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안나의 비공정이 시오니아 제국의 수도, 시온에 도착한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 이후 적의 공격은 없었고 안나의 비공정은 순조롭게 비행해, 제국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나는 비공정을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 착륙시켰다.
자칫 잘못해 시오니아 제국의 방공 식별 영역에 들어갈 경우 원치 않는 전투에 휘말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텔스 모드로 전환!”
비공정에서 모두가 내린 것을 확인한 안나는 자신의 비공정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비공정은 마치 지우개로 지워 버린 것같이 순식간에 그 모습이 사라졌다.
“오! 감쪽같이 사라졌소. 어떻게 한 거요? 안나 공.”
이를 본 샤오랑이 눈이 동그래져 안나를 향해 말했다.
“아, 공간 왜곡을 이용한 스텔스예요. 이렇게 숨겨 버리면 실제로 만질 수도 없죠. 이번에 가르샤에서 새로 개발한 기술인데 시험 삼아 써 본 거예요.”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는 안나. 하지만 샤오랑 외에는 전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루다크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려 말조차 붙이기 힘들었다.
“루다크, 넌 빠져도 된다. 내가 지금 하려는 짓은 어쩌면 시오니아 제국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보다 못한 마하임이 루다크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루다크는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니, 나도 나름의 결심을 했으니까 상관하지 마라. 게다가 널 감시하는 것이 내 본연의 임무다. 난 그저 내 임무에 충실한 것뿐이니까 배신이고 뭐고 할 것도 없다.”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그렇다고 마하임이 루다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은 못 되었다.
그도 그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기에 마하임은 더는 간섭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자, 가죠. 지금쯤이면 성문도 열렸을 거예요.”
시온에는 통금이 존재했다. 저녁 7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성문이 닫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오지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 때문에 아침이 되면 성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로 성문 쪽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혼란을 틈타 성안으로 진입한 다면 큰 어려움 없이 시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터였다.
“어이, 거기 순서 지키고! 새치기하지 마시오!”
“아놔, 저놈이 먼저 새치기했다니까.”
“순서를 지키시오! 모두 쫓겨 나고 싶소!”
시온 북문. 그곳에는 적어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도 가도 못 하고 얽혀 있었다.
시오니아 제국이 전쟁을 시작한 이후 이런 광경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시오니아의 수도 시온은 인구 50만의 대륙 최고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오가는 상인 하며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까지 성문 앞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이를 관리해야 하는 시오니아의 병사들은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보시오! 순서를 지키시오. 여긴 귀빈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요.”
마하임을 바라본 병사는 창으로 통로를 가로 막으며 말했다.
일반인처럼 검문을 받고 성문을 통과하려면 오늘 오후에나 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윈디의 추천장 하나만을 믿고 귀빈용 통로를 이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귀빈…. 이거면 되겠나?”
마하임은 병사에게 윈디에게서 받은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 든 병사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모,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즉시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허겁지겁 길을 터는 병사들. 윈디에게서 받은 추천서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마하임 일행들은 그대로 성문을 통과해 시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와, 크긴 크네요.”
성안으로 들어온 안나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자아냈다.
성벽을 등지고 들어선 수많은 건물들은 숲을 이루고 있었고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곳이 대륙 최고의 도시라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떡할 거냐?”
마하임을 향해 루다크가 물었다. 마하임 역시 딱히 뭔가 계획을 세우고 온 것은 없었다.
목표는 시오니아 제국, 황성 안의 최하층으로 내려간다는 것이었지만, 그 중간의 세부적인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글쎄 어쩌면 좋을까? 나도 딱히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그래? 그럼 배부터 채우자. 먹어야 싸움도 하지. 내가 꽤 괜찮은 맛집을 알고 있으니 그리로 가자.”
“네, 저도 동의해요. 여기까지 오면서 먹은 건 비상식량뿐이잖아요.”
안나도 동의하자 마하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다크는 성큼성큼 성안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알타베르나의 상업 구역만큼이나 복잡하고 사람들도 넘쳐났지만, 루다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10여분 걸었을까? 제법 큰 음식점 하나가 나타났다.
“시오니아산 특제 멧돼지 바비큐! 시오니아 제국에 왔다면 이건 꼭 먹어 봐야 해!”
식당 안으로 들어간 마하임 일행들. 아직 아침인지라 식당 안은 한산했다.
루다크는 이미 이곳에서 몇 번 먹어 본 모양인지 익숙하게 메뉴를 골라 음식을 주문했다.
“향이 참 좋소. 멧돼지는 조금만 요리를 잘못해도 냄새가 완전 구리거늘.”
“당연하지. 이 음식점의 역사는 200년이 넘었단 말씀. 단언컨대 여기보다 멧돼지 고기 요리를 잘하는 곳은 시오니아 제국 안에서는 없을 거다.”
오래 지나지 않아 고소한 향과 함께 멧돼지 바비큐가 마하임 일행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도착했다. 온갖 향신료와 고명을 올린 바비큐는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이 돋는 것 같았다.
“자, 먹자고. 이건 내가 쏜다! 자고로 손님 대접은 집주인이 해야 하는 법. 부담가지지 말고 먹으라고.”
루다크는 먼저 멧돼지의 뒷다리를 뜯어 베어 물었다. 이를 본 마하임 역시 조심스럽게 새콤달콤한 향이 물씬 풍기는 멧돼지 고기를 조금 잘라 접시에 올렸다.
이렇게 진수성찬은 간만이었다. 아침인지라 썩 입맛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바비큐에서 풍겨 나오는 맛있는 냄새는 고기에 손이 절로 가게 했다.
“와! 가르샤의 햄보다 더 맛있는걸요? 이렇게 맛있는 바비큐는 처음 먹어 봐요.”
“당연하지. 기계에서 찍어 만드는 가공 햄을 이 바비큐 비교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루다크는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며 순식간에 손에 들었던 돼지 뒷다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마하임 역시 고개를 나이프로 잘라 먹을 수 있는 한계까지 뱃속에 채워 넣었다. 고기의 양은 그렇게 먹어도 많이 남아 있었다.
“고기를 먹었으니 시오니아 특제 흑맥주 어때?”
“전 좋아요!”
두 눈을 반짝이는 안나. 노옴족은 타고난 술고래. 안나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바란 술 파티는 이어지지 못했다.
[경고, 생체 병기 반응 확인. 개체 수 10. 급속 접근 중.]
오페라의 경고가 마하임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바로 그 직후였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며 난입한 괴한들. 그들은 한결같이 검은 망토와 붉게 타오를 듯한 단도를 쥐고 있었다.
“흑신선?!”
그들은 안나의 비공정을 습격한 흑신선과 같은 계열 같았다. 그들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살의. 루다크는 몸을 일으켜 흑신선을 향해 외쳤다.
“나는 시오니아 제국의 기사 루다크. 황명에 따라 이들을 보호 중이다. 지금 네놈들, 반역을 저지르고 있다는 거 알고는 있냐? 당장 꺼져. 그럼 못 본 척해 줄 수는 있다.”
루다크의 말에 흑신선은 미동도 없이 마하임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흑신선의 선두에 선 유달리 살의가 강한 흑신선이 말했다.
“우리의 주인은 위그드라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모두 돌아가라. 마지막 경고다.”
흑신선들은 붉게 빛나는 검을 마하임 일행을 겨두며 경고했다. 마하임은 자리에 일어서며 오페라를 뽑아 들었다.
“그 ‘때’는 누가 정하는지 궁금하군. 네놈들의 협박 따위에 물러설 것 같았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마하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흑신선은 마하임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은 도저히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비공정에서 봤을 때도 만만치 않았지만, 지금 저 흑신선들은 그와 격이 달랐다.
[적대 생체 병기에게서 나노머신 반응 확인.]
“뭐?!”
흑신선들은 미처 마하임이 반응조차 못 할 빠르기로 접근해 왔다.
쩡-!
가까스로 흑신선의 단검을 막은 마하임, 그의 등골에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네놈들도 오버클럭을 사용하는 건가?”
“오버클럭은 표준 장비다. 꿈꾸는 자, 네놈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마하임과 검을 부딪친 흑신선은 뒤로 물러섰다.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착지하는 흑신선. 다른 흑신선들은 그와 열을 맞춰 섰다.
“저 흑신선들에게 마하임 공에서 느낄 수 있는 똑같은 기운이 느껴지오. 보통 놈들이 아니니 조심해야겠소.”
샤오랑은 부적을 양손에 들고 마하임을 향해 말했다. 루다크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고선 투체 변실술과 암흑투기를 동시에 사용했다.
“엠페러 포스는 아닌 것 같고, 네놈들 어디 소속이지? 설마 나 루다크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루다크는 으르렁거리며 흑신선을 노려봤다. 흑신선은 루다크를 슬쩍 바라보더니 무감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의 주인님은 위그드라실. 이 세계는 위드그라실 님의 창조물. 황제라고 다를 건 없다. 모두 잠들게 해 주마. 그리고 위그드라실 님이 정한 때에 다시 깨어나리라.”
10명의 흑신선들은 일제히 마하임 일행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안 돼! 오버클럭으로는 상대할 수 없어!’
저 흑신선도 오버클럭을 사용할 수 있는 듯했다. 적이 한 명이라면 몰랐지만 10명의 흑신선을 마하임 혼자 막을 수는 없었다.
“엑스칼리버!!!”
마하임의 외침과 동시에 마장기 엑스칼리버가 순간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와 하나가 된 마하임. 갑작스러운 엑스칼리버의 등장에 흑신선들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엑스칼리버…. 이미 손에 넣었군. 비상사태 확인. A2 위그드라실 님에게 알려라.”
“네!”
흑신선 중 한 명이 전열을 이탈해 주점 밖으로 나갔다. 다시 대치 중인 마하임과 흑신선들. 싸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오버클럭을 사용하면 그 특유의 상식을 초월하는 움직임 때문에 엑스칼리버의 생체 레이저 및 생체 미사일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접 전투뿐이었다.
“샤오랑, 적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을까?”
“가, 가능하오. 아무리 놈들이 빨라도 부적술마저 피할 순 없을 것이오.”
“그럼 부탁합니다.”
마하임의 말에 샤오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에 숨기고 있던 부적 한 뭉치를 공중에 던지며 외쳤다.
“눈 뜨라, 땅의 기운이여. 대지 속박의 술, 지둔!”
부적은 마치 살아 있는 양 하늘 위로 솟구치더니 흑신선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흑신선들은 사방으로 몸을 날려 피했지만 부적보다는 빠를 수 없었다.
“큭! 주술인가?!”
부적에 맞은 흑신선의 당황한 외침이 마하임의 귀에까지 들렸다.
이 부적술은 간접 공격에 특화된 일종의 저주였다. 이 저주에 걸린 사람, 혹은 물체는 무조건 2배 이하로 움직임에 제한이 걸린다.
이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저주였기에 오버클럭으로서도 해결할 수 없었다.
“딱 좋군.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겠다!”
마하임과 루다크는 흑신선이 느려지자마자 놈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오버클럭의 무서운 점은 상식을 넘어서는 반사 신경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동 능력이었다.
하지만 안나의 부적술이 발동하자 오버클럭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버클럭이 없는 흑신선은 보통 인간 정도의 체력밖에 없는 평범한 병사들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