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대군주-122화 (122/194)

122화

루다크가 신시아 황제로부터 받은 명령은 마하임의 곁에서 그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표면적으론 마하임의 편에서 싸우게 되긴 했지만, 그것이 황제를 배신한 것이라 말할 순 없었다. 물론 저들에겐 궤변으로 들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너네들 나보다 약하잖아. 기껏해야. 미완성 생체 병기 주제에 말이 많다! 와라, 찢어 죽여 주마!”

서로의 눈치를 보는 흑신선들. 그들도 루다크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루다크는 생체 병기들의 프로토 타입이었고, 그 프로토 타입 중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오래 생존한 인물이 바로 루다크였던 것이다.

생체 병기의 수명은 대체적으로 짧다. 하지만 루다크는 그 피할 수 없는 죽음마저 극복하고 시오니아의 기사 칭호까지 받았다.

그런 자를 적으로 돌렸으니 흑신선들도 나름의 각오를 해야만 했다.

“반역자는 용서치 않는다!”

선두에 선 흑신선이 루다크를 향해 내달렸다.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 같이 보일 정도로 빨랐지만 루다크의 눈에는 그저 그런 평범한 움직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신들, 흑신선 얼굴에 먹칠은 너네가 다 하는구나!”

빠악!

루다크의 외침과 동시에 달려들던 흑신선 3명은 뒤로 튕겨져 나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루다크의 펀치가 그들의 얼굴로 날아든 것이다. 피하는 것은커녕 날아오는 것조차 흑신선들은 느낄 수 없었다.

“귀찮으니까 한꺼번에 덤벼라. 아님 내가 가리?”

성큼성큼 남아 있는 7명의 흑신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루다크.

흑신선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일제히 루다크를 향해, 흑신선 들의 전매특허인 붉은 단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핫! 그래야 재밌지. 투체 변신! 그리고 암흑투기 콤보다!!!”

루다크의 몸에서 검은색 투기가 폭발하듯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단단한 갑옷처럼 변했다.

“당신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나 있습니다. 죽어 주십시오.”

순간 사방으로 흩어진 흑신선들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루다크를 향해 쏟아지듯 몰려들었다.

단숨에 루다크를 찢어 버릴 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흑신선들. 하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는 않았다.

“병신 새끼들! 네놈들 주제 파악이나 해라! 암흑권풍!”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흑신선들을 향해 루다크의 암흑투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암흑투기에 맞은 흑신선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비공정 밖으로 추락했다.

“컥, 사 살려 줘!”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추락하는 흑신선들. 하지만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 참, 시시해서. 게임이 되지 않는군.”

“오오. 대단하오, 그 악명 높은 흑신선을 이렇게나 간단히 처리하다니.”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샤오랑은 저도 모르게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사실 비공정이 아닌 지상에서 싸웠다면 꽤나 힘겨운 대결이 됐겠지만, 지금 이곳은 비공정 위였다. 한 걸음만 잘못 떼면 수백 미터 아래의 지상으로 추락한다.

그래서 흑신선들은 제대로 힘을 내지 못했고, 또한 숫자를 믿고 방심한 덕분에 이런 싱거운 결말이 난 것이다.

“안심하긴 일러. 온다. 적의 보스가.”

루다크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대하면서도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기이이이잉!

다른 흑신선의 비공정보다 2배는 커 보이는 비공정이 안나의 비공정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 비공정 안에서 검고 커다란 인형이 안나의 비공정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왔다.

쿵-!

순간 안나의 비공정이 균형을 잃어 휘청했다. 이 충격에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는 벽을 잡고 비공정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큭, 설마 벌써 완성된 거냐?!”

루다크는 인상을 구겼다. 천천히 균형을 되찾아 가는 비공정 위에 한 명의 사람, 아니 마장기로 보이는 것이 서 있었다.

검은색 오러를 연기처럼 모락모락 뿜어내는 그것의 크기는 마하임의 엑스칼리버와 동급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 작았다.

하지만 이 마장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쾌한 기운은 안나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저놈은 마장기와 생체 병기를 일체화시킨 괴물, 아콘이다. 함부로 상대해선 안 돼!”

아콘, 저주받아 마땅한 고대인의 병기. 기계와 생명체를 뒤섞어 만든 최악의 전투 병기였다.

탑승자와 융합해 미쳐 날뛰는 에테르와 달리 아콘은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마장기, 아니 생체 병기에 가까웠다.

“저 녀석은 내가 맡지. 엑스칼리버!”

마장기는 마장기로 맞서는 것이 답이었다. 마하임은 기다렸다는 듯 엑스칼리버를 소환했다.

그의 외침에 엑스칼리버는 양자 공간에서 실체화되어 마하임과 하나가 되었다.

[엑스칼리버 레디. 적 성향 파워드 슈트 확인. 전투 지원을 개시하겠다.]

엑스칼리버의 말이 마하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엑스칼리버와 하나가 된 마하임은 천천히 저 검은색 마장기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크르르릉 키에에엑!”

마하임이 다가가자 ‘아콘’의 얼굴부위가 쩍 벌어지며 흉측한 입이 드러났다. 그리고 포효하듯 울부짖는 아콘.

“난 수다쟁인 싫어한다.”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마하임은 땅을 박찼다. 비록 엑스칼리버를 탄 상태였지만, 축지의 보법도 사용할 수 있었다. 순간 아콘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마하임은 힘껏 아콘의 머리를 내려쳤다.

쾅-!

“꾸에엑!”

예상치 못한 마하임의 공격에 아콘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아콘은 아콘. 게다가 지금 여기 서 있는 아콘은 지금까지 만든 것들 중 최신식이었다.

지성도 없고 감성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려는 잔혹한 본능뿐.

뒤로 물러난 아콘은 한 마리의 야수처럼 마하임의 엑스칼리버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림도 없다!”

마하임은 몸을 웅크리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아콘의 복부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의 최대 출력으로 배를 후려쳐 버렸다.

빠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아콘은 비공정 밖으로 튕겨지듯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곧장 다른 흑신선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등장은 거창했는데, 어째 허무하다. 하하.”

마하임의 일격에 비공정 밖으로 나가떨어진 아콘을 바라보던 루다크는 헛웃음이 다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마하임은 여전히 엑스칼리버에 타고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놈은 살아 있다.”

엑스칼리버는 방금 지상으로 추락한 아콘이 급속 접근중이란 경고를 보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마하임과 루다크는 아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썩을, 이번에는 날개까지 처달았네.”

날개를 퍼덕거리며 무서운 속도로 아콘은 비공정을 향해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곧장 전투가 일어날 것 같았다.

“가까이 오도록 내버려 둘 수 없지.”

[생체 미사일 발사 준비 완료. 생체 레이저 발사 준비 완료.]

달리 명령할 필요조차 없었다. 마하임이 그저 떠올린 것만으로도 엑스칼리버는 외장 무기 발사 준비를 끝마쳤다.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려!”

[OK. Fire!]

짤막한 고대어와 함께 엑스칼리버에서 새하얀 빛줄기 3개와 회색 꼬리를 무는 미사일 3발이 일제히 발사됐다.

콰쾅-!

아콘은 날아오는 생체 레이저와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콘은 마하임의 공격을 하나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전부 얻어맞았다.

“키에에에엑!”

괴성을 지르며 추락하는 아콘. 하지만 이내 아콘은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콘은 공격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어력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론상으로는 8클래스 공격 마법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아콘. 마하임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건 몰라도 아콘에게 비공정이 공격당한다면 모두의 생명이 위험해졌다.

“좋아요! 에너지 충전 완료! 모두 귀를 막아요!”

그때 안나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들려왔다.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는 저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쿠쾅-!

대기를 찢는 듯한 엄청난 폭음. 비공정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리고 음속을 가볍게 능가하는 레일건의 탄환이 아콘을 향해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키에…. 킥!!”

리니어 모터(linear motor)를 이용한 대물 저격용 레일건, 그것이 이 비공정에 장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특제 탄환을 100km/s 속도로 쏠 수 있는 이 레일건은 충전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 위력은 이 세상 어떤 병기보다 강력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콘의 하반신을 일격에 날려 버렸다.

하반신을 잃은 아콘은 허공에서 몇 번 날개를 허우적거리다가 힘없이 추락해 버렸다.

“헤, 처음 사용해 보는데 위력 끝내주죠?”

안나의 말에 마하임을 비롯한 모두는 넋을 잃고 말았다.

“자 그럼 나머지 잔당을 처리해 보실까나?”

안나는 자신의 비공정을 흑신선의 비공정들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그러자 비공정 하단에 삐죽 솟아 있는 레일건의 포탑이 자동으로 흑신선의 비공정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2탄 준비 완료. 레일건 충전 완료.”

레일건에 의해 아콘이 일격에 죽는 것을 본 흑신선의 비공정은 깜짝 놀라 기수를 반대로 돌렸다. 이를 본 안나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릴 공격하고 그냥 가겠다고? 이미 늦었어. 이 레일건은 한 방만 충전하면 연사가 가능하거든. 잘 가, 흑신선. 만나서 젓 같았고 다신 보지 말자.”

푸슝-! 푸슝-!

콰쾅, 쾅-!

레일건의 발사음 소리와 흑신선의 비공정이 박살 나는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비공정마저 일격에 박살 나자 흑신선의 비공정들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를 그냥 내버려 둘 안나가 아니었다.

안나는 집요하게 흑신선들의 비공정을 쫓았고, 레일건의 포신에서 불을 뿜어낼 때마다 흑신선들의 비공정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박살 나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안나에게는 자비 같은 것은 없었다. 한 번 화가 나면 그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이 바로 안나였다.

흑신선의 비공정이 모두 파괴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였다.

“아, 상쾌해! 간만에 스트레스 좀 풀었네.”

흑신선의 비공정이 남긴 시커먼 연기를 바라보며 안나는 웃었다. 역시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뭔가 부수는 것이 최고였다.

가르샤에서 아무런 활약도 못 하고 쥐 죽은 듯 마하임의 뒤를 따라만 다녔던 터라 욕구 불만이 좀 쌓였던 모양이었다.

마하임과 샤오랑 그리고 루다크는 지금 여기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안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무 말 않고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금 속도를 높이는 안나의 비공정. 이 기세라면 오늘내일 새벽쯤이면 시오니아 제국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시오니아 제국에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진실’이란 또 무엇일까? 시오니아 제국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피어났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시오니아 제국으로 향하는 것뿐.

멀리 서쪽 하늘에서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밤이 시작됨을 알리는 황혼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마치 다가오는 위험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