저런 걸 몰고 왔어? 비공정은 다 어떡하고?”

“말도 마십시오. 이번에 새로 발굴한 유물이 폭주해서 가르샤의 연구 기지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진압하려고 비공정이 투입됐는데 모조리 격추당해 버려서….”

대충 들어봐도 지금 가르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꽤나 심각해 보였다.

노우스랜드에서 보유하고 있는 비공정의 수는 시오니아 제국보다는 적었지만 적어도 10대 이상은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 비공정이 전부 격추되다니, 보통 일이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그보다도 마하임 님은 누구신지?”

해운은 안나의 곁에 선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무표정하게 서있는 마하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분이셔. 근데 왜?”

“아, 지금으로선 비밀입니다. 가르샤로 가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자, 어서 타시죠?”

앞장선 해운은 자신이 몰고 온 장갑차로 향했다. 마하임은 그런 해운을 불러 세웠다.

“가기 전에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말씀하십시오. 마하임 님.”

“왜 날 지명했지? 비공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고대 유물을 내가 간다고 막을 수 있을까?”

마하임의 날카로운 질문에 해운은 잠시 입을 닫았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안나 때와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선 비밀입니다. 가르샤로 도착하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해운은 이 말을 남기고 장갑차의 뒷문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뭔가 수상하오, 마하임 공자. 그래도 가시겠소?”

그동안 입을 닫고 해운을 관찰하던 샤오랑이 마하임에게 말했다. 마하임 역시 이번 일이 뭔가 수상쩍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비의 말을 들은 이상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죠.”

마하임은 이 말을 남기고 호운을 뒤따라 장갑차에 올라탔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파티원들도 혼자 남겨지는 것은 싫었기에 마하임을 뒤따랐다.

* * *

덜컹거리는 쇳소리, 그리고 코가 따가울 정도의 기름 냄새…. 해운의 장갑차의 승차감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내부에 조명 같은 것은 존재했지만, 그 흐릿한 조명으로는 앞사람의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길은 비포장이었고 장갑차의 바퀴는 금속 재질이었기에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풍랑 속의 배처럼 위아래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큭! 더는 무리야. 우에에엑!”

장갑차를 탄 지 두어 시간 지났을까? 루다크는 더는 참지 못하고 토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참은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샤오랑, 안나까지 차멀미로 연이어 구토를 시작했다.

“해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이러다 가기 전에 죽겠어!”

“걱정 마십시오, 공녀님. 차멀미로 죽었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얼마나 더 가야 하냐고!”

“이 차의 속도로는 오늘은 무리고, 내일 저녁쯤은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해운의 말에 안나는 경악했다. 겨우 2시간을 탔을 뿐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무려 하루는 더 타야 하다니. 이건 웬만한 고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이대로는 좀 곤란합니다. 모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적당한 곳에서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정상인 마하임이 입을 뗐다. 마하임 역시 장갑차란 물건은 처음 탔지만, 이상하게도 멀미는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하임의 몸속 나노머신 시류는 마하임의 신체를 항상 완벽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컨트롤하기 때문에 멀미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여기선 못 멈춥니다. 근처에 마을도 없을뿐더러 이 장갑차는 태양광으로 움직이는 거라 해가 지기 전까지는 무조건 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일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즉, 해가 지기 전까지는 무조건 달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들은 마하임을 제외한 모두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밤까지는 앞으로 5시간 이상 남았다. 그 말은 무려 5시간 이상 이 고통을 계속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 이럴 줄 알았소. 뭔가 꺼림칙하다 했더니, 지옥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소. 우에엑!”

눈물까지 흘리며 구토를 하는 샤오랑.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위로할 수 없었다.

“썩을! 두고 보자! 칼시엘 이 꼬맹이! 감이 이런 일을 떠맡겼겠다?!!!”

분노하는 루다크의 외침이 처절하게 장갑차 안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의 외침이 이 장갑차를 멈출 순 없었다.

어쨌거나 루다크도 졸업은 해야 했고, 자신과 달리 멀쩡해 보이는 마하임을 보며 때 아닌 경쟁심이 불타올랐던 것이다.

“저 별 볼 일 없는 놈도 견디는데 내가 못 견딜 리 없…. 우에에엑!”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 다시 토하는 루다크. 그럼에도 장갑차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 * *

장갑차가 멈춘 것은 해가 서산을 넘어간 뒤였다. 멀미에 지친 마하임 일행은 차가 멈추기가 무섭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미 뱃속이 텅 비어 위액만 바닥에 토해냈다.

“죄송합니다. 이런 탈것으로 모셔서. 하지만 지금 사안이 매우 급한지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해운은 연신 사과를 했지만, 그런다고 멀미가 갑자기 괜찮아질 리 없었다. 무려 7시간 동안 극심한 멀미에 시달린 마하임 일행은 산송장처럼 축 늘어져 연신 구토를 해댈 뿐이었다.

“저쪽에 마을이 하나 보이는데 쉬어서 갑시다.”

유일하게 멀쩡한 마하임이 장갑차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을 보고 말했다.

“아, 네. 그렇잖아도 이 마을에서 쉬어 가려고 했습니다. 어차피 밤에는 장갑차를 움직일 수 없으니까요.”

마하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괴로워하는 루다크를 부축해 일으켰다.

“큭. 너한테 부축받다니, 내 평생 최고의 수치다!”

“닥치고 걷기나 해라.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럼 놔! 혼자 걸어갈 수 있으니까.”

“퍽이나. 잔말 말고 걸어. 마을이 얼마 안 남았다.”

해운과 마하임 일행은 비틀거리며 눈앞에 보이는 작은 마을로 향했다.

마을은 매우 작았다. 인가가 드문드문 있긴 했지만, 총인구가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오가는 사람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히 여관이 있어서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마을 앞에서 노숙을 할 뻔했다.

“주인장 있습니까? 방 2개 주시오.”

마을 유일의 여관에 들어간 해운은 카운터 앞에 서서 소리쳤다.

여관 안은 조용했다. 지저분하긴 했지만, 사람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영업은 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여관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느릿하게 카운터로 모습을 드러냈다.

“방은 2층, 1, 2호실을 쓰십시오.”

창백한 얼굴의 여관 주인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얼굴로 말했다. 불빛이 없었다면 좀비 같은 언데드로 착각할 정도로 그의 얼굴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디 아프십니까?”

해운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하지만 여관 주인은 대꾸도 하지 않고 처음 나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다시 찾아온 침묵.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샤오랑이었다.

“이 마을에서 사악한 주술의 냄새가 나오. 특히 방금 본 저 남자…. 살아 있는 몸이 아니었소. 강시나 혹은 그 비슷한 존재가 틀림없소.”

“확실합니까? 제가 보기엔 그냥 어디 아픈 사람 같은데….”

해운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샤오랑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니오! 우리 가문은 대대로 강시술을 연구해 왔소. 방금 본 남자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체취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인간의 것도 아니었소.”

마하임도 이 마을이 뭔가 수상쩍다는 느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다 샤오랑이 이렇게 말했다면 이 마을에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이 확실했다.

“공녀님. 어떡할까요? 근처에는 이 마을뿐입니다만.”

샤오랑의 말에 해운은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안나를 향해 말했다. 안나는 해운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마하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마하임 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여기서 묵을까요? 아님 노숙이라도 할까요.”

위험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답이었다. 더욱이 가르샤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력을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그 위험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기에, 노숙이나 이 마을에서 자는 것 중 어떤 게 더 위험한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여기서 쉬어 가죠. 마을 전체를 뒤덮을 정도의 주술이라면 노숙을 해도 피해 갈 수 없을 겁니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며 다음 행동을 생각해 봅시다.”

마하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장갑차는 밤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장갑차를 버리고 목적지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모두 멀미로 지쳐 있었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정 났으면 올라가자고. 난 더는 못 서 있겠어. 우욱!”

아직도 속이 안 좋은지 루다크는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마하임과 그 일행들은 묵묵히 2층 여관방으로 향했다. 그날 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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