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마하임은 오페라에 파이어 볼을 인첸트했다. 그러자 오페라의 검신이 순간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 꽤 재미난 장난을 하시는군요. 마하임 왕자.”
“글쎄 재미있을지 없을지는 싸워 보면 알겠지. 거기 병사들, 나 아르케비니아 제5왕자, 왕위 계승 서열 2위. 마하임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 즉시 카마산을 체포하라. 그렇지 않으면 국법으로 너희를 반역자로 즉결 심판할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경고다. 즉시 카마산을 체포하라!”
마하임의 외침. 그러나 병사들은 여전히 마하임에게 창을 겨눈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카마산은 만족한 듯 웃으며 입을 땠다.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습니까? 병사들은 들어라! 반역자 마하임을 죽여라! 아르케비니아 왕조는 지금 이 시간부로 끝났다!”
카마산의 외침과 동시에 병사들은 창을 앞세우고 마하임에게로 돌격했다.
이제 전투는 필연적이었다. 마하임은 기다렸다는 듯 오페라를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최대한 깊게 끌어들여야 한다.’
병사들은 단숨에 마하임을 죽이려는 듯 창을 마하임에게로 찔러 넣었다.
마하임은 순간 공중으로 도약하더니 가장 먼저 자신을 공격한 5명의 병사들의 머리를 오페라로 녹여 버렸다.
화르르륵-!
파이어 인첸트와 초진동 공명 현상이 동시에 작용하자 오페라에 닿기가 무섭게 병사들은 문자 그대로 녹아내렸다.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을 후회하게 해 주마.”
마하임의 오페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이건 갑옷이건 닿기가 무섭게 진흙처럼 무너지며 불타올랐다.
병사들이 숫자를 믿고 한 번에 돌격해 와도 오버클럭을 사용하고 있는 마하임의 몸에 스치지도 못했다.
마하임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움직이며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이, 이럴 수가?!”
카마산은 경악했다. 이런 광경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하임이 사용하는 기괴한 기술은 대마법사인 그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수십 명의 병사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남은 병사들은 겁에 질려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 병신 같은 놈들!”
분노한 카마산.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특기인 사령술을 사용하기 위해 품속의 스펠북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스펠북을 펼쳐 그 첫장을 찢으며 외쳤다.
“유계의 망령이여, 나 카마산과의 계약을 이행하라!”
그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든 스펠북에서 검은 오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오러는 바닥에 죽어 나뒹굴고 있는 시신을 향해 쏘아졌다.
으어어어어어!
죽은 병사들이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없는 자도, 팔이 없는 자도, 심지어는 상체가 날아가 버린 자도, 걸을 수만 있다면 모두 몸을 일으켰다.
카마산의 주특기, 사자 부활. 네크로맨서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사자 부활이었지만, 그의 사자 부활은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가라! 네 죽은 육신으로 나에게 봉사하라!”
카마산의 외침. 그의 외침을 시작으로 그가 부활시킨 시체들이 일제히 마하임에게로 달려들었다.
“시폭?!”
쾅!!!!
마하임이 뭐라 외치기도 전 마하임에게로 달려든 시체는 폭탄처럼 폭발했다.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마하임은 뒤로 튕겨 벽에 처박혔다.
“으으, 방심했나?”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마하임. 그러나 잡생각 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연이어 카마산이 부활시킨 시체들이 마하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콰쾅-!
폭발 범위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근접해서 폭발할 경우 치명상을 입기에는 충분한 폭발력이었다.
마하임은 오페라를 휘두르며 최대한 시체들과의 거리를 벌였다.
‘접근전은 자살 행위다!’
카마산의 사령 마법은 역시 강력했다. 자살 폭탄 언데드라니…. 아무리 마하임이라고 해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저 언데드의 움직임은 언데드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다.
마하임이 오버클럭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첫 자살 폭탄 언데드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죽었을 것이다.
“호오. 제법이시군요. 과연 큰소리 칠 만합니다. 헌데 어쩌죠. 시체는 많고 그 시체는 전부 저의 무기니까 말입니다.”
죽어 나뒹굴고 있는 병사의 시체들이 연이어 몸을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마하임에게는 원거리 공격을 할 만한 강력한 기술이 없었다.
물론 파이어 볼이나 매직 미사일 같은 초보적인 마법은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저 시폭 언데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카마산의 소환물은 기본적으로 4클래스 미만의 마법에 내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하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놈들의 폭발에 휘말리지 않도록 빠른 움직임으로 피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행히 오버클럭으로 폭사당하는 것만큼은 피할 수는 있었지만, 근처에만 다가가도 폭발하는 시폭 좀비들은 마하임에게 있어 매우 위험한 적이었다.
“그럼 죽어 주십시오. 당신의 형 알젠테르도 곧 뒤따라 보내드리겠습니다.”
카마산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폭 언데드들은 마하임을 다시금 포위했다.
도망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만 가도 폭발하는 언데드와 정면 승부는 그야말로 자살 행위.
마하임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가라, 나의 종들아! 저 어리석은 왕자를 형체도 없이 날려 버려라!”
주변을 에워싸던 좀비들은 카마산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마하임에게로 달려들었다.
피할 수도 공격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바로 그때, 마하임은 외쳤다.
“엑스칼리버!”
순간 마하임의 몸 주변에서 돌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눈부시게 새하얀 마장기 엑스칼리버가 마하임을 집어 삼켰다.
콰콰쾅!
시폭 좀비의 폭발이 연이어 터져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폭발의 후폭풍이 지나가자 엑스칼리버의 모습이 카마산의 눈에 들어왔다.
“뭐, 뭡니까? 저 마장기는!!!”
뜬금없는 마장기의 등장에 카마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폭 좀비들의 폭발 때문에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저 마장기는 허공에서 순간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엑스칼리버 레디. 동작 가능 시간은 5분이다.]
엑스칼리버에 탑승한 마하임은 크게 심호흡했다. 지혜의 돌이 없기 때문에 마장기는 5분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마하임은 망설임 없이 엑스칼리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 막아라! 모두 막으란 말이다!”
마하임의 엑스칼리버가 자신에게로 돌진해 오는 것을 본 카마산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의 명령에 움직이는 모든 시폭 언데드들은 마하임의 마장기로 뛰어들었다.
콰콰콰쾅-!
연이은 폭발. 추모관은 폭염과 연기로 순식간에 가득 차 버렸다.
마하임의 아버지의 시신 역시 추모관이 폭발로 파괴될 때 생긴 파편에 순식간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먼지가 걷혔다.
“이 정도로 마장기는 쓰러지지 않는다. 잡기술은 됐고, 네 히든카드를 꺼내라, 카마산.”
마하임은 검은 오러를 뿜어내고 있는 스펠북을 들고 서 있는 카마산을 향해 말했다.
“후우, 끝까지 저를 놀라게 해 주시는군요. 마장기라…. 어디서 그런 걸 얻으신지는 몰라도 저 역시 간단히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카마산은 스펠북을 또 한 장 찢었다. 그리고 그 찢은 스펠북 종이를 허공에 던지며 외쳤다.
“만능의 힘 마나 그 어둠의 힘이여. 지금 나 그 어둠을 받아들이리니, 불사의 저주로 완성된 발키리여, 모습을 드러내라!”
파시식 츄하아악-!
카마산이 던진 스펠북 한 장은 허공에서 검게 타올랐다. 그리고 허공에 펼쳐진 화려한 마법진. 그것은 상당히 강력한 소환 마법이 발동된 것을 의미했다.
잠시 후 마법진은 사라졌다. 그리고 마법진이 있었던 곳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갑옷을 입은 여성 한 명이 서 있었다.
“서, 설마?! 저 사람은!”
“오, 아시는 분인가 보죠. 제페쉬 백작의 딸 소피아입니다.”
카마산은 웃었다. 마하임은 눈을 부릅뜨고 제페쉬 백작의 딸 소피아, 아니 이제는 카마산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인형을 바라보았다.
“제페쉬 가문은 예로부터 뛰어난 오러 유저 가문이죠. 그의 아들 요한도 그렇고요. 하지만 진짜 뛰어난 오러 유저는 그녀의 딸 소피아였죠.
전 육탄전은 자신 없기에 제 몸을 지켜 줄 히든카드가 꼭 필요했죠. 그래서 제페쉬를 역적으로 몰아서 귀향 보내 버리고 그녀를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카마산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피아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마하임은 이를 갈았다. 제페쉬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슬퍼할까? 마하임은 씁쓸함과 분노에 절로 팔에 힘이 들어갔다.
“아참, 혹시라도 구한다느니 하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녀의 몸은 완벽히 죽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게 그녀의 심장입니다. 하하하하하!”
카마산의 자신의 로브에서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소피아의 심장을 꺼내 들었다.
흑마술,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하다고 일컬어지는 구울의 술법을 소피아에게 사용한 모양이었다.
구울은 언데드 중에서도 최상위 계열에 있는 궁극의 언데드라 할 수 있다.
보통 인간이 죽어 언데드가 되면 생전의 모든 힘을 잃는다. 하지만 구울은 달랐다.
구울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의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매개체인 자신의 심장이 부서지기 전에는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언데드였다.
“가십시오. 소피아. 저 마장기의 성능을 한번 보고 싶군요.”
소피아는 카마산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하임의 엑스칼리버를 향해 번개처럼 달려왔다.
구울이 되면 자신의 잠재 능력까지 모조리 끌어내어 사용할 수 있었기에 평범한 사람조차 구울이 되면 무지막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타고난 오러 유저인 소피아를 구울로 만들었으니 그 힘은 일반적인 오러 유저의 능력을 아득히 초월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쿠쾅!
새하얀 오러 익스플로전의 파동이 엑스칼리버에 직격했다. 엑스칼리버는 대마법, 대오러, 대정령, 등 모든 이능에 내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강한 오러 공격에는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오러익 스플로전을 맞은 엑스칼리버는 땅을 긁으며 뒤로 밀려 나갔다.
[경고, AAA급 오러 공격이 감지되었다. 기체 손상률 1.2%. 지속된 타격은 외부 장갑에 심각한 손상이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엑스칼리버는 마하임에게 연이어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마하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상대가 일반인이었다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선 사람은 제페쉬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그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녀를 구해 주기로 약속한 마하임이었던지라 공격함에 있어 망설여 질 수밖에 없었다.
“구울을 인간으로 돌릴 방법은 없지…. 미안하다 제페쉬. 네 딸을 구해 주지 못할 것 같다.”
눈을 뜬 마하임은 곧장 소피아를 향해 돌진했다. 소피아는 뒤로 몸을 날리며 연이어 오러 익스플로전을 날렸다.
사실 오러 유저의 기술 중 최상위 기술인 오러 익스플로전을 난사한다는 것 자체가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구울화된 소피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회피 요망 회피 요망. 외부 장갑 손상률 증가.]
연이은 엑스칼리버의 경고. 하지만 쏟아지는 소피아의 오러 익스플로전을 모두 피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엑스칼리버의 유지 가능 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싸움이 계속된다면 아무리 전설의 엑스칼리버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엑스칼리버, 생체 미사일이나 광학 병기 같은 건 사용할 수 없을까? 봉인 풀리기 전엔 마구 썼지 않나?”
[자율 행동 시 해당 무기 모두 소진. 지혜의 돌 없이는 사용 불가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엑스칼리버의 대부분 외장 무기는 마하임이 처음 가르샤에서 엑스칼리버와 조우했을 때 모두 사용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지금 엑스칼리버의 외장 무기는 하나도 없었다.
“젠장. 어떡하지?!”
입술을 깨무는 마하임. 아무리 엑스칼리버가 뛰어난 마장기라고 하더라도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지금 시점에서 엑스칼리버는 그저 뛰어난 갑옷,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하하하! 어디서 주워 온 마장기인지 모르겠으나, 제 구울 앞에서는 의미 없습니다. 그 마장기와 함께 죽여 드리죠. 소피아, 저 장난감을 부숴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