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107화 (107/194)

107화

[비인가 외부 접속이 발생했다. 접근 거부. 접근 거부. 아포칼립스 시스템 작동. 해제를 위해서는 지구 연방 대통령 ‘마하임’의 생체 정보가 필요하다. 다시 한번 알린다. 비인가 외부 접속이 발생했다….]

반복되는 목소리. 연구소장은 잠시 후 이 소리를 껐다. 연구소장은 마하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구 인류의 고대어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해석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해석 끝에 우린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폭주하는 엑스칼리버를 멈추기 위해서는 마하임 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쿠쿵-!

바로 그때 연구소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건 지진이 아니었다.

“엑스칼리버가 또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역시 ‘강화 발포경화액’으로는 녀석의 움직임을 멈출 수 없나 봅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루다크였다.

“그 엑스칼리버란 녀석, 좀 볼 수 있을까? 홀로그램이라든지 그런 걸로 남겨 놨을 거 아냐?”

“유감스럽지만, 엑스칼리버는 표면에 특수한 자장이 흐르기 때문에 저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떠한 영상저장 장치에도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

다시 말하자면 엑스칼리버에 대한 사전 조사는 전혀 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마하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내가 왜 너희 도와줘야 하지? 나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마하임의 말해 연구소장은 당황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연구소장은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을 진압하면, 알타베르나에서 졸업시켜 드리죠. 이후 당신이나 당신의 영지를 시오니아 제국에서 일체 간섭하지 않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뭇 진지한 표정의 연구소장. 마하임은 그 이야기를 듣고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졸업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하면 된다. 그리고 아무리 가르샤라도 시오니아 제국을 이래라저래라 할 만큼 영향력은 없을 텐데,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군.”

날카로운 마하임의 말에 연구소장은 다시 한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연구소장은 마하임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만약 엑스칼리버의 움직임을 막아 주시면, 엑스칼리버의 매커니즘을 해석해 마하임 님의 것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귀에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엑스칼리버의 능력은 이미 마하임이 회귀하기 전 시오니아 제국이 사용하면서 증명되었다.

만약 엑스칼리버를 마하임의 손에 넣는다면, 다가올 시오니아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큰 전력이 될 것이었다.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긴 한데, 노옴은 손해 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 걸로 안다. 엑스칼리버를 나한테 넘겨 버리면 너희가 얻는 것은 뭐지?”

“우리는 엑스칼리버가 필요한 게 아니라 엑스칼리버에 사용된 매커니즘이 필요한 겁니다. 마하임 님이 엑스칼리버를 멈춰 주시면, 우린 엑스칼리버를 조사해 매커니즘의 진상을 규명해 보려 합니다. 뭐, 과학자의 숙명이랄까요?”

연구소장은 웃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마하임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는 늦든 빠르든 꼭 얻어야 할 아이템. 지금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좋다. 내가 정말 엑스칼리버를 멈출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보지.”

“좋습니다. 식사도 거의 마치신 것 같고, 함께 현장으로 가봅시다.”

쿠쿠쿵-!

연구소장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 다시 한번 방 안이 크게 흔들렸다. 흔들림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지만, 불안감은 한층 더 강해졌다.

“가시죠. 엑스칼리버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 *

엑스칼리버는 현재 지하 5층 격납고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하 5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엑스칼리버의 난동에 파손되어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8층에서 내린 뒤 지하 8층의 비상구를 이용해 지하 5층까지 올라가야만 했다.

기이이잉-

연구소장의 안내로 엘리베이터에 탄 마하임 일행들. 이렇게 큰 엘리베이터는 처음이었지만, 다들 엘리베이터는 한 번쯤 타 본 적이 있었다.

알타베르나 유일의 엘리베이터 ‘엘리’. 그 녀석은 알타베르나에서도 나름 유명했기에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쯤은 다 타 보았던 것이다. 물론 두 번 다시 타지는 않았지만….

“저기 연구소장…님. 이 엘리베이터 안전한 것이오? 계속 흔들리는데….”

겁에 질려 엘리베이터의 벽을 붙들고 안절부절못하는 샤오랑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이 엘리베이터의 하강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서 마치 허공으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진동 때문에 연이어 엘리베이터가 흔들렸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을 겁니다. 엑스칼리버가 엘리베이터 쪽 통로를 파괴하지만 않는다면요.”

“파, 파괴되면 어떻게 되지?”

샤오랑만큼이나 겁에 질려 바닥에 움츠리고 있던 루다크가 반분했다. 그러자 연구소장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도 죽겠죠. 생존 확률은 0에 무한히 가까울 겁니다.”

“큭, 그런데 이딴 걸 타고 내려가?!”

“걸어서는 하루 종일 걸릴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멈추기엔 이미 늦었고요.”

루다크는 연구소장의 뻔뻔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비는 것이 전부였다.

“괜찮을 거예요. 루다크 님. 노옴제 엘리베이터는 꽤 튼튼하답니다.”

애써 웃음을 띠며 루다크를 안심시키려는 안나. 사실 안나라고 무섭지 않을 리 없었다.

상대는 전설적인 마장기 엑스칼리버. 그 힘이 전설에서 나오는 대로라면 이런 엘리베이터쯤은 단숨에 파괴해 버릴 수 있을 터였다.

[딩동댕~ 지하 8층에 도착하셨습니다.]

영원히 내려갈 것 같은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멈췄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마하임 일행 중 누구나 할 것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저도 함께 가고 싶지만, 여기부터는 여러분끼리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안나 님이 길은 알고 있으니까 부탁 좀 드립니다. 전 상황실에서 여러분께 필요한 정보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연구소장은 금속 재질의 조그마한 기계 장치를 마하임에게 내밀었다.

“무전기입니다. 이걸로 멀리서도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마하임에게 무전기를 건네준 연구소장은 다시금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마하임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지구 연방의 마지막 대통령님.”

엘리베이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은 희미한 조명은 있었지만 그 조명으로 이곳을 모두 밝히기는 어려웠다.

어둡고 길게 연결된 통로. 그리고 그 통로에는 각각 기묘한 문자가 적힌 문들이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었다.

“가요. 마하임 님. 여기는 제가 잘 알고 있어요.”

앞장서는 안나. 마하임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지구 연방의 대통령이 뭐지?”

“어, 저도 잘은 모르지만 구 인류의 왕 같은 거라고 들었어요.”

안나의 말을 들은 마하임은 고개를 갸웃했다. 구 인류의 왕이라니. 자신은 아르케비니아에서 태어난 별 볼 일 없는 왕족일 뿐이었다.

‘확실히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레비의 말대로 라면 엑스칼리버가 마하임이 알지 못하는 그 무언가의 단서임이 틀림없었다.

“으,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럽소.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단 말이오.”

주변을 살펴보던 샤오랑은 인상을 찡그렸다. 지하 8층은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크고 작은 구역들로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 공기는 제법 맑았지만, 인적 하나 없는 통로는 당장이라도 유령이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여긴 가르샤의 유물 보관소예요. 완전 무인으로 관리되는 곳이라 좀 썰렁하죠.”

안나는 이 복잡한 길을 익숙하게 걸어갔다. 중간 중간에 큰 진동이 몇 번 더 있었지만, 아직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길게 이어진 계단으로 된 통로가 나타났다.

“이 위로 올라가면 7층 BIO 연구 센터예요.”

“BIO. 그건 또 무엇이오?”

“음, 생명공학이라고 해야 하나? 조금 위험한 연구를 하고 있긴 해요.”

바로 그때 마하임이 가지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그리고 연구소장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흘러나왔다.

“치칙- 들리십니까? 마하임 님.”

“잘 들린다.”

“7층으로 향하는 걸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7층에 바이오해저드가 발령된 게 뒤늦게 발견되었습니다.”

“저, 정말이에요?!”

가장 먼저 대답한 것은 안나였다. 안나의 아버지인 전 연구소장도 다름 아닌 7층에서 순직했다.

안나는 아직도 그 일을 너무나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독성은요.”

“공기로의 오염은 이미 멈췄습니다만, 다수의 실험체들이 폭주 중입니다. 진압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모두 연락이 끊겼습니다. 할 수 있으면 그쪽에서 해결을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마하임에게 뒷정리를 부탁한 것이었다. 7층을 지나가지 못하면 5층까지 갈 방법이 없었으므로 마하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실험체라…. 뭐 대충은 상상이 간다. 처리해 줄 테니 이건 추가 요금이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7층의 컨트롤을 회복시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드리죠.”

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하며 연락을 끊었다.

7층의 바이오 연구 센터. 그것은 헤라가 말했던 그 생체 병기 제조장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그걸 숨기다가 지금에서야 그걸 마하임에게 알린 듯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일 뿐.’

마하임이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안나는 어디선가 제법 묵직해 보이는 금속 막대 몇 개를 들고 나왔다.

“일반적으로 생화학 재해 때는 화염 방사기만 한 것이 없죠.”

그리고 안나는 화염 방사기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사용했다.

푸화화하학!

새파란 불길이 마치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 열기는 상당히 강해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마하임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필요하신 분?”

“흥, 노옴의 장난감 따윈 필요 없다.”

“저, 저 역시 처음 보는 무기는 좀 쓰기가 꺼려지오.”

“아무래도 그건 안나 님만 사용하면 될 듯합니다.”

다들 화염 방사기를 사양하자 안나는 새초롬한 얼굴로 바닥에 나머지 화염 방사기를 내려놓고 자신이 사용할 것만 집어 들었다.

“각오하시는 게 좋아요. 바이오해저드가 터지면 보통은 아주 끔찍하니까.”

안나의 경고에 샤오랑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한 마하임 일행들 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다.

그도 그럴 것이 노옴의 일반적인 키는 1미터 남짓으로 작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키를 생각해 보면 이 통로는 넓은 축에 속했다.

“다 왔어요. 여기가 7층 입구예요.”

B7이라고 적힌 붉게 색칠된 문 앞에서 안나는 걸음을 멈췄다.

문은 2m 정도 높이에 알 수 없는 재질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문 위에는 비상을 알리는 붉은 램프가 끊임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칙- 마하임 님. 문을 열겠습니다. 문 앞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지만 안쪽에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연구소장의 무전이 들려왔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뽑아 들었다. 안나는 화염 방사기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모두 긴장한 얼굴. 그리고 문이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