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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대군주-120화 (120/194)

120화

마하임이 알타베르나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붉은 바람의 눈은 알타베르나 외각에 마하임을 내려놓았다.

“크르르르, 언제 돌아올 것인가? 나의 친구여.”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고맙다 태워 줘서.”

“나는 너의 날개가 되기로 맹세했다. 은혼의 숲에서 다시 보자, 마하임. 크르르르.”

마하임을 내려준 붉은 바람의 눈은 다시 창공을 향해 날갯짓했다.

몇몇 알타베르나 학생들이 이를 목격하기는 했지만, 붉은 바람의 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은혼의 숲으로 방향을 돌려 날아갔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붉은 바람의 눈이 사라지자 마하임은 곧장 안나의 공방으로 향했다. 지금 우선해야 할 것은 지혜의 돌과 마장기 엑스칼리버였다.

지혜의 돌을 얻기는 얻었지만, 어떤 식으로 엑스칼리버에 장착하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마하임 스스로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엑스칼리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안나뿐이었다.

“어머나, 벌써 고향에서 돌아오신 거예요?”

자신의 공방을 찾아온 마하임을 본 안나는 깜짝 놀라며 그를 맞이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안나.”

“장례식은 잘 치렀나요?”

“네. 그건 그렇고, 지혜의 돌을 찾았습니다.”

“정말요?!”

“네. 바로 이것입니다.”

마하임은 천으로 몇 겹이나 감싼 지혜의 돌을 안나에게 내밀었다.

안나는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지혜의 돌을 감싸 들었다. 그리고 지혜의 돌을 감싸고 있는 천을 풀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1024 큐비트 CPU구나.”

“큐비트?”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고대인의 계산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에요. 이 정도 성능이라면 거의 미래 예지급 연산도 가능하겠는데요?”

안나의 말은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 지혜의 돌이 엄청나게 대단한 물건인 것만은 확실했다.

“엑스칼리버를 꺼내 보세요. 간만에 힘 좀 써 볼까나?”

마치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본 것처럼 안나는 양팔을 걷어 올렸다. 마하임은 혹시라도 안나의 공방을 파손할까 싶어 최대한 넓은 곳에서 엑스칼리버를 불러냈다.

쿵-!

육중한 엑스칼리버의 모습이 양자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나는 엑스칼리버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옛날에도 몇 번 봤는데, 제대로 기동하는 엑스칼리버를 볼 수 있다니, 전 행복한 노옴이에요.”

엑스칼리버의 본체에 얼굴을 비비는 안나. 마하임은 그를 보고선 쓴웃음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엑스칼리버를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던 안나는 지혜의 돌을 엑스칼리버 앞에 내밀며 말했다.

“시크릿 코드 설정. 정비사 ID 입실론 델타. 정기 점검을 위해 내부 패널 개방을 요청합니다.”

“코드 확인. 정비사 ID 확인. 엑스칼리버 내부 패널을 개방한다.”

치이-

압축 공기 소리와 함께 엑스칼리버는 전면부 장갑을 열고 내부 패널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복잡한 반도체와 각종 회로가 뒤엉켜 있었고 그 중앙에는 지혜의 돌을 장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텅 빈 소켓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지혜의 돌을 꽂으면 끝나요.”

안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마하임에게서 받은 지혜의 돌을 엑스칼리버에 장착했다.

기이이잉!

지혜의 돌을 장착하자 엑스칼리버의 열려 있는 점검구는 순식간에 닫혔다. 그리고 기묘한 진동음과 함께 엑스칼리버의 몸체에서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엑스칼리버 리부팅 시작. 임시 비상 작동 모드에서 노멀 모드로 전환한다.”

빛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엑스칼리버의 새하얀 본체는 검은색으로 변했다.

“엑스칼리버 세팅 완료. 행동 가능. 48시간 이후 재충전이 필요하다. 기본 무장 및 광학 병기 사용 가능. 엑스칼리버 스탠바이.”

그것을 끝으로 엑스칼리버의 변화는 끝났다. 마하임은 저도 모르게 엑스칼리버에게 다가갔다.

바로 그때였다. 엑스칼리버의 본체 아래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예전에 본 것과 같은 입체 영상이 허공에 펼쳐졌다.

“오! 드디어 지혜의 돌을 찾았나 보네.”

입체 영상에 비춰진 사람은 다름 아닌 레비였다. 레비는 마하임을 바라보며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수고했어. 위그라드실의 방해도 있을 텐데…. 하긴 이것 역시 운명이겠지. 좋아, 준비는 끝난 것 같고 내가 약속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군.

그런데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마하임 네가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엑스칼리버의 봉인을 완전히 푼 것을 안 위그드라실은 전력으로 널 막으려 할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는 매우 조심해야 해.”

입체 영상의 레비는 무언가 슬픈 듯이 쓸쓸히 말했다. 그리고 허공에 또 다른 영상을 출력했다.

“이건 시오니아 제국의 황성의 단면도야. 마하임 네가 가야 할 곳은 바로 이곳.”

레비가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시오니아 제국 황성의 지하 가장 깊은 곳이었다.

“그곳에 이 세계의 비밀이 모두 숨어 있어. 저기에 나의 본체도 잠들어 있지.”

말을 잠시 멈춘 레비는 마하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필연의 때가 왔어, 마하임. 부디 날 찾아 줘. 그리고 진실을 쟁취해. 인류의 미래는 어쩌면 네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몰라.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그것을 끝으로 입체 영상은 사라졌다. 잠시 이어진 침묵. 바로 그때 오페라의 외침이 마하임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생체 병기로 구분되는 적대 생명체 급속 접근 중. 수는 다섯.]

와장창-!

안나의 공방 유리창이 깨지며 난입해 온 그림자들. 마하임은 지체 없이 엑스칼리버에 올라탔다.

기이이잉-!

처음 탔을 때와는 느낌부터 달랐다. 마치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

예전에는 몸과 마장기가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마장기와 마하임의 몸이 하나가 된 것 같이 마하임의 움직임에 정확히 반응하고 있었다.

“안나, 숨으세요! 어서!”

“네넵!”

안나는 공방 안에 만들어 놓은 패닉 룸으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마하임은 엑스칼리버를 움직여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을 노려봤다.

“너희들은 흑신선?!”

마하임은 한눈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회귀 전, 그들의 검은 망토와 검은색 망토와 손에 든 붉은색 단검을.

저 단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는지 지금도 치가 떨리는 마하임이었다.

“위그드라실 님이 명하셨다. 널 리셋시키고 잠들게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리의 말을 들어라. 우린 너의 적이 아니다.”

음침한 흑신선의 말이 엑스칼리버의 내장 스피커에서 들려왔다. 마하임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엑스칼리버를 전투태세로 바꾸었다.

“무슨 개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엑스칼리버의 테스트를 위해서라면 딱 좋은 타이밍이군. 여긴 좁으니 좀 넓은 곳으로 갈까?”

마하임은 곧장 뒤돌아 안나의 공방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안나의 공방은 심하게 부서졌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돈이라면 넘쳐났기에 이 문제는 나중에 해결하면 될 터였다.

쿠쿵!

길거리로 나간 엑스칼리버는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흑신선 5명이 엑스칼리버의 뒤를 바짝 쫓았다.

엑스칼리버는 전력질주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그와 동시에 뒤따라오던 흑신선 한 명에게 곧장 주먹을 내뻗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엑스칼리버의 주먹을 맞은 흑신선은 나가떨어졌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안 하는 흑신선이었지만, 엑스칼리버의 주먹에 맞은 흑신선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흑신선치고는 약한 놈들이 온 건가…. 아니 그만큼 엑스칼리버가 강하다는 뜻인가?”

바닥에 쓰러진 흑신선을 확인한 마하임은 더는 도망치지 않고 엑스칼리버를 멈춰 세웠다.

놈들의 들고 있는 저 붉은 검이 여전히 신경 쓰였지만, 이놈들을 뒤에 달고 거리에서 움직이며 싸우는 건 자칫 잘못하면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었다.

최대한 깔끔하게 지금 여기서 정리한다. 마하임은 그렇게 결심하고 엑스칼리버의 서브 웨폰을 작동시켰다.

“엑스칼리버, 사용할 수 있는 무장 전부를 꺼내 봐.”

[확인, 현재 사용 가능한 무장은 생체 레이저 5문, 생체 미사일 3문. 목표는 6시 8시 4시 1시 방향의 적대 생명체. 공격 준비 완료.]

“모두 없애 버려!”

[확인, 전탄 발사.]

마하임의 명령에 엑스칼리버의 등 쪽과 어깨에서 대인 생체 미사일과 레이저가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흑신선들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생체 레이저와 미사일은 귀신같이 흑신선의 뒤를 쫓았다.

콰아앙!

파직!

3명의 흑신선이 엑스칼리버의 미사일과 레이저에 맞고 쓰려졌다. 칼도 마법도 오러도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었는데 엑스칼리버의 일격에 추풍낙엽처럼 흑신선들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단 한 명의 흑신선뿐.

하지만 그도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다. 생체 레이저가 스치며 그의 양쪽 다리를 날려 버렸던 것이다.

“잠시 이야기 좀 하지.”

“우리는 너와 이야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까탈스럽긴. 한 가지만 묻자. 위그드라실이 뭐지?”

“위그드라실. 우리들의 주인, 우리들의 창조자. 그리고 이 세계를 만든 진실. 우리는 그분을 따른다.”

살아남은 흑신선은 손에 쥔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자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뭔가 특별한 정보를 얻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저렇게 자살해 버리니 기분은 찝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신선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갈 수밖에 없지. 시오니아의 황성으로….”

* * *

마하임은 곧장 알타베르나의 윈디의 서재로 쳐들어갔다. 한참 저녁을 밥을 먹고 있던 윈디는 깜짝 놀라 마하임에게 말했다.

“뭐, 뭐다요?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요.”

“당신은 개가 아니니 괜찮습니다. 시오니아 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추천서 좀 써 주시죠?”

마하임은 앞뒤 말 다 잘라내고 본론만 윈디에게 말했다. 윈디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마하임에게 말했다.

“지금 네 입장을 모른다요? 넌 시오니아 제국의 볼모나 다름없다요.”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마하임은 이렇게 말한 뒤 엑스칼리버를 소환했다. 갑자기 커다란 마장기가 마하임의 등 뒤에서 툭 튀어 나오자 윈디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헉! 그건 엑스칼리버! 안 된다요. 아직 이르다요. 때가 되지 않았다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전 가 봐야겠습니다. 윈디 교수님이 예전부터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직접 진실을 찾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시오니아 제국에 갈 수 있도록 추천서 한 장 써 주시죠?”

마하임은 엑스칼리버에 탄 채로 윈디를 향해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윈디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뒤 마하임을 향해 말했다.

“꼭 가야겠냐요?”

“네. 언제까지나 도망만 다닐 수 없으니 말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의 인생은 항상 도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이제 그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고 싶었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전쟁을 빨리 끝내고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지금 마하임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시오니아 제국과의 악연을 반드시 정리해야만 했다.

“후회하기 없다요.”

“이미 후회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 상관없습니다.”

“좋다요.”

윈디는 자신의 서랍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오니아 제국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국 황제의 인장이 찍혀 있는 통행증이었다.

“내가 쓰던 건데. 가져가라요. 이거면 웬만한 곳에는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요.”

윈디가 종이를 건네자 마하임은 엑스칼리버에서 나와 윈디에게 그 종이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다요. 넌 후회할 거다요. 이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건 제가 판단하는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마하임은 성큼성큼 윈디의 서재 밖으로 나갔다.

윈디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이것도 다 운명이다요. 과연 위그드라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요. 부디 무운이 함께하길.”

그것이 윈디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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