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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09화 (109/194)

109화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힘없이 쓰러지는 키메라. 보통의 검이었다면 즉사는 하지 않았겠지만, 마하임의 오페라는 그 보통의 검이 아니었다.

오페라는 키메라 몸속에서 초진동 현상을 일으켜 키메라의 내장을 순간 분쇄해 버렸다.

키메라가 제아무리 뛰어난 재생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내장부터 파괴하는 오페라의 능력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마무리다, 괴물!”

이미 내장이 녹아 버려 움직일 수 없는 키메라를 마하임은 일격에 두 동강을 내 버렸다.

치이이-

키메라가 뿜어낸 산성 체액이 바닥을 천천히 적셔 갔다.

이제는 절대 재생하지 못할 터였다. 마하임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괜찮습니까?”

키메라를 정리한 마하임은 자신의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상황은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샤오랑과 안나가 꽤 심한 상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마하임은 고심에 빠졌다. 아무리 봐도 샤오랑과 안나는 걷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도 수지에 맞지 않았다.

마하임은 결단을 내렸다.

“루다크, 안나와 샤오랑을 부탁한다.”

“그 말, 왜 안 나오나 했다. 뭐 좋아. 여기 가르샤에서만큼은 마하임 네가 주인공 같으니까.”

루다크는 말없이 다친 안나와 샤오랑에게 여기 올 때 가져온 비상 약품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흥, 차라리 여기에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무슨 괴물이 또 기다리고 있을지 알 게 뭐람.’

노옴들의 연구소는 루다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해 보였다. 시오니아 제국 황제의 밀명으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이런 곳에서 비명횡사할 생각은 없었다.

마하임은 혼자서 계속할 각오를 다지고 무전기를 켰다.

“동료들이 부상을 당했다. 지금부터 나 혼자 간다.”

“칙- 위험하실 텐데요. 지금이라도 돌아오십시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아니. 지금 이 타이밍이 딱 좋을 듯하다. 계속 전진하겠다.”

마하임은 무전을 껐다. 바로 그때 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하세요. 이 앞으로는 보안 구역이라 방범 장치가 작동해 있을지도 몰라요….”

“알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죠.”

몸을 일으키는 마하임. 그리고 어둠과 혼란으로 가득 찬 노옴의 연구소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동료들과 헤어지고 6층 연구소 안쪽 깊숙이 들어온 마하임.

가는 길에 오염된 노옴과 죽어 가는 실험체 몇을 만났지만, 처음의 키메라 같이 강한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칙- 앞에 갈림길이 있습니다. 정 중앙으로만 움직여 주십시오. 오른쪽 통로 쪽에는 방범 장치가 작동되고 있습니다.”

“방범 장치라…. 오른쪽 통로에는 뭐가 있지?”

“비밀 사항입니다. 마하임 님은 신경 쓰지 마시고, 원래의 목적에 충실해 주셨으면 합니다.”

닥치고 정면 통로로 가라는 연구소장. 그러나 마하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하는걸. 노옴이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 뭔지.”

“칙- 후회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걸 알아서 무얼 하시려고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한다.”

“칙- 좋습니다. 능력껏 확인하시죠. 단 죽어도 저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무전이 끊겼다.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고 연구소장이 가지 말라고 경고한 통로 쪽으로 향했다.

아마도 마하임의 예상대로라면 저곳이 헤라가 말한 생체 병기 제조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주마. 추악한 네놈들의 진짜 모습을.”

연구소장이 경고한 통로 안쪽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곳곳에 핏자국이 조금 있기도 했지만, 이곳까지 오면서 수도 없이 시체를 보아 온 마하임에게는 오히려 이곳이 안전해 보였다.

“문인가?”

통로의 끝 그곳에는 붉게 칠해진 거대한 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하임은 조심스럽게 그 문 앞으로 다가갔다.

“삑- 이곳은 1급 제한 구역입니다. ID카드 및 생체 정보를 제시하여 주십시오.”

통로의 문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였지만 그야말로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오페라. 여긴 어떻게 통과하지?”

[…분석 중. 분석완료. S급 보안 셔터입니다. 열기 위해서는 인증받은 ID카드와 생체 정보가 필요합니다.]

“그냥 통과하는 방법은 없나?”

[해킹은 가능합니다. 단, 3분의 시간이 걸리며 주변에 설치된 함정이 발동할 수 있습니다.]

“함정? 그게 뭔데.”

[알 수 없습니다.]

오페라의 말에 마하임은 고민에 잠겼다.

사실 지금 이곳으로 온 것은 마하임의 오지랖이었다. 헤라가 죽으면서 남긴 말…. 사실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런 자신이 싫었다. 정의나 알량한 선행 따위는 관심 없었다. 그저 마하임은 두 번 다시 후회를 하기 싫을 뿐이었다.

“열어. 함정은 내가 어떻게 해보지”

[알겠습니다. 해킹 시작. 완료 예상 시간은 2분 55초.]

오페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닫혀 있는 문 바로 위에 경고등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경고, 경고. 불법 침입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침입자 배제를 위한 절차에 들어갑니다.”

불길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통로 반대쪽이 육중한 방화벽으로 막혔다.

쿵-!

순식간에 고립된 마하임. 그리고 통로 천장 중앙 부분이 열리며 마하임도 알고 있는 익숙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젠장! 펄스 레이저라고…!?”

저건 시오니아 제국의 공격형 비공정에 장착되어 있는 레이저 포였다.

살상용이 아닌 적의 유도 미사일을 파괴하기 위한 무기였는데, 이 좁은 공간에서 사용한다면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었다.

지이이잉 츄하악!

펄스 레이저의 포신에서 마하임을 향해 새하얀 빛을 내뿜었다.

빛은 음속을 능가한다. 마하임은 포신의 위치만을 의지해 순간 펄스 레이저를 피했다.

“젠장!”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펄스 레이저는 2초당 한 발이라는 연사 속도로 끊임없이 마하임을 괴롭혔다.

마하임은 동체 시력과 오버클럭을 활용하여 펄스 레이저를 스치듯 피하고는 있었지만 레이저로 인한 화상은 점점 늘어날 뿐이었다.

“다가갈 수가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면 될 텐데.”

펄스 레이저는 강력한 무기였지만, 그것을 발사하는 포신은 조잡할 정도로 내구성이 약했다. 가까이 접근만 할 수 있다면 오페라로 일격에 베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난사하듯 쏘아 대는 저 펄스 레이저의 탄막을 피해 포신으로 접근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페라!?”

[기지 도면 다운로드 중. 완료. 펄스 레이저는 수증기 속에서 그 위력이 약화됩니다. 표시한 지점을 파괴하십시오. 냉각을 위한 저온 수증기 배관을 파괴하면 펄스 레이저를 무력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마하임은 앞구르기로 펄스 레이저를 스치듯 피하며 오페라가 증강현실로 표시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 몇 발의 펄스 레이저를 맞긴 했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아니었다.

“하합-!”

마하임의 짧은 기합과 함께 벽의 배관은 깨끗하게 절단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새하얀 수증기가 맹렬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이익-!

수증기로 순식간에 가득 찬 통로 안. 밀폐된 공간인지라 수증기로 인해 이곳의 습도는 순식간에 높아졌다.

지잉 슈욱 슈욱-!

천장의 펄스 레이저 포신은 전혀 상관치 않고 계속 마하임을 향해 펄스레이저를 날렸지만, 그 위력은 정확히 이마에 맞아도 약간 뜨거움을 느낄 정도로 약해졌다.

“퇴장할 시간이다. 노옴의 장난감!”

마하임은 가볍게 점프해 펄스 레이저를 쏟아내던 포신을 오페라로 베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으로 펄스 레이저는 침묵 상태에 빠졌다.

“헉, 헉 꽤 위험했어.”

숨을 몰아쉬는 마하임. 그의 몸에는 수도 없이 자잘한 펄스 레이저로 인한 화상이 남아 있었다.

나노머신의 치료가 없었다면 쇼크로 인해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처였다.

“오페라 얼마나 남았지?”

[1분 30초 남았습니다. 경고, 2차 함정 발동이 확인되었습니다.]

“뭐라고?!”

바닥에서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한 물은 이내 마하임의 발목까지 차올랐다.

[고압 전류 확인. 물에서 이탈하십시오.]

“젠장!”

고립된 통로에서 이 물을 피할 방법은 천장에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천장으로 점프했다. 그리고 천장을 뒤덮고 있는 정체불명의 케이블을 잡고 가까스로 바닥의 물에서 몸을 빼냈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바닥의 물에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방전이 연이어 일어났다. 지금 저 물에 빠진다면 순식간에 전기 구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큭, 물이 차오른다!”

바닥을 가득 채운 물은 통로 위쪽으로 순식간에 차올랐다. 통로의 높이는 3미터가 채 안 되었다.

차오르는 물에 단 한 순간이라도 닿으면 고압 전류에 감전되어 즉사해 버릴 것이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천장에 매달렸다.

“오페라! 얼마나 남았지?”

[1분 남았습니다.]

“망할!!!”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제 마하임의 목숨은 얼마나 빨리 오페라가 이 문을 열 수 있냐에 달려 있었다.

물은 벌써 통로의 반을 채웠다. 마하임은 최대한 천장에 달라붙어 몸을 웅크렸지만, 이대로라면 1분을 넘기지 못하고 물속에 잠겨 버릴 것이다.

“오페라!!!!”

[30…. 20…. 0. 게이트 오픈]

츄하아악!

압축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경고등 역시 꺼지고, 바닥에 차 있던 물도 거짓말처럼 빠져나갔다.

털썩.

마하임은 물이 다 빠지고 나서야 바닥으로 다시금 내려왔다. 그야말로 십년감수한 기분이었다.

“노옴 녀석들. 이 빚은 잊지 않겠다.”

비틀거리며 마하임은 열린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안쪽은 조용했고 또한 어두웠다. 다른 곳에는 희미한 조명이라도 있었지만 이곳은 전혀 그러한 것이 없었다.

“오페라, 너무 어둡군. 방법이 있나?”

[이곳의 제어권은 제가 이미 장악했습니다. 광도를 올리겠습니다.]

기이이잉-

정체불명의 기계음과 함께 어둠으로 가득 찬 이곳이 갑자기 환해졌다. 그리고 마하임은 보고 말았다.

노옴들이 이곳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유를.

“…….”

마하임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방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유리병 모양의 캡슐.

그 캡슐 안에는 수도 없이 많은 생명체들이 죽은 듯 부유하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곳은 노옴의 생체 실험실이었다.

“주, 죽여 줘….”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사자와 인간이 뒤섞인 듯한 모습의 생명체가 신음하고 있었다. 아마도 키메라로 만들다 실패한 실패작인 듯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뇌만 적출해 놓은 실험체도 있었고, 기계와 인간이 뒤엉켜 인간인지 기계인지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의 생명체도 수없이 보였다.

헤라가 그토록 노옴을 저주하고 복수를 다짐한 이유를 마하임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칙- 결국 거기까지 도착하셨군요.”

“변명이라도 해 보시지?”

연구소장의 무전에 마하임은 차갑게 대답했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희생은 불가피한 겁니다. 그곳도 그러한 의미로서 만들어진 것이지요. 마하임 님은 그냥 못 본 척 나오시면 됩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마하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 생명체를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노옴들의 발상 그 자체가 구역질 났다.

마하임은 마나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전한 것은 파이어 볼.

마하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영창으로 시전한 파이어 볼을 이 지옥 안으로 던져 넣었다.

콰앙-!

파이어 볼이 순식간에 이 지옥을 불태웠다.

연구소장의 말은 옳았다. 아무리 마하임이라도 이곳에 있는 실험체를 구해낼 방법은 없었다.

마하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이 고통을 끝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너희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칙- 그런 것이 겁났다면 애초에 이런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잡담이 길었군요. 5층의 엑스칼리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놓치면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연구소장의 말에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엑스칼리버에 집중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마하임은 그대로 이곳을 통과해 지하 6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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