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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10화 (110/194)

110화

지하 6층. 그곳에는 이미 많은 노옴들이 모여 있었다.

어림잡아도 100명이 넘어 보이는 그들은 저마다 갑옷과 전투 망치 같은 것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노옴들은 마하임을 확인하자마자 모두 기립 자세로 서더니 이마에 경례를 올려붙였다.

“환영합니다. 지구연방 대통령, 마하임 님.”

‘지구연방 대통령’이란 단어의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노옴들의 반응은 상당한 호의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변국의 작은 영지의 영주일 뿐이다.”

“아닙니다. ‘엑스칼리버’의 선택을 받으셨으니 당신은 엄연한 지구연방을 잇는 정통 계승자이십니다.”

마하임을 가장 먼저 맞이한 중장갑을 입고 있는 노옴이 말했다.

이들은 전사 클래스. 아마도 이 아래층인 6층의 일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마하임은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고는 엑스칼리버로 화제를 옮겼다.

“엑스칼리버는 지금은 어디 있지?”

“5층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그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습니다. 4층의 방화벽이 일단 놈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지만, 언제 뚫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5층은 노옴들이 엑스칼리버를 잡기 위해 만든 일종의 함정이 설치된 곳이었다.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5층 대부분의 구간에서 엑스칼리버는 움직임의 제약을 받는다고 했다.

원래 노옴의 계획대로라면 이 함정으로 엑스칼리버의 움직임을 묶은 뒤 다시금 봉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엑스칼리버는 노옴들의 예상을 훨씬 넘어선 기동력으로 이 함정마저 대부분 무력화시켜 버렸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지금 엑스칼리버는 그 어떤 생명체도 자신에게 접근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놈을 멈추기 위해서는 엑스칼리버에 직접 접근해 마하임 님의 생체 정보를 엑스칼리버에 입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엑스칼리버의 공격 방식은?”

“아, 4기의 생체 레이저. 8발의 생체 미사일. 근접용으로 플라즈마를 뿜어내는 검을 사용합니다.

플라즈마 검은 근처에만 다가가지 않으면 괜찮은데 생체 레이저와 미사일은 반경 100m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무차별 난사하기 때문에 저희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노옴은 바닥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 부상자를 잠시 바라보았다. 아마도 엑스칼리버에 당한 듯한 노옴족 전사들은 피투성이가 된 붕대로 칭칭 감겨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팔다리가 잘리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하반신이 거의 날아간 노옴도 있었다. 아마도 저들에게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리라.

“안내해 줘. 나라고 엑스칼리버에 상대가 될진 모르겠지만.”

노옴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마하임은 침묵을 지키며 그 노옴의 뒤를 따라갔다.

다른 노옴 3명도 마하임을 호위하듯 좌우에 자리 잡고 마하임을 뒤따랐다.

쿠쿠쿵-!

아까부터 느껴졌던 폭발음이 이제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느껴졌다. 마하임을 안내하던 노옴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건 다른 노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노옴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이중 삼중으로 막혀 있는 방화벽을 열고선 지하 5층 입구에 다다랐다.

“저희가 안내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노옴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노옴은 생각보다 인구 수가 적었다. 이미 이번 사건으로 많은 노옴이 죽었다. 더 희생자를 낸다면 이 유적 자체를 폐쇄할 작정이었다.

“알았다. 힘이 닿는 데까지 한번 해보지.”

오페라를 꺼내 드는 마하임. 그와 동시에 5층 방화문이 무거운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차가운 냉기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12도 이상의 급격한 기온 하강이 확인되었습니다. 나노머신 저온 모드로 전환합니다.]

급속하게 식어 가던 마하임의 몸은 다시금 정상 체온으로 돌아왔다.

나노머신 시류는 사용자의 몸을 항상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도록 만들어져 있었기에 이 정도의 기온 하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엑스칼리버라는 녀석의 낯짝이나 한번 봐 볼까?”

가벼운 걸음으로 마하임은 지하 5층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 안은 모든 것이 얼어 있었다. 엑스칼리버와 싸우다 희생된 노옴은 물론하며 허공에 포함된 수증기마저 모조리 얼어 목이 턱턱 막힐 정도로 습도가 낮았다.

“엑스칼리버가 추위에 약한 건가? 아니면 이 냉기는 엑스칼리버가 만든 건가?”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답은 직접 싸워 보는 수밖에 없었다. 마하임은 최대한 천천히 통로를 걸었다. 바로 그때였다.

슈욱, 슈욱-

뭔가 기분 나쁜 연기와 더불어 작고 둥근 무언가가 마하임에게로 날아들었다.

[경고, 생체 유도 미사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즉시 회피 기동 하십시오.]

오페라의 경고음이 마하임의 머릿속을 울렸다. 그리고 오페라가 말한 생체 미사일 3개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마하임에게 다가오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칫! 선수는 뺏긴 건가?”

마하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생체 미사일은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마하임을 집요하게 따라왔다.

“오페라 x8!”

마하임의 외침에 즉각 오버클럭이 작동했다. 마하임의 움직임은 평소보다 무려 8배 이상의 반사 신경으로 몸을 급격하게 반전시켰다.

이때 가해지는 반동은 근육을 파열시킬 정도로 강했지만, 나노머신은 이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마하임의 근육을 순간 강화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뇌 오버클럭은 애초에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팟-!

몸을 반전시킨 마하임은 곧장 날아오는 생체 미사일로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미사일의 근접 신관이 작동하기도 전에 오페라로 생체 미사일을 두 동강 내어 버렸다.

콰직-! 퍼펑!

두 동간 난 생체 미사일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폭발했다.

“자, 와라. 엑스칼리버. 이딴 장난감 놀이는 의미 없잖아?”

오페라를 집어 든 마하임은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에 화답하기라도 하듯이 엑스칼리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제법 그럴듯하게 생겼는데?”

엑스칼리버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았다. 예전 안나가 사용했던 소형 마장기보다는 컸지만, 제페쉬가 팔려고 했던 제국산 마장기보다는 작았다.

전반적인 색깔은 하얀색이었지만 주변의 상황에 따라 장갑의 색깔이 바뀌는 것을 볼 때 하륜이 사용하던 광학미체도 적용되는 듯했다.

“타겟 락온. 불법 침입자를 배재한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마하임은 단숨에 엑스칼리버를 향해 달려갔다. 또 생체 미사일을 사용하면 곤란했기에 거리를 좁히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하임의 실수였다.

기이이잉

엑스칼리버의 가슴과 주먹에 붙어 있는 발광체가 갑자기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경고. 생체 레이저 반응. 즉시 회피하십시오!]

“망할!”

오페라의 경고에 마하임은 땅을 박차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직후 마하임이 서 있었던 곳에 4발의 생체 레이저가 번개처럼 날아와 박혔다.

파지직-!

생체 레이저는 꽁꽁 얼어 있는 지하 5층 통로를 관통해 순간 사라졌다. 그 위력은 예전에 봤던 생체 레이저와는 수준이 달랐다.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

마하임은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불행 중 다행히 저 생체 레이저를 연사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만약 연사가 됐다면 마하임의 몸에는 이미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겼을 것이다.

“노옴들이 고전한 이유가 있었군.”

마하임은 더는 접근하지 않고 엑스칼리버의 동향을 살폈다.

엑스칼리버는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오른손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러자 새파란 빛줄기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또 뭐지?!”

[플라즈마 나이프입니다. 고열 고압의 플라즈마를 뿜어내어 근접 공격에 최적화된 무기입니다. 방어 방법 없음. 무조건 피하십시오.]

“…망할!”

엑스칼리버는 미끄러지듯 마하임에게로 돌격해 왔다. 마하임은 입을 악물며 뒤로 다시금 물러섰다.

엑스칼리버는 기다렸다는 듯 마하임이 물러서는 방향을 예측하여 플라즈마 나이프를 휘둘렀다.

“설마 예측한 건가?!”

마하임은 오버클럭으로 가까스로 몸을 회전시켜 플라즈마 나이프를 피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며 이 일격으로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마하임이 공격을 피하자 엑스칼리버는 무차별적으로 플라즈마 나이프를 휘둘렀다.

화르륵.

부웅부웅-!

마하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피하는 것이 다였다. 플라즈마 나이프는 고열 고압의 열 기둥. 설령 오페라라도 그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근접전은 승산이 없다!’

판단이 선 마하임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생체 미사일 락온. 긴급 회피 요망.]

오페라의 외침과 동시에 엑스칼리버의 몸체에서 검고 뾰족한 생체 미사일 3개가 마하임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런!!!”

마하임은 오페라를 치켜들었다.

생체미사일은 폭발형이었다. 단순히 자르기만 해서는 유폭만 일으킬 뿐이었다. 마하임은 생체 미사일을 오페라로 자른 후 몸을 웅크리며 바닥을 굴렀다.

퍼펑-!

생체 미사일이 터지면서 발생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번에는 마하임 역시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다. 허벅지와 팔 등에 생체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생긴 파편이 파고든 것이다.

“큭! 방심했나?!”

다행이 상처는 깊지 않았다. 마하임은 재빨리 상처에서 파편을 제거했다. 그러자 나노머신이 그의 몸을 순식간에 치료했다.

[생체 레이저 반응 확인. 회피 기동 요망!]

“뭐?!”

숨도 돌리기 전에 들려온 오페라의 경고.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뒤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엑스칼리버의 생체 레이저. 그리고 엑스칼리버는 또다시 마하임과의 간격을 좁혀 들었다.

부웅 화르르르륵!

또다시 플라즈마 나이프를 작동시키는 엑스칼리버. 마하임은 숨을 헐떡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장거리는 생체 미사일, 중거리는 레이저. 단거리는 플라즈마 나이프인가? 이거 환장하겠군!”

지금껏 싸워 온 그 어떤 적보다 엑스칼리버는 강했다.

그 강함은 시문이나 시아라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빈틈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어떡해야 쓰러트릴 수 있을까?!”

마하임은 공격을 포기하고 오직 피하는 데에 집중하며 엑스칼리버의 공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피하는 데 급급했지만, 그 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나노머신이 있더라도 체력의 한계는 있었다. 그 한계치를 넘어서면 나노머신 자체가 작동을 멈춰 버린다.

[나노머신 시류, 유지 한계 시간까지 앞으로 5분.]

예상한 것보다 훨씬 그 시기는 빠르게 다가왔다. 살아남으려면 5분 안에 승부를 내야만 했다. 마하임은 다시금 오페라를 고쳐 잡았다.

“근접전 말고는 답이 없어. 죽든 살든 달라붙어 오페라를 꽂아 넣는다. 방법은 오직 그것뿐!”

마하임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죽을 순 없었다. 마하임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마하임은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적 접근 확인. 유효한 사용자라면 즉시 인증 프로세서에 따라 사용자 인증을 하라.”

바로 그때 들려온 목소리. 그것은 엑스칼리버에서 난 소리였다.

그리고 엑스칼리버의 등 쪽 부분에 녹색으로 반짝이는 손바닥 모양의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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