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뭐지 오페라?”
[수동 인증기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저곳에 마하임 님의 생체 정보를 입력하면 적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단1%의 확률이라도 시도는 해 봐야만 했다.
“저기에 손을 대려면 가까이 가야 하는데…. 가능할까?”
엑스칼리버는 멀리 떨어질 수도, 가까이 가기에도 너무나 위험한 적이었다.
마하임은 아무리 머릴 굴려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여기 오기 전 6층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오페라, 이곳에도 수증기 파이프가 있을까?”
[검색 중. 과냉각 수증기 파이프 확인. 위치를 표시하겠습니다.]
순간 마하임의 눈에 파이프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일단 생체 레이저만이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승률은 확실히 올라간다. 마하임은 망설이지 않고 오페라를 휘둘렀다.
촤아아악!
푸슈슈슈슈욱!
오페라의 일격에 파손되는 파이프. 그리고 파이프 안에서는 새하얀 수증기가 무서운 속도로 이곳을 채워 갔다.
마하임이 잠시 딴짓하는 사이 엑스칼리버는 다시 한번 생체 미사일을 마하임에게 날렸다.
“젠장! 이판사판이다!”
슈칵-!
마하임은 오페라를 휘둘러 일격에 3발의 생체 미사일을 절단했다.
콰쾅-!
미사일이 절단되며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다. 마하임은 이를 악물고 축지를 사용한 것이다.
기이이이잉, 푸슝-!
마하임이 다가오자 엑스칼리버는 기다렸다는 듯 생체 레이저를 발사했다.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이번에도 수증기 전략이 통하기만을 빌어야만 했다.
큭-!
엑스칼리버의 생체 레이저가 마하임의 복부와 심장 부위에 직격했다. 화끈한 통증이 밀려들어 왔지만, 그 위력은 확실히 약해졌다.
마하임은 멈추지 않고 이 기세를 타고 그대로 엑스칼리버에게 돌진했다.
화르르륵!
기다렸다는 듯 엑스칼리버는 다시금 플라즈마 나이프를 작동시켰다. 저건 오페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어떡해서든 흘려 피해야만 했다.
“해보자! 고대인의 망령이여! 반드시 널 굴복시키고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어!”
마하임은 몰려오는 공포를 억누르고 엑스칼리버 앞에 섰다.
목표는 단 하나. 푸르게 빛나는 저 손바닥 모양의 패널. 저곳에 손이 닿아야만 했다.
물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탓-!
마하임은 축지의 기술을 응용해 엑스칼리버를 향해 달려들었다. 엑스칼리버는 오른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 나이프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하임에게 휘둘렀다.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의 강렬한 열기는 마하임에게 채 닿지도 않는데도 느껴졌다.
큭!
마하임은 바닥을 미끄러지듯 슬라이딩해 엑스칼리버의 첫 번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엑스칼리버는 기계적인 동작으로 몸을 돌린 후, 다시금 마하임에게 플라즈마 나이프를 날렸다.
“망할! 파이어 볼 인첸트!”
그것은 도박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저 플라즈마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하임이 떠올린 것은 오페라에 파이어 볼을 인첸트시키는 것이었다.
플라즈마 나이프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플라즈마도 결국 불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같은 불 속성이라면 마치 같은 극의 자석이 반발하는 것처럼 서로 밀어낼 수도 있었다.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판단이었지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마하임은 온 힘을 다해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방법, 오페라에 파이어 볼을 인첸트시켰다.
슈하아악!
푸하하학!
불의 기운이 담긴 전혀 다른 종류의 두 힘이 충돌했다.
플라즈마 나이프는 마하임의 오페라를 무시하고 그대로 마하임을 불태워 버릴 듯 그에게 돌진해 왔다.
그러나 마하임의 몸에 닿기 직전, 플라즈마 나이프의 움직임이 멈췄다.
파이어 볼이 인첸트된 오페라가 플라즈마 나이프를 밀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기사회생.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기이이잉!
이제부터는 힘 싸움이었다. 엑스칼리버는 그 상태로 마하임을 짓눌러 죽이려는 듯했다. 마장기인 엑스칼리버에게 마하임이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잠시 엇비슷하게 검을 맞대고 있었지만, 이내 마하임 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플라즈마 나이프가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화상이라도 입은 듯한 극심한 작열통이 마하임을 괴롭혔다.
‘조금만 더 버티자. 단 한순간이라도 좋아!’
이를 악물고 버티는 마하임.
틀림없이 이 균형은 어느 순간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 타이밍을 마하임이 잡을 수만 있다면, 승리는 몰라도 저 푸른 패널에 손 정도는 가져다 댈 수 있을 것이다.
콰직!
바로 그때였다. 엑스칼리버의 다리 부근의 땅에 균열이 발생하며 균형이 무너졌다.
잠시 주춤하는 엑스칼리버.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마하임은 오페라로 플라즈마 나이프를 흘리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하임의 손이 아슬아슬하게 엑스칼리버의 등에 붙은 푸른색 패널에 닿았다.
“기이이잉- 긴급 정지 명령이 확인되었다. 명령자 확인 중…. 확인 중…. 명령자는 지구연합 총사령관, 마하임 대통령으로 확인. 본 파워드 슈트는 연방법 102조 12항에 의거하여 긴급 정지 및 제어권을 마하임 대통령으로 이양한다.”
마하임은 숨을 헐떡였다. 움직임을 멈춘 엑스칼리버. 불행 중 다행히 푸른색 패널에 마하임의 손이 닿자 엑스칼리버는 거짓말처럼 공격을 정지했다.
마하임은 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졌다. 삭신이 쑤시고 온몸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체력 소모가 극심했기에 마하임은 기절하듯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눈에 보였다.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천장. 아직도 마하임은 가르샤의 연구 기지 안인 듯했다.
“오, 일어나셨군요. 회복 능력 하나만큼은 정말 엄청나시군요. 과연 지구연방의 마지막 대통령답습니다.”
연구소장은 눈을 뜬 마하임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마하임의 몸에는 수액으로 보이는 링겔이 꽂혀 있었고, 그 외에도 유물로 보이는 여러 치료 장치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설명해 줘. 얼마나 시간이 흘렀지?”
“3일이 지났습니다. 마하임 님의 동료들도 모두 안전합니다. 지금쯤 이 기지 안을 관광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도 멀쩡하게 손에 넣었구요.”
마하임이 고개를 돌리자 멈춰 있는 엑스칼리버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이제 못 움직이나?”
“대략 확인해 본 결과. 움직일 순 있습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사용자 등록이 마하임 님으로 되어 버려서 이 엑스칼리버는 마하임 님만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연구소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애초에 마하임에게 엑스칼리버를 넘겨줄 생각은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넘겨줄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엑스칼리버에 사용된 기술은 해석 불능이었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부품이 하나 빠져 있어서, 이대로 전투에 사용하기는 부적합하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엑스칼리버에게 직접 물어보시죠. 저희는 권한이 없어서 엑스칼리버와 대화조차 힘드니까요.”
연구소장은 이렇게 말하며 마하임의 몸에 꽂혀 있는 링겔 주사와 치료 장치를 제거해 주었다.
몸을 일으킨 마하임. 마하임은 오페라를 지팡이 삼아 엑스칼리버에게 다가갔다.
엑스칼리버의 크기는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훨씬 작아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적어도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지금은 키가 2미터를 약간 넘기는 소형 마장기가 되어 있었다.
“환영한다. 마하임 대통령. 자가 에너지 충전 중. 최소 기동 요건을 갖추기까지 24시간 남았다.”
엑스칼리버는 차갑게 말했다. 마하임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너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데, 맞나?”
“그렇다. 당신은 파워드 슈트 FS-8987 엑스칼리버 모델의 유일한 파일럿으로 등록되었다.”
치이익-!
엑스칼리버의 말이 끝나자, 배와 허벅지 부분이 열리면서 탑승할 수 있는 조종석이 보였다.
“오오오! 처음 봅니다. 이것이 S급 마장기의 조종석이군요. 어디 보자, 기본적으로 파일럿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모션 인식인 것 같은데, 이거 연구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연구소장은 흥분해 엑스칼리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엑스칼리버는 바로 경고 메시지를 출력했다.
“경고, 비인가 생명체가 접근 확인. 요격해도 좋나? 마하임 대통령.”
“대통령이란 말은 좀 빼 줬으면 좋겠군.”
“명령 확인. 비인가 생명체 접근을 배재해도 되나?”
다시금 묻는 엑스칼리버. 이 말을 들은 연구소장은 울상이 되어 마하임을 바라보았다. 마하임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접근을 허락한다. 엑스칼리버.”
“알았다. 현시간부로 임시 접근 권한을 저 노옴에게 부여하겠다.”
그제야 얼굴이 밝아지는 연구소장. 연구소장은 엑스칼리버의 조종석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타입의 마장기는 처음 봅니다. 자가 충전이라니. 이론적으로는 무한 동력이 탑재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흥분해서 외치는 연구소장. 마하임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말없이 이를 지켜볼 뿐이었다.
“한번 타 보고 싶은데 될까?”
“물론입니다. 지금 에너지로는 당장 멀리 갈 수 없어도 조금은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뒤로 물러서는 연구소장. 마하임은 아직도 쓰라린 몸을 이끌고 엑스칼리버 앞에 섰다.
“탑승할 것인가? 마하임.”
“그래. 지금 타 볼 거야.”
“좋다. 첫 탑승 절차를 진행하겠다. 파일럿은 조종석에 앉아라.”
마하임은 열려 있는 엑스칼리버의 조종석에 몸을 집어넣었다.
마하임이 엑스칼리버에 탑승하자 기묘한 진동과 함께 조종석이 마하임의 몸에 딱 맞게 재설정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열려 있던 조종석이 닫혔다.
“첫 탑승을 환영한다. 본 파워드 슈트는 사용자의 움직임과 뇌파를 실시간 관측하여 최적의 움직임을 구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마하임이 엑스칼리버 안에 타자 조종석 장갑이 투명화되면서 밖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걷고 싶다면 실제 걷는다는 움직임을 이미지하고 발을 움직여라. 그럼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엑스칼리버의 설명에 마하임은 천천히 발을 움직여 보았다. 엑스칼리버는 마치 마하임의 몸이라도 된 듯 정확하게 그가 떠올린 움직임을 구현했다.
“첫 기동 성공 확인. 시스템 체크, 오류 확인. 오류 확인. 중대 에러 발생.”
“뭐지?!”
갑자기 엑스칼리버의 조종석 안이 붉게 점멸되며 엑스칼리버는 작동을 멈췄다.
그리고 투명한 엑스칼리버의 조종석 안의 화면에 작고 네모난, 그리고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익숙한 물체가 나타났다.
“본 기체의 무장 및 기동 성능을 100%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NOS 연산 칩. 통칭 지혜의 돌이 필요하다.”
마하임은 황당하다는 듯 엑스칼리버가 투영한 물체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이내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렇게 기괴하고도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돌은 이 세상에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하임의 고향인 아르케비니아의 국왕을 상징하는 ‘옥새’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