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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08화 (108/194)

108화

치이익-

압축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7층의 문이 열렸다.

7층 안은 안개가 낀 것처럼 연기가 자욱했다. 냄새는 고약했지만, 연기 그 자체는 수증기여서 숨 쉬는 데 지장은 없었다.

[비정상적인 생체 반응이 확인되었습니다. 개체 수 불명. 주의 요망합니다.]

오페라의 경고 메시지가 마하임의 머릿속으로 날아들었다. 확실히 이곳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하임을 선두로 천천히 전진하는 모두들. 그리고 얼마 안 가 오페라가 경고한 ‘비정상적인 생체 반응’의 장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 맙소사.”

그것은 노옴이었다. 그러나 한눈에 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온몸의 살은 녹아내려 눈도 코도 심지어는 손가락마저도 형체를 알 수 없었다.

걸을 수조차 없어 보였지만, 마치 슬라임처럼 땅바닥을 질질 끌고 다가오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와 경악의 감정을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어어어어-

마하임의 위치를 확인한 오염된 노옴들. 그 수는 수십, 아니 저 수증기 안개 너머에 더 있을지도 몰랐다.

“연구원들이에요. 바이오해저드가 발령되면서 빠져나가지 못한 것 같네요….”

안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보단 슬픔이 훨씬 더 강했다. 안나는 자신이 들고 있는 화염 방사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제 손으로 하게 해 주세요. 싫든 좋든 제 가족이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마하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는 느릿하게 다가오는 노옴들을 향해 말했다.

“죄송해요. 너무 늦게 와서…. 이제 됐으니까 쉬세요.”

안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화염 방사기를 작동시켰다. 화염 방사기의 불길은 긴 파도를 그리며 단숨에 다가오는 노옴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륵 그르르륵!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염된 노옴들. 특별한 힘이 없는 녀석들은 마치 다 타 버린 초처럼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더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해요. 놈들에게 직접 접촉하면 우리도 오염될 수 있어요.”

“컥, 그럼 저게 전염된단 말이야?”

“물리적 접촉이 있을 때만요.”

별것도 아닌 몬스터라고 내심 안도하던 루다크는 화들짝 놀랐다. 루다크는 전사였기에 적과 싸우려면 접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스치기만 해도 감염될 수 있다니…. 이건 전사에게는 큰 페널티였다.

불행 중 다행히 안나의 화염 방사기의 위력은 상당히 뛰어났기에 마하임 일행이 오염된 노옴과 직접적으로 전투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케에에에에엑-!

오염된 노옴을 거의 다 불태워 갈 무렵 안개 저 너머에서 섬찟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들은 안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안 돼. 또 금지된 실험을 하고 있었던 거야? 믿을 수 없어!”

온몸을 파르르 떠는 안나. 하지만 이내 멘탈을 회복하고 마하임에게 말했다.

“키메라예요! 모두 조심하세요! 저놈들 강합니다!”

키메라란 일반적으로 연금술로 만들어 낸 합성 생물을 말한다.

하지만 노옴은 연금술이 아닌 구 인류의 생체공학으로 기존의 생명체를 짜깁기해 진정한 의미의 키메라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케르르르….

낮은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놈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수는 셋. 소수이기는 했지만 그 압박감은 이전의 오염된 노옴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양에다 사자, 그리고 뱀도 때려 박아 넣은 것 같고. 나 참, 저런 키메라는 또 처음 보네.”

몸을 풀며 루다크는 중얼거렸다. 따지고 보면 루다크 자신도 키메라였다.

그는 시오니아 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키메라를 보아 왔기에 키메라가 그다지 생소하지도 않았다.

쿠쿵-!

바로 그때 다시금 큰 충격음이 이곳을 뒤흔들었다. 마하임 일행뿐만 아니라 키메라들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마하임의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직- 마하임 님. 긴급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엑스칼리버가 다시 폭주하면서 6층에서 5층으로 향하는 비상구가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최대한 빨리 이동해 주십시오!”

“알았다. 최선을 다해 보지.”

무전을 끊은 마하임은 모두를 향해 말했다.

“들은 바와 같이 시간이 없습니다. 단숨에 돌파해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마하임의 일행들. 마하임은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예의 초진동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간다!”

땅을 박차고 키메라에게로 돌진하는 마하임. 키메라들도 역시 망설이지 않고 마하임에게로 달려왔다.

무려 덩치가 2미터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키메라 3마리가 동시에 움직이니 루다크마저도 순간 움찔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크릉 케에에에엑!

키메라 3마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3면에서 마하임 일행을 공격해 왔다. 이렇게 되면 마하임 혼자 모두를 지킬 순 없었다.

“루다크. 맡긴다.”

“칫, 어쩔 수 없군!”

마하임과 루다크는 선두에 서서 키메라의 진로를 차단했다. 마구잡이로 달려오던 키메라였지만 본능적으로 마하임과 루다크의 강함을 느낀 모양인지 순간 움찔하며 멈춰 섰다.

“발동, 뇌부(雷符)!”

멈춰선 키메라를 향해 샤오랑은 거침없이 부적 뭉치를 던졌다. 부적은 마치 살아 있는 양 허공을 비행하더니 순간 눈부신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파지지지직-!

전뇌 계열 중급 부적술, 뇌부. 그 위력은 5클래스 체인라이트닝 마법보다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통의 인간이 공격을 맞게 되면 형체도 남기지 않고 재가 되어 버릴 정도로 뇌부의 위력은 강력했다. 그리고 그 강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뇌부의 전뇌는 다가오는 키메라를 순식간에 불태웠다.

키에에엑!

뇌부의 공격에 뒤로 튕겨나듯 물러서는 키메라들. 몸 여기저기가 그을려 있었지만, 키메라는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곧바로 재생을 시작하는 키메라.

“끈질기군! 그만 죽어라!”

선수 필승. 적이 머뭇거리는데 이를 놓칠 마하임이 아니었다. 마하임은 오버클럭과 초진동을 동시에 사용하며 가장 가까이 있던 키메라 한 마리를 단숨에 일도양단했다.

퍽!

쩌어억!!!

마하임의 검에 베인 키메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두 동강 나 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그 순간적인 움직임은 루다크조차 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별것 아니군.”

오페라의 검신에 묻은 키메라의 체액을 털어 버리며 마하임이 말했다. 이를 본 남은 키메라들은 더는 공격하지 않고 마하임을 바라보고 으르렁거릴 뿐이었다.

“뭐 해? 공격해 오지 않고. 우린 바쁘다.”

놈들이 오지 않자 마하임은 도발하듯 말했다. 키메라들은 보기보다 지능이 높은지 전처럼 무작정 공격하려 하지는 않았다.

머뭇거리던 키메라들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방금 마하임이 쓰러트린 키메라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우직 으드득-!

그 광경은 생각보다 훨씬 처참하고 역겨웠기에 안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동족 포식인가? 곧 너희도 그놈처럼 만들어 주마!”

마하임은 망설임 없이 동족을 먹느라 정신없는 키메라를 향해 돌진했다.

“응?!”

달려들던 마하임은 남은 키메라 두 마리의 모습이 급변하고 있음을 목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경 쓰이는 것은 갑작스럽게 온몸에 돋아난 가시들.

그 가시들은 순간 부르르 떨리더니 일제히 사방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망할!”

마하임은 필사적으로 오페라를 휘둘러 키메라가 쏜 가시를 쳐 냈다. 가시에 관통 당하지는 않았지만 스치는 것만은 피할 수 없었다.

마치 살이 뜯겨 나가는 고통에 마하임은 순간 의식이 희미해졌을 정도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마하임은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큭, 다들 괜찮나?”

루다크는 투체 변신술로 큰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샤오랑과 안나는 무사하지 못했다.

놈들이 비처럼 뿜어낸 가시가 어깨와 다리, 여러 곳에 박혀 버렸다.

“큭, 아악!”

“너무 아파요. 아아아!”

“제, 젠장.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한 루다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마하임은 바닥에 박혀 있는 가시를 재빨리 주워 들어 오패라에게 분석을 요청했다.

[분석 완료. 주성분은 케라틴입니다. 독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 놈의 가시에 독 같은 것은 없었다. 마하임은 뒤로 돌아 루다크에게 외쳤다.

“독은 없으니까 그냥 뽑으면 돼. 출혈에 유의하고.”

“젠장, 나 이런 거 해 본 적도 없는데….”

“닥치고 뽑아! 시간이 없다.”

가시를 다 쏘아낸 키메라의 몸에 다시금 날카로운 가시들이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놈들이 침을 쏘면 마하임 자신은 몰라도 다른 파티원들의 생명이 위험했다.

“축지!”

망설일 틈이 없었다. 마하임은 땅을 박차고 키메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키메라는 순간 방향을 틀어 방금 재생한 가시를 마하임에게로 날렸다.

퓨슉-!

챙!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마하임은 가볍게 놈의 가시를 쳐 냈다. 그리고 단숨에 자신을 공격했던 키메라의 목에 오페라를 꽂아 넣었다.

꾸엑!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오페라는 놈의 몸을 관통했다. 마하임은 발로 놈을 밀어내 오페라에서 떼어냈다.

“네놈이 마지막이다!”

마하임은 방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마지막 남은 한 마리의 관심은 마하임이 방금 죽인 키메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와작와작-

키메라는 마하임을 무시하고 죽은 키메라의 몸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구역질 나는 광경. 아마도 동족을 포식함으로써 저 키메라는 더 강하게 진화하는 것 같았다.

“또 강해지도록 놔둘 순 없다!”

마하임은 남은 마지막 키메라를 향해 오페라를 내뻗었다.

푸화악-!

오페라가 놈의 몸에 닿기 직전, 키메라의 몸에서 예전보다 더 굵고 큰 가시가 무시무시한 속도록 마하임에게 쏘아졌다.

“망할!”

마하임은 재빨리 오페라를 물리며 놈의 가시를 쳐 냈다.

촹-!

이번 가시는 달랐다. 그 크기도 컸을 뿐만 아니라 발사됐을 때의 순간 속도는 무려 음속에 가까웠다.

마하임은 가까스로 가시는 쳐 낼 수 있었지만, 그 충격을 고스라니 받아야만 했다.

커어억-!

마하임은 그대로 가시와 함께 튕겨 나와 바닥을 뒹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가시를 막았던 팔이 부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하임은 그 보통 사람이 아니었고, 그 가시를 막는 데 사용한 오페라도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하아, 하아. 더는 방심하지 않겠다.”

몸을 일으킨 마하임은 마지막 남은 키메라를 노려보았다. 키메라는 또 진화를 한 모양인지 덩치가 2배로 커졌고 꼬리가 전갈의 꼬리처럼 변해 있었다.

“이번에는 독인가?”

놈의 전갈 모양의 꼬리에는 새하얀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는 바닥에 닿자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바닥을 부식시켰다.

저 독에 맞으면 아무리 마하임이라 할지라도 치명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오페라, x12 모드!”

[오페라 x12 모드 이행. 유지 가능시간은 3분입니다.]

마하임의 대뇌 연산 속도가 나노머신 시류에 의해 급가속되기 시작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느려졌지만 이것만으로 놈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파이어 볼! 마법장착!!!”

무영창 마법장착.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마하임 최강의 히든카드였다.

팡-!

순간 공간이 진동했다. 마하임은 놈의 가시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키이이익!

키메라는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는 마하임에게 꼬리의 독을 흩뿌렸다. 하지만 독이 날아오는 속도보다 마하임의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독이 채 닿기도 전, 마하임은 키메라의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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