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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19화 (119/194)

119화

“크허헛-!”

그리고 나타난 것은 토카마가 숨어 있는 바위 앞이었다. 인간은 나타나자마자 토카마의 머리를 공 차듯 차 버렸고 토카마는 비명 소리와 함께 땅을 뒹굴었다.

“마, 말도 안 돼!”

나시무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의 키는 끽해 봤자 180cm. 반면 토카마의 키는 거의 3m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토카마는 저 인간의 일격에 손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이, 인간 따위가!!!”

“용서할 수 없다! 감히 우리 부대장을!”

숨어 있던 오우거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화가 난 오우거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마하임에게로 달려들었다.

“공용어를 할 수 있는 오우거라고? 뭐 좋아. 몸 한번 풀어 보실까?”

인간은 뒤로 훌쩍 뛰더니 목청껏 외쳤다.

“엑스칼리버!!!”

그리고 그 직후 나시무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인간의 등 뒤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더니, 시오니아 제국에서나 사용할 법한 마장기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 마장기는 순식간에 인간을 태우고 바닥에 착지했다.

쿠웅-!

나시무스는 이를 악물었다. 마장기를 보아하니 제국의 추격대가 틀림없는 듯했다. 좀 더 멀리 도망쳤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경계를 푼 것이 화인이었다.

“모두 덮쳐라! 단숨에 쓰러트리고 도망친다!”

목청껏 소리치는 나시무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오우거들은 일제히 마장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퍽! 퍼어억-!

그것은 일방적인 전투였다. 나시무스의 부하들은 덩치도 덩치이거니와 수많은 전투를 치러 왔던 역전의 용사였다.

하지만 저 마장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장기가 주먹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오우거들은 종잇장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모두 퇴각! 승산이 없다!”

나시무스의 판단은 빨랐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의 판단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흥분한 오우거들은 동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미친 듯 마장기에게로 달려갔고, 다른 오우거들과 마찬가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오우거가 쓰러지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시오니아 제국은 탈영병에게 자비란 없었다. 그렇기에 잡히게 되면 즉결 심판, 즉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저 마장기에 탄 사람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을 노리는 오우거들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 뿐, 죽이지 않았다.

‘뭐지? 시오니아 제국의 마장기가 아닌가?’

나시무스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계속 싸워 봤자 승산이 없었다.

“항복! 항복이요. 너희들 당장 멈춰라! 우린 졌다!”

다시금 몸을 일으켜 싸우려는 오우거들을 제지한 나시무스는 양팔을 높이 들고 마장기 앞에 섰다. 그러자 마장기는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흠, 상황 판단이 빨라서 마음에 드는군.”

마장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침착하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바로 그때였다. 마장기의 중앙이 열리며 마장기의 탑승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장기는 새하얀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시무스는 전장에서 수많은 마장기를 보았지만 저런 마장기는 난생처음이었다.

“그렇게 신기한 눈으로 볼 필요 없다. 내 마장기는 좀 특별할 뿐. 먼저 소속을 밝혀라. 보아하니 시오니아 제국의 탈영병 같은데.”

마하임은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냥 야생의 오우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입고 있는 갑옷이며 무기를 봤을 때 시오니아의 군인임에 틀림없을 거라고 마하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우, 우린 시오니아 제국의 특무대 ‘엘카’요. 물론 지금은 탈영병의 몸이지만. 그런 당신은 누구요?”

나시무스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이미 싸움은 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자신들을 굳이 죽일 마음은 없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역시 그랬었군. 나는 윈드시크릿의 영주 마하임이다. 그리고 이 숲은 나의 숲이고. 나의 숲에 불청객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것이지.”

마하임의 말에 나시무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말처럼 그들은 불청객이었다. 시오니아 제국에 쫓기고 있는 그들에게 있을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당장이라도 떠나겠소. 그러니 내 부하들의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비록 또다시 떠돌이 신세가 되겠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수많은 동족들의 희생 끝에 겨우 여기까지 다다랐는데 이런 곳에서 개죽음당할 수는 없었다.

마하임은 이들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화근은 잘라 버릴 수 있을 때 확실히 잘라 버리는 것이 맞겠지만, 이 오우거들은 꽤나 매력적인 존재였다.

“네 이름이 뭐지?”

“나시무스요.”

“좋다. 나시무스. 시오니아 제국과는 이미 손절한 것 같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떨까?”

마하임의 말에 나시무스는 깜짝 놀랐다. 지금껏 만난 그 어떤 인간도 자신들에게 이런 제안을 한 사람은 없었다.

오우거는 인육을 먹는다고 알려진 몬스터. 인간이고 유사 인간이고 할 것 없이 오우거는 배척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인간은 자신들을 거두어 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숲이 아닌 나의 성에서 생활해야 한다. 급료는 일반 용병 기준은 줄 것이며, 기본적인 의식주는 내가 해결해 주마.

그리고 시오니아 제국에 노출되지 않도록 내 최선을 다해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하지. 우리도 사실 시오니아 제국이랑은 그다지 안 친하거든.”

그것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노예 신분도 아닌 돈까지 받고 일할 수 있다니, 이것은 보통의 인간과 다름없는 대우였던 것이다.

“…당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지?”

나시무스는 너무나 파격적인 제안에 오히려 마하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옛날 가르샤도 어린 오우거들을 데려가며 저런 사탕 발린 말을 했으니까.

“너희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둔 것만 봐도 충분히 믿을 만할 텐데? 그리고 너희와 같은 이종족을 거두어 드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지 않나? 붉은 바람의 눈.”

마하임은 어느샌가 자신의 곁에 다가온 붉은 바람의 눈의 날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붉은 바람의 눈은 기분 좋은 듯 날개를 활짝 폈다 다시 접었다.

“그 로어하피…. 길들인 것인가?”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이 하피들 역시 내 영지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시 한번 제안하지. 내 영지민이 되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시오니아 제국의 손에서 보호해 주마.”

마하임의 제안에 나시무스는 자신의 부하들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 또다시 도피의 길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시오니아 제국은 대륙 전체에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고, 그들은 시오니아 제국의 척결 대상 1호였다.

“좋소. 나 나시무스. 그리고 우리 부대원들의 생과 사. 당신에게 맡기도록 하겠소.”

“좋다. 윈드시크릿의 영주, 나 마하임은 너희를 지금 이시간부로 우리 영지의 영지민으로 인정하마. 모두 날 따라오도록.”

마하임은 성큼성큼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시무스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마하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의 다른 부대원들도 마찬가지로 그 뒤를 이었다.

마하임의 큰 그림은 그렇게 또 한 조각 맞추어졌다.

* * *

“헐, 이번엔 또 뭐야? 오우거?”

성문 경비를 서고 있던 세실은 황당한 듯 마하임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난번 로어하피를 새로운 영지민이라 소개했을 때는 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우거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불만 있으면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마하임은 오우거에 정신이 팔려 뭐라 말도 못 하는 세실을 제쳐 두고 그 뒤에 서 있는 요한에게 말했다.

“요한. 이들이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게.”

“그, 그게…. 오우거는 덩치가 너무 커서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집을 없을 텐데요.”

오우거는 덩치도 컸을 뿐만 아니라 키만 해도 3미터에 이르렀다. 당연히 일반인들이 사는 집에는 들어가기조차 힘들었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리고 이 녀석들 실력도 좀 보고. 요한 네 직속 부대에 편입시키도록. 공용어도 잘하니 딱히 불편한 것은 없을 거다.”

마하임의 명령에 요한은 고개를 숙이며 이를 받아들였다.

오우거는 인육을 먹는 괴물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마하임이 데려왔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키킥, 오우거다. 오우거가 왔다.”

“키크르릉. 오우거, 싸움 잘한다. 한번 싸워 보고 싶다.”

세실의 부하인 리저드맨들은 신이 나 소리 질렀다. 지금까지 유사 인간이 아닌 몬스터 동료는 말도 안 통하는 로어하피뿐이었는데, 오우거가 동료로 들어왔다니 그들로서는 환영이었다.

“케에엑! 우리도 인육 좋아한다. 말 잘 들으면 인육 먹을 수도 있다. 크릉!”

“야! 누가 인육 먹어도 된대? 닥치고 근무지로 모두 돌아가! 어서!”

인육 소리에 발끈한 세실이 리자드맨들을 쫓아냈다. 그러자 리자드맨들은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며 성벽 위로 훌쩍 기어 올라가 버렸다.

“야, 오우거들. 네놈들도 인육은 금지다. 먹으면 죽어!”

세실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오우거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오우거 무리의 우두머리인 나시무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리 오우거는 인간 안 먹는다. 그런 풍습을 지닌 오우거는 이미 오래전 사라졌다.”

“그래? 그럼 잘됐네. 어쨌거나 윈드시크릿에 온 것을 환영한다.”

세실도 타 종족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은 없었다. 편견이 있었다면 리자드맨의 리더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윈드시크릿의 마을 사람들도 마하임이 데려온 오우거가 신기한지 꽤 많은 사람이 구경하고 있었다.

“이거이거, 영주님께서 또 일거리를 만드셨군요.”

뒤늦게 나타난 하륜은 머릴 긁적였다. 대충의 상황은 여기까지 오면서 전해 들었기에 별달리 할 말은 없었다.

오우거든 드래곤이든 아군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단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시오니아 제국이었다.

“이 오우거들 때문에 시오니아 제국의 눈에 띄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뭐. 상관없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배려해 주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렇잖아도 힘써야 할 일이 많았는데 잘됐군요.”

하륜은 웃었다.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영주인 마하임이었지만, 하륜의 생각 이상으로 잘 커 주고 있었다.

이대로만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시오니아 제국과의 싸움에도 희망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끝났다. 나는 알타베르나로 돌아가야 한다.”

“굳이 가셔야겠습니까?”

하륜은 아쉬운 듯 마하임에게 말했다. 대부분의 실무는 그가 다 처리하고 있었지만, 영지에 영주가 없는 것은 여러모로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다음에 오실 때는 선물 하나쯤은 사오시고요. 물론 제 선물이 아니라 아나모네 양에게 줄 선물이요.”

담 넘어 몰래 숨어 마하임을 지켜보고 있는 아나모네를 힐끔 바라본 하륜이 말했다. 마하임은 멋쩍은 듯 머릴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찌 가실 생각입니까?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인데….”

윈드시크릿에서 알타베르나까지는 도보로는 한 달이 넘게 걸리는 먼 거리였다. 올 때는 안나의 비공정을 타고 왔기에 빨리 올 수 있었지만, 다시 돌아갈 때가 문제였다.

“걱정 마라. 붉은 바람의 눈이 태워 주기로 했으니까.”

하늘에서 맴돌고 있던 붉은 바람의 눈이 마하임의 등 뒤에 내려앉았다. 붉은 바람의 눈의 거대한 날개가 퍼덕이자 주위는 순간 모래 먼지가 마구 휘날렸다.

“와, 나는 죽어도 안 태워 주더니, 마하임은 태워 주는 거야?”

“엘프 따위에게 나의 날개를 더럽힐 수 없지.”

붉은 바람의 눈의 말에 세실은 인상을 구겼다. 마하임은 쓴웃음을 지으며 붉은 바람의 눈에 올라탔다.

“그럼 다녀오지.”

“기다리겠습니다.”

하륜은 짧게 인사했다. 마하임이 탄 것을 확인한 붉은 바람의 눈은 단숨에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고도를 올린 붉은 바람의 눈은 힘찬 날갯짓으로 알타베르나로 향했다.

날씨는 더없이 좋았고 공기는 청명했다. 마하임은 하늘에서 윈드시크릿을 바라보았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도시가 손에 들어올 만큼 작아져 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키고 말 테다. 반드시!’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마하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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