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퍽! 크아악!
퍼퍼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흑신선은 마하임과 루다크의 손에 하나둘 쓰러져 갔다.
엑스칼리버에 탄 마하임의 주먹에 맞은 흑신선은 실 끊어진 연처럼 허무하게 쓰러졌다. 루다크 역시 대인 전투에 특화된 몸인지라 흑신선들을 가볍게 제압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전투는 끝났다.
“후우. 의외로 싱겁게 끝났나?”
긴 한숨을 쉬는 루다크. 사실 처음에는 못 이길 것만 같았다.
마하임과 같은 능력을 쓰는 10명의 흑신선이라니, 이길 수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 샤오랑의 부적술이 있었기 망정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이번 여행은 오늘로서 끝나 버렸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 어떡해야 하냐는 것 아니겠소.”
뒤늦게 난장판이 된 식당 안으로 웅성거리며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샤오랑은 말했다.
“그러게요. 황성으로 가면 갈수록 저런 놈들로 가득할 텐데…. 지금의 장비로는 무리예요.”
“그렇소. 내 부적술도 무한히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오.”
걱정 가득한 얼굴의 샤오랑. 루다크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적과의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모두 돌아가십시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갑니다.”
마하임은 엑스칼리버를 양자 세계로 돌려보낸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것은 치기 어린 결심 같은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또 어떤 괴물이 나올지 몰랐다.
대낮인데도 저런 흑신선이 활보하는데 밤이 오면 그보다 훨씬 강하고 끔찍한 놈들이 활보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마하임이라도 모두를 지키기 힘들었다.
“가,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화들짝 놀란 안나가 말했다. 샤오랑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 저 불구덩이에 혼자 들어가겠다는 말이오?! 절대 그렇게 내버려 둘 순 없소. 마하임 공, 죽음이 두렵지도 않소!?”
마하임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잠자코 안나와 샤오랑 그리고 루다크를 바라보았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름의 정도 들었고, 어디를 내놔도 손색없는 인재들이었다. 물론 루다크는 한때 자신의 적이었지만, 지금은 그 이상 믿을 만한 전사도 없었다.
“물론 두렵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잃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두렵습니다. 전 엑스칼리버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안나는 무어라 말하려다 루다크에게 제지당했다. 루다크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다. 이미 녀석은 결심한 모양이다. 내 말 맞지, 마하임?”
마하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루다크를 향해 다가왔다.
“비공정에서 기다려. 금방 끝내고 돌아올 테니.”
“좋아. 이번만은 네 말을 따라 주지. 이건 빚이다. 반드시 받아낼 테니 기억하고 있어라.”
루다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하임은 말없이 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자, 마하임 말 들었지. 우린 비공정에서 대기한다. 리더의 말을 잘 따라야 훌륭한 파티지. 자, 가자고.”
샤오랑과 안나의 등을 떠미는 루다크. 바로 그때 안나는 자리를 박차고 마하임에게 달려가 안겼다.
“죽으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마하임은 자신의 품에 안겨 온 안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언젠가 맡아 본 것만 같은 달콤한 향기가 마하임의 후각을 부드럽게 자극했다. 마하임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약속하죠.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하임은 안나를 놔줬다. 그녀는 긴 한숨을 쉰 뒤 마하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루다크와 안나 샤오랑은 성문 밖으로 향했다. 마하임은 그저 그들의 뒤를 바라볼 뿐이었다.
* * *
해가 졌다. 이른 저녁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하늘은 기어코 빗방울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루다크와 안나 샤오랑과 혜어진 지는 이미 7시간은 지났다. 지금쯤이면 안전한 비공정 안에 있으리라.
마하임은 오가는 사람이 많은 시장을 지나 곧장 시오니아 황성으로 향했다.
시오니아 황성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병사들의 검문검색이 연이어 이어졌다.
하지만 마하임에게는 윈디에게 받은 추천서가 있었다. 그 추천서를 내밀자 병사들은 별다른 검문도 없이 마하임을 통과시켜 주었다.
“이렇게 순조롭게만 된다면 좋을 텐데….”
마하임은 불안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시오니아 황성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강렬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가는 인파도 뚝 끊어졌다. 사람 한 명, 아니 쥐 새끼 한 마리도 주위엔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성벽과 좁디좁은 골목길이 전부였다.
하늘에서 빗줄기가 더욱더 강해졌다. 마하임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비에 젖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쿠쿵-!
바로 그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마도 폭우가 쏟아져 내릴 듯했다. 그리고 세차게 내리는 비. 그리고 그 빗줄기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경고, 생체 병기 다수 발견. 스텔스 모드를 사용하고 있어 정확한 개체 수 확인 불가. 즉시 파워드 슈트에 탑승하라.’
[비상사태. 발생 다수의 미확인 전투 유닛 발견. 오페라 긴급 전투 모드로 이항.]
엑스칼리버와 오페라가 동시에 마하임에게 경고음을 전했다. 마하임은 지체 없이 엑스칼리버를 소환했다.
[엑스칼리버 레디.]
엑스칼리버 안은 밖과 다르게 따듯했다. 그리고 주변 상황의 미세한 변화도 빠짐없이 마하임에게 전송했다.
“어디지. 보이지 않아.”
[적은 신형 광학미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육안으로는 확인 불가. 적외선 모드로 전환한다.]
마하임의 시아가 순간 붉게 변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환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흐릿한 그림자 셋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원 확인 불능. 나노머신 반응 확인. 락온 당했다. 미사일 18기 발사 확인!]
엑스칼리버의 경고와 동시에 적이라 생각되는 그림자의 몸에서 18기의 미사일이 솟아올랐다.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마하임이었다.
“어떡하지? 난 이런 전투는 해 본 적 없다.”
[확인. 요격 모드로 전환. 적 미사일 타깃 온.]
마하임의 시야가 증강 현실로 덧입혀졌다. 그리고 날아오는 미사일을 분석하는 수많은 숫자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요격하겠다.]
기이잉.
엑스칼리버의 양쪽 어깨 장갑이 열렸다. 그러자 주먹보다 작은 소형 미사일이 빼곡히 들어찬 미사일 슬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FIRE.]
고대어와 함께 소형 미사일들이 일제히 발사됐다. 발사된 미사일은 적의 미사일을 향해 먹이를 쫓는 맹금류처럼 날아들었다.
콰쾅-!
요란한 폭음 소리와 함께 미사일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폭음 소리는 뒤이은 천둥소리에 묻혀 버렸다.
[전탄 요격 완료. 적 급속 접근 중. 탑승자는 즉각 대응하라!]
엑스칼리버의 경고음이 또다시 울렸다.
적이 다가온다. 마하임은 등골이 오싹한 살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적의 형태는 알 수 있었지만, 자세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스텔스 모드’ 때문인 듯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림자들. 그 그림자들은 새까만 창 같은 것을 마하임의 엑스칼리버를 향해 던졌다.
“망할!”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하임은 온몸을 비틀며 그 창을 피해냈다.
그그극!
창은 엑스칼리버의 표면 장갑을 긁으며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적의 공격은 이제 시작이었다.
[생체 레이저 반응 확인. 회피 기동을 추천한다.]
엑스칼리버의 경고. 하지만 너무 늦었다. 사방에서 쏟아져 오는 시뻘건 생체 레이저. 마하임은 이를 악물었다.
쾅-!
엑스칼리버가 마구 뒤흔들렸다. 강렬한 생체 레이저가 엑스칼리버의 표면 장갑을 순식간에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폭우 속에서 생체 레이저가 제대로 된 위력을 내기는 어려웠다. 만약 맑은 날 맞았다면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을 터였다.
“이제 내 차례다!”
마하임은 땅을 박찼다. 엑스칼리버를 얻고 난 뒤 마하임은 이 엑스칼리버를 어떻게 운용할지 수도 없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 과정에 알아낸 것은 이 엑스칼리버를 탄 상태라면 내공이 없는 마하임조차도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번 버텨 봐라! 선기발경!”
순식간에 가장 가까운 그림자와의 거리를 좁힌 마하임은 인정사정없이 놈의 몸체에 발경을 날렸다.
투캉-!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처박히는 검은 그림자. 검은 그림자는 크게 타격을 입은 모양인지 그림자와 같은 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숨겨진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 오우거?!”
그것은 얼마 전 은혼의 숲에서 발견한 오우거와 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입고 있는 갑옷이 좀 더 복잡하다는 것뿐이었다.
[적 모델 확인. B.O.W(바이오 오가닉 웨폰) 넘버 1127. 코드네임 오우거. 전천후 2족 보행 병기다.]
오우거는 무시무시한 힘과 재생력으로 악명높은 몬스터였다. 이 몬스터를 사로잡아 생체 병기로 만들었다면 그 위험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저런 녀석이 아직 2기나 더 있다는 것은 마하임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할 수 있다. 이 엑스칼리버라면!”
마하임이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은 축지와 발경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엑스칼리버는 마하임의 불안정한 단전에 내공을 부여해 완벽에 가까운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위력은 시아라의 발경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투깡 파아앗!
스텔스 모드를 사용하고 있는 두 마리의 오우거들은 거침없이 마하임에게 창 같은 무기를 던졌다.
하지만 엑스칼리버의 지원을 받는 마하임은 어렵지 않게 놈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 한순간이라도 틈이 나면 거침없이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기발경!”
투하학!
단전에서 증폭된 내공이 담긴 발경의 기운은 엑스칼리버의 손을 거쳐 다시 한번 증폭되어 오우거의 배를 꿰뚫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발경을 맞은 오우거의 등 뒤 건물들까지 연이어 박살이 나 버렸다.
위력이 이 정도였으니 오우거 역시 무사할 리 없었다. 발경 한 방에 배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버린 오우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한 마리 남았다.”
마하임은 머뭇거리고 있는 마지막 남은 오우거를 노려보았다. 오우거는 마하임의 예상치 못한 강력한 공격력에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하임의 착각이었다. 오우거는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하늘로 향해 훌쩍 점프했다. 그리고 오우거의 등 쪽에서 한 쌍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비행도 가능한가 보군.”
하늘 높이 날아오른 오우거는 몸속에서 창을 꺼냈다.
그 창은 오우거 자신의 생체 조직으로 만들어진 창이었다. 그 날카로움은 두터운 성벽마저 관통할 정도로 엄청났다.
제아무리 마하임이라 할지라도 정면으로 맞을 경우 엑스칼리버와 함께 관통해 버릴 터였다.
퓻 슈캉!
오우거는 연이어 마하임을 향해 창을 던졌다. 마하임은 축지를 응용해서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오우거는 마하임의 피하려는 위치까지 계산해서 창을 날렸다.
“큭! 제길!”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마하임은 그 창을 피했다. 어쨌든 피할 수는 있었지만, 저렇게 높은 곳까지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생체 레이저는 이 빗속에서는 의미 없었고 미사일은 방금 전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다 소모했다.
피하기만 해서는 승리할 수 없었다.
이대로 전투가 계속 이어지면 불리한 것은 마하임이었다. 게다가 놈의 창의 명중률은 시간이 갈수록 올라갔다.
“젠장!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마하임은 당황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그리고 그때 문뜩 제페쉬의 저택에서 시문이 사용했던 기술이 떠올랐다.